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에 자주 들었던 것은 루돌프 제르킨과 셀/컬럼비아 교향악단의 LP(1961년), 도입부 오케스트라가 심상찮은 긴박감으로 가득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르킨도 그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한 점망설임 없이 확고한 모차르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제르킨의 실력도 탁월하지만(특히 카덴차), 음악의 흐름을 만들어간 건 역시 세일것이다. - P234

프랑스 인상파 음악의 대표격이라고 할 만한 드뷔시의 <바다>.
마치 정밀한 한 폭의 풍경화처럼, 듣고만 있어도 눈앞에 바다의 광경이 펼쳐진다. - P239

시대를 뒤로 건너뛰어 1983년 녹음된 앙트르몽/뒤투아 조합의연주, 피아노도 오케스트라도 시종일관 온화한 표정을 잃지 않는 음악이다. 앙트르몽이 연주하는 뵈젠도르퍼 소리가 무척 아름답게 담겼고, 뒤투아의 지휘도 정밀하고 빈틈없다. 너무 정돈된 인상이기는해도 잘 다듬어진 훌륭한 연주임은 분명하다. - P246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도, 테너 파차크도, 소프라노 에미루제도 그야말로 2차대전 전 호시절의 빈을 상징하는 얼굴들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당시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재현해준다. 더욱이 빈 필이 연주하는 슈트라우스의 아름다운 음색까지. 서곡만 들어도 행복한 기분에 푹 빠져든다. 그 안에는 틀림없는 진품의 울림이있다.  - P281

브람스의 피아노삼중주 1번은 그가 약관 스무 살에 쓴 작품으로, 몇 번을 들어도 실로 아름다운 음악이다. 형식을 벗어나는 부분이 더러 눈에 띄지만 ‘청춘의 숨결‘ 같은 것이 충분히 보완해준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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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시대를 훌쩍 건너뛰어 피아니스트 도야마 게이코가1982년 빈에서 빈SQ 멤버와 함께 녹음한 음반이다. 분위기가 무척좋아서 일부러 추가했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하나가 되어 더없이 느긋하고 경쾌한 연주를 펼친다. 여기 고른 네 장의 디스크 중에서는
‘빈 향취가 가장 강한, 우아하고 세련된 연주다. - P195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처음 이 곡을 ‘좋다‘고 깨달은 것은 맬컴사전트가 지휘하는 BBC교향악단의 레코드를 들으면서였다. 이번에는 모노럴반만 묶었기에 재킷은 소개하지 않았지만(<포욜라의 딸>항목에 있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절도 있는 연주이기에고요히 음악에 젖어들 수 있다. - P237

이중에서는 유일한 프랑스 연주 단체인 센토 솔리, 파리의 일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모여 결성한 민간 오케스트라다. 이들 연주의 장점은 긴장을 적당히 풀고 있다는 것이다. 세부까지 먼밀하게첨삭하는 것이 아니라, 어깨의 힘을 뺀, 말하자면 ‘소박과 아트"에가까운 정경묘사인데, 그 점이 파리답고 세련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P240

크리프스(콘세르트헤바우)의 연주는 중용의 미덕이 있는 우아한 모차르트다. 콘세르트헤바우가 참으로 기분좋게 음악을 표현해간다. 이렇게 ‘모든 것에 통달한 어른‘처럼 노련한 소리는, 이렇게말하면 좀 그렇지만, 오리지널 악기 연주에서는 거의 나올 수 없지않을까.  - P243

빈 콘체르트하우스SQ의 연주는 여기서 꼽은 여덟 장의 LP 중가장 오래되었는데, 이 그룹이 내놓는 음악의 장점은 지금 귀로 들어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 가장 빈다운 단체가 연주하는 가장 빈다운 작곡가의 명곡-그 외에는 형용할 말이 없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모든 것이 순리에 맞는 듯 느껴진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다. ‘이것저것 들어봐도 역시 이게 제일 마음 편하단말이지‘ 하게 되는 음악이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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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명곡이다!‘라고 납득할 정도는 아닐지언정 ‘명연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철저히 훈련된 피아니즘의 극치, 소리 하나하나가 결정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는 역시쾌연인 동시에 괴연이라고 할까. 그래도 이런 게 가능한피아니스트란 굉장한 존재인지 모른다. 적어도 범상치는 않다. 녹음은 1957년 초기 스테레오 녹음이지만 음질이 눈부시다. 에토레 그라치스라는 지휘자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지만, 공연하는 필하모니아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와 라벨 모두 아름답고 약동적이다.
- P140

만년의 베토벤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고뇌와 평안이 서로 다투며동거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연주자가 어느 측면에 더 강한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결과물인 음악도 달라진다. 이 두 그룹은 말하자면 후기 베토벤의 밝은 측면을 포착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 P149

클래식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던 고등학생 시절, 레온 플라이셔와 조지 셀(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이 연주한 이 협주곡 레코드를사서 몇 번씩 되풀이해 듣고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아직 자기 스타일이 뚜렷이 확립되기 전의 연주인데, 그 약동감이 매력이다. 플라이셔의 레코드는 이제 수중에 없지만 그래도 이 곡을 들으면 정겹고 따스한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자주 들었던 세 장의 LP 레코드(+1)를 골라와서 다시 들어보았다. - P152

