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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
이영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란 부제가 달려 있다. 대중문화는 박정희 시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중예술이 박정희 시대의 역사를 보고자 하는 하나의 연구 대상이다. 저자는 “대중예술의 변화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불황에는 짙고 화려한 립스틱과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 식으로 단순하게 정식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대중예술의 유행과 인기의 변화가 정치사적 변화와 맞물려 나타나는 일은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몇 가지로 예로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로 비롯된 댄스 뮤직의 시대와 얼터너티브 록의 유행 등의 현상이 등장한 것과 조용필의 인기 시대가 정확하게 전두환 정권의 시대와 일치한다는 것 등이다. 여기서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이 관계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심층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예술로 역사를 읽어내는 일이 수용자 대중이나 생산한 창작자도 잘 깨닫지 못하는 대중의 사회심리를 섬세하게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속살을 읽어내는 것’이란 표현을 저자가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를 얼추 다섯 시기로 나눈다. 이 다섯 시기는 모두 선거가 있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대중문화 인기 판도의 변화가 꽤 의미 있는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한국의 오늘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란 말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1960년대를 해석하기 위해 1부는 1960년 4.19 이전의 대중예술로 향한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너무 낯익은 단어이지만 아프레걸은 너무 낯설다. 아프레걸이란 단어는 전후란 의미의 아프레게르란 불어에서 변종된 신조어다. 신조어가 되면서 원래의 의미는 사라지진다. 또 사교춤의 단속이 박정희 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잠시 동안 기억 왜곡을 생각하게 만든다.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들과 카바레의 풍경은 사교춤은 나쁜 것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이 단속은 정부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게 만든다.
2부와 그 이후로 이어지는 대중예술의 분석은 매체와 연결해서 진행된다. 방송국 개국과 라디오 드라마, 영화, 소설, 음악 등이 분석의 대상이다. 지금은 라디오에서 성우들이 드라마를 읽어주는 것이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이 라디오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였다. 그런데 이 라디오의 보급이 1960년대만 해도 그렇게 많이 되지 않았다. 아직 문맹률이 높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소설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힐 수 있는 시기도 아니다. 이것은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정해져 있음을 알려준다. 혁명을 일으킨 세대가 왜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지, 그 시대 인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분화된 60년대를 저자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하나로 읽게 되는 그 시대의 변화가 보인다. 금지곡의 대명사가 된 두 노래 <아침이슬>과 <동백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는 여담처럼 전해지는 것과 너무 달라 낯설다. 원래의 작곡 의도와 다르게 불리게 된 <아침이슬>이나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고 하는 <동백아가씨>가 꽤 오랫동안 팔렸다는 사실 등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아버지의 이미지 변화와 여성 이미지 변화는 우리가 단순하게 기억하던 것과 너무 달라 조금 놀랐다. 또 직설적인 노래가사는 어떤가.
1970년대 청년문화에 대한 분석도 이식론, 자생론, 혼종론 등으로 대립하지만 전후 세대의 탄생과 연결한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세대론은 현재도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록하면 떠오르는 저항정신이 70년대 한국에서는 없었다고 한다. 청년문화의 중심에 포크가 들어선 것도 이 시대와 관계 있다. 포크가 락보다 상대적으로 건전해 보였고, 정부의 퇴폐문화 단속과도 관계가 있다. 아직 사회의 성숙도와 문화의 이해도가 많이 나아가지 못한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더 들어가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새로운 흐름 수용에 대한 대중예술 분야별 속도는 대중가요, 소설과 영화 순이다. 70년대를 해석하는 저자의 글도 이 순서를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놀랍고 흥미로웠던 것은 김수현 작가의 등장이다. 작가의 드라마를 제대로 본 것이 없어 쉽게 평가를 내릴 수 없지만 현재까지 최고의 드라마 작가 중 한 명이자 히트 제조기였던 그녀가 처음 나타났을 때 여주인공들이 기성세대 작품과 다르게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수현이 청년문화라 지칭하는 부류에 끼지 않았고, 이 시대의 청년문화 현상은 남성의 관점과 감수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신이 새로운 진보적 예술 문화 운동의 주체들이 탄생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를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