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내게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 찬란하고 고통스럽게 흩어진 언니의 삶 그리고 조현병
카일리 레디 지음, 이윤정 옮김 / 까치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주는 표지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미국의 의료사회복지사 카일리 레디가 출간한 책, 언니가 내게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의 표지는 무언가 겹쳐 보이면서 흐릿하고 선명하지 않은 애매한 그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무슨 책 디자인이 이렇지 하고 들여다보면 금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 책의 주제는 조현병입니다. 저자의 언니는 조현병을 앓았고, 저자는 조현병 환자의 가족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책은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014년 1월 8일, 저자의 언니가 벤저민 프랭클린 다리 위를 걸어갑니다. 그러다 이내 휙 사라져 버립니다. 조현병을 앓던 언니가 실종되었습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대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를 동경했습니다. 동생이 갖고 싶냐는 엄마의 짓궂은 질문에 그냥 막내로 살고 싶다고 답할 정도였습니다. 언니처럼 살고 싶고, 언니처럼 되고 싶게 만드는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언니가 열여덟 살, 저자가 열세 살이 되던 해 큰일이 벌어집니다. 언니가 정신병동을 전전하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기억에 의존해 그 이전의 언니 모습도 추적해 갑니다. 평범한 듯 무언가 달랐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언니가 파티에 가기 위해 방 창문으로 빠져나가다 미끄러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을 때,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가지 않고 병원에 가 CT 촬영을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이후의 삶이 달라졌을까요? 변덕스러우면서 예측 불가능하고 거칠기에 짝이 없는 언니의 행동은 이후 저자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언니는 2011년 결국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이전의 언니를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린 나이의 저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조현병 환자의 가족으로 살며 오해를 겪기도 하고, 다른 시선에 상처받기도 합니다. 영어 선생님이 학생을 향해 별생각 없이 던진 "조현병 걸린 것 같다"는 말도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됩니다. 친구들과 주변에 설명할 방법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저자의 세계는 조금씩 닫혀갑니다.

 

언니가 벤저민 프랭클린 다리에서 사라진 후 저자는 사랑해 카일 이라고 언니가 적은 포스트잇을 발견합니다.

 

언니를 향한 저자의 감정은 도저히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책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기록한 노트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자잘한 순간의 모든 감정이 낱낱이 그려집니다.

 

조현병을 이해하기에 이토록 탁월한 책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자의 삶과 감정에 점점 더 몰입해지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그 가족의 삶, 어디서도 그려지지 않은 그 내밀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분께 이 책, 언니가 내게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를 추천해 드립니다. 언니의 감정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여러 번 요동칩니다. 이 복잡하고 사랑스러운 인생을 들여다보며 가족의 의미와 조현병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본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 아프고 힘들었던 나를 찾아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시간여행
권은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서전은 어떤 사람이 쓰는 건가요? 성공한 사람이 쓰겠죠. 자기계발서는 어떤 사람이 쓰나요?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쓰겠죠.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여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고 고백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왔노라고 고백하는 독특한 에세이,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 출간되었습니다.

 

저자는 가난한 집안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자가 태어나고 다음 해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힘들게 3남 2녀를 키우셨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막내인 저자는 부족한 케어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생하며 사시던 어머니도 저자가 중학교 1학년 때 자궁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자는 청각장애를 앓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판매 일을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고단한 삶입니다. 부모 없는 아이의 삶이 어떠했겠으며, 장애를 가진 이의 삶은 또 얼마나 고되겠습니까? 그러나 저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열심히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이제는 고생의 결과를 누릴 일만 남았겠지요?

 

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인의 감언이설에 남편 몰래 대출을 받고 투자했다가 모든 돈을 날려버렸습니다. 허리디스크로 크게 고생하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걸까요?

 

그러나 힘든 와중에도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살핍니다. 피해의식을 가지자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환경임에도 다른 데서 원인을 찾지 않고 이를 도리어 성장의 기회로 삼기 시작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의 말씀 같지만, 그것을 실제로 내 삶에 적용하기까지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합니다. 청각 장애와 가난, 폭력 등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마다 저자는 자신의 길을 걷기로 다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인생이 있고, 그것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것입니다.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자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자, 이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인생이 풀려야죠? 아니요. 인생은 영화가 아닙니다. 인생은 말 그대로 인생이죠. 저자는 그 후에도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받기도 하며 또다시 돌아가는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이혼과 재산 탕진, 어려운 일이 끊임없이 계속되지만, 오늘은 오늘 하루를 살아갈 만큼의 교훈을 얻고 감당해내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저자는 삶의 목적을 알아갑니다.

