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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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사랑하고, 사랑해서 목소리를 내는 최재천 교수님의 공부 대담집. 지나온 공부와 배움의 삶이 구절구절 옳다. 이런 어른의 말씀은 참 힘이 있다. ‘알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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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김서울 지음 / 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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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보기 좋은 궁궐 산책 에세이. 궁의 구분이 없어 편안하게 보기 좋다. 최근 들어 우리 궁의 매력에 빠져든 친구랑 산책가서 이거 예쁘지 않아? 이거 멋지지 않아? 신나서 사진찍고 같이 놀러다니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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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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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그림 감상하는 법 특강. 서화 소개와 함께 감상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필요한 부분은 확대를 통해 속시원하게 함께 보여준다. 그림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선의 사상, 문화, 역사를 함께 안내한다. 조선 회화 감상법 최고의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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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에 장본 책들 중 소설은 대부분 SF였다. 좋게 말해서 고이고이 아끼고 아껴두었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동안 SF까지 읽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쫄딱 젖은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어딘가 우리를 구원할 곳이 있지 않을까 여행책을 뒤적이는 나에게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해."
 ... 포르투의 비 오는 일요일, 우리의 선택은 그날을 '일요일답게' 보내는 것이었다. ... 침대에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봤다. 낮술을 마셨고, 낮잠을 잤다. 보란 듯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우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네, 라며 낄낄거렸다.

 해가 저물자 어김없이 불안함이 밀려왔다. '정말 이래도 되나,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나.' 죄책감까지 뒤엉켰다. ...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또 나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해는 졌다. 기어이 죄책감을 버리고 그 자리에 '나는 여기까지 와서 배짱있게 이러고 있다'라는 자부심을 채워넣었다. '어차피 이 비에 어딜 간다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합리화도 채워 넣었다. '이 비에 더 보겠다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라는 고집도 채워 넣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나한테 계속 말해주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 모든 요일의 여행, 83p


 <모든 요일의 여행>의 김민철 작가는 강점 검사를 하면 '성취'가 Top5 안에 나올 거다. 쓸모없는 하루를 보내다 해가 저물면 불안한 사람 특이다. 아마 나도 보나마나 신나게 먹고 자고 읽다가 오후 4시쯤부터 살살 불안해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고(죄책감), 쉴 자격이 있다는 명분을 찾아보고(자부심), 그 명분 중 가장 적당한 걸 찾아 합리화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마땅하지 않으면 잠들기 전까지 적당한 걸 조금이라도 읽으려고 애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래도 진짜 명분과 합리화에 가까운 이유가 있었다.


 8월 말이었나 언니 친구가 예매를 부탁했다.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식 현장 표. 낮잠자다 일어나서 얘기를 듣고 나도 같이 예매를 했다. 덕자 마음은 덕자가. 근데 이게 선착순이 아니고 추첨도 아니었다. 폼을 작성해서 보내면 라디오 사연처럼 일일이 읽어보고 고를 거라고 했다. 왜 참가하고 싶은지를 써야 해서 이번 행사 주제랑 참가 작가를 찾으러 갔다가.



 이번 주제는 <월담: 이야기 너머>. 키워드도 멋지고, 문장도 멋지다.

우리는 설계된 미래를 믿지 않습니다. 이미 말해진 미래가 미래일 리 없습니다.
그곳에는 과거를 재구성한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저 너머가 지금을 준거로 한 전망과 예측이 닿지 않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참가 작가는 말도 못하게 멋졌다. 월담은 SF지. 공들여 SF와 월담이라는 행사 주제가 얼매나 찰떡인지, 바로 그런 이유로 내가 이 장르를 얼매나 좋아하는데 세상에는 오해가 많고 근데 본질은 이런것인데 글쎄 으뜨케 알았냐, 라인업은 또 얼매나 숨막히게 찬란한지를 단정한 척 적어 제출했다. 시작은 고우림 공연을 보고 싶은 덕자를 위한 연대였다. 진작 마음은 동했지만 9월, 10월은 중요한 일이 있어 이렇게 밑작업이 필요한 축제까지 즐기기는 어렵다. 눈팅이나 하고, 책이나 보관함에 담아놨었다.


