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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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상상력과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화가 단순한 추리소설의 범주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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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스 스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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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로 이어지는 오슬로 삼부작의 완결편이다. 전편에서 해리가 느낀 아픔과 절망과 악몽이 이번 편에서 해결된다. 그리고 새로운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그 시작은 희생자의 피가 아랫집의 음식에 흘러들어가면서부터다. 보통 사람이라면 느끼지 못할 것인데 아래층의 남자는 단숨에 알아챈다. 경찰에 신고하고, 이 신고를 받은 강력반 반장 묄레르는 고민한다. 무더운 7월 대부분의 형사들이 휴가를 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두 명을 보낸다. 바로 해리 홀레와 그의 숙적 톰 볼레르다. 술에 절어 있던 해리는 늦게 현장에 등장하지만 변하지 않은 직관을 순간적으로 발휘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톰 볼레르에 의해 죽은 동료의 악몽이 그를 더 술에 빠지게 한다. 증인을 찾았지만 번복하고 사라진 상태가 되면서 절망감에 빠진다. 술은 도피처다. 형사지만 제대로 일하지 않은지 오래다. 아마 휴가철이 아니었다면 그를 호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일탈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반장조차도 해고를 고민할 정도다. 형사를 그만두려고 하지만 그의 본능은 그 사건을 주목한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여자가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사라진 것이 불과 몇 시간이지만 남편은 불안감에 신고한 것이다. 가까운 가게에 간 아내였기 때문이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살해당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손가락 중 하나가 잘렸고, 빨간 다이아몬드가 놓여 있다. 살해한 총기도 같이. 하나의 희생자로 이것이 연쇄살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실종된 여자의 손가락이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 번째 희생자가 사무실 화장실에서 죽을 때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하지만 아직 형사들이 아무 것도 발견한 것이 없다. 희생자들의 공통된 모습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 중에서 실종된 여인의 경우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 여기서 심리학자가 나와서 간략하게 연쇄살인범에 대한 설명을 한다. 많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읽었던 부분이라 그렇게 낯설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기본적인 이야기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것이다. 이 범인을 찾기 위해 해리와 톰은 협력한다. 해리는 무의식의 세계로 잠수해서 하나의 패턴을 찾아낸다.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다음 사건을 예측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범인은 경찰보다 늘 앞서있다. 그의 살인이 계속되지 않으면 실수의 가능성도 줄어들고, 살인의 동기도 찾을 수 없다. ‘어떻게 죽였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왜?’ 다. 무차별살인이 아닌 이상 어떤 법칙에 따라 누군가를 죽일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 그런데 형사들은 이것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한다. 독자도 작가가 살짝 끼워 넣은 에피소드 때문에 착각한다. 하지만 이 착각이 단순히 아무 의미없는 설정은 아니다.

 

해리는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경찰을 그만두려고 한다. 이때 톰이 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자신의 패거리가 되라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워 해리를 유혹한다. 악당 프린스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해리는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먼저 최선을 다한다. 톰의 열정에 해리는 잠시 그의 좋은 모습을 보고 놀란다. 그가 저지른 행동이 나쁘지만 범죄자를 잡는 행동에는 대단한 열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톰과 해리의 긴장된 대결을 볼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시리즈가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악과 법의 한계를 보여줬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파괴되었지만 회색 뇌세포는 술을 끊은 며칠 동안 빠르게 돌아간다. 한 명의 용의자가 체포된 후 벌어지는 전개는 사실 이 소설의 백미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개의 사건을 해결할 활동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용의자의 단서와 새롭게 드러난 증거 자료를 재해석하면서 진범에게 점점 다가간다. 그리고 부패 경찰의 포위망과 압력도 더 강해진다. 그렇게 드러난 진실은 이미 해리가 말한 것에 나왔었다. 바로 그것은 왜?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이 설정과 구성이 약간 낯익은 부분이 많지만 그것을 톰과의 대결과 빠른 전개와 해리의 내면을 엮으면서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시리즈 첫 권부터 읽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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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 - 가사로 읽는 한대수의 음악과 삶
한대수 글.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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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한대수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한 번도 이 가수를 깊이 있게 생각한 적이 없다. 6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핵폭탄 같은 충격을 남겨주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에 대한 나의 지식은 딱 그 정도였다. 물론 그의 노래 중 히트한 곡들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 몇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노래인지는 몰랐다. ‘물 좀 주소!’ 나 ‘행복의 나라’ 같은 경우는 낯익은 제목이지만 다른 노래는 기억조차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앨범을 찾아서 한 번 들어봐야겠다는 것이다. 그의 적지 않은 앨범을 생각하면 모두 듣는 것은 무리일 테지만 가사에 달린 그의 글을 보면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해진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자신이 낸 앨범의 가사를 다 적고, 가끔 그 노래를 왜?,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노래들의 주석을 달아놓았다. 그리고 앨범 사진과 그가 찍은 사진과 그가 찍힌 사진들을 그 사이사이에 집어넣었다. 노랫말은 한글도 있지만 영어로 된 것도 많다. 불편하게 해석도 되어 있지 않다. 시대순으로 나오다 보니 그의 변화를 알기 쉽다. 이 변화 때문인지 그는 이 책을 자신의 자서전으로 생각한다. 세부적인 이야기가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음악가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이 상당히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굉장히 솔직하다. 어느 순간은 그 솔직함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사랑과 인생에 대한 그의 자유로움이 그대로 느껴져 부러웠다.

