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표범
실뱅 테송 지음, 김주경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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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프랑스 문학상 르노도상을 수상한 여행기다. 처음에는 문학상 수상작이란 이유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책 정보를 찾아보니 여행기가 맞다. 제목처럼 티벳에 서식하는 멸종동물인 눈표범을 관찰하기 위해 창탕 고원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단순한 여행에세이가 보여주는 보고, 만나고, 지나간 것들과 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당연히 읽으면서 티벳을 지나간 많은 여행기들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마 그 여행에세이와 비슷했다면 르노도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 실뱅 테송이 누군지 모른다. 동물 전문 사진작가 뱅상 뮈니에도, 그의 연인인 다큐멘터리 감독 마리도, 철학 논문을 쓰다 중단한 레오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인 나에게 이들은 낯선 외국인일 뿐이다. 외국 소설 등을 읽을 때 내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느끼는 낯섦이 이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저자와 동행한 일행이란 의식이 더 강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뮈니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이 낯섦을 많이 희석시켜주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주석으로 간단히 만나지만 주석의 한계가 너무 분명한 경우도 있다.

 

사실 뮈니에가 찍은 사진 몇 장을 모니터를 통해 봐도 특별한 감동을 받지 않았다. 인터넷서점에서 새 사진 한 장을 보고 왜 이 사진을 올렸지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다. 사진 밑 설명도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우리가 놓친 동물이 찍혀 있다. 뮈니에조차 2개월 후에 발견했고, 저자는 뮈니에가 알려주기 전에는 몰랐던 눈표범의 눈과 그 윗부분 모습이다. 책 속에서는 흑백사진이라 찾기 힘들다. 그래서 다시 인터넷서점의 사진을 열심히 봐야했다. 한 번 발견한 다음부터는 그 곳만 눈길이 간다. 이 때문에 나는 또 이 사진의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저자가 말한 잠복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잠복하면 미스터리 애호가인 나에게 경찰들의 잠복이 먼저 떠오른다. 이 책 속 잠복은 행위는 비슷하나 의미는 다르다. 숨 돌릴 틈도 없고, 예민해야 하고, 돌발적인 뭔가가 나오길 기다린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 잠복을 하겠다는 그의 말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한 곳만 응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실제 저자는 영하 30도가 넘는 고지대 추위 속에서 눈표범을 기다리며 광활한 초원을 자세히 살핀다. 초보자가 아무리 봐도 초원의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동물은 볼 수 없다. 전문가 뮈니에의 눈길은 그 차이가 잘 보인다. 보호색이란 단어의 의미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눈표범은 모두 세 번 본다. 이 본다는 행위가 저자의 가슴 속에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내가 사진으로 보면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 것을 그는 직관하면서 감동한다. 이 여행기는 단순히 눈표범만을 다루지 않는다. 눈표범을 만나기 전 만난 야크, 늑대, 여우, 야생당나귀, 영양 등도 같이 다룬다. 늑대와 야크들이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동화나 전설 등에 의해 나쁜 이미지로 굳은 늑대가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냥 야생 육식 동물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저자는 인간 고유의 본성으로 ‘인간은 청소기다’라고 정의한다. 실제 인간에 의해 없어진 수많은 동식물들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과 윤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동물들의 사냥에서 “죽음은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이다. 물론 이것을 인간 세계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린 모든 동물들에게 우리의 관념을 투사한다. 이 때문에 감정이 움직이고, 개입하고, 세계를 뒤틀어버린다. 그런데 이 여행기에서는 이런 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보고, 관찰하고, 찍고, 감동할 뿐이다. 이 일정 속에서 움직이고, 머물면서 느낀 점을 기록했는데 곳곳에 재미난 부분이 많다. 유머가 있고, 철학이 있고, 강한 추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우리를 보는 그들이 있다는 말에 니체의 심연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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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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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데뷔작 <고백> 이후 많은 작품이 나왔다. 그 중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인터넷서점 검색을 하니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몇 권은 사놓고 묵혀두고 있다. 뭐 시간 나면 읽겠지 하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고백>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마도 인터뷰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독백으로 처리된 부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은 몇 번이나 가설을 세우고, 무너트리고 했다. 기존에 읽었던 추리소설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가는 그런 통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미스 월드 출신의 성형외과 의사가 방송에 나와 성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듯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지적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엄청난 숫자의 도넛에 둘러싸인 채 자살한 한 소녀에 대한 추적 미스터리다. 이 일을 알게 되는 것은 비만 상담을 위해 자신을 찾아온 동창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미용외과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을 운영 중인 히사노를 만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스트레스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살이 많이 쪘다고 한탄한다. 그러다 학창 시절 뚱뚱했던 친구 요코아미 이야기가 나온다. 제1장의 ‘육, 십사’는 요코아미의 몸무게다.