 그래도 4일이나 되니까 전작은 못 해도 한 권씩은 볼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온라인으로만 봐도 너무 좋을거야.


 그렇게 축제 전야 홀리데이 시작.



1. 김보영 작가




























 축제 홈페이지에 초대된 작가들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링크를 걸어봐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일부를 가져왔다.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로 검색하면 홈페이지가 있다.


 번역가 소피 보우만씨는 우연히 내 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를 도서관에서 읽고, 그날로 내게 연락한 뒤 밤새 샘플 번역을 해서 런던 도서전에 제출했다고 하셨다. 그 번역이 런던 도서전 행사에 선정되어 발표회를 가지신 것이 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가 해외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 그분이 나를 찾아오셔서 처음 하신 질문이 이러하였다. “이 사람은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 보우만 씨는 영어로 번역을 하려면 ‘she’와 ‘he’를 정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성별이 불분명한 내 조연들에게 ‘they’라는 대명사를 붙이고 싶었지만 영어권 관계자가 반대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화가 몹시도 신기했다. “일일이 모든 사람에게 성별을 부여해야 한다고요? 그러면 그 사람이 여자도 남자도 아니면 어쩌라고요?”

 얼마 전에 한 인터뷰어가 내 소설 주인공의 성별 빈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내 소설 주인공이 과거에는 남자였거나 성별이 불분명했는데, 지금은 여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신기해서 내 소설 주인공의 성별을 세어보기까지 했다. 남녀의 숫자는 비슷했지만 성별을 부여하지 않은 인물이 많았다. 실제로 여자가 늘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독자들이 성별이 불분명한 인물을 과거에는 남자로만 상상하다가 지금은 여자로 상상하는 경향이 늘지 않았나도 생각한다.

... 나는 최근에 아무래도 내 캐릭터는 무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문자로 이루어진 생물이라서다. 문자에 성별은 없지 않은가.

 그들은 문자로 이루어진 개체이므로 모든 것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한다. 초능력을 쓸 수도 있고, 무림고수처럼 훨훨 뛰고 날 수도 있으며, 우주로 날아갈 수 있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으며,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배우가 연기를 하거나 CG를 쓸 필요조차도 없다. 내가 문자로 이루어진 세계를 사랑하는 이유다. 이곳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세상이라서다.

....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소설의 인물들이 성별이 없는 채로 남을 수도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선호다.


 <얼마나 닮았는가>, <다섯 번째 감각>은 중단편집이다.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세트>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 <미래로 가는 사람들> 3권으로 구성된다. 팬에게 청탁받은 청혼 SF! 우주여행이 주제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는 제목 그대로인 책. 공동 저작이지만 너무너무 소중하니까 같이. SF 장르의 시작점이야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메리 셸리부터 류츠신까지! 50명의 작가를 다루고 한 작가는 한 작가가 담당해서 썼다. 거장과 걸작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지만 SF에 대한 김보영 작가님의 시선과 철학이 담겨있어 정말 좋다. 앞으로 류츠신 이후도 2권으로 써주셔야 할것. 


 현대에는 과학 소설이 사회 소설이며 우리의 현실을 가장 직설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이다. 이전에는 문학이 과거를 회상하거나 근현대를 다루는 것으로 현실을 모사할 수 있엇겠으나, 이제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새로운 기술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며, 그에 따라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한다. 

 ... 많은 SF 작가들이 말하듯이 SF는 미래를 예측하는 문학이 아니다. 이 책이 보여 주듯이, 예측한 것처럼 보였다면 미래를 바라본 그 많은 작품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 세상을 바꾸어 갔기 때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서문, 김보영


24일 토요일 오후 2시

작가, 마주보다 

김보영-이윤하

<나인폭스 갬빗>의 이윤하 작가님과 대담이 있다.



2. 천선란 작가





























... 식물의 견고함과 그들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보면 우리의 문명이 종종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게, 인간이 행성의 지배자라 생각했던 믿음이 오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다고 그 마음이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로부터 죄책감을 덜어낸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멸망이 지구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다가온다는 뜻이다.

