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 2024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리사 리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파머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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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2024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이다.

노년의 삶과 그를 돌보는 사회 시스템이 일기와 일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양보호사의 메모는 간단하게 사실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보의 일상과 상상은 그것을 너머 자신만의 생각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보의 일상과 추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교묘하게 사실과 상상을 뒤섞어 세밀하게 봐야만 그 경계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계속 보면 그 경계가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다.

처음 이 소설이 약간 지루하게 느껴진 것은 이런 경계와 정체된 일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삶들과 관계가 보이면서 여운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과 아들 한스.

요양보호사는 한 명이 아니고, 하루에도 둘 이상이 와서 보를 돌본다.

그들은 보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이것이 다음 요양보호사의 참고 자료가 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사회시스템을 엿보게 한다.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으로 떠난 아내의 스카프 냄새로 그리움을 달래는 보.

그 향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병에 밀봉했지만 그 병을 열지 못하는 보.

그의 곁을 늘 지키는 반려견 식스텐과 식스텐을 데리고 가려는 아들 한스.

반려견을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산책 등을 시키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에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설 속에서 식스텐과 산책을 나갔다가 넘어져 돌아오지 못한 순간이 있다.

자산의 바람과 현실의 충돌, 작은 거부의 몸짓,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살아 있음으로 인해 돌봐야 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아버지와 비교하는 삶.

아들 한스와 어느 순간 거리를 둔 자신의 모습과 중늙은이가 된 아들 한스.

아들과 불화한 순간도 많았지만 지금 그를 가장 돌보는 인물은 바로 한스다.

일 때문에 늘 바쁜 듯한 한스는 집에 필요한 물건을 필요 이상으로 사서 쟁여둔다.

아들은 아버지가 좀더 편안하게 집에 머물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집에서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기 바란다.

이 충돌은 시간의 흐름 속에 아들이 바라는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늙은 몸은 거부의 몸짓조차 힘들게 하고, 뭔가를 깜박하는 순간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의 추억 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아내의 모습.


차분하게 읽다 보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부모님의 노년과 나의 노년을 떠올리고, 아이와의 미래도 같이 생각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는 실행으로 옮길 힘도, 의지도 크게 없다.

기저귀를 차고 싶지 않아 거부하지만 어느 순간 차고 있는 그의 모습은 현실의 반영이다.

자신의 현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런 현실의 연속은 보는 독자가 그의 처지에 공감하게 한다.

요양보호사의 존재와 도움은 읽는 내내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성스럽게 그를 돌보고, 하루 종일 보는 것이 아니고 비용 이야기도 없다.

간병 보험이 앱으로, 방송으로 가득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노년에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생각하고 바꾸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작가가 초점을 맞춘 것은 그 과거 속에 자신이 놓쳤거나 무시한 것들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영감이라 부르고, 그의 초대를 바쁘다는 핑계로 거부했던 순간.

홀로 살다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 어머니의 죽음과 그 추억들.

자신이 아이에서 청년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자랐듯이 그 아들도 그렇게 성장했다.

그리고 친구 투레와의 이야기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한다.

읽으면서 몇몇 장면은 나의 과거 기억을 되살려주었고, 잠깐 눈시울을 붉게 했다.

힘 빠진 노인의 마지막 삶과 같은 호흡으로 담담하게 담아낸 문장들은 천천히 가슴으로 스며든다.

독자들이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받아들여주어 가장 기뻤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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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형사 : chapter 1. 쌍둥이 수표
알레스 K 지음 / 더스토리정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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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능범죄수사대장 출신 변호사의 첫 소설이다.

작가는 17년간 수사현장 최전선에서 활약한 최고의 수사통이라고 한다.

작가의 이 경험은 소설 속에서 사실적인 설명이나 묘사로 드러난다.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도 좋아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리즈가 영상화 제작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사실적인 내용 때문인지 읽다 보면 가슴을 탁 치면서 화내고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많다.

그리고 곳곳에 관계자가 아니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 중 하나가 첫 장면에 나오는 주왕재의 결혼식이다.


박동금. 골프선수 출신이고 초짜 형사다.

뛰어난 외모 덕분에 많은 여성들의 대시를 받는다.

하지만 광역수사대에서 그는 아직 신입이라 부족한 것이 많다.

그의 집은 을지한우라는 유명한 고깃집을 하는데 그의 팀이 자주 회식하는 곳이다.

