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단 사업 계획서를 쓰면서 기획한 내용을 바탕으로SNS를 활용해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방법‘을 30쪽짜리 PDF전자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퍼스널브랜딩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재능 거래 플랫폼에 등록했다. 디지털 상품이라 인쇄비가 들지 않았고 재고를 보관할 공간도 필요 없었다. 전자책이 승인되자마자 내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곧바로 전자책이 팔리기시작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전자책 온라인 북토크도진행했다. 방송이 끝나니 더 많은 전자책 주문이 들어왔다. - P129

내가 운영하는 두 채널 ‘드로우앤드류‘와 ‘마세요 모두돈을 버는 방식은 똑같다. 첫째, 내 가치를 담은 콘텐츠를 공유해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모은다. 둘째,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무엇을 더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서비스나 상품으로제공한다. 나는 ‘드로우앤드류‘를 통해 배운 방식을 ‘마세슬"에그대로 적용했다. 내가 회사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내 삶에 적용한 것처럼 말이다. - P135

나는 아직 부자가 되어본 적은 없기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게 돈을 버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자연스럽게따라온다‘는 뻔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진짜 내가 경험한 전부다. - P137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일이 아닌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지금당장 나의 일을 하자. 그렇게 나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어보자. - P147

그다음으로 한 일은 내 새로운 자아를 위해 ‘새로운 공간‘
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케아 매장에서 50달러를 주고 하얀 책상을 하나 사왔다. 가로 120센티미터, 세로 60센티미터짜리 작은 책상에 불과했지만 그곳은 드로우앤드류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었고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무기력했던 삶에 설렘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책상에서 나는 회사의 일이나 외주를 받은 일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해서 하는 일, 즉 드로우앤드류의 일을 시작했다. - P149

지금 나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에투자하고 있다. 자연스레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시간은현저히 줄어들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사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루의 시간과 에너지에 얼마나 많은통제권을 가질지 스스로 선택하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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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드로우 - 나만의 길을 찾을 때까지 인생의 레버를 당기는 법
드로우앤드류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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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표지 만큼이나 유튜브 속에서도 초록색을 메인으로 색상을 결정하신 것 같은데 뇌리에 남네요. 그만큼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날의 고민과 앞으로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수동적인 태도가 아닌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내세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하루 끝에 걸려있는 미래의 막연함은 누구나 같은 생각이나 봅니다.
럭키드로우 작가님은 유튜브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 놓는 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5만 원 주고 구입한 이케아 책상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했습니다.
멀리 타국까지 가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야기부터 평소 눈여겨보았던 지역 박람회에서 일어난 대박난 사건까지...인생은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된 회사의 이야기, 그리고 퇴사 이야기, 마지막 그가 이뤄낸 SNS마케팅 까지 그는 시대의 흐름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고 까지 생각되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본 작가님의 모습은 성공한 모습이어서 이런 우여곡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저런 일들을 성장통으로 겪고 나서 더욱 단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에 젖어 잠시 잊고 지낸 현실을 눈앞에 마주한 기분이었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그동안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을 눈여겨본 몇몇 회사 대표들에게 연락도 받았고 실제로 면접을 보기도 했다. ‘인플루언서 매니저‘라는 포지션으로 무려1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한 헤드헌터도 있었고, 나를 마케터 포지션으로 다시 미국에 보내주겠다는 대표도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회사에 들어가 부품처럼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는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 - P122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롤 모델을 찾아서 자신이 어떤 포지션을 가져야 하는지 잘 파악하고 실행했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진정성 있고,솔직 담백한 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갔기에 글도 잘 읽히네요~ "새로운 도전은 이렇게 하는 것 이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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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회사를 다니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동안 돈 때문에좁은 방 한 칸을 빌려 살았는데 이제는 넓은 거실이 딸린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회사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햇살이 정말 잘드는 큰 창이 있는 집이었다. 집 앞의 길을 따라 높은 야자수가길게 심어져 있었고,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였다. 업무량이 많지 않아 야근도 거의 없었고트레이드쇼나 페어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나갈 일도 없었다.
저녁 5시에 퇴근하면 운동을 하거나 저녁을 먹으며 재밌는 영화를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 P101

1. 유튜브 시작하기
2. 유튜브 콘텐츠 아이디어 찾기
벌써 올해가 거의 다 지나갔는데 이대로 그냥 해를 넘기면안 될 것만 같았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감이 될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곧장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Draw Andrew
앤드류를 그리다 - P105

일주일에1~2개씩 영상을 꾸준히 올린 결과, 내 영상에 조금씩 댓글이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구독자가 100명이 되었을 때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감사한 마음을 담은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영상에 달리는 댓글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세상이 내게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점점 명확해졌다. 결국 인스타그램과 관련된영상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드로우앤드류 채널은 일주일밖에 구독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가 유튜브를 통해 조금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P106