 식물이 지구를 뒤덮은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사가 길다. ... 식물은 뿌리를 박은 채 세상을 움직여 이곳저곳에 싹을 틔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생하여 움직이지 않고도 행성을 지배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 아름다운 진화에 푹 빠져 있었다. 멋대로 자라 이루어진 숲이라 생각했으나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뿌리가 얽히지 않도록 공생을 택한 진화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이 그 공생마저 망치고 있다. ... 식물은 오랫동안 자신과 공생했던 협력관계를 전부 잃고 있다. 꿀벌의 숫자가 해마다 크게 줄어들고 있고 숲은 동물을 잃은 지 오래다. 커다란 군락지가 전부 죽어버린 사진을 보며, 이 지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커다란 벽에 가로막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팬데믹 상황이 일시적으로 완화되며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탄다. 그것이 기쁨과 동시에 나는 초조함을 느낀다. 어쩌면 이것 또한 인간의 비대한 자의식일 수도 있다. 식물은 그렇게 잠시 꺾일지언정, 분명 인간보다 더 오랫동안 이 행성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마지막 그날까지 우리가 세워놓은 높은 벽을 허무는 것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씨앗이 날아갈 수 있도록, 메마른 땅에도 싹이 돋을 수 있도록 말이다.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힘이 들어간 에세이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서문처럼 글의 힘과 영향은 받은 사람들이 바꿀 세상을 꿈꾸는 93년생 작가의 포부가 고스란히.


 <어떤 물질의 사랑>과 <노랜드>는 단편집. <천 개의 파랑>과 <나인>은 장편소설이다. <천 개의 파랑>은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김보영 작가님이 심사에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과 수상소감이 같이 실려있다. 2회 대상 수상작은 김초엽 <관내분실>이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려있다. 심사평을 보면 일관된 방향성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김보영작가님과 젊은 두 작가의 작품들이 비슷한 결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두 작가 모두 93년생! 이 작가들이 앞으로 계속 써줄 것이고, 우리는 읽을 것이고. 또 번역되어 세계의 사람들과 같이 읽겠지. 전야제로 <천 개의 파랑>을 먼저 봤으니 아직 남은 작품들이 있다.


27일 오후 2시

작가들의 수다

조예은, 나오미 크리처와 함께

동갑인 조예은 작가와 대담이 있다. 젊은 작가들의 수다가 아주 기대된다.

어리게 나온 사진이지만 나오미 크리처는 73년생.

비슷한 연배인 세 작가들의 수다를 기대했는데 찾아보니 아니었다.


29일 목요일 오후 7시반

당신에게 가는길: 낭독공연

이윤하작가 포함 다섯명의 작가들과 함께

이다혜 작가 사회

신기하게 낭독 프로그램이 있다. 외국작가 셋과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작가 하나가 있다. 

대활약으로 멋진 가을밤을 만들어주길!



3. 이윤하 작가




























... 내게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중에는 우리 가족의 역사도 있었는데, 내 유창하지 못한 한국어로 인해 생긴 언어장벽 때문에 불분명하게 기억되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나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할머니가 엄마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할머니에게는 이미 두 명의 어린 자식들이 있었고 엄마는 1950년 8월에 태어났다. 그런데 내가 영원히 이름을 알지 못할 어떤 여자가 훗날 나의 엄마가 된 그 아기를 발견하고는 할머니를 뒤따라가 “이거, 깜빡하셨네요”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두 번 다시는 엄마를 버릴 마음을 갖지 못했다. 엄마가 내게 이 이야기를 해준 건 단 한 번이었지만, 그때부터 그 이야기는 내가 심취했던 역사책들 속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무언가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 텔레비전과 영화는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원천이었는데, 그것들이 매주 혹은 매년 새롭게 짜내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시청자들이 팬으로서 그 정통 서사를 둘러싸고 만들어낸 이야기들 때문이기도 했다. 팬픽션이라는 장르의 유서 깊은 역사를 배우기도 전에, 이미 친구와 나는 메리 수(Mary Sue)라는 캐릭터를 포함하는 패러디 희곡의 형태로 <스타트렉> 팬픽을 썼다.

