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이주엽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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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아시아 극동에서 크림반도까지 거대한 영토의 제국을 형성한 몽골 제국은 14세기에 무너졌다. 이 제국의 무너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나라의 멸망이다. 대원 시대에 몽골은 크게 네 개의 칸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저자는 칸국이란 단어보다 울루스란 몽골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대원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 주치 울루스, 일 칸국 등이다. 이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들은 14세기 중반 전후 공통적으로 혼란기를 거치면서 악화되거나 분열되었다고 한다. 일 칸국은 15세기 초에 소멸했다. 일 칸국은 현재의 이란, 이라크에 걸쳐져 있던 나라였다. 그 외 다른 나라들은 무너지더라도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분화 과정을 지역별, 시대별로 나눠 서술했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나는 원 나라만 늘 몽골제국의 후손으로 인식했다. 무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명 나라의 주적은 북원 세력이지 않은가. 한정적인 정보 밖에 얻지 못하고 알지 못했기에 나머지 거대 제국은 뒤늦게 하나씩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티무르제국이다. 사마르칸트란 지명이 익숙한 이 제국은 한때 명을 위협할 정도였지만 티무르의 죽음으로 서진은 멈추었다. 이 제국이 다른 몽골제국 우즈벡 칸국에 망한 후 유민들이 남하해 세운 국가가 무굴제국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워 익숙한 나라 이름이다. 저자는 울루스란 이름을 사용하면서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게 만들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저자는 이렇게 각 칸국의 기원과 발전과 쇠퇴 과정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제국의 수많은 국가들을 한 권의 책 속에 욱여 넣은 것이다. 읽으면서 하나의 계통도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책 앞에 4대 울루스가 어떻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화고 분열했는지 지도에 표기해서 보여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솔직히 부족하다. 뭐 계통도를 보여준다고 해도 참고자료 이상의 역할을 나에게 하지 못하겠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이 몽골제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 역사서보다 전문가의 논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을 “몽골제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세계사 무대에서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포스트 몽골 세계의 다양한 시공간을 독자들과 함께 둘러보려 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인 유산 부분에 이르면 솔직히 기억 속에 강하게 남는 것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이 많이 약한 느낌이다. 아니면 내가 많은 부분을 놓쳤거나. 몽골제국이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사파비제국, 청제국과 같은 유라시아 제국의 등장과 발전에 크고 작은 역할을 했다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우리가 알던 원나라는 몽골제국의 일부였을 뿐이다. 세계사를 다른 시각에서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책을 솔직히 읽기 편하지 않다. 낯선 이름과 지명과 국가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충 읽었다고 해도 나중에 중동이나 ~스탄 국가들을 여행하거나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동시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시야를 좀더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의 이름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몇몇 대목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논쟁거리가 적지 않게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역사학자들이 풀 문제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이것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읽다보면 칭기스 혈통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과연 그 시대에 그 정도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책 곳곳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민족을 구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중국 한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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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가이드 2020-07-28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많은 부분 공감이 가는 리뷰입니다. 이 책이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고.

한편 이 책이 제시하는 몽골제국의 유산은 티무르, 무굴, 우즈벡, 카자흐 등과 같은 계승국들 자체와 몽골제국이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사파비제국, 청제국과 같은 유라시아 제국의 등장과 발전에 미친 영향이라고 봅니다. 저자는 이 두 가지가 근대유라시아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몽골제국이 유럽의 발전, 글로벌화 현상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하는 다른 몽골제국사 관련 글들과는 달리 이 책은 근대유라시아의 출현이라는 다른 차원의 유산을 강조하는 것이 색다르네요. 적어도 근대유라시아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몽골제국의 역할에 대해 알아 보는 것은 유익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밤의 팔레트 문학과지성 시인선 540
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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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시집 중 가장 어렵고 힘들게 읽었다. 시인이 글로 풀어낸 이미지나 감정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면서 단순히 단어만 읽은 시들이 많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책 마지막에 실린 해설을 대충이나마 읽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가 파란피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페이스북을 찾아 사진을 훑어보니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인물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해설에서 본 퀴어란 단어 때문인지 사진들 중간에 나오는 영화 캐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무지개란 단어를 제목에서 찾아보고, 읽으면서 기이하게 느낀 ‘오모homo’란 단어도 다시 돌아본다.


