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정의로운가 KAP 정의와 평화 실천 시리즈 10
크리스 마셜 지음, 정원범 옮김 / KAP(Korea Anabaptist Press)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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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차를 소개합니다.

 

관심 분야의 좋은 소책자를 만났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마침내 마음을 먹고 책의 내용을 소개하네요.

혹시나 관심이 있을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책 페이지 사진 촬영을 많이 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독교가 그 중에서도 개신교가 정의와 관련하여 형편 없는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또한 글을 읽다보면 댓글들을 다시는데. 모두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 그리고 기독(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모두 교단과 교파를 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 개독교 개독교 하면 조금은 곤란하지요.

흔히들 개독교라고 하면 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를 두고 하는 말 일수도 있지요. 물론 생각에 따라사 다른 말씀을 하실 수 있겠지만. 천주교도 개신교도 역사 앞에 부끄러운 행태를 보여온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ㄸ까!!!

그렇다고 기독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는 악한 면이 존재하지요. 바로 사람 때문인 것을! 모든 종교를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제가 소개해 드리는 책은 정의와 관련한 책입니다.

그리고 개신교 성서적 관점에서 정의를 다룹니다.

근거없이 정체없이 개독교라 비판하지 마시고,

책의 내용을 살펴보신다면, 기독교가 얼마나 정의롭게 살지 못하고 있는지를 잘 아실 겁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과 비판을 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서와 예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성서로 돌아가고 예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정의의 대행자가 되어야 합니다.<이하 사진 내용>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옮긴의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수의 정치적 입장은 불의와 주변의 사회적 악에 대한 예언자적 비난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실현하기 위해 대안적 사회를 소집한 것으로 특징지어졌다."

 

 

위의 내용을 펼치기 위해 저자 크리스 마셜은 성서적 세계관에서 정의를 살펴보고,

성서에서 정의를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성서적 정의에 따라 실천한 예수와 정의에 대해 결론을 짓습니다.

 

21쪽에서도 재차 반복이 되는데, 성서 기록에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이해할 때 두 가지 사건으로 설명하는데 이와 같은 설명도 윗 단락에서 언급한 정의를 다룹니다.

물론 그 정의의 내용은 대안적 사회를 소집하는 것인데,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의 상태에서 소집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첫째, 출애굽한 백성들이 언약 공동체를 형성한 것.

둘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정의에 대한 성서의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는 주목할만한 성서적 세계관의 핵심 [관련] 개념은 <샬롬, 언약, 토라, 행위-결과, 속죄-용서> 입니다.

 

이런 정의는 실천적인 평화를 필요로 합니다. "아래 사진 참조"

 

다섯 가지 관련 개념들 중 마지막의 '속죄-용서'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서에서 속죄는 제물을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제물을 보면 나 대신 벌을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반적인 생각이지요. 그런데 제물의 입장에서 보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 씻음의 수단이 됩니다. 제물이 그걸 알지 모를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요.

 

어쨌든 죄를 사함받기 위해[속죄라고 함] 제물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죄를 전가합니다. 제물은 죽게 되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구약의 제사를 드리면, 용서라는 것이 처벌로 생겼다고 이해합니다. 저도 그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그런에 이 책을 통해서 한 차원 새로운 속죄-용서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사함받고 싶은 죄인이 제물에 손을 올려 자신의 죄를 동물에게 전가하고 제물을 죽입니다. 이런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제물을 처벌하는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용서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용서가 주어진 것이 깊은 후회와 헌신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제물을 죽이는 의식을 통해 후회가 있고 다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헌신을 하는 것이지요. 처벌과 형벌만 생각하다 보니까 제물을 드리는 자의 깊은 후회나 헌신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정의의 하나님, 성서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된 놀라운 감정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우리도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속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성품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로 존재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처럼 행할 수밖에 없는

성품과 속성과 존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 또한 정의의 대행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도 정의의 헌신이 없다면 예배하는 모든 수단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명령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래의 사진 참조

 

 

정의의 논의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방식을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까지 앞에서 논의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 마셜은 이러한 정의를 관계로 파악을 합니다. 모든 정의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정의는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지점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함과 편애로 살아낸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와의 관계에서 정의를 실행할 때,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편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상대방이 부자라고 해서 편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크리스 마셜은 57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는 쟁점에 따라 공정하면서도 편파적이고, 편애하면서도 편애하지 않고, 동등하면서도 동등하지 않다."

