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중년이 된다 (리커버 에디션) - 누군가는 걷고 있고, 누구나 걷게 될 중년을 담아내다
무레 요코 지음, 부윤아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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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레 요코의 팬이 된 것은 두 권의 소설 덕분이다. 한 권은 그 유명한 <카모메 식당>이고, 다른 한 권은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였다. 이후 소설과 에세이들을 읽었는데 처음과 같은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솔직히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강한 인상은 그녀의 책이 나오면 늘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사실 이런 작가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모두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 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다. 무레 요코의 글 속에서도 나오듯이 책 쌓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넘어간다. 그래도 손길이 닿아 읽게 되는 책들이 생긴다. 이 책이 그렇다.

 

2017년에 나온 책을 리커버해서 다시 내었다. 솔직히 이전 판본은 잘 몰랐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두 가지가 겹친 탓이다. 작가 이름과 중년이란 제목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의 한 과정을 유명한 작가가 진솔하게 표현했다니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나도 이미 중년 남성이니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여성처럼 폐경이 있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훨씬 늘어났다. 뭐 책 속에 나오는 상사의 질타에 눈물을 흘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래서 남자는 어쩔 수 없어.”란 문장은 지금까지 남자들이 내뱉은 여성 비하에 대한 조용한 반격이다.

 

갱년기 여성의 문제를 단순히 혼자만의 경험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다양한 사례를 찾아서 기록하지도 않는다. 단지 주변에 있는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의 경험을 소소하게 풀어놓는다. 중년에 겪게 되는 일상을 묵묵히 적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묵직함은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노안은 이미 왔고, 체중은 어느 순간 증가하여 더 적게 먹어도 요지부동이다. 운동 부족은 근력을 떨어트리고, 체력 저하는 독서의 집중력을 많이 깨트린다. 이 책의 색깔이 다른 주석을 늦은 밤 반사되는 불빛 아래에서 읽을 때 얼마나 고역이었던가. 작은 부분들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반면에 전혀 다른 문화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건강검진을 중년이 되도록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친구들이 대체요법으로 갱년기를 넘어가는 장면 등이다. 모공 문제는 남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지 이야기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용어도 마찬가지다. <통통한 영감> 편을 읽으면서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계속 생각했지만 역시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뒷모습을 보고 여성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가끔 여기저기서 보지만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책 속처럼 남자로 생각했을지 모르지 않는가. 이런 저런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전에는 깨닫지 못한 사실들을 발견한다. 어리고, 남자고, 자기중심적이라서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실들 말이다.

 

누군가는 걷고 있고, 누구나 걷게 될 중년을 담아내었다는 광고 문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절대 이해하지 못한 노화를 지금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고, 그때 왜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까 생각했던 것을 내가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안으로 안경을 맞춘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빨리 맞춰야 하는데 생각을 하지만 한 번 그런 안경에 적응하면 그냥 눈으로 잘 보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머릿속에 맴돈다. 어쩌면 쓸데없는 걱정일지 모르지만. 좀더 가벼운 이야기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란 예상과 조금 달랐지만 겪고 있고 겪게 될 이야기란 점에서, 또 아내가 경험할 일이란 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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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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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독성이 좋다.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 읽혔다. 전작도 심리묘사가 뛰어났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을 이용한 설정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한다. 강도의 습격으로 크게 다친 후 외부와 접촉을 끊고 은둔하듯 살아가는 브리엔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왠지 모르게 납득하기 힘들다. 만약 약물이라도 동원되었다면 더 쉽게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르겠다. 나이얼이 준비한 계획은 브리엔의 불안한 심리를 뒤흔들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1부와 2부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3부에선 이 두 남녀를 번갈아 등장시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오래된 저택에 홀로 사는 브리엔은 자신의 이름으로 빌린 집 열쇠를 받는다. 자기는 신청한 적이 없다. 부동산 회사의 실수이거나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 주소지에 가서 그 집을 확인하는데 실제 존재한다. 누군가 살고 있다. 누구지? 이 사람의 정체를 알기 위해 SNS 계정을 뒤진다. 하나 발견한다. 자신의 취향과 동일하고, 같은 물건이나 차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훔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그녀의 삶을 모방하고 살고 있다. 그녀의 기억과 겹치는 것이 많다. 계속해서 이 계정을 몰래 보면서 그녀를 만나 따지고 싶다.