 

완벽한 삶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 저자에게 또다시 아픈 순간이 오더라도 저자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위치든 그 순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성공 스토리가 없어도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를 통해 묵묵히 하루를 감당해 내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거칠고 돌아가더라도 우리의 삶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사는 모든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합니다. 화이팅!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 - 개정판
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관계가 쉬운 사람이 있겠냐마는 유난히 관계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그냥저냥 지내는 것 같은데 평범한 일상이 나에겐 왜 이리 버거운지요.

 

수많은 저서와 방송 출연으로 유명한 박상미 심리상담가께서 이번에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상담가님은 이 책을 통해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셀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십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상당히 놀라운 인사이트를 줍니다. 우린 사람마다 근육의 힘이 다름을 알고 있습니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무거운 물건을 들라고 강요하거나, 서로 다른 근육을 가진 사람끼리 동일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몸의 근육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도 분명한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지시나요? 머릿속으로 마음 근육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분명하게 달라집니다. 왜 나만 이럴까 라는 피해의식이 아니라, 사람마다 마음 근육이 다르며, 내가 저 사람보다 약하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근육이 없는 사람이 헬스장에 가서 근육을 단련하듯이 마음 근육 역시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단련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다양한 스텝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에 상처받았을 때 우리는 두 가지 근육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의 마음 근육과 나의 마음 근육이 그러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이미 자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마음 근육이 단련되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 근육은 어떨까요? 남의 말에 휩쓸리고 쉽게 상처받는 나 역시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일 것입니다. 저자는 내 마음 돌보기, 나 자신을 좋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상처를 남의 탓으로 돌리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나를 허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된 게 저 사람 때문이라면, 내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저 사람 손에 달린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쟤 때문에, 엄마 때문에, 직장 동료 때문에 아프다는 사람은 치유의 주도권마저 그들에게 넘겨주는 꼴이 됩니다.

 

우리는 주도적으로 내 마음을 돌봐야 합니다. 저자는 나에게 아픔을 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핵심입니다.

 

나를 돌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 책에서 전해주는 다양한 팁이 있는데, 예를 들면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자주 성취해 가며 나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왜 흥미롭냐면, 내 감정에 사로잡혀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내가 나를 훈련하고 상을 준다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는가요? 여러분의 인간관계 근육은 얼마나 튼튼한가요? 내 마음을 얼마나 되돌아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에서 주인 노릇하고 있는 타인이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이 허약한 사람을 위한 박상미 선생님의 마음 헬스장이 오픈했습니다. 신간,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을 통해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마음껏 드러내고 치유의 여정을 시작해 봅시다. 오늘도 세상에 상처받고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 간 모든 분께 이 책,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가 살리에르 2 - 완결
백원달 지음 / 므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가 살리에르는 연속된 이야기면서도 각각의 에피소드가 개별적으로 전해주는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화가 살리에르 1권이 류명화의 성장에 집중했다면 화가 살리에르 2권에서는 다른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뤄갑니다.

 

우수와 성혜성이라는 두 남자 주인공은 류명화와 금선희에 비해 주목도가 덜 느껴질 순 있습니다. 그런데 2권을 마저 읽게 되면 이 작품이 남자 주인공을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위한 촉매제 정도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피 튀기는 두 여자 주인공의 감정싸움에 남자 주인공들이 사용된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남자 주인공이 하나의 도구에 머물러 있진 않습니다. 2권을 넘어오며 우수와 성혜성의 속내가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초반에 느낀 성혜성은 이 작품에서 가장 평면적인 인물 같았습니다. 딱히 사연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우수와 닮은 금선희의 체스 말 같은 인물이었고 자신의 감정이나 자아가 도드라지게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 역시 성장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계획 이면에 성혜성만의 상황이나 판단이 드러나며 독자는 조금씩 이 인물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수 역시 초반엔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추억의 인물 같은 느낌이었다면, 책의 마무리에 다다를수록 두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박형식에 대한 인물 묘사입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 모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인물이야말로 대부분의 작품에서 흔하게 그려지는 주변인 그 자체였습니다. 박형식의 등장을 보고 이 인물에게 공감하게 되리라 기대한 독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놀랍게도 박형식의 마음까지도 묘사하고 그려냅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많은 경우 우리는 금선희, 류명화, 우수, 성혜성의 삶이 아니라 박형식 같은 주변인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으며, 그만의 아픔과 상실이 있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으며, 관찰자의 렌즈를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어떤 면에선 변태용에조차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특별하고 놀랍습니다.

