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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학교 게리 토마스의 인생학교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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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자(남편)을 이해하는 핵심을 제공하며  항상 고쳐지지 않는 남자(남편)이 그럴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한다.
 시행착오의 원인 및 해결을 찾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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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지음 / 해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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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장편소설이 나온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6월 첫 주에 나온다고 했다가,

8월에서야 출간이 되었다.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8월에 출간하였다.




책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이철환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성장소설이기에

단숨에 읽어 갔다.

연탄길, 곰보빵, 행복한 고물상, 보물찾기, 못난이 만두이야기 등을 읽었다면

더욱 더 공감을 하며 읽어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소설은

프롤로그, 에필로그, 작가의 말을 제외하면

모두 28장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28장은 독립된 글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의 플롯을 생각하고

거기에 절정과 반전이 깃든 소설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의 진가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번 소설은 하나하나의 글들이, 소주제들이 모두 완벽한 이야기가 된다.

마치 이철환 작가의 이전 글에서 읽어 보았듯이.




형식이 어떠하든, 글을 풀어내는 방식이 어떠하든

이번 글에서 이철환 작가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라라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주인공 유진이.

유진이는 너무나 가난했다.

유진이는 가난한 나머지 대학을 뒤로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라라는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게 ‘유진’이는 ‘라라’보다 작았다.




유진이 주변에는 유진이와 같이 애처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무엇보다 옆집에 사는 시각 장애인 아저씨.

이 아저씨의 아내는 시각 장애인이었고, 뺑소니차에 치어 죽고 만다.

유진이는 시각 장애인 아저씨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문학을 나누고 인생을 나눈다.

유진이의 주변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었다.

유진이 주변에는 늘 소외된 자들, 연약한 자들,

그래서 눈물짓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가는 이들 작은 사람, 연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통해

우리의 실존을 바라보게 한다.

가난 때문에 라라보다 작게 보인

자기 처지로 인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라라를 만나러 나갈 때에

손톱 밑에 기름때를 지우기 위해

손톱 밑이 아리도록 문질렀던 유진이.

유진이는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시각 장애인 아저씨의 삶을 면면히 바라보고 지켜본 유진이는

아저씨의 삶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죽음.

지켜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

글을 몇 편씩 내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아저씨는 죽어갔고, 끝내 유진이는 아저씨에게 죄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죄인된 고백을 통해 유진이는 계속해서 희망을 쓰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로 끝내 폐쇄병동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를 둔 유진.

미국으로 이민 간 라라의 연락과 라라를 만난 시간들.




모두 다 아픔이었다.

유진이는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사랑의 고백을 한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눈가에도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바로 아픔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눈물은 더 이상 눈물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너무나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해서,

좋아하는 라라에게 당당히 다가가

좋아한다는 말도 못해서,

늦게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서,

그리고 어렵게 글을 써서 출판사를 찾아가면

번번이 퇴짜를 맞아서,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슬픔이어서,

술만 마시면 망가져 가는 아버지 그리고 그의 죽음,

아버지를 보며 어찌 할 줄 모르는 어머니,

무엇보다 시각 장애인 아저씨의 죽음.




그렇게 유진이의 삶은 슬펐다.

기쁨이 멀리 있고,

언제나 돌아보면 아픔이었던 삶들은

아픔이 눈물이 되어

향방 없는 인생에 길이 되었고,

힘이 되었고, 겸손이 되었고, 이 악물고 살아가는 의지가 되었다.




그래서 눈물은 힘이 센 것이다.




열등감, 모욕감이라고 하는 것도

인간의 삶을 끌고 가는 발걸음이며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들을

이끌고 간다는 가르침.

이 가르침을 통해 우리 불안전한 인간이, 유한한 인간이

너무나 목에 힘주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눈물을 흘리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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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 양장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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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참 신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의 방황. 결론은….

작가의 지향점을 찾지 못한다면 “다빈치 코드”보다 더 곤란한 책!