선배들을 배웅하다 한 여성에게 반하는데 그녀가 용의자의 딸 지혜다.

그가 지혜를 다시 만난 것은 100억짜리 수표사기 사건을 수사할 때다.

이 사건은 같은 100억 수표가 두 장 나오면서 생긴 사건이다.

먼저 누군가가 100억원을 현찰로 인출하고, 다른 사람이 다시 현찰로 찾으려고 한다.

처음 가져간 인물이 지혜의 아버지 왕도술이고, 뒤가 조폭 출신인 주왕재다.

동금이 지혜를 다시 만난 것은 왕도술의 과거 아내를 찾아갔을 때다.


100억을 현찰로 뽑아 달아난 왕도술 일당.

이 수표는 잔고 증명으로 재산을 불리는 조폭 출신 주왕재의 수표다.

흔히 생각하는 가짜 수표로 돈을 인출한 것이 아니라 진짜 수표 용지다.

둘이 가지고 있던 수표는 은행에서 발행한 것이 맞는데 일련 번호도 똑같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그 단서의 일부를 동금이 생각해낸다.

은행 시스템에 의해 종이가 다르면 가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표의 주인 왕재가 은행에서 벌인 행동도 상당히 수상하다.

자신의 돈 100억이 사라졌는데 경찰에게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 장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현실적인 수사 과정을 보여주다 보니 실수도 적지 않게 나온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잠복수사에서 두 사람이 철수한 것이다.

실제 범인을 찾는 것이 바로 되지도 않고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100억을 나눈 두 범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도 간결하게 보여준다.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고 그 끝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완전 노가다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노련미 덕분이다.

힘들게 잡은 용의자를 전관예우 변호사 덕분에 바로 풀어줘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개인적으로 화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지만 법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피해자가 공포 때문에 입을 다문다면 경찰도 어쩔 수 없다.


광역수사대가 꾸준히 조사하고 수사하지만 쉽게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돈을 잃은 조폭은 경찰의 눈을 피해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

그 대상 중 한 명이 도술의 딸인 지혜인데 어느 순간 동금과 연인이 되었다.

용의자의 딸과 사귄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곤란한 상황도 생긴다.

하지만 사랑의 열정은 이 난관을 힘들게 헤쳐나가게 한다.

이와 반대의 열정이 바로 왕도술이 진경에게 가지는 마음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고, 같은 등장인물을 통해 계속 변주한다.

많은 전과를 가진 왕도술 등이 어떻게 경찰의 눈을 피하는지도 천천히 보여준다.

이런 도망도 시간이 지나면서 허점을 보여주고, 경찰과 왕재의 시선을 끈다.

이 때문에 일어난 사건과 폭력 등은 간결하고 요약된 설명임에도 처참하다.

사실적인 수사 과정은 흥미롭지만 너무 사실적이라 어떤 대목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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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틈새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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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시리즈로 나에게 알려진 작가다.

아직 읽지 않은 시리즈이지만 서점 매대에서 자주 봐서 익숙하다.

언제 시간 나면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른 소설로 기회가 되었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란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어떤 소설이기에 이런 문학상을 받았을까 하는 호기심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일본이 얼마나 남성우월주의 사회인지 직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와 다른 방향에서 놀라운 점이 많았다.

마나의 남친이나 후코의 남편과 시댁의 모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다섯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가족 장례 전문 업체 기시미안이 있다.

첫 화자인 마나는 여성 장례지도사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을 그녀의 엄마도, 그녀의 남자 친구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절친 두 명이 있는데 후코와 나쓰메다.

후코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해 나쓰메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그들의 희망사항과 현실의 문제는 다음 이야기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매춘을 하는 문학상 작가 출신 나쓰메의 장례와 그녀의 사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제 얼마나 많은 문학상 작가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작품에 자신의 삶과 열정을 다 갈아 넣은 그녀가 선택한 죽음도 강렬하다.


작가는 여성이기에 강요된 선택과 학폭 문제 등을 섬세하지만 날카롭게 다룬다.

마나와 후코는 여성과 아내란 지위를 강요받고 자신들의 경력을 무시당한다.

전남편 애인의 장례식을 도와주는 치와코는 남편의 무능력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가 홀로 딸을 키워내었지만 딸은 맹목적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내던지려 한다.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과거와 남편의 실체는 뭐지? 하는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치와코도 기시미안의 협력업체 중 한 곳인 꽃가게에서 일하는 중이다.