이 이야기 속에서 히사노의 과거가 흘러나온다. 어릴 때부터 예뻤고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의대에 가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히사노의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도 공부를 열심히 해 도쿄로 갔다고 한다. 할머니 때문에 살이 찌려고 노력한 이야기는 목욕탕에서 살 쪘다고 크게 외친 부분에서 잘 나온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 등으로 그녀의 체력과 활동량은 많이 떨어진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이때만 해도 단순한 미용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코 성형을 위해 그녀를 찾아온 아이돌의 이야기 이후 그녀는 자살한 소녀 유우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오래 전 떠난 고향 마을을 찾아간다. 그리고 유우와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관련자들로부터 듣게 된다.


자살한 소녀 유우는 어릴 때부터 통통했다. 뚱뚱한 사람이 느릴 것이란 편견은 유우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운동에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 관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남자 아이와 함께 이인삼각 경기를 하다 넘어진 후 들고 뛰어 2등 한 것이다. 유우는 자신이 살쪘다고 그렇게 낙담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엄마가 만들어 준 도넛을 좋아했는데 이 도넛이 학교 행사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나중에 이 도넛 때문에 살이 너무 쪄 문제가 되긴 했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히사노는 유우 관련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 이유를 밝혀내고, 한 소녀의 자살이 단순히 비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님을 밝혀낸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 중에 나의 시선을 끈 부분은 성형 부분이 아니다. 히사노를 중심으로 펼쳐진 학창 시절 분위기다. 그녀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그녀의 말과 행동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별 감정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녀 주변에 머무는 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을 따라 말했다가 자격이 없다는 질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녀 자신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말 속에서 나오지 자신이 직접 내뱉는 경우는 없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진짜 삶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인터뷰 속에 조금씩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외모에 대해 말한다. 살이 쪘다고, 코가 이상하다고. 벌크업에 신경쓰고, 몸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뚱뚱함에 크게 꺼려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자기 외모를 말하고, 자신들이 기억하고 이해하는 유우의 기억을 풀어낸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내가 무심코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진짜 핵심적인 부분은 유우의 인터뷰에 잘 드러난다. 인간의 왜곡된 시선들과 뒤틀린 욕망과 죄책감 등이 엮이면서 만들어낸 비극 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외모의 기준이 바뀔지 모르지만 외모 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가독성이 좋고, 마지막 한 방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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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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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는 12편의 단편 소설을 실고 있다. 아르헨티나 소설하면 그 유명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먼저 떠오른다. 그 외 작가는 솔직히 잘 모른다. 검색하면 몇 권의 책과 작가가 나오지만 제목만 겨우 알거나 오다가다 본 작품이나 작가들 일뿐이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몇 권은 아! 하고 감탄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로 낯설다. 이 낯섦을 뚫고 라틴 아메리카 고딕 호러라는 독특한 분위기가 가졌다는 말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딕 호러가 남미라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과 기대가 교차했다.

 

이 소설집의 첫 작품 <더러운 아이>는 내가 알고 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환상을 단숨에 깨트린다. 탱고와 멋진 관광지의 이미지가 이 작품으로 산산조각났다. 물론 큰 도시의 이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작가가 묘사하고 설명한 동네의 모습은 그만큼 강렬하다. 남미의 미신이나 주술 등과 결합해 경제적 퇴락과 부패 등이 만들어낸 풍경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스테리아 호텔>은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 경찰학교가 호텔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이것을 말했다고 해고된 아버지와 이에 대한 작은 복수가 두 소녀가 본 무시무시한 환상으로 완전히 이미지가 바뀐다.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시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약에 취한 세월>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연도별 기록을 담고 있다. 무능한 부모를 비웃고 마약과 음악에 취한 청춘들의 모습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마약 대신 술을 넣고 보수적인 부모에게 대항하던 우리를 대입하면 어떨까? <아델라의 집>은 가장 호러적인 작품이다. 왼팔 없이 태어난 소녀 아델라, 파블로 오빠는 공포영화를 같이 보러간다. 화자는 부모가 반대한다. 영화 내용 등을 화자에게 말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아델라와 오빠는 마을 폐가에 끌린다. 폐가 앞을 서성이다 결국 들어간다. 그리고 집안에서 아델라가 사라진다. 화자가 본 환상은 또 무엇일까?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란 긴 제목의 단편은 다크 투어리즘을 다룬다. ‘범죄 및 범죄자 투어’의 가이드인 파블로 앞에 어느 날부터 어린이 연쇄살인마 페티소 오레후도의 환영이 나타난다. 이 연쇄살인마의 기록을 보면서 섬뜩함을 느끼고, 아이의 탄생이 만들어낸 부부의 갈등이 눈길을 끈다. <거미줄>은 권태로운 결혼 생활과 파라과이의 폭력적인 무질서가 처음에 시선을 끌었다. 정의로운 몸부림이 만들어낼 가혹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후 어떤 숲에 차가 멈추면서 생긴 이야기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로맨스로 넘어간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학기말>은 환상과 자해를 다룬다. 자해를 해야만 하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 병에 소녀 마르셀라가 걸린 것일까? 마르셀라가 화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숨을 죽이고 이것을 듣고 있던 다른 소녀들이 더 인상적이다. 마지막 장면은 역시 여운을 남긴다.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은 두개골 하나를 주워 온 후 칼라베라란 이름을 붙이고 장식하는 화자 이야기다. 화자는 뚱뚱한 남자 친구보다 베라에게 더 신경을 쓴다. 이 과도한 몰입과 애정이 의미하는 바를 열심히 생각해보는데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식증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