민요섭이란 사람이 무참히 살해되어 발견된다. 민요섭의 죽음을 조사 하던 남경사는 민요섭이 쓴 소설을 발견한다. 남경사는 그 소설이 죽은 민요섭의 삶과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남경사는 민요섭이 쓰다 만 소설에 공감이나 한 듯, 민요섭에게 빠져들어 간다. 남경사는 민요섭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조동팔이 범인임을 알게 되었고, 그의 범행 수법과 자백을 듣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아들』의 큰 궤적이고, 이 안에 민요섭의 소설이 등장한다.




   『사람의 아들』은 액자 소설이다.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를 속 그림으로 한다. 아하스 페르츠는 인간들의 비참, 고통, 불행에 눈뜬다. 전지전능한 야훼가 창조한 인간세계는 죄악과 고통이 가득하다. 야훼는 고통과 죄악이 가득한 인간들의 세계에 너무나 무력하였고, 아하스 페르츠는 이 부분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만약 야훼가 죄악을 만들었다면 그 죄는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 야훼의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이라면 인간에게 고통을 떠안겨주는 죄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죄악이 야훼의 뜻이 아니라면 그의 전능은 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러한 회의 속에서 그는 안락한 고향과 촉망받는 사제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 방랑과 방황의 길에 오른다.




   그는 이집트, 가나안, 페니키아, 바빌론, 인도 등을 돌며 진정한 신을 찾아 고통의 방황을 계속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신은 없었다. 단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뿐이다. 그 제도는 약해빠진 자신들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10년 가까이 방황을 하였고, 그는 고향에 돌아와 비로소 그가 찾던 신을 광야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저자는 진정한 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아하스 페르츠가 그동안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던 신을, 이제는 고향 땅에 돌아 와서야 만나게 된 신에게서도 그는 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문열은 “쿠아란타리아서”에서 어느 정도 답을 제시하지만, 잘 모르겠다. 제시하려 했던 답이 답인지를.

   어쨌든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으면서, 신선하면서도 진부한 양면을 발견한다.

   

   진부한 점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를 소설에서 차용한 것이다.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논쟁은 교회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것이다. 아직도 핫 이슈이다. 얼마 전에 SBS에서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의 인성과 신성은 진부한 논쟁거리지만, 논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제나 소설의 신선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문열은 이 논쟁을 파헤치기 위해 아하스 페르츠를 등장 시킨다. 그리고 아하스 페르츠의 진정한 신을 찾아 헤매는 구도의 삶을, 아하스 페르츠의 방황과 방랑의 모습들을 스케치 해낸다.




   이를 위해 고대 근동 여러 나라들의 신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너무나 지루했다. 읽는 독자인 나에게도 공부였기 때문이다. 아하스 페르츠의 방황과 구도의 모습을 조금 더 생생하게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스케치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신선한 부분은 예수의 인성과 신성의 문제를 이 사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때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아니다. 어떤 신학자는 신학을 인간학이라 하지 않았던가! 역시나 이문열을 위대한 작가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신학의 범주 안에 있을 법한 문제의식을 사회 안으로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문열은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한 것일까? 이 사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신의 문제, 종교의 문제들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제도권 교회의 모습은 비판이 필요하다. 정화가 필요하다. 새로움이 필요해 보이며, 거듭남을 외치는 교회의 진정한 거듭남이 필요함을 절실히 드러내 보인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작가와의 호흡에 동의하면, 그야말로 종교는 무익하다. 존재치 말아야 된다. 아하스 페르츠가 부정한 신처럼.

   

   그렇다면 이문열은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작업을 한 것인가? 종교가 무익하고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만약 그게 다일까? 독자들에게 그렇게 잃혀 진다면 “다빈치 코드”보다 더 나쁜 책이리라. 허구를 통해 “사실”을 오도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진실이라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라 전제한다면, 오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진실도 서로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문열은 액자소설 속에서 그러니까 “쿠아란타리아서”에서 위험한 글쓰기를 한다. “위대한 지혜”의 등장이 그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하나님이 “둘”이란 것이다. 위대한 지혜의 신이 침묵하는 동안 천지를 창조한 신인 야훼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지혜”는 하와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뱀을 보낸다, 라고 하는 설정은 기독교 역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단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 역사 상 얼마나 많은 이단이 존재했던가.