학폭은 기시미안의 신입인 스다의 이야기에 나온다.

스다의 엄마는 어린 시절 외모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스다의 인생은 중요한 순간에 엇나가면서 과거를 벗어날 기회를 놓쳤다.

타인의 불행을 보기 위해 온 곳이 장례식장인데 학창 시절 그를 괴롭힌 동창이 왔다.

학폭을 벌인 자들의 진심과 현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절친이자 전 남친이 무면허 운전 차량에 치여 죽은 료코.

전 남친과 헤어진 이유 중 하나가 그가 가진 직업 때문이란 사실은 다른 사람과 동일하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남편과 성관계를 하면 통증을 느끼는 료코.

이런 료코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남편.

동창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주는 남동생.

이 도움에는 남동생의 요청 사항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나를 관찰해달라는 것이다.

훌륭한 삶을 살다 불행한 사건으로 죽은 친구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시간.

멋진 대사와 가슴에 담아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마나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시누이 사이가 될지 모르는 둘, 자신의 경력과 삶을 살고 싶은 마나.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의 불합리했던 행동들.

작가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선택은 당사자가 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마지막 장에 도착하면 앞에 나온 장례식장을 운영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사장 이야기.

왜 마나의 직업을 인정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남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시간은 흘러 한때 가십이었던 나쓰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기념영화가 재상영된다.

그녀의 삶을 더 알게 되면서 다르게 다가온 영화의 이해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번 이야기의 백미는 진솔한 마음을 쏟아내는 장면들보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다.

자신이 죽은 후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가 치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야나기자와 씨.

그의 장례식은 아들의 도시락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화려하게 치러진다.

그런데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이청준의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후코가 “어른이 된다는 건, 상실의 연속인 걸까?”란 물음은 화두처럼 다가온다.

가독성과 재미, 문제의식 등이 잘 어우러진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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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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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중 꾸준히 읽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읽지 않은 책들도 많지만 왠지 계속 눈길이 간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이와 함께 간다’는 느낌이다.

이야기는 특별한 것 없이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학창 시절 쓰리 걸스로 불린 세 여성, 리에, 다미코, 사키 등이 중심에 놓여 있다.

이 셋은 각각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리에의 귀국으로 다시 뭉친다.

평범한 일상에 자유분방한 리에는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가 다미코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것부터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다미코의 어머니 가오루와 사이가 좋다고 하지만 말이다.


리에는 한 번 결혼식을 올렸고, 영국에 있으면서 영국인 남편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헤어진 후 영구 귀국하면서 모든 짐을 다미코의 집으로 가져온다.

영국에서 돌아오면 다미코의 집에서 머물던 습관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소설가 등으로 삶을 살아가는 다미코가 부담이 덜 되었을 것이다.

다미코의 방을 차지하고, 가져온 짐들은 복도에 놓여 있다.

그녀의 활기차고 자유로운 모습은 가오루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딸 다미코와 비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녀는 리에에게 호의적이다.

이렇게 셋이 사는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조금씩 확장한다.


주부인 사키의 일상은 두 아들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치매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보기 힘들어 하는 남편.

갑작스럽게 결혼 소식을 전달한 첫 아들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편함.

그녀의 삶은 안정적이지만 소소한 일상의 일들로 가득하다.

반면에 리에는 귀국 후 동생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을 어려워한다.

조카 사쿠가 귀엽지만 동생 부부는 껄끄럽기만 하다.

리에와 사쿠의 관계와 사쿠의 약간 특이한 행동은 닮은 듯하면서 재밌다.

성공적인 경력과 자유분방한 삶은 사쿠의 엄마에게는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다.


다미코의 일상은 글쓰기와 약간의 대외활동으로 가득하다.

상당히 정적인 삶이었는데 리에가 오면서 그 삶이 조금씩 변한다.

리에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중년 여성들의 삶에 와인이 자리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술 취향이라 하면 간단하지만 적지 않은 와인이 집에 있는 것을 보면 의외의 상황이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만나게 된 과거의 남친은 또 어떤가.

그때와 다른 모습은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여기에 죽은 친구가 남긴 딸 마도카의 일상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8년 사귄 남친이 청혼을 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이 불안감을 털어낸 장면은 흔하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한 것들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간단하지만 많은 장면 전환을 한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로 등장인물이 바뀐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이름 때문이다.

