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난 것처럼 너무 아파서 깼다. 피싱라이프 때문이다. 며칠째 언니랑 둘이서 물고기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시작할 때는 힐링게임이라 좋았는데 중반부로 가면서 달라졌다. 언니는 끝장주의자다. 게임을 끝장내기 위해서 괴로워도 슬퍼도 직진. 나는 도파민 블랙홀이다. 나는 재밌어서 질려서 재미가 다 죽어버릴 때까지 직진. 눈은 불타오르는듯 하고 시야가 흐려졌다. 목, 허리, 무릎이 아프다. 게임 많이 하려고 잘 앉아있는 법 자세도 배웠는데. 게임 많이 하려고 산책도 다녀왔는데 역시 낚시하면서 하체 힘을 이상한 데 지지한 모양. 종아리는 하루종일 느낌이 이상하더니 자려고 다시 누울때까지 이상했다.










 생각보다 대단한 책이었는데 동작 분석 전문가인 저자에 따르면 피곤해지지 않는 자세의 기본 원리는

①중력 손상 막기

②전신의 힘 사용하기

③인체 구조에 맞게 몸 사용하기

④원의 크기와 지레 원리 활용하기

네 가지 원리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아주 구체적인 동작을 피곤해지지 않게 하는 법을 소개한다. 지치지 않고 14시간동안 스마트폰게임 하는 방법이 없어서 실망.. 피곤하다.



 <오늘부터 300일>을 귀여워하면서 보다가 나도 슬렁슬렁 써보까 하다가 언제 300일을 쓰고 앉았어 바빠질텐데 하루에 10개씩 한달동안 써보까 하다가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웃음이 났다. 할지 안할지 그건 모르겠고 일단 기획은 해본다. 책이 너무 귀여운데 하드커버에는 뭘 무서워서 쓰지를 못한다. 안 예쁘게 뭔가 확 그어지면 돌이킬 수 없이 하드커버를 손상시키는 것 같아서 도무지 뭘 쓸 수 없다. 종이도 빳빳한 종이라 두꺼워서 쓰기도 불편한 높이. 중고책을 사가지고 낙서장같이 막 써보까 하고 알라딘 중고 장바구니에 일단 넣어본다. 그래도 역시 하드커버는 부담스러워 안돼. 아 그림연습도 할 겸 그대로 따라그리고 한장씩 써볼까 싶다. 제목이 필요한데.. 떠오르는 가사가 없다. 아침부터 오랜만에 국카스텐 노래를 뒤적뒤적. Toddle에 숨어있었다. 떨어진 꽃잎. 그래 하루하루 떨어진 꽃잎이지. 그럼 오랜만에 그림이나 따라그려보까. 이따 수첩 골라야지~ 










 선이 흐리멍덩한 듯 선명하고 귀여운 그림체. 임진아 작가님 느낌과 비슷하다. 그림일기 쓰는 느낌의 바탕 원고지도 귀엽고, 그림일기 부분이 보송한 그림으로 이미 그려져있는 게 장점.


 언니는 운동나갔다. 둘다 하루종일 게임삼매경은 괜찮은데, 그러다 한 명이 정상 생활로 빠져나가면 갑자기 나도 같은 시간에는 정상 생활을 해야할 것 같아서 잠시 책정리를 한다. 반납할 책 날짜 구분하고 밑줄택 타이핑하며 정리하고. 도서관 책은 밑줄 대신 포스트잇 플래그를 쓰는데, 이게 도저히 한번 쓰고 버려지지가 않는다. 게을러서 한꺼번에 정리하는 편이다 보니 정리하기 전까지 이곳저곳에 굉장히 많은 플래그가 필요하다. 그리고 반납 직전 또 끈끈한 플래그가 대량 발생하는 것도 문제. 최근에 결국 다 먹은 요거트통을 중간 끈끈이 플래그 저장통으로 쓰기로 했다. 속이 다 시원. 그동안은 책상에 붙여놓았는데 볼 때마다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요거트통 짱이다~ 생활혁명이네~ 브랜드 이미지 자꾸 노출되기는 싫어서 가리고 싶은데 묘하게 경사진 모양이라 반듯하게 붙이기 어려운 형태. 일단 그냥 쓰고 있는데 용도에 만족해서 용서가 된다. 그래서 접착력이 전혀 없어질 때까지 다회용으로 쓰는 플래그정리 중이었는데 묘한 곳으로 팔랑팔랑 떨어졌다. 나 3M 포스트잇 플래그야! 그는 정체성도 확실하고 자기주장도 확실하고 끝까지 성실하기까지 한 친구였다. 아주 미세한 접착력이 남아있었는데 그래서 절대 안 꺼내졌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언니가 늘 핀셋을 보관하는 곳에서 가져왔다. 다 움직이라고 그런거야. 자세 선생님이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몸에 부담이랬어.