"공정함은 성서에서 절차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의 시행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사회 정의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강조점이 나타난다. 이에 관해서는 명백한 편애가 발휘되어야 한다. 특히 네 집단, 즉 과부, 고아, 체류 외국인과 가난한 자들의 복지를 위해 특별한 관심이나 편애가 베풀어져야 한다."

 

 

정의를 위해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을 편애하시는데, 이것은 불의한 괴롭힘에 가난한 자들이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가 법정에 고발된 경우에 성서의 율법은 모든 당사자들을 공평하게 처리할 사법 체계를 요구합니다.

 

바로 공명정대함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만 필수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일단 결정이 나면, 희생자가 온전함을 되찾고, 범죄자는 손해를 입었던 것을 보상함으로 공동체 안에서 범죄자가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사법체계가 놓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 마셜은 이것을 회복적 활동이라고 이름했습니다.

 

 

이 책의 백미는 다음부터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을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대부분은

어쩌면 학자나 설교자들 역시

예수님은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크리스 마셜은 정의의 논쟁에서 예수님을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의의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와 분리시켰기에 지금의 한국교회에 정의가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정의가 없다보니 당연히 평화가 임할 수 없는 것이지요. 

 

 

크리스 마셜은 예수님이 정치적임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하나님 나라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몸소 살아냈습니다.

그래서 에수님은 정치적 입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정치적 입장은 예언자적 비난과 대안 사회를 소집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조세 질문입니다.

 

이 책의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싶은 내용은

예수님처럼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우리의 실천 영역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는 비판적 선언(선포), 또 하나는 그러한 비판적 선언이나 선포 더 나아가 고발까지도 나누고 행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대안 공동체(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책은 나에게 이 두 가지를 하라고 촉구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원천인 성서와 성서 안의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에게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없다고 본다. - P9

정의는 하나님이 갈망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이고, 정의가 하나님 보좌의 기초이고 우주의 기초이며 정의는 하나님 나라의 심장이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사랑의 통치를 행하시는 방법, 정의는 성서의 중심 주제이다. - P9

"예수의 정치적 입장은 한편으로는 불의와 주변의 사회적 악에 대한 예언자적 비난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실현하기 위해 대안적 사회를 소집한 것으로 특징지어졌다." - P11

첫번째 사건은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율법 아래서 살아가는 언약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노예 상태인 그들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언약을 도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이다. - P21

그러나 이 용서가 주어진 것은 대신 받는 처벌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깊은 후회와 헌신을 보였기 때문이다ㅣ.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죄로 인해 깨어진 언약 관계가 회복된다. 속죄를 위한 처벌의 어떤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만족스럽게 실현됨으로써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P34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가 지상에서 보일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 또한 정의의 대행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저의가 무엇인지를 하나님에게서 배워야 하고, 그들이 배운 것을 세상에서 행동으로 재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P41

성서의 예언자들은 정의에 대한 헌신이 없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수단들,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명령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정의가 없는 종교행위는 다만 하나님을 역겹게 하는 것이라고 아모스는 선포한다. - P47

만일 정의가 하나님의 속성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모방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면, 정의는 전부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P54

성서의 율법은 범법행위를 다룰 때나 소송 당사자 간의 분쟁을 중재할 때 공정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P58

공정함은 성서에서 절차적 정의와 응보적 정의의 시행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사회 정의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강조점이 나타난다. 이에 관해서는 명백한 편애가 발휘되어야 한다. - P59

공명정대함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만 필수적인 것이다. - P66

일단 결정이 되고 나면, 성서의 사법 체계의 근본적인 목표는 위반에 의해 손해를 입었던 것을 보상하는 것이다. 회복은 희생자가 온전함을 되찾는 것, 범죄자가 공동체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 것, 더 큰 사회가 두려움과 죄와 공해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되찾는 것 등, 여러 가지 수준에서 요구된다. - P67

학자들과 설교자들 모두 그 당시의 구체적인 정의의 논쟁에서 예수를 거의 완전히 분리시켰다. - P75

예수의 정치적 입장은 한편으로는 불의와 주변의 사회적 악에 대한 예언자적 비난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실현하기 원해 대한 사회를 소집한 것으로 특징지어졌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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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정의로운가 KAP 정의와 평화 실천 시리즈 10
크리스 마셜 지음, 정원범 옮김 / KAP(Korea Anabaptist Press)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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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무엇인지 성경적 관점에서 다룬 책이다. 성서적 세계관과 성서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속성이 정의이며, 예수의 삶에 정의가 녹아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예수를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도래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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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씨남정기와 사씨남정기 -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술총서 14 경북대학교 학술총서 17
김일렬.백두현 지음 / 태학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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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있다니, 전문 영역의 세계인지라 모르는 부분이 많겠지만.

