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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헤이란 지음 / 사유와공감 / 2023년 10월
평점 :
초저출산 시대가 되며 손주 보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4대의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가 있습니다. 독특한 제목의 신작 에세이,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이상해가 그것입니다.
저자가 딸을 출산한 후 할머니는 세상 가장 귀한 보물을 대하듯 증손녀를 대했습니다. 손주만 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들 하는데, 증손녀는 오죽 예뻤을까요.
그런데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겁니다. 내 아이에게 할머니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이 눈에는 이상하게만 보이는 왕할머니를 이 가족은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치매 극복기나 무슨 예방 서적, 의학 서적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한 가정, 다만 요즘 세상에선 조금 독특하게 4대째 정을 나누고 있는 여성들의 일상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는 에세이입니다.
전쟁을 겪은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평생의 한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었고, 웃고 추억할 수 있는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는 가장 강렬했던 그때의 감정이 불쑥 불쑥 튀어나옵니다.
했던 얘기를 또 하는 할머니는, 권했던 음식을 또 권합니다. 그러더니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하고, 속에 있던, 아니 속에도 없던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상황에 함께 한숨 쉬기도 하고, 때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도 느끼며, 이 책의 존재 의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기억은 불안정합니다. 우리가 지금 할머니에게 어떻게 대하든 그 기억이 얼마나 갈지,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나 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간을 기록한 텍스트는 영원히 남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코코처럼 할머니를 추억하고 기억할 모든 순간들이 가족들에게, 또 남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걸어온 그 긴 세월,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기나긴 시간들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너무나 짧고 심지어 불안정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 속에서도 사람은 이어집니다. 딸에게, 또 딸에게, 또 딸에게 할머니와 함께 했던 에피소드들은 전해지고, 기억되어지고, 이야기 주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인생을 책을 통해 또 느낍니다. 그런데 그 막막함 속에서도 평범한 기쁨과 평범한 용기와 평범한 사랑들이 나도 모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특별히 사랑해, 고마워 같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통해, 독백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무언가를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지나간 시간과 남은 시간은 무엇인지, 얽히고설킨 복잡한 가족간의 관계는 무엇인지 답을 찾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이상해를 추천드립니다.
우리 엄마가 죽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를 나중에 내 아이들에겐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이 책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