 

<이웃집 마당>은 운 좋게 좋은 집을 구해 이사 온 후 이야기다. 화자는 이웃집 마당에서 발목에 쇠사슬이 묶여 감금된 남자 아이를 발견한다. 환상일까? 사회복지사였다가 해고된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데 해고 사유가 나온다. 이것과 관계 있을까? 실제 그 집안으로 들어간 후 일어나는 일들은 스산한 느낌을 준다. <검은 물속>은 부패 경찰관들이 소년 두 명을 강물에 빠트려 죽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오염된 강물에서 소년 한 명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도. 기소 준비를 하게 된 것도 이 경찰관들이 동료들에게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패한 경찰관들이 있다니 놀랍다. 그러다 그 소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빈민가로 들어간다. 그곳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서운 곳인지 그곳에 거주하는 신부님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색>은 아르헨티나 히키코모리 이야기다. 남자 친구 마르코가 방안으로 들어간 후 유일한 대화 공간은 인터넷 채팅창이다. 마르코가 들려주는 일본 귀신과 히키코모리 이야기가 왠지 낯익다. 표제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실제 일어난 방화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현실을 좀더 극단으로 몰고 가 하나의 현상처럼 만들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저항은 스스로 분신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이 의식마저 공권력은 못하게 막는다. 소설 자체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르헨티나 사회나 문화를 좀더 안다면 더 이해가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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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 리스트 컨선 안전가옥 오리지널 5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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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기 전 이산화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앤솔로지나 단편선에 참여했는데 내가 읽은 책은 없었다. 하지만 카페나 게시판 등을 통해 그의 작품에 대한 좋은 평을 봤고,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하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 ‘안전가옥’에서 장편으로 나온 것을 보고 선택했다. 그런데 이 책을 선택할 때 왠지 모르지만 선입견의 작용으로 이 소설을 SF로 분류했다. 책을 펼쳐 읽으면서 언제 SF적인 전개가 펼쳐질까 기다렸다. 이 기대는 중반부터 완전히 접게 되었고, 빠르게 전개되는 범죄 액션 스릴러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두 명의 여성이다. 한 명은 조도화이고, 다른 한 명은 리 펭란이다. 조도화는 홍콩 동물원 선배였던 누리 언니가 맡긴 파충류를 이구아나라고 생각하고, 3년을 돌봤다. 3년이 지나 더 이상 돌보기 힘들어 새로운 사람에게 입양시키려고 한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갔다 갑자기 꿈틀이를 데리고 나온다. 이때 만난 인물이 리 펭란이다. 리 펭란은 센티넬라 신디케이트 소속 야생동물 밀수업자다. 그냥 도화를 죽이고, 이구아나로 잘못 알고 있는 전 세계에 단 한 마리 남은 무지개꼬리 포카이카하를 가지고 오면 끝이다. 하지만 3년 전 그녀가 이 포카이카하를 잃었을 때 배송팀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도화의 정체와 어떻게 이 포카이카하를 얻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서 함께 동행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희귀종, 멸종 위기 같은 단어는 수집가들의 수집욕에 불을 지른다. 이전에 희귀한 새 깃털을 둘러싼 엄청난 불법과 거래를 다룬 책을 읽은 적 있기에 쉽게 이해가 된다. 펭란 일행은 방콕으로 가 3년 전 배송했던 업자 제러미를 만난다. 그는 새로운 희귀종을 거래하려고 한다. 펭란 일행에게 사건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고, 이 살인자를 찾는데 돕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3년 전 그 살인자에게 죽는다. 이전과 같이 현장에는 L과 C라는 알파벳 철자가 적혀 있다. 제러미의 수하들을 닦달하니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흔적을 남긴 살인자가 있었다고 한다. 제러미가 신디케이트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물론 이 상징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인물은 도화이고, 살인자의 이름을 알아채고 뒤좇는다. 결국 만나지만 죽기 직전에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산다.