자녀를 홈스쿨하면서 부모로서 더 많이 준비해야겠다는 열심에 이것까지 읽게 되었다.

 

속편의 내용은 가늠할 뿐이다. 손실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함에도 이야기의 전개성과 연결성을 고려하면 이러이러한 내용일 거다란 글에 놀라기까지...

 

김일렬, 백두현 두 학자의 노고가 있는 것 같다.

 

 

판독문을 실어 놓았고, 판독한 필사본도 함께 실려 있다.

앞선 두 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용 중에 [비점 교정부호가 있었으며 상당히 수준 높은 한글 서사 능력을 갖춘 분이 필사를 한 것이라는 추정과 "ㄷ 구개음화"와 "원순모음화"]등등

이러한 이유로 18세 중반 혹은 그 직전이란 연대기를 뽑아 내었는데,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연구를 했을까 하는 생각.

 

자녀들에게 학문하는 이런 부분을 도전해야 겠다.

 

바라기는 사씨남정기와 속사씨남정기를 같이 묶어서 읽기 쉽도록 책으로 나왔으면 한다.

보리 출판사의 번역이 술술 잘 읽혔는데...

보리 출판사에서 이런 작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비점은 일정의 교정부호로서 글자의 순서를 바꾸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실수는 기존하는 작품을 보고 베낄 때 발생하는 유형이다. - P33

이 자료에서 ㄷ구개음화 실현율을 통계 처리해 보니 - P69

위에서 밝혀진 여러 사실을 근거로 하여 필자는 속사씨남정기의 필사 연대를 18세기 중기 혹은 그 직전으로 판단하였다. 이 연대는 사실상 이 작품의 창작 연대일 가능성이 높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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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씨남정기와 사씨남정기 -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술총서 14 경북대학교 학술총서 17
김일렬.백두현 지음 / 태학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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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자는 아니지만 재미있었고, 학문적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사씨남정기 속편이 발견되었고 이를 위한 연구 첫 걸음을 소개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ㄷ구개음화‘, ‘원순모음화‘ 등등 필사 연대를 추정하는 내용이었다. 상권판독문과 필사본을 살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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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멈춘 시간, 11시 2분 - 십대가 알아야 할 탈핵 이야기 꿈결 생각 더하기 소설 1
박은진 지음, 신슬기 그림 / 꿈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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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물론이다. 이 책을 읽어야지. 그래서 읽었다.

물론 작년 여름에 나름 일본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나가사키로 갔다왔다.

원폭 박물관도 다녀왔다.

 

그래서일까.

이책이 손에 잘 잡혔다.

청소년용이었지만. 실은 그런게 어디 있나. 나도 흥미롭게 잘 읽었다.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글을 써주신 박은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저자의 머리글을 요약했습니다.

 

2015년 광복 70주년.

동시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70주년.

194589일 오전 112,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죽어서까지 차별받던 사람들,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집필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이 재정비됨.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외진 곳에 있는 조선인 위령비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으로 이전되길 바람.

 

201512월 박은진

 

목차만 보아도 이 책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도 잘 모르는 원폭 피해자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 민족 우리 동포였지요. 이러한 내용들을 우리 청소년들이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일본 하면 적대시하는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를 먼저 잘 알고, 우리의 땅에서, 아니면 일본 땅에서 역사의 그늘에 갇혀 신음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목차를 참고하셔요

 

 

우리의 역사를 청소년들이 쉽기 전하도록 유석이란 청소년 또래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우리에게 다가갑니다. 유석이가 악몽을 꾸면서 말이지요. 이 악몽은 일본의 원폭 현장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온갖 고초를 겪고 고달픈 역사를 살아온 한국인 할아버지를 국내에서 만나게 되지요. 이를 계기로 유석이와 그리고 유석이와 친한 아이들이 함께 일본으로 가서 할아버지의 부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더욱 더 역사의 현장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 역사적인 지식을 한 꼭지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예처럼 말이지요!

 

 

 

책의 말미에는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책들 소개가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의 평화교육과 평화 감수성을 위해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유익하네요.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쓰여 졌지만 묵직한 주제를 학생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 주셔서 청소년들과 한국과 일본과의 아픈 역사에 관심이 있는 어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시는데 좋겠다는 마음으로 추천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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