모차르트 만년의 걸작, 클라리넷협주곡, 메릴 스트립 주연의영화로 아주 유명해졌다. <평원의 라이언>도 매력적인 명곡이다.
드 페이어와 콜린스 음반은 첫 음부터 자못 고색창연하다. 이시절 영국인이 생각하던 모차르트상像이 하나의 정형으로 완성되어 있고, 독주자도 반주자도 거기서 한 발 내디디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 와서 듣기에는 좀 딱딱하지 싶다. 그런데 같은 클라리넷 주자가 삼 년 후 페터 마크의 지휘로 역시 런던교향악단과 스테레오로 녹음한 연주에서는 확 달라져서 생기 넘치고 깊은 맛이 난다. 삼 년 사이 연주가 이렇게 바뀌다니 감탄스러울정도다.  - P161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하면 한동안 D장조(D.850)에 빠져있었는데, 이 B‘ 장조에도 비슷하게 마음이 끌린다. 슈베르트의 장대한 피아노소나타는 원래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빠져드는 법이다. 그렇지만 어느 곡이든 대중적으로 연주되어 사람들이 널리 듣게 된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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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레코드에서 나는 재킷 디자인에 집착하는 편이다. 경협상 재킷이 매력적인 레코드는 내용도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이건 재즈도 마찬가지지만). 재킷에 이끌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사은 오래된 레코드가 마음에 들어서 줄기차게 들을 때도 많다. 그러니 일반적인 성실한) 클래식 팬이 보면, ‘아니, 어쩌자고 이런 레코드를 애지중지하며 듣고 있어요?‘ 하며 어처구니없어할지도 모른다. - P10

페라이어는 내가 좋아하는 현역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는 평소에도 즐겨 듣는다. ‘귀제‘나 ‘천재‘라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풍부한 중용을지향하는 연주가이기에 ‘실패작‘이 없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음악에 실로 아름답게 녹아든다. 직접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맡은 이25번도 필요충분한 테크닉을 온화하게 구사하며 친밀한 자애로 가득한 음악세계를 구현한다.  - P24

‘이 기품 있고 명석한 피아니스트는 대체 누구? ‘
싶어서 끝까지 들어봤더니, 다름 아닌 클린이었다. 모차르트 연주로정평이 나 있지만, 브람스 연주도 못지않게 훌륭하다. 굴드처럼 기이할 정도의 심오함은 없을지언정, 어찌 보면 난삽한 브람스의 음악세계를 마치 귀중한 옥돌처럼 얼룩 한 점 없이 세심하게 닦아 현대로 가져온다. ‘이 소품들은 콘서트홀에는 적합하지 않다. 해질녘 집에서 혼자 조용히 들어야 한다‘고 이 레코드의 라이너 노트에 적혀있는데, 지당한 말이다. - P66

그나저나 이 빈 팔중주단 멤버의 재킷 속 베토벤의 얼굴은 꽤나 까다로워 보인다. 왠지 모르게 눈빛이 형형하다. 정말로 눈을 형형히 빛내면서 이런 곡을 슥슥 써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천재가 어먼지 나는 잘 모르니까. 그래도 분명 모차르트는 이렇게 무서운 얼굴은 하지 않았겠지. 친근하게 다가가는 곡이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베토벤 스스로는 그 점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하듯이. 마치 어쩌다 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본격문학 작가 같다.
- P86

바릴리반은 보다 느긋하고, 전체적으로 장난스러운 따스함이 감돈다. 물론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런던반의 탄탄한 음색이 듣는 이에게 젊은 날 베토벤이 품었을 칭운의 뜻‘이라 할 만한 것을 좀더 잘 느끼게 해준다. 어느 쪽을 고를지는 순전히 듣는 이의 취향 문제다. 두 음악의 질에 우열을 가릴 수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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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져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위험은 그것을 감수한다는 것만으로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려면 뭔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위험이 바로 그역할을 한다. 도전할 만한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감행하는 것은 자신감을 낳고, 그런 자신감은 더 큰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 P217

질투란 그런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버젓이 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다. 질투심의뿌리는 편협한 감정이다. 질투는 풍성함과 다양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P218

아티스트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는 예술적 생존이다. 그것은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희망과 체면을 잃는다든가, 금전적 손실을 입는다든가.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 같은 패배의 기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가의 길에는 많은 승리 외에 필연적으로 패배도 있다. 그것들은 거리에 있는 위험물이나 경고판과 같다. 예술적 패배는 예술적 승리와 능력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패배가 아티스트의폐쇄된 머릿속에 고립된다면 그럴 수 없다. - P226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슬픔에 잠겨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패배의 충격에 사로잡혀서 자신에게서 떠나버린 것, 즉 작품의 성공과 떠들썩한 축하리셉션 따위의 잃어버린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P234

포로수용소 벽에 쓰여 있던 "Non illegitimite carborundum" 이라는낙서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아티스트에게 아주 중요한 이 말을대충 풀이하면 "어떤 나쁜 자식이 당신을 좌절시키게 놔두지 말라"라는 뜻이다.
이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긴 아티스트는 살아남고 성공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고통은 재빨리 쓸모 있게 이용하지 않으면 가슴속에서 응고되고, 이로 인해 어떤 행동을 취하기가 힘들어진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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