 

그의 가사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부분이 많다. 그의 삶과 연관된 것도 적지 않다. 이런 것들이 바로 자서전이란 표현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의 주석은 그 시대의 풍경과 그의 삶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낯익고 반가운 음악가들의 이름이 같이 등장한다. 대중음악의 주류에서 이제 그들을 만나기 힘들지만 한때 그들은 아주 영향력이 컸고 대단한 음악가였다. 그 중 한 명은 이제 예능으로 더 알려졌지만 그의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는 내 나이 또래라면 놀랄만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내가 한대수를 잘 모른다는 것은 나의 음악세계가 좁았고 편식이 심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더 그의 음악을 듣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 책에 실린 가사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노랫말인가 하고 놀랄 때가 많다. 길이나 내용이 보통 대중음악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지 않은 분량과 많은 사진을 보고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했는데 이것은 착각이었다. 작곡이 사라진 가사만 남은 음악을 어떤 리듬으로 읽어야할지 잘 모르겠고 낯선 노랫말들이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석은 흥미롭고 재밌고 빠르게 읽혔다. 덕분에 이해하게 된 가사도 적지 않다. 연주음악에 주석이 달린 경우는 호기심이 더 강해지는데 이 노래 음원을 같이 제공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물론 이럴 경우 그 많은 음원에 대한 가격으로 책값이 너무 비싸지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지만.

 