... 나의 장편소설 데뷔작이 된 『나인폭스 갬빗』 원고의 집필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때, 나는 다시 팬덤의 세계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시험삼아 ‘장편 팬픽’에 도전했는데, 내가 장편 분량의 서사를 위한 개요를 쓸 수 있을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는 애니메이션이자 만화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결말 이후를 배경으로 한 27,000 단어 분량의 팬픽을 완성했다. 팬픽을 완성한 경험, 그리고 독자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반응은 내게 오리지널 (모든 것은 언제나 ‘오리지널’이라는 의미에서) SF 소설을 쓸 때가 되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여러분은 한국전쟁이 내 가족에게 미친 영향에 관한 이야기와 내가 팬픽 쓰기에 도전한 경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야기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재생되고 연주될 때 살아나듯이, 이야기도 공동체 없이는 건조한 단어들에 불과하다. 그 공동체는 구전된 이야기를 통해 그 역사를 생생하게 간직해 나가는 어느 가족일 수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원작의 이야기를 새롭게 확장해 나가는 팬들일 수도, 자신이 아끼는 TV쇼를 찬양하는 비더들일 수도,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기 위해 출판을 시도하는 작가들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사람으로 수렴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영어로 장편 스페이스 오페라 SF를 쓰게 된 이야기. 팬픽 출신이시구나~ 대번에 공감했다. 애정하는 마음과 열광하는 세포들이 만드는 거. 모든 건 언제나 오리지널이라니! 공동체 없는 이야기라니! 너무 멋진 글이었다. 


 항상 보고 싶었는데.. 분량 때문에 항상 미뤄왔던 <나인폭스 갬빗>. 3권이 1500쪽 분량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거기에 국산. 류츠신의 <삼체>를 보면서 얼매나 통쾌하기도 했지만 얼매나 부러웠던가!! 너무 당연한 서양 중심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질려도 없으니 늘 그거라도. 하다가 중국을 한가운데 놓은 충격적인(?!) 삼체를 보며 소름끼치다가. 너무 좋아서 꼴보기 싫었다가. 항상 우리 시대의 자랑스러운 SF라고 생각하다가도 애증이 있었다. 근데 동양적 정서 베이스의 스페이스 오페라 번역본 수입이라니~ 상상도 못한 조합~!  


 시작부터 장대한 세계관 냄새가 나고, 삼국지 냄새가 나는데. 샅샅이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 이렇게 스케일이 크면 가이드북 같은거 없나 했더니 있었다. ! 그거였다. 답답해서 내가 차린 핸드폰집. 편집자가 풀어쓴 안내서. 진짜 나도 이런 거 잘할 수 있다. 스포가 되지 않게끔 세심하게 안내를 잘 했다는 평을 세심하게 남겨준 독자들이 있어 안심하고 가이드북부터 볼 예정. 종이책으로 차분히 보고 옆에 놓고 보고 싶은데 e북이나 세트상품만 있다. 가이드북 먼저 보려고 얼른 덮어놓고 저장~. 검색 먼저 한 나 칭찬칭찬해~~♡ 


먼저 소개한

24일 2시 김보영작가님과의 대담

29일 7시반 천선란 작가 포함 5명의 작가들과 낭독공연

이 있다.



홈페이지 프로필에 고양이 자랑하는 작가. 어리둥절인지 자포자기인지 멍때리는지 방황하는 앞발의 왕크왕귀. 이래도 나인폭스갬빗 안봐요?



4. 조예은 작가


















 문이 열려 있는데도 굳이 담장을 넘는 이유는 하나다. 그게 더 스릴있고 재밌으니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월담의 기억은 중학교 1학년 때인데, 정문과 운동장이 멀쩡히 개방되어 있었음에도 옷에 흙을 묻히며 담을 넘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신이 난 것도 있었지만 스릴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제일 컸다. 