펭란은 이 살인자를 잡기 위해 잘 만들어진 함정을 판다. 누리 언니를 만나려는 도화는 그녀를 돕는다. 도화는 유일하게 그 살인자를 만난 인물이다. 이 함정은 수집가들을 이용해 덫을 놓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실패한다면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서로의 이익과 이해가 교차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때 이 함정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도화다. 도화의 선택이 전체적인 흐름을 바꾼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에서는 ‘셰인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혹시 누리 언니가 실제는 도화가 아닐까? 도화가 엄청난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소설을 읽다보면 수많은 멸종 위기종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 동물이나 파충류 중 몇 종이나 실제 존재할까? 최소한 포카이카하는 실존하지 않는다. 이런 가상의 생물체가 나온다는 사실을 힐끗 본 것이 이 작품을 SF로 착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밀수업자를 죽이는 살인자가 남긴 LC는 최소 관심 등급에 해당하는 동물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살인자의 논리는 비정상적이지만 인간이 동물 등에게 저지른 만행 등을 생각하면 잠시 주춤하게 된다. 처음 만난 작가 이산화는 이 작품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속도감, 구성, 캐릭터 등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의 본래 영역인 SF는 어떨지 궁금하다. 올해가 가기 전 이 작가의 작품을 한 권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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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흐르는 꽃 - Novel Engine POP
온다 리쿠 지음, RYO 그림, 이선희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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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었다. 처음 읽은 <밤의 피크닉>으로 열렬한 환호를 보냈는데 그 다음 작품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뭐지?’하는 의문이 생겼다. 나의 기대와 너무 다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읽은 몇 편의 소설은 취향 저격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사 모았다. 도코노 이야기니,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등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늘 그렇듯이 책들을 사놓고 묵혀두었다. 책장 정리 도중 한 곳으로 정리한 듯한데 몇 권은 얼마 전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한두 권 정도 더 읽고 싶은데.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라이트노벨로 분류되었다고 해도 분량이 좀더 있을 줄 알았다. 이 부분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그리고 실제 온다 리쿠의 작품에 분량이 큰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렇게 펼쳐든 이야기는 녹색남자와 여름성의 비밀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학원물로 분류 가능한지 생각하면서 읽는데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알 수 없는 비밀이 발견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 알게 되는 진실은 작가가 꼭꼭 숨겨둔 설정을 하나씩 터트리는 시간이다. 약간 스포를 감수한다면 코로나 19와 비슷한 상황이다.


6월이라는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 온 미치루는 이 마을 사람들이 말을 삼가는 존재가 자신을 따르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 장의 초대장을 받는다. 여름성 여름 캠프 초대장이다. 이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여름성에 가야 한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반 친구 스오가 내리는 모습을 본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기차에서 내린다. 녹색에 총안마저 없는 여름성에 이들은 들어간다. 여름 캠프라고 하지만 이 소녀들을 제외하면 어른은 없다. 무더운 여름 다섯 소녀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은연중에 이 소녀들 중에서 스오가 리더가 된다. 몇 가지 간단한 규칙만 지키면 상당히 자유로운 캠프 생활이다. 소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조금씩 친해진다.


이 평온한 캠프에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종소리가 한 번 울리면 식당에 모이고, 세 번 울리면 지장보살 앞에 모여 합장해야 한다. 또 수로에 흘러내리는 꽃잎을 기록한다. 테니스 코트가 있어 짝이 맞으면 테니스를 치고, 방학 숙제도 한다. 규칙만 지키면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이다. 이런 생활에 파문이 생기는 것은 미치루가 불분명하게 들은 대화의 일부와 갑자기 사라진 학생 한 명 때문이다. 여름성이란 갇힌 공간과 사라진 소녀와 알 수 없는 대화의 일부는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자극적인 설명이나 대사를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녹색남자의 진실이 드러난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을 읽으면서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소품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온다 리쿠란 이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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