 그림장 수첩으로 고른 게 처음엔 너무 작나 싶었는데 의외로 내 수준에 딱 맞는 크기. 애물단지였는데 쓰임새가 정해져서 다행이다. 책모임 외에 기타 모임은 거의 하지 않는 책모임 사람들과 어쩌다 동네 독립서점을 같이 간 적이 있다. 들어가면서 누가 우리 기념으로 여기서 한 권씩 살까요? 했다. 찬찬히 둘러봤지만 사고싶은 책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사기로 했으니까 어쩌면 놓고 따라그려볼 수도 있는 일러스트 책을 골랐다. 계산하는데 기념으로 만든 수첩이에요~ 괜찮아요 다른 분께 나눠주세요~ 아니에요 받아주세요~ 하셔서. 받아주세요 라니. 차마 끈기있게 거절하지 못했다. 한마디 표현이란 가끔 그 효용이 소름끼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이렇게나 다른가 싶었다. 몇 년간 수첩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가져가면 사용하지도 않고 쓰레기에 나중에 언젠가 집 밖으로 옮길 때 새 걸 버리면서 스트레스받을텐데. 그런 절대 받지 않을 사정이 있었는데. 받아왔다. 이사오면서 책을 그렇게 많이 정리하면서도 쓰지 않은 종이잖아 하며 결국 데려왔었다. 돌아서니까 슬그머니 같이 간 6명 중 책 산 사람은 나 혼자. 그런 사정의 수첩. 가지고 있는 문구 재고 중 비치지 않게 가장 종이가 톡톡하면서 30장으로 두껍지 않아 금방 채우는 재미가 있을 것 같은 수첩이었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이렇게 그림으로 채워져서 또 버리지도 않고 계속 우리집에 남겠네.











그때 산 <싱그러운 허브 안내서>. 아직 한 번도 따라그려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50가지 허브가 한장 한장 예쁜 일러스트와 간단한 소개가 있다.


 오후에 한화증권 이벤트를 위해 계좌를 만들고 100만원 거래기록을 만들었다. 세상에. 본인확인 과정에서 얼굴인식을 했다. 3번 실패하면 계좌 1원이체로 진행된다고 해서 인식 안되게 해서 계좌로 해야지~ 했다. 인식 동그라미에 사물을 비추니 화면이 넘어가질 않아서 얼굴을 코까지 반만 넣었는데 인식이 돼버렸다! AI가 대단한건지 그 반대인건지 하기 싫었는데 황망.. 새로 받은 계좌번호를 계좌번호 모음 메모에 추가하고 거래기록을 위해 현금을 옮기는데 내 계좌인데 받을 사람에 다른 사람이 떠서 놀랐다. 계좌번호 문자에서 메모로 옮기면서 번호를 잘못 눌렀다. 받는 사람 이름을 먼저 보여주니 참 다행이야~


 잘라둔 오이지는 다 먹어서 다시 썰어야 한다. 빨간색 플라스틱 통에 오이지 국물과 통오이가 들어있다. 한번에 3~5개쯤 꺼내서 칼로 세로로 반을 가르고 그다음 어슷통통하게 썰어둔다. 냉장고에서 오이지를 꺼내다가 뚜껑이 분리됐다. 국물이 콸콸콸. 얼른 바닥에 닿은 오이를 먼저 구해주고. 국물은 닦았다. 아 엄마 오이지 떨쳐서 국물 조금밖에 안 남았어 이거 국물 없으면 저장성 떨어지지? 아무래도 그러지 그래도 맛은 다 들어서 괜찮을거야 냉장고에 있지? 응 할수없지 한번씩 뒤껴줘 뒤낄 것이 없어 너무 조금 남았어 오이 오늘 또 땄어 오이가 아직도 열려? 응 그럼 오이지 또 할까? 응 오이지 먹을래~~ 후후 언니 운동갔을 때 바닥 청소기밀고 닦을까 했는데 그림그리고 놀다가 미루고 안 했다. 핵이득.