퀴어란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시집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감정을 가장 잘 느낀 작품은 <여름 서정>이다. “주먹보다 두꺼운 감정은 처음이야/ 내 안은 돌멩이로 가득 찬 줄 알았는데/ 찰랑찰랑 물소기가 나 ”라고 말할 때 이 뜨거운 여름을 날려버리는 시원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 사랑이 지속될 때 “손가락에 난 점을 세어본다/ 한 그루 두 그루, 너도 다 알잖아” 같은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런 구조와 표현의 시로 가득했다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시들을 읽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파편적인 이미지와 시어로 가득 찬 시를 마주할 때 그냥 나아갈 수밖에 없다.


시집을 다 읽은 후 다시 대충 펼쳐 몇 곳을 읽었다. 어렵게만 생각하고 지나갔던 시들 중 눈에, 마음에 들어오는 시어들이 있다. 표제작인 <밤의 팔레트>도 그렇다. “노랑과 옐로는 너무 많은 밤을 오렸다. 성별이 다른 별을 꿰매는 건 위험해/ 우리는 틀린그림찾기처럼 조금만 달랐는데/ 왜 아들은 두 글자일까”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도 이 부분은 눈길을 끌었다. 그때보다 더 명확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성별의 구분이 우리 삶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생각하면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나와 언니를 섞으면 하얗게 된다/ 나에게 누나를 바르면 까맣게 된다”고 했는데 언니와 누나, 섞고 바르는 차이는 무얼까? 단순히 부른 이의 성별 차이일까? 아님을 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오래 전 한국 시인들의 시집을 읽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지도 만들지 못했던 그 시집들. 그리고 강한 충격을 주었던 박노해와 김남주의 시들. 올해 읽었던 시집은 거의 한 시인의 시집이었다. 바로 나태주 시인이다. 짧고 비교적 쉬운 시어들로 된 시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모양이다. 아니면 너무 급하게 시에 달려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시집에는 해시태그가 들어가 있는 시도 있다. 인위적으로 굵게 표현한 단어도 있다. 강조를 위해 다른 글자체를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이 시집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지만 몇 개의 이미지들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언젠가를 또 한 번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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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표범
실뱅 테송 지음, 김주경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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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프랑스 문학상 르노도상을 수상한 여행기다. 처음에는 문학상 수상작이란 이유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책 정보를 찾아보니 여행기가 맞다. 제목처럼 티벳에 서식하는 멸종동물인 눈표범을 관찰하기 위해 창탕 고원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단순한 여행에세이가 보여주는 보고, 만나고, 지나간 것들과 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당연히 읽으면서 티벳을 지나간 많은 여행기들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마 그 여행에세이와 비슷했다면 르노도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 실뱅 테송이 누군지 모른다. 동물 전문 사진작가 뱅상 뮈니에도, 그의 연인인 다큐멘터리 감독 마리도, 철학 논문을 쓰다 중단한 레오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인 나에게 이들은 낯선 외국인일 뿐이다. 외국 소설 등을 읽을 때 내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느끼는 낯섦이 이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저자와 동행한 일행이란 의식이 더 강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뮈니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이 낯섦을 많이 희석시켜주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주석으로 간단히 만나지만 주석의 한계가 너무 분명한 경우도 있다.

 