이 책의 재미난 점 중 하나는 바로 각 앨범의 표지를 실은 것이다. 그 표지들의 파격적인 모습은 사실 조금 충격적이다. 요즘은 앨범 자켓이 옛날처럼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한때는 LP판 표지가 중요했다. 레코드판을 끄집어낼 때마다 그것을 봐야했고 광고 사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의 파격적인 시도 중 하나가 아내인 옥산나의 누드 사진을 실으려고 한 것인데 표지와 원본이 책 속에 같이 실려 있다. 원본대로 실기는 내가 봐도 무리다. 그리고 그 사진을 어떻게 찍게 되었는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알려준다. 두 번에 걸친 그의 결혼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지만 그의 주장이고, 상대방의 의견은 사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솔직함을 생각하면 더 사실로 다가온다. 한 음악가의 노래를 통해 그 시대와 그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작업은 흥미롭다. 그 인물이 평범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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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라오스 - 순수의 땅에서 건져 올린 101가지 이야기
한명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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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루앙파방인 그곳에 가는 일정을 몇 번이나 세웠다.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서 갔다오는 일정이다. 돈과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했지만 라오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는 가끔 읽었다. 물론 이들의 여행에서 루앙프라방은 일부일 뿐이다. 누구는 한 달 정도, 누구는 몇 개월에 걸쳐 전국을 돌았다. 봉사활동으로 그곳에 간 사람도 있었다. 아픔다운 풍경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곳의 삶과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지 못한 곳이라서 그런지 더 가고 싶었다. 몇 년 전 빠이를 다녀온 후 매번 그곳을 말했듯이 루앙프라방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올해는 일이 생겨 갈 수 없지만 늘 가슴 속 한 곳에 라오스는 살아 있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사실 그때를 기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내용은 여행자의 글의 아니다. 라오스 민간기업 코라오그룹의 부회장이 쓴 글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살면서 사업하는 사람의 시선이 많이 담겨 있다. 라오스에 관심이 있는 기업가들의 입문서로 생각하면 딱 맞는 책이다. 물론 여행자들이 라오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개론서로 나쁘지 않다. 전체적인 글의 구성이 정치, 문화, 역사, 지역, 경제, 음식 등을 모두 다루고 있어 깊지는 않지만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순수의 땅에서 건져 올린 101가지 이야기’란 부제가 있다. 일곱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열하나에서 스물셋까지 챕터를 담고 있다. 각 챕터는 하나의 소재를 다루는데 사실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이것은 개론적인 이야기가 각론에서 다시 다루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어떻게 보면 한 번 더 강조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라오스 여행을 늘 꿈꾸는 나에게 개인적인 경험이나 풍경에 대한 감상 등이 많이 제거되어 재미는 떨어지지만 라오스란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을 개괄적으로 배우는 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사실 다른 책이나 카페 등에서 얻은 정보가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정치와 역사 등은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이것은 여행자가 아닌 사업자로 그곳을 보고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라오스에 대해 말한 수많은 말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들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222쪽)란 표현이다. 자신이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라오스 국민을 바라볼 때 세계최빈국이지만 행복지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그들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풍족한 자원이 있어 굶어죽을 걱정이 없고, 또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생존수단으로 닦은 생활습관이 이것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역사와 지역과 문화 등을 풀어서 이야기해줄 때 이런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물론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더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오늘의 행복을 놓치고 살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생각할 때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략되고 라오스의 정보를 많이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래서 재미는 조금 떨어진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라오스 정보들이 책 속에서 다루어지면서 반가웠고, 조금 더 자세하게 알게 된 것도 적지 않다.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많이 필요한 내용은 아닐지 모르지만 좀 더 오래 머물거나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 있는 책이다. 아마도 집필도 여행자와 사업가의 중간을 노리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작년에 방영한 <꽃보다 청춘>은 재미있었지만 그곳을 가려고 나에게는 오히려 악재다. 비행기 좌석도, 숙소 등도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를 자주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라오스의 변화가 잘 느껴진다. 점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예전의 싸고 맛있는 음식이 줄어들고,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도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빨리 가야지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책 속의 풍부한 사진 자료는 여행 사진과 다른 부분이 많다. 하지만 글 내용과 잘 맞는다. 빠른 이해를 돕는데 도움을 준다. 또 어떤 사진은 너무 멋지다. 그리고 사진은 많고, 글은 많지 않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음식에 눈길이 더 많이 갔지만 라오스의 관료주의와 정치를 적은 글도 흥미로웠다. 늘 나의 시선으로 그들을 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라오스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나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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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집 아티스트 백희성의 환상적 생각 2
백희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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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장르 구분을 보면 에세이로 되어 있다. 읽을 때 단 한 번도 이 책이 에세이로 다가오지 않았다. 분명히 소설로 읽었는데 도서 분류는 에세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팩트에 약간의 허구를 덧붙여 팩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팩션이면 소설로 분류되는데 왜 출판사는 에세이로 분류했을까? 그리고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집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실재한다고 했을 때 정말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이란 것을 이렇게 환상적으로 풀어낸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루미에르는 부동산중개인에게 어려운 요청을 한다. 시떼 섬에서 5만 유로짜리 집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현재 시세 기준으로 말도 되지 않게 싼 가격이다. 그런데 갑자기 중개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거의 기대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본 집은 먼지가 뽀얗게 쌓였지만 아주 큰 집이다. 결코 자신이 요청한 금액에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원래 주인인 피터 씨의 대리인이 와서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집이란 게 뭔가요?” 사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싼 가격에 집을 사려는 루미에르는 건축가다. 집을 산 후 자신의 손으로 집을 수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시떼 섬의 저택은 아주 매력적인 집이다. 그런데 이 집주인이 팔기 전에 하나의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찾아와서 만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스위스 왈쳐요양병원에 있다. 기차표와 여행경비가 그에게 오고, 그는 급하게 그곳을 향해 떠난다. 기차역에 내렸지만 그곳으로 가는 차는 없다. 운 좋게 그곳에 빵을 제공하는 차를 타고 가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요양병원에 도착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의 예상을 빗나가는 모습에 놀란다. 이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왈쳐요양병원에서 머물면서 이 병원의 설계와 구조에 놀란다. 건축가인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구조에 감탄한다. 바람의 길과 빛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모습은 시각, 촉각, 후각 모두를 즐기게 만들었다. 피터 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바로 만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이 병원의 구조를 하나씩 조사하고 그 의미를 상상하고 때로는 느낀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왜 4월 15일인가? 그리고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병원의 진짜 이름은 ‘4월 15일의 비밀’이다. 이제 주인공은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단서는 바로 이 집들이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집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살벌하지 않지만 긴장감을 불어넣고 감동을 가져온다.

 

책을 읽은 후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집을 생각해본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 적지 않다. 주택도 있다. 그런데 기억은 언제나 주택이 먼저다. 넓지도 좋지도 않았던 그 주택의 방 한 칸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마도 그곳에 더 많은 추억과 사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집을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나와 나 이전과 이후에 살 사람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흔적이 추억으로 남아 집을 풍요롭게 아름답게 만든다. 늘 새로운 것만 찾고 자산 가치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셈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각이다. 그래서 저자가 풀어내는 비밀 하나 하나가 찐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곳에 산 가족들의 영혼을 담은 집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산 가치 이상이 그곳에 담겨 있다. 

 

기술적으로 책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표지부터 그렇다. 편지를 단순히 색만 달리한 것이 아니라 명도로 달리해서 약간 불편해도 집중하게 만든다. 예전에 <마천루>를 읽고 건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더 감상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4월 15일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세심한 배려와 장치들은 건축의 가장 기본을 생각하게 만든다. 찍어내는 듯이 만들어지는 집들에 익숙하고, 살기 보다는 팔 것을 더 신경쓰는 요즘 이 책 속의 집은 잊고 있던 집 본연의 모습과 기능을 잘 보여준다. 멋진 이야기에, 멋진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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