 갑자기 생각나서 피싱앤라이프를 검색하니 나무위키가 있었다. 나온지 3년 정도 된 게임이었다. 더이상 업데이트가 없는 모양. 구경하다가 미스테리가 풀렸다. 미끼 사건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출석 일주일을 하면 그 뒤로는 1레벨 미끼를 자동으로 끼워주는 시스템. 오류라고 밤새우지 않고 늦게 자서 다행. 공략이 있을 줄 알았는데 힐링게임이라 그런가 의외로 없었다. 



 저녁은 냉동실에서 새우를 꺼내서 버터에 익혔다. 후추를 후추후추 바질을 바질바질. 소금을 소금소금. 아 소금은 하지말자. 아 아스파라거스도 같이 할까? 새우때문에 소금을 안 했더니 아스파라거스는 싱겁다. 머스타드 꺼낼까? 둘이 사는 우리집은 초장그릇이 8개다. 하루종일 혼자 제일 바쁘다. 아침에 커피내리고 나면 커피핀에서 커피물이 끝에 좀 찔끔거리니 받칠 때 쓴다. 치즈팝 1장 분량도 여기다 올려먹는다. 오후에 간식으로 자주 먹는 아몬드를 먹을 때도 여기에 올려먹는다. 소스 종류 먹을 때는 잘 흘리니까 각자 하나씩 놓고 쓴다. 그런데 머스타드는 한번에 많이 안 먹어서 1개만 꺼내서 가운데에 놓았다. 역시는 역시. 내가 흘리려고 한 개만 놨지. 이렇게 뭉치인데 사회생활은 어떻게 정상으로 잘했을까? 하긴 그런 일에 주의력을 많이 소모했겠지. 새우는 그대로도 맛있지만 아스파라거스는 좀 심심해서 머스타드 찍어먹으니 의외로 아주 맛있었다. 새로운 조합.   


 일기를 3일째 쓰면서 알았다. 주로 사건사고는 주방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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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은 1년간의 휴직을 보내고 복귀하려고 했던 달이다. 복직 코앞에서 이석증이 터져 다시 기약없는 휴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의 읽지 못했어야 하는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림책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자기치료 경험담을 보면서 나도 치료할 부분을 찾아보고, 적용해볼 게 있나 살펴봤다. 현실 세계가 순간 잊어지는 미스터리 소설로 도망갔다. 그림책 17권, 소설 5권, 심리 4권, 투자 1권, 에세이 1권.



◆그림에세이















 비상시를 대비해서 남겨뒀던 <요코씨의 말>을 꺼내먹었다. 작가 사후에 발표되었던 에세이 중 일부를 일러스트를 붙였다. 처음엔 사노 요코의 일러스트가 아니라서 아쉬웠는데 보다보니 느낌이 비슷한 듯도 싶고 작가 일러스트가 많아서 좋았다. 사노 요코가 직접 그렸다면 본인에 해당하는 일러스트를 이렇게 많이는 못 봤을 것 같아 장점. NHK 방송국에서 TV로도 방영되고 인기도 많았다고 하니 역시 사람 마음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아마 대부분 봤던 글일 텐데 대부분 처음 본 느낌. 읽고 난 책이 백지에 가깝게 잊혀지는 능력은 축복이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애정하는 작가의 작품도 거리두기만 적절하면 다시 처음과 같은 감동으로 볼 수 있다. 평생. 심술도 부리고 고집도 쓰고, 똥강아지 할머니인데 사노 요코 글을 읽으면 왜 따뜻하고 마음이 말랑해지고 충성을 맹세하게 될까? 어제 보던 <당신이 옳다>에서는 솔직함 때문에 모든 아기들이 사랑스럽다고 하던데. 솔직함과 진짜 인생.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현대판 어린왕자 느낌이었다. 길 위의 소년이 친구들을 하나씩 만난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구나. 거짓말처럼 아름다움은 한장 한장 이어진다.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가는 마음도 정화되는 기분.