사실 뮈니에가 찍은 사진 몇 장을 모니터를 통해 봐도 특별한 감동을 받지 않았다. 인터넷서점에서 새 사진 한 장을 보고 왜 이 사진을 올렸지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다. 사진 밑 설명도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우리가 놓친 동물이 찍혀 있다. 뮈니에조차 2개월 후에 발견했고, 저자는 뮈니에가 알려주기 전에는 몰랐던 눈표범의 눈과 그 윗부분 모습이다. 책 속에서는 흑백사진이라 찾기 힘들다. 그래서 다시 인터넷서점의 사진을 열심히 봐야했다. 한 번 발견한 다음부터는 그 곳만 눈길이 간다. 이 때문에 나는 또 이 사진의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저자가 말한 잠복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잠복하면 미스터리 애호가인 나에게 경찰들의 잠복이 먼저 떠오른다. 이 책 속 잠복은 행위는 비슷하나 의미는 다르다. 숨 돌릴 틈도 없고, 예민해야 하고, 돌발적인 뭔가가 나오길 기다린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 잠복을 하겠다는 그의 말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한 곳만 응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실제 저자는 영하 30도가 넘는 고지대 추위 속에서 눈표범을 기다리며 광활한 초원을 자세히 살핀다. 초보자가 아무리 봐도 초원의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동물은 볼 수 없다. 전문가 뮈니에의 눈길은 그 차이가 잘 보인다. 보호색이란 단어의 의미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눈표범은 모두 세 번 본다. 이 본다는 행위가 저자의 가슴 속에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내가 사진으로 보면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 것을 그는 직관하면서 감동한다. 이 여행기는 단순히 눈표범만을 다루지 않는다. 눈표범을 만나기 전 만난 야크, 늑대, 여우, 야생당나귀, 영양 등도 같이 다룬다. 늑대와 야크들이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동화나 전설 등에 의해 나쁜 이미지로 굳은 늑대가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냥 야생 육식 동물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저자는 인간 고유의 본성으로 ‘인간은 청소기다’라고 정의한다. 실제 인간에 의해 없어진 수많은 동식물들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과 윤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동물들의 사냥에서 “죽음은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이다. 물론 이것을 인간 세계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린 모든 동물들에게 우리의 관념을 투사한다. 이 때문에 감정이 움직이고, 개입하고, 세계를 뒤틀어버린다. 그런데 이 여행기에서는 이런 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보고, 관찰하고, 찍고, 감동할 뿐이다. 이 일정 속에서 움직이고, 머물면서 느낀 점을 기록했는데 곳곳에 재미난 부분이 많다. 유머가 있고, 철학이 있고, 강한 추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우리를 보는 그들이 있다는 말에 니체의 심연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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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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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데뷔작 <고백> 이후 많은 작품이 나왔다. 그 중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에 인터넷서점 검색을 하니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몇 권은 사놓고 묵혀두고 있다. 뭐 시간 나면 읽겠지 하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고백>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마도 인터뷰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독백으로 처리된 부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은 몇 번이나 가설을 세우고, 무너트리고 했다. 기존에 읽었던 추리소설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가는 그런 통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미스 월드 출신의 성형외과 의사가 방송에 나와 성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듯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지적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엄청난 숫자의 도넛에 둘러싸인 채 자살한 한 소녀에 대한 추적 미스터리다. 이 일을 알게 되는 것은 비만 상담을 위해 자신을 찾아온 동창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미용외과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을 운영 중인 히사노를 만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스트레스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살이 많이 쪘다고 한탄한다. 그러다 학창 시절 뚱뚱했던 친구 요코아미 이야기가 나온다. 제1장의 ‘육, 십사’는 요코아미의 몸무게다.


이 이야기 속에서 히사노의 과거가 흘러나온다. 어릴 때부터 예뻤고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의대에 가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히사노의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도 공부를 열심히 해 도쿄로 갔다고 한다. 할머니 때문에 살이 찌려고 노력한 이야기는 목욕탕에서 살 쪘다고 크게 외친 부분에서 잘 나온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 등으로 그녀의 체력과 활동량은 많이 떨어진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이때만 해도 단순한 미용을 둘러싼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코 성형을 위해 그녀를 찾아온 아이돌의 이야기 이후 그녀는 자살한 소녀 유우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오래 전 떠난 고향 마을을 찾아간다. 그리고 유우와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관련자들로부터 듣게 된다.


자살한 소녀 유우는 어릴 때부터 통통했다. 뚱뚱한 사람이 느릴 것이란 편견은 유우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운동에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 관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남자 아이와 함께 이인삼각 경기를 하다 넘어진 후 들고 뛰어 2등 한 것이다. 유우는 자신이 살쪘다고 그렇게 낙담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엄마가 만들어 준 도넛을 좋아했는데 이 도넛이 학교 행사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나중에 이 도넛 때문에 살이 너무 쪄 문제가 되긴 했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히사노는 유우 관련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 이유를 밝혀내고, 한 소녀의 자살이 단순히 비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님을 밝혀낸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 중에 나의 시선을 끈 부분은 성형 부분이 아니다. 히사노를 중심으로 펼쳐진 학창 시절 분위기다. 그녀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그녀의 말과 행동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별 감정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녀 주변에 머무는 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을 따라 말했다가 자격이 없다는 질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녀 자신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말 속에서 나오지 자신이 직접 내뱉는 경우는 없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진짜 삶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인터뷰 속에 조금씩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외모에 대해 말한다. 살이 쪘다고, 코가 이상하다고. 벌크업에 신경쓰고, 몸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뚱뚱함에 크게 꺼려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자기 외모를 말하고, 자신들이 기억하고 이해하는 유우의 기억을 풀어낸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내가 무심코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진짜 핵심적인 부분은 유우의 인터뷰에 잘 드러난다. 인간의 왜곡된 시선들과 뒤틀린 욕망과 죄책감 등이 엮이면서 만들어낸 비극 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외모의 기준이 바뀔지 모르지만 외모 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가독성이 좋고, 마지막 한 방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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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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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는 12편의 단편 소설을 실고 있다. 아르헨티나 소설하면 그 유명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먼저 떠오른다. 그 외 작가는 솔직히 잘 모른다. 검색하면 몇 권의 책과 작가가 나오지만 제목만 겨우 알거나 오다가다 본 작품이나 작가들 일뿐이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몇 권은 아! 하고 감탄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로 낯설다. 이 낯섦을 뚫고 라틴 아메리카 고딕 호러라는 독특한 분위기가 가졌다는 말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딕 호러가 남미라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과 기대가 교차했다.