강도 사고를 당한 후 너무 큰집이라 세입자를 한 명 구한다. 종양학자라는 나이얼이 의사 가운을 걸친 채 찾아온다. 간단한 인터뷰 후 이 집에 산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지만 브리엔은 몰래 나이얼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그러다 나이얼의 아내 일기를 보게 된다. 그가 아내와 이혼을 준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강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나이얼은 좋은 하숙인이다. 브리엔은 나이얼과 결혼 상태에 더 관심을 두고, 자신의 삶을 훔친 것 같은 여성을 찾아간다. 그런데 이 행동이 놀라운 소식을 그녀에게 가져다준다. 그녀가 브리엔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토킹과 다중인격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이얼의 아내란 사실과 더불어 그녀를 완전히 무너트린다. 나이얼이 보여주는 증거 자료는 그녀가 브리엔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히 신분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신과 치료 서류 등도 그녀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녀의 불안감과 나이얼에 대한 감정 등이 사실을 더 확인하기보다 나이얼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부유한 그녀가 이웃 몰래 치료 받을 수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이때만 해도 이 모든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본 다른 브리엔과 SNS계정 상 사진 등도 그녀 자신의 작업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이얼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브리엔처럼 살아가는 사만다의 심리다. 이 소설 속 설정에서 사만다는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악역과 다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브리엔의 재산을 어느 정도 얻은 나이얼이 왜 더 욕심을 부려서 달아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읽으면서 진행과정을 알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이렇게 타협한다면 이야기의 긴장감이 떨어져 재미가 없을 것이다. 서로가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속셈을 보여주는 3부는 정말 빠르게 읽힌다. 결말도 예상과 달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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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rt & Classic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퍼엉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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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데 읽지 않은 작품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소설을 돌이켜보면 가끔 <오즈의 마법사>와 헷갈리기도 했다. 작가인 루이스 캐럴을 지금까지 미국 작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는 영국 작가였다. 이런 부정확한 기억들은 너무 익숙해서 생긴 착오다. 아마 영화의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로 오다가다 본 기억들이 이런 부정확한 기억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모두 읽은 지금 나의 기억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부분이 많아 혼란스럽다.


이 책을 읽기 전 집을 뒤지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한 권 보였다. 가끔 작은 여유가 있으면 책의 첫 부분 번역을 비교해본다. 개인적 호불호가 생길 수 있는 번역이 눈에 들어온다. 성인이 읽는다면 이 책이 더 좋고, 아이들이라면 집에 있는 책이 좀더 쉬울 것 같다. 집 번역본이 좀더 단어를 풀어쓴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만 놓고 보면 나에겐 이전 판본들이 더 익숙하지만 요즘 아이들이라면, 이전 그림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번 그림이 더 직관적인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빨래 이야기에 드럼 세탁기 그림을 넣은 부분이다. 분명 출간 시대에는 없는 기계지만 요즘은 대부분 빨래를 세탁기로 하지 않는가. 그리고 컬러라 더 화려하다.


이야기는 앨리스가 강둑에 언니와 함께 있다가 시간 토끼를 보고 따라가서 겪는 일을 풀어낸다. 앨리스는 음식을 먹고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신기함보다 다른 영화나 소설의 이미지로 넘어갔다. 많은 영화나 소설들이 애들이 혹은 어른이 커지거나 아주 작아지는 일을 다뤘지 않은가. 이 소설 이전에 이런 설정을 다룬 이야기가 없다면 이후에 나온 이 놀라운 발상의 기원이 이 작품일 것이다. 단순히 몸만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목만 아주 길게 늘어나는 부분도 나온다. 일본 만화 <원피스>가 문득 떠오른다.