 <100 인생 그림책>은 기대와 다른 책이었다. 제목만 보고 100명의 인생이 한장씩 박물관처럼 모여있는 줄 알았다. 1명의 인생을 1살부터 100살까지 한장에 1년씩 그림으로 모은 책이다. 어떤 면에서는 착각도 맞는데,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나이대의 인생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담았으니까. 첫 장은 방금 태어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형식 덕분에 누군가의 평생을 사랑을 듬뿍 담은 시선으로 회고하는 영화같은 인상. 채도 높은 색깔을 많아 눈이 즐겁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한국인 편으로 또 보고싶다.


<살짝 욕심이 생겼습니다>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올해 나온 일러스트 산문집. 글도 쪼끔. 일러스트도 찔끔이지만 그대로 충분하다.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하지 못한 조각난 생각들을 풀어줘서 참 좋았다. 역시 이런 작가도 모아둔 짜투리가 많이 있구나~ 할 수 있어서. 작가가 살짝 고집부려 넣었다는 스케치 조각들도 좋았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보세요.도 좋았다. 그냥 다 좋아. 이 작가 거 안 본 거 많이 남겨놔서 좋아.


 <쉬운 일은 아니지만>은 20대 일러스트레이터의 성장 4컷일기.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지만 내 또래의 이야기를 더 보고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가만히 자기를 살펴보고 돌보는 작가를 보면서 저렇게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면 지금 나는 다른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지금부터 지난 시간들을 거슬러서 살펴보고 돌봐주는 일을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일. <당신이 옳다>에서는 살면서 해야하는 일을 미루면 이자를 톡톡히 치른다고 했다. 내가 치르는 대출이자는 마이너스통장이 됐다. 원금에 이자에 이자에 붙은 이자에 물가상승률까지 아주 호된 스노우볼이 돼있었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다.



◆동화책











 열반님 서재에서 받아온 <대혼란>은 너무 좋았다. <아니의 호수>, <개를 원합니다>, <내 안에 내가 있다>도 좋아서 소름. 그러고 보니 알라딘에서 키티 크라우더 엽서 굿즈도 판 적이 있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나 봄. 느낌에 안 예쁘고 거친 그림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역시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 

 <대혼란>, <아니의 호수>, <개를 원합니다>는 모두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 안에 내가 있다>는 키티 크라우더가 일러스트만 그린 거라 좀 다른데, 나 자신을 다루는 건 같다. 나 자신을 인정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일러스트로 그렸다. 분위기는 좀 기괴하고 컴컴하다. 심리치료 교과서를 그림화한 느낌이라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전체적으로 황량한 느낌이 전체 내용 이해도를 올려줘서 좋았다. 시리즈로 더 여러권이 있다면 좋겠다.


 <파도야 놀자>는 이수지 작가의 작품. 이수지 작가가 물을 표현한 걸 보고 있으면 동시대를 살아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파도 주제 탐구의 아름다운 결과물. 꼬마아이가 파도랑 노는 내용에 색도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시원한 바닷가에 다녀온 듯한 청량감.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바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청나. 



◆그래픽노블








 예술가들의 예술가라는 표현에 반대할 수 없는 수작이었다. 아이디어라는 걸 꽉꽉 뭉쳐 반죽하고 살을 붙이고 색감을 넣고 오랜 시간 숙성하며 다듬은 결과. SF의 현재를 반영한 미래사회 실험적 모습을 일러스트로도 잘 보여준다. 역사적이고 몽환적이다. 메세지와 이야기, 강렬한 원색 중심의 일러스트 각각 모두 대단하고, 조합도 뛰어나다.