나는 이 커뮤니티 해시태그를 통해 공예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스트리트 댄서, 디제이, 패션모델, 포토그래퍼, 파티시에,
마케터, 영어 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구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내 유튜브 채널
‘드로우앤드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루며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 P109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에 젖어 잠시 잊고 지낸 현실을 눈앞에 마주한 기분이었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그동안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을 눈여겨본 몇몇 회사 대표들에게 연락도 받았고 실제로면접을 보기도 했다. ‘인플루언서 매니저‘라는 포지션으로 무려1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한 헤드헌터도 있었고, 나를 마케터 포지션으로 다시 미국에 보내주겠다는 대표도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회사에 들어가 부품처럼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는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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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는 사람이기에,
때때로 앞날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해지기도 하고 수많은 걱정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성공도, 성장도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럭키 드로우‘를 만들어왔는지에 달렸다는것을 당길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은 결국 당신의 몫이다. - P23

지역 박람회를 마친 뒤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소비자들에게 받은 피드백에 기초해 몇 가지 인기 상품을 정했고 그것을더 다양한 컬러와 패턴으로 디자인해 제작했다. 로컬 페어에서만난 소비자들은 우리 상품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태그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우리 브랜드의 ‘고객‘이 생긴 것이다.
LA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페어에 많이 방문한덕에 몇몇 상점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그렇게 지역 상점들내가 디자인한 상품들이 하나씩 입점하면서 현지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P49

시간이 흘러 전문 블로거의 후기도 점점쌓였고 2016년 말에는 "2017년에 주목해야 할 플래너들"이라는 제목으로 버즈피드Buzzfeed의 기사에 우리 상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버즈피드는 유튜브 구독자가 2000만이 넘는 미국의초대형 미디어였다. 그 기사에 소개된 플래너 23개 중 내가 디자인한 상품이 무려 4개였다. 이를 계기로 바이어들의 주문량이 몇 배로 늘어났고 3명뿐이었던 팀원은 10명으로 늘어났다. - P54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유명 미디어에 소개되고, 뉴욕 맨해튼의 대형 편집숍에 진열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떻게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도 취업할 자신이 없어 도피하듯 미국에 왔다가 3개월 만에 한국으로 쫓겨날 뻔했던 내게말이다. 역시 당겨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늦은 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나는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걸으며 그동안 내가겁 없이 도전한 여러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이 선물 같은 순간을 원 없이 만끽했다. - P57

4년 전, 제로에서부터 시작했던 나의 인스타그램처럼 나의 미국 생활도 제로부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시작점이 마이너스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평소 꿈꾸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었듯이, 미국에서의 내 연봉 역시 비록 처음엔 초라했지만 미국에 온 지 4년만에 세 배 가까이 뛰었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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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는 다빈치가 피렌체에 머물던 16세기 초에 그렸습니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모두가 피렌체에 머물던시기였죠. 덕분에 막내인 라파엘로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을 관찰하며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차근차근 확립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모나리자>를 발견한 시기도 이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후에 그린 그의 초상화를 보면 ‘그녀‘의 영향력을 곁눈질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 P385

다빈치가 ‘발명가‘에 가까운 업적을 남겼다면, 라파엘로는 훌륭한
‘디자이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뛰어난 색 배합 재능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이렇게 그가 디자인한 색상을 하나하나 주목하면서 그림을 감상한다면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P399

한 작품 안에 음악, 미술, 건축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이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종합 예술‘이라 부릅니다. 대표적인 것이 연극, 영화등입니다. 여기에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의 작품 <가나의 혼인잔치>Lea Noces de Cana 를 추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안에는 음악, 조각, 건축, 회화, 심지어 패션까지 아주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하객들이 입은 독특한 의상입니다. 연극배우들이 입을 것만 같은 의상이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 P410

 루브르 박물관의 <사계>도 막시밀리안 2세가 자신의 아들 루돌프에게 합법적으로 황위를 물려주기 위한로비용으로 주문한 작품입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아주 확실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사계절을 모두 합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죠? 그리고 겨울을 끝으로 다시 반복되는 성질을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계>란 우주 또는 영원함을 상징하곤 합니다.  - P417

스페인 회화의 전성기는 17세기 초입니다. 이때 스페인 왕국은유럽 회화의 중심축인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오늘날 베네룩스의 일부)까지 도달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자랑했기 때문에 두 지역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중심을 지키던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은 루브르에 없지만, 그에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평가를 받은 호세데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 와 바르톨로메에스테반 무리요 BartolomeEsteban Murillo, 1617-1682의 대표작은 만날 수 있습니다.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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