고전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이야기를 그냥 따라가면 되는데 모자 장수와 겨울잠쥐의 티타임에서 시간을 말하는 부분에서 뭔가 심오한 철학적인 것을 떠올리려고 했다. 그냥 우리가 학창 시절 수업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것과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빼지 말아야 할 것이 말장난이 정말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동음이의어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은 지금 감성에서 보면 약간 아재 감성일 수 있지만 번역자와 편집자들에겐 곤욕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은 아이의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틀린 수도 말하기나 황당한 크기나 달콤한 음식에 대한 식탐 등이 대표적이다. 장미를 잘못 심어 색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핀과 바닷가재들과 춤을 추는 장면과 말실수를 하려다 주워 담는 장면은 아주 재밌다. 왕과 왕비의 행차나 이들이 내뱉은 말과 결론은 황당하지만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 이 소설을 끝까지 잘 즐기는 방법은 앨리스의 기이한 모험을 그냥 즐기는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면 잠에서 깬 앨리스가 나오고, 언니가 앨리스의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풀어낸다. 판타지를 과학으로 분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이야기와 경험이 앨리스의 미래에 얼마나 행복해할지 떠올린다. 언젠가 다시 이 소설을 읽고, 다음 이야기도 읽게 되면 지금과 다른 읽기를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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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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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의 소설은 두 번째다. 처음 읽은 소설은 <교도섬>이었다.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소설로 기억한다. 아쉬움을 느꼈지만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다. 이번에 나온 소설에서 홍보의 포인트는 최근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N번방 사건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N번방 사건 이전에 썼고 N번방 사건과 관계없다. 물론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와 연결하면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N번방 사건은 이 소설 속 상황보다 훨씬 잔혹하고 끔찍하다. 읽다보면 이 소설의 잔혹함은 예상한 것과 다른 곳에서 드러난다. 아주 불편하다.


전직 형사 이호진은 사고로 딸을 잃고 아내와 이혼한 후 죄의식에 시달리며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술에 취해 누워 있는 그의 주머니를 뒤지던 동네 고등학생 때문에 잠에서 깬다. 무기력한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전 직장상사였던 백 과장이 찾아오면서부터다. 백 과장은 호진의 후임으로 들어온 형사와 함께 찾아왔다. 이 형사가 백 과장 딸 은애의 성인 동영상을 봤고, 백 과장에게 보고했다. 경찰력을 동원하면 생각보다 쉽게 딸을 찾아낼 수 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 몰래 찾길 바란다. 호진에게 은애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술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직 상사와 그 딸의 기억이 그를 이 일에 밀어넣는다.


모르는 사람의 포르노 동영상을 보는 것과 이전 상사의 딸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는 것은 다르다. 불편하고 거북하다. 경찰은 사이버수사대란 전문가 집단이 있어 이런 수사에 아주 능숙하다. 일선 형사들도 이런 사건은 사이버수사대로 넘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으니 혼자 동영상을 봐야 한다. 보고, 보고, 또 보면서 단서를 찾아내려고 한다. 겨우 찾아낸 것이 동영상을 찍은 곳 정보다. 1과 0이 들어가 있는 모텔이다. 백 과장이 이 정보를 가지고 열심히 찾지만 그런 모텔은 없다. 이후 다른 동영상이 또 한 편 올라온다. 이전 작업의 반복이다. 여기에 단서를 찾아낸 후 화면보정을 하면서 가능성 있는 장소를 찾아낸다. 이제 발품을 팔아야 할 때다.


촬영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현장을 보면서 가장 가능성 높은 모텔을 찾아낸다. 하나 가능성이 높은 모텔을 찾는다. 가장 높은 방에 간 후 그는 이 모텔이 촬영 장소였음을 알게 된다. 숫자의 비밀이 풀린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허술하다. 직원과 주인에게 은애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곳에 온 적이 있는지 묻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오지 않는다. 직원에게 은애가 오면 연락을 달라고 말해놓고 그는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모텔 정문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채 말이다. 그의 특기를 발휘해 며칠을 잠복하지만 허탕이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모텔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술은 그의 감각을 상당히 둔화시켜놓았다.


이렇게 은애 찾기로 전반부를 풀어낸 이야기는 은애의 진실을 찾아가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과연 동영상 속의 은애는 강압에 의한 것인지, 그녀가 가출한 이유는 무엇인지, 대학에 들어간 후의 대학생활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녀와 함께 동영상을 찍은 인물은 누군지. 여기에 같이 찍은 인물이 나오는 다른 동영상을 찾기 위해 그의 주머니 돈을 훔치려고 한 고딩에게 부탁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답이 나온다. 그의 동영상을 보고, 이 동영상을 올린 서버의 주인을 찾아내는데 놀랍게도 열세 살 초등학생이다. 호기심, 돈, 칭찬 등이 엮여 뒤틀린 욕망의 동영상을 겁 없이 올린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현대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 드러난 형사들은 힘든 일에 시달린다. 최고의 형사 중 한 명이 과로사로 죽었다는 설정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늘 방송 등에서 보지만 그들의 승진 욕구는 살짝 뒤로 밀려 있다. 호진이 딸을 잃게 된 원인에는 가족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사건 현장에 달려간 부분도 있다. 이 사고가 그를 반 폐인으로 만들었다. 은애 수사를 하는 도중에도 그는 술에 자주 취한다. 술에 취한 그가 보는 세상은 건조하다. 작가는 과도하게 감정이입하기보다 부족하고 알코올 중독자의 조사에 더 초점을 맞춘다.