이런 전환은 잠깐만 딴 생각을 하면 뭐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 이런 빠른 장면 전환 때문에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전환을 통해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간결하게 풀어낸다.

소소한 일상의 단면들이 다른 시각에서 풀려나온다.

각각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세 여성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이 파편화된 일상과 강력한 관계는 어쩌면 우리의 기억 속 일상과 닮아 있을 것이다.

곳곳에 담담하고 섬세하게 다룬 일상의 장면과 감정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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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식으로 먹기 - 익숙한 음식의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시간
메리 I. 화이트.벤저민 A. 워개프트 지음, 천상명 옮김 / 현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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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는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문화인류학자 엄마 메리 I. 화이트와 역사학자 아들 벤저민 A. 워개프트 함께 쓴 음식 인문 교양서다.

음식 이야기를 시대와 나라로 나누어 하나씩 풀어낸다.

새로운 시각과 연구 결과들이 덧붙여 있고, 자신의 경험을 각 장의 첫 부분에 풀어냈다.

책 제목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오마주다.

엄마 메리 I. 화이트는 일본과 일본 식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다.

이런 이유로 각 장의 에피소드에 일본 식문화가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일본에 머물면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경험한 살짝 나온다.

김치 이야기를 하면서 고추가 언제 전래되었는지,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한다.

이런 경험들이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각 장과 어우러져 시대와 음식을 연결한다.


농경과 유목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식화된 시각을 새롭게 했다.

연대기로 외우면서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한 것처럼 착각하는 지식을 말이다.

사실 이 책의 각 장만 해도 한 권 이상의 책으로 소개된 것들 많이 있다.

흔하게 알려진 향신료 전쟁만 해도 이미 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책 속 내용에 따르면 작은 한 부분만으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것도 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거나 몰라서 그렇지 이런 미세사가 쌓여 역사가 풍부해졌다.

그 중에서는 산업혁명에 대해 농업혁명을 먼저 말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이전에는 산업혁명만 관심을 두었지 농업의 생산성 부분은 크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항해가 사실상 생물학 전쟁과 다름없었다는 대목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음식은 사람의 이동과 함께 움직인다.

정통성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시대와 식재료의 이동과 이어져 있다.

오래 전 일본의 음식 평론가가 중국을 방문해 토마토가 들어간 전통음식을 비판한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옥수수, 감자, 고추 등의 식재료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면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전에 새롭게 생겼던 식당이 수십 년 전통의 맛집으로 변하는 것도 보지 않았던가.

이것은 근래 병사들이 현지인과 함께 귀국하면서 생긴 음식 문화의 변화와도 엮여 있다.

혹은 이민이나 군대의 이동, 식민지 관리 등과도 이어져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카레인데 우리의 머릿속에 박힌 카레와 다르다.

일본을 통해 카레를 받아들인 한국의 카레가 인도와 얼마나 다른 지 생각하면 쉽다.


이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들이 다시 나와 반가웠다.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제국을 두고 서술한 식문화 부분은 개인적으로 새로웠다.

음식 재료와 계급을 나눈 부분은 평소 무심코 지나간 부분인데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식문화의 전파와 확산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려줄 때 그 다양한 경로에 놀란다.

우리가 전통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른 나라의 식재료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프랑스 음식의 달달한 디저트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보는 것도 재밌다.

세계화된 농업에 대해 무작정 비판하지 않고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 것도 생각할 부분이다.

토종, 자연산, 유기농 식품을 소중히 하는 습관이나

부엌에서 힘들게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가치 있게 여기는 관습을 특권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풍족한 식량이 있었기에 이런 습관이나 관습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가장 필요하지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냉장고다.

냉장고 속에 들어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동실 때문에 필요한 양 이상의 음식을 사 놓고 묵혀둔다.

하지만 현대인의 일상에서 매일 신선한 식재료나 음식을 사서 바로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용량 식품을 사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스박스 같은 냉장 보관 도구가 필요하다.

이런 냉장 기술은 식재료의 이동 거리를 늘려주고, 부패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여름이면 대장균 등으로 식중독 사고가 끊임없이 뉴스에 나왔다.

잔칫집에서 돼지고기를 먹고 사고난 것도 자주 나왔다.

이것과 더불어 마지막에 다룬 요리 칼에 대한 부분은 일본 생활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음식을 먹는 도구에 대한 기술은 문화와 관계 있고, 이 분야는 또 다른 연구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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