 

명확한 선악을 구분짓고 폭주 기관차처럼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작품이라 책 소개만 읽어보신 분들은 또 뻔한 작품이 나왔구나 하실지도 모릅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이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아주 희한한 반전이나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은 진지하게 읽었을 때 남는 독특한 감정이 있습니다.

 

분명한 빌런이 있고, 줄거리의 기승전결도 어떤 면에선 뻔한데, 그 과정에서 인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젠틀합니다. 작가가 각 인물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으며, 인물에게 집중해서 볼 때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1권을 읽고 2권은 나중에 읽으려 했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2권까지 한 번에 읽게 됐습니다.

 

인간 대 인간의 치열한 감정적 사투를 보고 싶은 분께 이 책, 화가 살리에르 2권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버려지는 페이지 없이 알차게 감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본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가 살리에르 1
백원달 지음 / 므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웹툰이나 드라마 작가는 세상 모든 직업을 이야기로 다룰 수 있어야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가 아니면 밀도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미대를 나오고 그림을 전공한 웹툰 작가가 실제 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어떨까요? 왠지 그 작가의 대표작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백원달 작가님은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화가로 활동하다 만화계로 뛰어들었습니다. 작가님은 화가 살리에르라는 자신의 역작을 통해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물의 갈등을 표현했습니다. 그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작품 전체가 쫀쫀하고 밀도 있게 진행됩니다.

 

화가 살리에르에는 총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아니 다섯 명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 책은 총 두 권으로 기획되었는데 각각의 표지는 류명화와 금선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자체가 이 두 인물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성경부터 시작해 우리 곁에 남은 수많은 예술작품은 주인공의 이름 자체가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의 사라처럼요. 이 작품의 두 주인공 류명화와 금선희의 이름도 어딘가 특별해 보이지 않나요? 류명화가 어쩌고 저쨌대 라고, 수군덕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류명화는 유명화가 처럼 들리기도 하고, 금선희의 이름은 금손이라고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 두 인물 사이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작품의 큰 줄기는 굉장히 클래식합니다. 질투와 열등감, 복수와 그에 따른 결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 클래식한 줄거리는 등장인물의 풍성한 감정 묘사로 인해 더없이 드라마틱해집니다.

 

류명화와 금선희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이야기는 후반부로 돌입하며 남자 주인공의 서사에도 깊게 몰입하게 만듭니다. 초반에 주인공이 다섯 명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책은 편의점 사장에게도 특별한 서사를 부여합니다.

 

다양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적절한 서사를 부여받고 독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인물에게 공감하게 만들며 복잡한 갈등을 입체적으로 풀어나갑니다.

 

스토리라인 자체는 복잡하지 않기에 결말이 어떻게 나올까가 궁금한 이야기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 인물은 지금 어떤 감정일까에 몰입하며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엔 분명한 악역이 있습니다. 책은 그것을 특별히 숨기지 않고 완전한 악역으로서 그 인물을 그려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일만 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의 동기가 너무 분명하게 이해가 되어 전혀 평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매력적인 악역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이 책은 미술대학과 미술계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외부에선 보이지 않았던 미술계의 내부 사정이 상당히 디테일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나와 다른 세계의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느낌으로 읽어나가도 재미있게 작품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국화꽃 향기, 건축학개론처럼 캠퍼스 냄새가 나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화가 살리에르도 묘하게 느껴지는 대학 청춘의 향기가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이기에 줄거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이 책은 누가 읽어도 푹 빠져들 수 있게 진행과 마무리를 참 잘 구성한 작품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직관적이면서 명쾌한 이야기입니다.

 

인물 간의 갈등, 미술계의 뒷이야기, 청춘의 아련함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화가 살리에르를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네 남녀의 치열한 갈등을 통해 사랑과 우정, 복수와 후회의 감정을 절절히 느껴보세요. 올해의 만화로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본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