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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독서 - 2016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대상 수상작
잔홍즈 지음, 오하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간단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 둘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여행을 바로 가지 못할 때는 독서를 통해 여행을 한다. 여행을 가면 책 속에 나온 곳을 여행한다. 이렇게 이 둘은 뗄 수 없는 상관관계다. 하지만 여행 가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책에 나온 곳을 여행으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아쉬움은 언제나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가 그렇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에서 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읽고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여러 오름을 올라야지 마음먹고 가지만 실제는 맛집만 열심히 찾아다녔다. 비와 아이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잔홍즈는 독서광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언제 책을 읽을까 할 정도지만 상당한 양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아주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 여행지의 일부분은 독서와 관계있다. 이 책은 바로 그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 여정과, 그 여정 위에 ‘책과 함께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했을 뿐이다.”라면서 이 책의 특징을 말한다. 이때의 책은 세상의 모든 종류의 책이다. 어떤 때는 가이드북이 되고, 어떤 때는 소설의 한 구절이 된다. 누군가의 여행기가 그의 시선을 끌어 여행지로 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당연히 그 장면을 재현하려고 한다.
얇은 책이 아닌데 다루고 있는 곳은 열 곳 정도다. 첫 장에서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다루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 나라를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인터넷 서점 책 광고에 나오는 사진 속 장면은 바로 여기서 비롯했다. 책을 그대로 믿고 따라한 것이다. 스위스에서도 책을 믿고 그대로 했다가 낭패를 봤다. 실제 이런 일 때문에 실종 사고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상호확인의 중요성을 알려주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들 부부의 고생이다. 첫 고비에서 돌아갔으면 됐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다음 고비는 무엇이고 종착점은 어떨까 하는 기대로 이어지는 그 과정 말이다. 이후 이런 고생은 더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인도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속고 있구나’ 였다.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읽고, 장중한 사유를 붙여 설명하지만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양탄자의 아름다움이다. 인도 여행기를 읽다 보면 늘 마주하는 것 중 하나가 사기인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고 한다. 한두 번은 꼭 당한다고 해야 하나. 독자에게는 빤히 보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왜 그렇게 매혹적인 것인지. 뭐 이것을 저자에게 한정할 것도 없다. 나 자신도 외국에 나가면 작은 돈이지만 늘 속지 않는가. 반면에 미식평론가로 오해받아 인도 호텔 주방을 들여다본 장면은 예상과 다른 결말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상황이 뒤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이 책 속에서 테러와 지진으로 피해 본 곳을 다녀온 이야기가 두 편 있다. 한 곳은 요즘 윤식당으로 인기 절정인 발리고, 다른 한 곳은 동일본이다. 발리 이야기는 호화로운 호텔에서 보내는 일정인데 너무 황량한 분위기가 강해 쓸쓸함만 강하게 남는다. 휴양지의 활력이 사라지고, 공포가 똬리를 튼 곳에서 어떤 모습이 보이는지 아주 잘 묘사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다시 그곳을 찾아간 그의 여행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곳의 현실을 새롭게 파악하게 만든다. 피해와 공포가 확대 해석된 상황임을 보여주고, 그 지역을 살리기 위해 현지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대만의 관계가 살짝 보였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친 그들의 역사가 떠올랐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경험한 곳도 두 곳 있다. 아프리카 초원과 알래스카다. 알래스카 편을 읽으면서 얼마전 휴가를 내고 이곳으로 여행을 떠난 직원이 떠올랐다. 비록 저자처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보낸 며칠 동안은 야생 속 현대의 삶이다. 머무는 곳은 현대식으로 깔끔하고, 그 경계를 벗어나면 사자들이 먹이를 잡아먹는 잔혹한 야생의 삶이 있다. 모험가, 탐험가의 시대가 끝난 후에도 인간들은 야생의 맛을 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이곳에 온다. 단순히 동물만 보려면 각 나라에 있는 동물원으로 충분한 텐데 말이다. 알래스카 이야기는 여행보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있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더 재미있었다.
식도락의 즐거움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오사카에 가고 싶었던 것도 일본의 주방이라는 말과 흘러넘치던 맛집 정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장소는 교토와 도쿄였다. 교토에서 그가 맛본 음식들은 단품이나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식당들이다. ‘카모메’의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맛난 음식은 최상의 식재료를 최고의 스시 명인이 만드는 오노 지로의 스시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늘 회전초밥과 뷔페 초밥을 먹다가 스시집에서 주방장이 직접 만들어주는 것을 먹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예약하기 힘들다는 오노 지로의 스시를 먹고 쓴 글은 맛있다는 말 너머의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 모양이다.
이렇게 미식에 대한 글들이 나를 유혹하는 와중에 터키가 나왔다. 양 머리라는 부분에서 조금 질색을 하지만 우리가 소머리와 돼지 머리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것도 없다. 예전에 시장에 가면 얼마나 돼지머리가 얼마나 많이, 자주 보였던가. 이렇게 이 책은 멋진 풍경의 묘사보다 관광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보다 책과 음식에 더 집착한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적인 장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압도적인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먹기 위해 여행은 간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뭐 이런 곳에 간 것도 책 때문이다. 서문을 보면 1/3을 줄인 것이라고 하는데 몇 곳은 더 손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살짝 그 줄인 2/3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