... 어째서 고작 벽을 타고 넘는 행위가 그토록 짜릿했던걸까? 담장의 물리적인 높이 때문은 아닐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놀이기구 매니아가 되거나 주말마다 클라이밍을 즐겼어야한다. 그날 우리가 넘은 건 담장이 아니라 규칙들이었다.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지만 더 이상 그 공간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여유가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6년동안 군말 없이 따랐던 규칙을 가뿐히 짓밟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 내 안의 어떤 선이 깨지는 감각. 보안업체의 사이렌이나 경찰차를 닮은 차량이 그 해방감을 극대화 시켜주었던 것 같다.

... 나는 선과 벽을 넘나들고, 가지고 놀고, 이용하고, 그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캐릭터들이 좋았다. ...그 기분은 중독성이 강했고, 나는 계속 나 대신 멋지게 폭주할 캐릭터를 찾아 헤맸다. ... 나는 주인공이 제한된 어떤 기준을 넘어섰을 때의 변화를 사랑한다. 그가 돌이킬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무너진 담장의 파편을 응시하는 기분을 상상한다. 이야기를 직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형식의 경계를 넘을 수 있다면 더 기쁠 것이다. Sf와 호러, 판타지와 로맨스같은 장르들을 구분하는 지점을 뭉개는 것 역시 즐겁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구분선들을 신발 앞코로 슬쩍 지워버리는 일은 꽤 통쾌하다.

... 적다보니 꼭 그 짧은 일탈의 기억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끈 것만 같다. 사실 내가 깨지 못하는 담이 하나 있는데, 소설의 세계와 작가인 나의 사이에 굳건히 자리한 허구라는 이름의 담장이다. 나는 이걸 깨기 싫다. 오히려 담장이 있어줘서 안심이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쓰기 힘든 것 같다. 에세이의 세계에는 내가 숨을 곳이 없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SF의 마음편한 점이 바로 이거다. 표면적으로는 그곳이 이세계라서. 추석에 <스노볼 드라이브>를 보면서 느꼈던 장르의 모호함도 작가의 에세이를 보며 이해되었다. 편의상 세부 카테고리 구분이 있어야 하긴 하겠지만 실제 소설과 장르소설을 구분하는 데 애매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 가끔 있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같은 소설도 그랬는데. 하기는 이건 애매한데~ 싶은 작품들을 보는 내 시선도 구분선을 밟고 선 것이다. 앞으로도 한껏 슬쩍 지워주세요. 소설이 쓰는 게 덜 힘들다니 천상 소설가. 


 <칵테일, 러브, 좀비>는 단편집.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과 <스노볼 드라이브>는 장편이다.


먼저 소개한

27일 2시 동갑인 천선란 작가, 나오미 크리처와 함께 대담

이 있다.



 고민고민 끝에 추석 전날 도서관에 검색했더니 네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들은 모두 절찬리 대출중이었다! 축제 때문인가! 나도 같은 이유지만! 화가 나고 축제 분위기가 나고 신났다! 덕분에 나는 남아있는 책들을 감사해하며 빌려왔다. 시간만 있으면 차례차례 보는 게 오히려 좋아~ 합리화. 결국 순서는 중구난방같지만.ㅋㅋ


 축제 전야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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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이나 독서에세이 책은 들기 전에 신중해진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볼 책과 안 볼 책. 보려고 정해둔 책은 서평이나 에세이를 나중에 보고 싶다. 안 볼 책은 마음껏 서평이나 에세이를 아무때고 볼 수 있다. 마음속에서는 이렇게나 단순하고 명확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광고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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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책으로 엮어드리는 독서에세이 북펀드 선착순 100명! 


 <읽거나 말거나>는 길지 않은 글들이라 다루는 책 목록이 많은데, 그 중 아는 책도 별로 없고 대부분 안 볼 책들이라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저자의 말에서부터 하트 뿅뿅 반해버리는 책과 아닌 책.