   그러면 『사람의 아들』은 이단을 소재로 한 것인가. 여기까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단정해 버리기에는 그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나는 이 사회의 부조리성을 고발하는 작가의 뜻이 있으리라, 라는 추측만을 할 뿐이다. 결국 나는 『사람의 아들』 뒤에는 무언가 거대한 진실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위대한 지혜”라든가, “쿠아란타리아서”, 천지를 창조한 “야훼”의 설정만으로도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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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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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명확하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뉴라이트 단체들의 정체, 운동 및 그 목적을 알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지각 변동 속에서 뉴라이트가 어떻게 살아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저자의 글을 인용하여 정리하겠다.




   “뉴라이트는 원래 학술 운동이 아니라 정치 운동이다. 한국 정치계에서는 반공독재 시대에 뿌리를 둔 수구파가 큰 힘을 지키고 있었다. 큰 힘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래 수구파가 수세에 몰려 있었던 것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과 냉전 해소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 위에 1997년 경제 위기까지 겹치자 수구파가 분열, 일부가 야당과 연합해 김대중 정권을 낳았다. 고개를 숙여 책임을 피하면서 실력을 지키고 실속을 챙기는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7쪽)




   계속해서 자세히 인용하겠다.




   “그런데 2002년 대선의 뜻밖의 패배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의회 다수당 자리까지 빼앗기자 수구파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감에 빠졌다. 그 위기를 돌파하려는 노력이 뉴라이트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운동에서는 정책 노선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까지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대표되던 이른바 ‘진보진영’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올 필요를 내세워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을 수구파 중심으로 결속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를 이렇게 보자는 주장도 내세우게 된 것이다.”(7쪽)




   그러니까 한 마디로 뉴라이트 운동은 정권을 되찾기 위한 수구파의 운동인 것이다.




   저자는 한 마디로 잘라서 얘기한다. 이 운동을 이루고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매우 부실한 것이다.”(7쪽)라고. 그래서일까 저자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그들과의 학문적인 대화는 차지하고서라도 그들의 틀린 점 그른 점들을 얘기하기에도 버거운 눈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동안 연구해 왔던 자신의 연구물과 뉴라이트의 역사관에 대해 비교하며 비판하는 것은 비판의 신뢰성에 큰 힘을 실어 준다.

   예를 들어 안병직과 이영훈은 그들의 책 어디 어디에서 이렇게 주장했는데, 나는 이런 근거로 그들이 틀렸음을 주장하며 그 논거는 나의 책 어디 어디에 나와 있다는 서술이다. 학문적 성격이 책이 아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에서도 독자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뉴라이트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들이 수구진영에 열광하는 팬들이 손에 쥐여 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 뿐이다. 보수는 좋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에 놓고 말겠다는 그런 꽉 막혀버린 보수는 수구인 것이다.




   저자는 뉴라이트의 인간관, 국가관, 식민지 근대화론, 이념, 문명관, 민족관, 대미관, 경제정책, 자본관, 친일파, ‘친미 내셔널리즘’, 대북관, ‘대안 교과서’, 승리주의, 역사 교과서 파동, 보수주의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여러 항목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뉴라이트의 인간관이며 문명관일 것이다.

   인간관은 이 책 초반부에 20여 쪽 분량으로 서술되어 있으면, 문명관은 대략 10여 쪽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뉴라이트의 골격을 이루는 부분이다. 뉴라이트를 급히 알아볼 요량이라면 이 두 파트만 먼저 읽어보아도 될 듯하다. 저자의 뉴라이트에 대한 인간관과 문명관은 뉴라이트의 실체이다.




