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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먼저 영화로 만난 작품이다. 오래 전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읽는 동안 <파고>와 종종 혼돈을 일으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로는 <파고>가 더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당시 영화는 나에게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당연히 원작도 그렇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영화로 생각하면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 아닌데 말이다.
이런 생각은 소설을 절반 정도 읽는 동안에도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세부적인 내용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파고>와 착각도 하였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많이 생략된 감정의 흐름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숨겨진 재미를 드러내긴 하였다. 하지만 결과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긴장감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영화가 끝난 그 부분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한 인간이 탐욕에 휩쓸려 악으로 물드는 과정이 너무나도 담담하면서도 섬뜩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행크와 제이콥은 형제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늘어난 부채 때문에 차를 몰고 나가 자살을 한다. 아버지가 바란 것은 새해 전날 자신의 무덤으로 두 형제가 찾아오는 것이다. 매년 이 행사는 잘 이어져왔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제이콥의 친구 루가 함께 무덤으로 가게 되었다. 미끄러운 길에 조그마한 여우가 나타나면서 사고가 발생하고, 함께 있던 개가 그 여우를 쫓는다. 개를 쫓아간 그들은 눈 속에 파묻힌 비행기를 발견한다. 그냥 신고를 하면 되는데 그들은 비행기 안을 들여다본다. 여기서 어마어마한 돈을 발견한다. 루와 제이콥은 그 돈을 가지자고 하고, 행크는 신고를 주장한다. 돈을 추적한 사람들을 염려한 덕분이다.
이 갈등의 순간 슬그머니 마음 한 곳으로 악이 스며든다. 아주 간단한 계획 하나를 제안한다. 6개월 동안 이 돈을 사용하지 않고, 그 후 찾는 사람이 없다면 돈을 나누기로 한다. 물론 돈은 신고를 주장한 행크가 보관하기로 한다. 6개월 뒤 돈을 나누기로 하고, 새로운 눈이 추락한 비행기의 흔적을 지워줄 것을 생각한 그들의 계획은 간단하면서도 매력 있다. 바로 이 간단한 계획에서 무시무시한 살인들이 이어지고, 한 인간이 완전히 무감각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현실로까지 이어진다.
소설은 제목처럼 간단한 구성과 전개다. 행운이라 생각한 돈 다발을 가지게 된 사람들의 한 순간 선택이 어떻게 결말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준다. 복잡하게 이야기를 꼬지도 않고, 많은 등장인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화자인 행크의 심리와 행동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재미가 바로 그것이다. 돈에 대한 욕심에서 시작된 살인과 자신이 잡히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벌어진 살인이 이어지는데 너무나도 담담하게 쓴 덕분에 더욱 섬뜩하고 끔찍하다. 그 잔인함이 평소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았던 중산층에서 나왔기에 더 그런 모양이다.
영화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등장인물은 행크의 아내다. 행크가 돈을 보여주었을 때 행크처럼 신고하자고 하지만 금방 설득 당한다. 위험해지면 돈을 태우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욕망은 비정하고 냉혹하면서 거대하다. 그녀 자신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지만 행크 뒤에서 공포에 질려하고, 주저하는 그를 독려하고 독촉하여 무서운 현실로 연결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순간 윤리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욕망이 흘러넘친다. 이 욕망이 순간적인 흥분으로 튀어 올랐다면 인간적으로 느껴졌을 테지만 그녀는 냉정하고 비정하면서 주저 없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직접 살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실제 현실이 감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녀가 곳곳에 드러내는 감정과 욕망은 행크의 욕망과 두려움을 압도할 정도다.
나에게 영화 때문에 약간 빛을 바래긴 했지만 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심리와 장면들이 정말 놀랍다. 소설을 읽다 기리노 나츠오의 <아웃>이 먼저 생각났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겨져 있던 악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잔인하다고 외치면 욕할 행동이 자신들을 위해서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인간은 욕심과 자기 안위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존재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