◆소설









 <열대>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데뷔 15주년 기념작. 15주년이라니! 20대 때 내가 술고래가 된 데 모리미 도미히코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확실히 지분이 있다. 이 작가는 재기넘치는 신예 작가와 대학생으로 만나 같이 자란 느낌. 한참 뒤 와 모리미다 모리미! 하면서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을 연달아 읽고 팬심이 한김 식었다. 모리미 색이 확실한데 그래서 비슷한 느낌.. 하지만 역시 묘하게 그래도 응원해야지 싶은 정이 있다. 어떻게 쓰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도쿄에서 출발해도 힝속았지? <열대>도 교토물이었다. 환상 범벅 현세인지, 현세 범벅 환상인지 싶은 기세도 여전하고. B급 정서와 한김 빠진 듯한 솔직함이 군데군데 덕지덕지 붙은 것도 여전하고. 한참 뒤에 또 지나갔던 장면 갖다 쓸 거니까 샅샅이 눈에 불켜고 넘기게 되는 페이지도 여전하고. 이번에 좋았던 건 작가 스스로일 책덕, 이야기덕 냄새를 팡팡 풍겨서.  


 현실삭제는 미스터리지. 사회파는 부담스럽지. 피, 칼은 굳이 보기 싫지. 그런데 세상에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라니. 나는 신대륙에 오고 말았다.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3부작 <하자키 목련빌라의 비밀>, <진달래 고서점의 비밀>,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 살인 사건이 나오긴 하지만 스트레스 없이 코지코지하게 즐길 수 있다. 배경 지역은 하자키라는 가상의 시골 지역.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건 같은 지역과 형사 한 명. 왓슨 역할은 권마다 바뀐다. 사건의 주요 인물들도 모두 다르고 독립적인 이야기인데, 각 책의 인물이나 배경이 흐름과 상관없이 등장하는 재미가 있다. 큰 연관은 없지만 소소한 재미까지 잡기 위해 순서대로 보는 걸 추천. 


 전에 책읽아웃 듣고 담아둔 <최애, 타오르다>.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봤다. 힘닿는 데까지 최애가 있는 곳엔 어디에나 있고, 최애를 빼면 내 인생이라고 할 만한 건 어디에도 없어지는 덕자 이야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디에나 있는 덕자를 구석 중의 구석으로 끝까지 몰아붙여본 소설. 등골이 서늘하고 안쓰럽다. 얇아서 쉽게도 읽히지만 쾌락, 욕망, 목적,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심리









 어떤 사람과 책은 몇 번이나 피하려고 해도 마주치게 된다. 괜한 오해일 때도 있고, 역시나 역시일 때도 있다. 책모임에서 같이 읽기로 했을 때, 한번 피했는데 다른 모임에서 결국 피할 수 없이 다시 만난 <행복의 기원>. 사람에게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며, 행복은 강도라기보다 빈도라는 조언이다. 충분히 수긍되는 주장이지만 근거와 내용, 전개는 조금 빈약한 느낌. 당시에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근거로 대부분 자기 논문만 제시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고 편리한 책이지만 읽다 오히려 작가가 정신적인, 의미로서의 형체없는 서양 전통 행복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귀납으로 묶어둔 행복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같이 본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치 수용소 생활을 6년 정도 겪고 생존한 정신과 의사의 기록. 처음에는 필명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내가 몸상태가 좋을 때 하기 싫은 일을 처리하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행복을 주제로 목적한 책은 아니지만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행복보다 상위 개념을 가져와서 손쉽게 해결한다. 하위 개념이기에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말. 

 책은 좋은 뜻으로 숭고하고 거창하다. 공감가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인생에서 어떤 피할 수 없는 일과 마주하더라도 ㅡ그게 나치 수용소 생활이라도..!ㅡ 그 사건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만은 나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삶의 의미와 목적은 그런 과정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 모든 사건들, 지나온 시간들, 마주했던 어린 내가 했던 일들, 당연히 수용하고 당연히 수용하지 못하면서 생겼던 마음들. 묶어두고 감추려고 했던 감정들. 그런 게 다 촘촘하게 엮여서 내 인생으로 만들어졌고, 내가 만든 거구나.