'비필독도서 칼럼'을 쓰기로 작정한 계기는 '편집부로 배달된 책들'이란 제목으로 여러 문예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책 소개 칼럼들 때문이었다. 출간된 수많은 책들중에 극히 소수의 책들만이 평론가들의 책상으로 배달된다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다. - 저자의 말, 5p

문득 나는 이런 책들에 관심을 쏟아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보겠노라 결심했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문예사조에 따라 분류하고, 책의 성격이나 경향을 규정하고,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나은지 못한지 독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리뷰를 쓸 줄 모른다는 걸, 게다가 그다지 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나는 독자로, 아마추어로, 그리고 뭔가의 가치를 끊임없이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애호가로 머물길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 저자의 말, 6p

 이 책은 하트 뿅뿅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비필독도서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고, 각잡아 대해줘야지 생각했다가 포기하는 멋진 사람.




 세상의 모든 소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화가 치미는 소설과 아닌 소설.

소설의 원본은 일단 그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들을 압도하는데, 6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 분량도 1500페이지에 달한다. 폴란드어판은 축약본인 영어판에서 중역된 것으로, 여기에는 대략 300여 명의 인물이 나온다. 중국 인명을 기억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유럽의 독자들에게 이 300이라는 숫자 또한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내 경우에도 벌써 몇 번이나 이 책을 독파하려고 시도했지만, 여전히 누가 누군지 헷갈리고 내용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 삼국지, 138p

 이거 우리가 러시아 소설 처음 볼 때 빡치는 거랑 똑같은가봨ㅋㅋㅋㅋㅋㅋㅋ 꺄르르해서 이 기쁨을 언니에게 전했는데 남의 고통이 그렇게 즐겁다니 한다. 그래도 통쾌한 공감은 속시원하고 신났다. 영어판 축약본에서 중역한 걸 읽어야하는 상황, 낯선 언어의 길고 비슷비슷한 이름ㅡ우리는 보통 두 글자로 읽어 세글자인 한글 이름보다 짧아진다. 한자를 쓸 수 없으니 영어처럼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면 이름이 아주 길어질 거다. Hwang Chung. 이렇게. 이걸 폴란드어로 소리나는대로 다시 표기하겠지ㅡ, 너무 많은 등장인물ㅡ삼국지에 비하면 러시아 소설은 등장인물이 적은 편이지ㅡ,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 자꾸 웃음이 나고 즐겁다. 이래저래 사정을 따져보면 그래도 우리가 러시아 소설 보는 게 쉽겠다 수긍이 된다.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락 한 단락을 넘어가며 재미와 즐거움이 치밀어오르는 책이다.

 ... 각 페이지마다 위와 비슷한 사례가 반복된다. 게다가 일부 주인공들의 이름을 책 속에서 때로는 이렇게 표기했다가 때로는 저렇게 표기하는 등,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제대로 완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애로사항이 독서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주요 인물들의 경우 이름의 표기는 반드시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책의 뒷부분에 인명 색인을 배치하고, 그들이 맨 처음 등장하는 페이지를 명기해주는 것도 각각의 인물들을 구별하고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삼국지, 139p

 인명 색인이라니...! 신박한 제안이었다. 한 사람의 다른 표기명과 등장하는 페이지 명기까지 같이 해주면 완벽할 것 같다. 보기 불편한 책을 두고 보완할 현실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고급진 불평이란 이런 것.


 확실히 이해되는 어려움은 삼국지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것도 한 몫 하지만, 근본적인 어려움은 주조연급 인물이 너무 많다는 것일 거라고 추정.


하지만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현 상태를 고수한다면, 이 소설은 영원히 판독 불가능한 책이 될 것이다. 확신컨대 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사람은 편집자들밖에 없을 듯하다. 1만 부나 되는 초판을 찍어놓고, 고작 두세 명이라니... . 터무니 없이 적은 인원이 아닌가. - 삼국지, 140p