 

이 소설집의 첫 작품 <더러운 아이>는 내가 알고 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환상을 단숨에 깨트린다. 탱고와 멋진 관광지의 이미지가 이 작품으로 산산조각났다. 물론 큰 도시의 이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작가가 묘사하고 설명한 동네의 모습은 그만큼 강렬하다. 남미의 미신이나 주술 등과 결합해 경제적 퇴락과 부패 등이 만들어낸 풍경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스테리아 호텔>은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 경찰학교가 호텔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이것을 말했다고 해고된 아버지와 이에 대한 작은 복수가 두 소녀가 본 무시무시한 환상으로 완전히 이미지가 바뀐다.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시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약에 취한 세월>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연도별 기록을 담고 있다. 무능한 부모를 비웃고 마약과 음악에 취한 청춘들의 모습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마약 대신 술을 넣고 보수적인 부모에게 대항하던 우리를 대입하면 어떨까? <아델라의 집>은 가장 호러적인 작품이다. 왼팔 없이 태어난 소녀 아델라, 파블로 오빠는 공포영화를 같이 보러간다. 화자는 부모가 반대한다. 영화 내용 등을 화자에게 말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아델라와 오빠는 마을 폐가에 끌린다. 폐가 앞을 서성이다 결국 들어간다. 그리고 집안에서 아델라가 사라진다. 화자가 본 환상은 또 무엇일까?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란 긴 제목의 단편은 다크 투어리즘을 다룬다. ‘범죄 및 범죄자 투어’의 가이드인 파블로 앞에 어느 날부터 어린이 연쇄살인마 페티소 오레후도의 환영이 나타난다. 이 연쇄살인마의 기록을 보면서 섬뜩함을 느끼고, 아이의 탄생이 만들어낸 부부의 갈등이 눈길을 끈다. <거미줄>은 권태로운 결혼 생활과 파라과이의 폭력적인 무질서가 처음에 시선을 끌었다. 정의로운 몸부림이 만들어낼 가혹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후 어떤 숲에 차가 멈추면서 생긴 이야기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로맨스로 넘어간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학기말>은 환상과 자해를 다룬다. 자해를 해야만 하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 병에 소녀 마르셀라가 걸린 것일까? 마르셀라가 화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숨을 죽이고 이것을 듣고 있던 다른 소녀들이 더 인상적이다. 마지막 장면은 역시 여운을 남긴다.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은 두개골 하나를 주워 온 후 칼라베라란 이름을 붙이고 장식하는 화자 이야기다. 화자는 뚱뚱한 남자 친구보다 베라에게 더 신경을 쓴다. 이 과도한 몰입과 애정이 의미하는 바를 열심히 생각해보는데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식증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

 

<이웃집 마당>은 운 좋게 좋은 집을 구해 이사 온 후 이야기다. 화자는 이웃집 마당에서 발목에 쇠사슬이 묶여 감금된 남자 아이를 발견한다. 환상일까? 사회복지사였다가 해고된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데 해고 사유가 나온다. 이것과 관계 있을까? 실제 그 집안으로 들어간 후 일어나는 일들은 스산한 느낌을 준다. <검은 물속>은 부패 경찰관들이 소년 두 명을 강물에 빠트려 죽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오염된 강물에서 소년 한 명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도. 기소 준비를 하게 된 것도 이 경찰관들이 동료들에게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패한 경찰관들이 있다니 놀랍다. 그러다 그 소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빈민가로 들어간다. 그곳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서운 곳인지 그곳에 거주하는 신부님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색>은 아르헨티나 히키코모리 이야기다. 남자 친구 마르코가 방안으로 들어간 후 유일한 대화 공간은 인터넷 채팅창이다. 마르코가 들려주는 일본 귀신과 히키코모리 이야기가 왠지 낯익다. 표제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실제 일어난 방화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현실을 좀더 극단으로 몰고 가 하나의 현상처럼 만들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저항은 스스로 분신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이 의식마저 공권력은 못하게 막는다. 소설 자체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르헨티나 사회나 문화를 좀더 안다면 더 이해가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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