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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관의 살인
다카노 유시 지음, 송현정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9월
평점 :
한국에 처음 번역된 작가다. 검색에 다른 소설이 보이지 않는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먼저 생각나는 제목이다.
하지만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 중 <기암성>과 연관성이 있다.
작가는 이 한 편의 소설 속에 일본 미스터리 거장의 이야기를 녹여 놓았다.
살인을 암시하는 편지 속에는 노골적으로 그 이름을 적었다.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다카기 아키미츠 등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장 해결편은 머릿속에 의문 부호를 먼저 떠오르게 한다.
이 의문 부호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소설은 두 명의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한 명은 사라진 일용직 친구를 찾아 수상한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사토.
다른 한 명은 부자들을 위한 탐정 유희를 연출하는 운영자 측의 고엔마다.
사토는 지시받은 대로 이 거대한 탐정 게임의 존재감 없는 참여자로 움직인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지 않아야 한다.
거액의 알바비를 생각하면 이 행동 준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사토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추리소설을 읽은 미스터리 매니아다.
알바 면접 당시 좋아하는 미스터리로 <명탐정 코난>을 말한 것 이상의 애독자다.
이 구력이 이 게임의 운영자들과 참여자 중 한 명을 혼란으로 몰아간다.
기암관의 집사 역할을 맡은 고엔마는 이 게임의 주요 운영자다.
이 게임을 설계한 인물은 탐정인데 그가 추리소설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받아 운영자 측에 의뢰했다.
당연히 이 살인 게임은 탐정물이고, 연쇄살인과 모방살인 등이 밀실 트릭과 연결되어 있다.
고엔마는 이 시나리오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토의 돌발 행동과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고엔마는 혼란에 빠진다.
고엔마를 통해 독자는 이 거대한 세트장이 가진 트릭과 의도를 알 수 있다.
재밌는 부분은 고엔마가 첫 살인 현장을 발견하고, 다른 살인을 돕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게임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것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자꾸 수정되고, 이 때문에 힘들어 한다.
고풍스러운 카리브의 한 섬에 만들어진 기암관.
설정대로 게임 속에 사람들이 한 명씩 참여한다.
이들의 정체를 사토는 전혀 알 수 없다. 정말 그가 맡은 것은 단역이다.
이때 한 통의 편지가 시즈쿠 씨에게 전달되고, 사토가 본다.
시즈쿠 씨에게 온 편지에 수상한 내용이 담겨 있다.
‘란포는 숨기고 / 세이시는 막는다 / 마지막으로 아키미츠가 목을 딴다’
뭔가 불길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당연히 살인 예고장이다.
이 살인들의 발견자가 고엔마인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고,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이 살인 사건에 의혹의 시선을 던지는 인물이 사토인데 그가 받은 역할 때문에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의 이 행동이 참여자 중 한 명이 오해하게 되고, 이 게임의 진짜 목적에 다가간다.
이때부터 사토는 이 게임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빠르게 돌린다.
어떻게든 시나리오대로 게임이 흘러가게 하고 싶은 운영자 측.
돌발상황이 생기면 두툼한 보너스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무시무시한 게임이지만 그들도 월급쟁이란 사실을 고엔마를 통해 계속 보여준다.
시나리오의 갑작스러운 수정은 이야기에 허점을 불러오고, 이것을 사토는 간파한다.
사토의 간섭이 불편한 운영자 측은 그의 입을 다물게 하거나 그를 죽게 해야 한다.
이 모든 사건을 주제하는 인물은 탐정인데 아직 그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고엔마가 속으로 화내고 외치고, 당황해하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믹 호러처럼 다가온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토는 이 호러물 속에서 생존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인물이다.
뭔가 허술한 탐정 유희, 어색한 연기, 거짓 밀실 등이 어느 순간 재밌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리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멋지다.
이 설정을 다음에도 이용한다면 어떤 식으로 될지 궁금하고, 작가의 다른 소설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