결말에 도달하면 앞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드러나는데 이 부분에서 개인적인 호불호가 드러날 것 같다. 고전 추리에서 봤던 것 같은데 현대 추리에서 보니 왠지 어색하다. 마지막에 모든 진실이 드러난 후 상황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편하다. 뒤틀린 심리와 욕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다. 호진의 마지막 선택에는 동의한다. 그 결말은 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호진 시리즈로 계속 나와도 좋을 것 같은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천 토박이의 인천 묘사는 인천의 다른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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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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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소설도 몇 권 사놓았는데 쉽게 손이 나가질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야기와 문체와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고, 아마 집중해야만 그 의미와 재미를 누릴 수 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내 독법에 조금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현실의 세계도, 과거의 역사도 아닌 가상의 역사와 공간을 배경으로 두 문화의 충돌과 그 충돌 속에 인간을 태우고 다닌 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유목 민족의 나라인 초와 농경문화의 단이 충돌한다. 이 충돌 전과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본 것과 닮았다. 작가는 전쟁의 참사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 역사의 흐름 속에 그것을 녹여내었다. 실제 참혹한 장면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보다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더 이상의 감정 이입을 막는다. 긴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실제 소설 속에서 왕의 지시에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이어졌는가. 어쩌면 불필요한 표현이자 감정 낭비인지도 모른다.

 

<시원기>와 <단사>란 가상의 역사서와 민담 등을 인용한 글들은 이야기 자체에 환상을 가미한다. 기록의 파편은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무한한 이야기의 공간을 열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인류가 최초로 말에 오르게 된 이야기다. 추가 총총이란 말에 올라타 바뀐 시야와 속도 등을 얻게 된 것과 이것을 자신들의 부족장에게 알리면서 생긴 이야기는 압축되고 현실적인 부분을 다룬다. 그의 딸 요가 총총과 교미하고 백산으로 들어가 무당이 된 이야기는 이후에 수많은 전설과 민담으로 이어진다.

 

두 문화 속에 두 마리의 말이 등장한다. 신월마 혈통의 토하와 비혈마 혈통의 야백이다. 토하는 초의 왕이 되는 표가, 야백은 단의 군독이 탄다. 이 두 말은 최고의 명마이지만 인간의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힘과 정체성을 잃는다. 우연히 강가에서 만나 교미하는데 토하가 새끼를 가진다. 최고의 만남이지만 마의들은 교미 대상자가 잡종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낙태시킨다. 이 일이 토하의 몰락을 가져온다. 인간들의 두려움과 욕심이 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많은 민초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문화 차이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초가 개를 전쟁에 이용해 싸우는 것을 보고 단의 왕 칭은 개처럼 싸울 수 없다고 문화적 우월감을 내세운다. 하지만 단이 내뱉은 말(言)은 어느 순간 개보다 못한 말(言)로 초에서 취급된다. 농경 집단의 단이 굳세게 세운 성곽에 숨어 초의 공격을 막는 모습은 너무 낯익다. 이런 문화 충동과 차이는 몽골 대제국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말과 함께 병장기의 변화를 간결하게 표현했지만 이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갈만 해도 어떤가. 말안장과 말발굽의 발명은 또 어떤가. 하나의 역사 속에 이런 발명들은 쉽게 묻힌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을 타고 무아지경으로 달리는 순간이 가끔 생긴다. 이 소설에서 신월마, 비혈마가 대지를 밟고 달릴 때, 연의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낼 때 나도 같이 그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이것이 깨어지면 단어의 파편 속에서 잠시 허우적거린다. 상상으로 그려낸 세계를 알고 있는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생기는 파편들 때문이다. 익숙한 이미지가 작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보다 앞서 나가는 경우도 생긴다. 욕심 탓이다. 한동안 이 소설 속 이미지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강하게 꿈틀거릴 것 같다. 집에 있는 김훈의 소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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