 깜짝 놀라 폴란드 인구를 검색하니 3700만명 정도다. 세계대전 때 확 줄었겠지만 이후로는 통상적으로 사회가 안정되면서 늘어났을 걸로 추정하면 그보다 작았을 것. 거기다 삼국지 서평은 1누 1967-1973년에 들어있고, 폴란드에서 1972년 출판된 책이다. 하지만 종이책 출판시장이 축소되는 건 세계적으로 비슷할 것.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보통 초판은 1000부 정도 찍는 걸로 알고 있는데 1만부 라니 정말 놀랐다. 폴란드에서 삼국지 중역 축약본 초판 만부라니. 한국에서 영미유럽권, 중국, 일본을 제외한 나라의 오래된 작자미상의 역사 판타지가 중역본이라도 출판되고 있는가 몇 부 찍을 수 있는가 생각하며 재미지다. 길가메시 서사시 정도 대볼 수 있을까?


 숙련된 독자들이 베풀 수 있는 나눔의 미덕은 이런 것이다. 분통이 치미는 책과 꼴불견인 책에 대해 초보 독자나 일반인들에게 속시원하게 면죄부를 주는 것ㅡ그 책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이름도 비슷비슷해서 똥망이야 차분하게 앉아서 볼려고 해도 관계도가 있어야돼 이렇게. 하지만 책을 사는 일과 꼼꼼하게 읽는 일은 다르다. 아무튼 어쨌든 사놓고 꼼꼼하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책에 대해 화가 치미는 것은 정말로 그 책에 관심을 진지하게 가져서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뭔가 생략해놓은 책과 아닌 책.

나는 감탄과 존경의 눈으로 TV 화면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았다. 마흔 살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마치 2+2가 라는 사실도 잘 모르는데 칠판 앞에 불려나온 초등학생처럼 해맑고 천진난만했다. 프로그램에 그의 부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오늘 남편을 위해 넥타이를 매주고 구두끈도 묶어주었을 것이다. 또한 자기가 하루만 집을 비워도 남편이 당장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찻물을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주전자를 사용해야 하는지 물어보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여인일 것이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391p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끝내 증명한 앤드류 와일스의 다큐를 보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보게 되었다고 읽게 된 이유를 밝힌다. 이런 것도 사랑스러운 부분.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앤드류 와일스를 보고 그의 부인을 상상한다. 빠져있는 부분 상상하기. 그 상상의 내용도 즐거움이 치밀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들어본 책들의 서평만 몇개 읽어봤지만, 아마 나머지 부분도 신남 터지는 독서가 될 거다. 책을 보는 즐거움을 조각조각 흩뿌려놓은 책이다.


 생략된 부분들을 재구성한 게 또 그렇게 통쾌하고 신나는 책. 춘향전 서평에서도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과 아닌 책.

이 책의 분량은 500페이지가 넘는다. 저자는 말미에서 이 책의 주요 테마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여름휴가 때 이 책을 가져가라고 독자들께 권하고 싶다. 바캉스 때 읽는 책은 꼭 '가벼운' 것이어야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벼운' 책은 (독서라는 걸 한다는 전제하에) 주로 잠들기 전에 읽힌다. 가사일이나 직장 업무에 하루 종일 시달리고 난 뒤, 심각한 주제를 다룬 책에 집중하기 힘들 때 말이다. - 총, 균, 쇠, 422p

 진짜 누가 바캉스 때 가벼운 책을 들고 가게 만들었지? 쉼보르스카에 따르면 잘못된 유행에 충실하게 내가 이번에 쌓아둔 책들도 가벼운 책 일색이다. 모처럼 북캉스인데 전집같은거나 달릴까 고민하다 자유독서도 간만인데 다양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아. 하지만 내 책장은 정당한 게 나는 두달 내내 사건에 시달려서 심각한 주제를 다룬 책들에 집중하기 힘든 때가 맞다. 


 하지만 바캉스 때 챙기는 책에 대한 관점은 바뀌었다. 진짜 바캉스를 즐기는 때를 대비해 잘 기억해 둔다. 



 안볼책 서평집이니까 신나게 보자고 빌려온 서평집. 내 책으로 샅샅이 느긋하게 즐거워하고 싶어서 몇 개만 골라 읽고 덮어둔다. 


 그러니까 결국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빌리거나 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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