   우선, 저자가 비판하는 뉴라이트 인간관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 것에 있다.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10쪽)

   그래서 저자는 20~21쪽에서 부시먼족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다음과 같다.




   “부시먼족의 먹을거리 중에는 쥐, 뱀, 벌레 등 ‘몬도가네’ 수준이 많다. 그러나 관습의 색안경을 벗고 보며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먹을거리들이다. 먹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 확보에 큰 노력이 들지 않아서 서로 어울려 노는 등 여가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먹을거리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시먼족의 사회의 관찰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구성원들의 연대감이다. 식량을 오래 보관할 수 없으니 사유재산의 개념이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는 길조차도 이 사회에서는 막혀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몇 차례 사냥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듭 올리자 동료들이 슬그머니 왕따를 시키는 모습이 관찰되었는데 그 사람은 사냥에서 빠졌다가 며칠 후 다시 나서자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L.S. Stavrinos, Lifelines from our Past: A New World History, Pantheon Books, 1989, pp.23~30)”(20~21쪽)




   저자는 과연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인가?, 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인간에게서 인간다운 특성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뉴라이트 진영이 규제 완화, 민영화, 부유층과 고소득층의 감세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정글 자본주의에 방해되는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배척하는 신자유주의, 그에 복무하는 뉴라이트에게서 실제로 인간이 살아오고 겪어온 과정을 추적하고 성찰하는 진지한 역사 담론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겠다.”(25쪽)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 존재뿐일까라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위의 결론을 맺는다. 우리는 그러므로 자연스레 뉴라이트의 문명관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뉴라이트 문명관은 앞서 말한 저자의 결론대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신자유주의 정책은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이어야만 하고,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이어야만 한다. 이 자본주의는 바로 문명임을 뉴라이트는 주장한다.




   뉴라이트의 문명관에 대해 다루려면, 무엇보다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영훈은 “자유, 인권, 법치, 사유재산, 시장, 자기 책임 등”을 문명의 기초로 정의한다.(61쪽) 저자는 이영훈의 이런 시각이야말로 잘못된 관점이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갖춘 문명사회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이 언제의 일이었을까?”(61쪽) 이영훈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시민사회, 곧 자본주의를 곧 문명으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62쪽) 그렇기 때문에 뉴라이트는 이승만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문명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일본식민 통치를 옹호하는 것도 자본주의 문명의 길을 일본이 열어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란 황당한 개념 정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33쪽) 뉴라이트는 이승만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도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겠는가! 뉴라이트의 문명관에 의하면,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및 일본의 식민 통치는 대한민국을 지금의 길로 인도한 역사적인 인물이면 사건인 것이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저자의 글로 이 책 전체의 마무리 짓고자 한다.




   “‘역사학자 아무개’가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작업을 한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독자들 중엔 ‘음, 누가 역사학계 수비수로 나섰나 보군’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역사학계 수비수가 아니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면서 가끔씩 ‘역사학자’ 타이틀도 반납해야 옳지 않을까 고민도 하는 사람이다. 내 딴엔 역사 공부라 생각하며 공부를 계속하지만, 연구 논문을 낸지 10년이 다 돼가는 사람이 ‘역사학자를 자칭하기가 멋쩍어지는 것이다. 나서는 입장을 굳이 가리자면 ‘역사 평론가’라 할까? 작업에 임하며 첫 번째 원칙으로 마음먹은 것이 사실 관계를 다투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실 관계는 그 분야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비평하는 것이다. 작업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관이라 할 수 없는, 하나의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정적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겠다. 역사관이라면 역사의 일부분을 보는 눈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보는 눈이다. 그런데 뉴라이트 역사관은 자본주의 발생 이전을 보지 못한다. 개인주의를 전체로 하는 자본주의를 문명의 유일한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눈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내다본다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도 극히 경직된 의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206-207쪽)




   그러므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정당한 학문적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정략 노선을 지원하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춰진 틀이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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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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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좋아하는 나라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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