 작가가 창시한 프로이트, 아들러와 정신과의 3대 이론이라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도 있다. 독자 요청에 의해 개정하면서 추가로 덧붙였다고 하는데 아주 좋았다. 역설 의도 기법 부분도 아주 재밌었는데, 적용해보고 싶어지는 내용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편 로고테라피에서 활용되는 '역설 의도' 기법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다. 즉 마음속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  이런 접근법을 통해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 여기서 독자 여러분은 환자의 태도가 반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대신 그 반대되는 소망이 들어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불안이라는 돛대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82p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의 결정. 그래서 이어서 같이 보다 만 <자기 결정>. 수용소와 결이 비슷했다. 다른 점은 수용소의 특징은 피할 수 없는 고난 회고 부분이 빠져있다. 얇지만 압축적이고 강의식으로 서술돼 시간면에서는 경제적.

 <꾸뻬씨의 행복여행>과 <행복의 지도>는 행복사전 느낌의 여행기.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좀더 현대동화적이고, <행복의 지도>는 좀더 문화 탐방기에 가깝다. 행복여행도 정신과 의사가 쓴 책. 행복의 지도는 나라별 문화적 다양성 관찰기인데 빌브라이슨 느낌과 비슷하다. 재미있었지만 내가 찾던 책과는 거리가 있었다.


 8월의 또다른 수확은 휴머니스트의 <자기만의방>시리즈. 지식실용서를 표방하는 에세이 시리즈다. 일본의 자기치료 경험담 에세이 3권 번역본은 모두 기대 이상으로 아주 좋았다. 아무래도 시리즈라 편차는 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는 표지의 약간 못난이 일러스트가 아니었다면 펼쳐보지 않았을 책. 삐죽삐죽한 네거티브 여왕 일러스트가 절묘해서 맘에 쏙 든다. <미움받을 용기>컨셉으로 현자 힐러 역할로 대인관계치료 전문 정신과의사가. 뿔난 젊은이 역할로 아닌데요? 이건데요? 아닌데요? 를 외치는 작가가. 자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 속시원한 대리치료 느낌이다. 그냥 이대로 괜찮아도 괜찮아요 말고. 이대로 괜찮아도 괜찮아요~~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가 <이대로 괜찮습니다>보다 약간 세다. 자기혐오에서 빠져나오는 경험담. 자기혐오까지의 개인적인 역사가 극적으로 질질 끌며 그려지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담백하고 솔직하고 간결하다. 단계적으로 7가지 행동 스위치를 실행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투자








 실수요자, 투자자 모두 한 번은 읽어야할 투에이스님의 부동산 절세 기술 개정판. 하루가 멀다하고 관련 법이 바뀌고 있는데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 각 주제별 세법의 취지와 원리, 역사를 같이 다루고 있어 두고두고 볼 가치가 있다. 정권교체 이전의 최신 세법까지 모두 반영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책값의 수천배는 금방이다.



◆에세이









 <타인의 기원>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리 모리슨이 쓴 자기 소설에 대한 설명.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에 대한 통찰. 타인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 역사와 흔적에 대한 추적. 이방인을 설정하는 본질적인 이유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사유를 쉽고 간결하게 전한다. 어떤 말도 안되는 위대함은 어떤 말도 안되는 역사와 마주하며 태어나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 소개된 소설들의 스포가 꽤 함유돼있다. 소설 작품도 꼭 보고싶은 작가.



 갑자기 시간의 틈에 주어진 선물같은 한 달이었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며 알아주고 이해해주면 되는데. 낯선 일이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했나 뚤레뚤레 쳐다보고 더듬어 따라해보려고 노력했던 시간. 나는 늘 근본적으로 나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안다. 과녁만 제대로 찾으면. 


 9월은 어떤 계획도 없이 맞이한다. 마주했던 일들을 끄집어내 내 감정도 살펴보고 알아주고. 그래서 다음 앞으로의 태도로 진행할 수 있게. 스노우볼을 살살 녹이면서. 

사노요코처럼 솔직하고 유쾌하고 진솔하게. 

요시타케 신스케처럼 기발하고 귀엽게.

홍화정처럼 찬찬히 소중하게.

키티 크라우더처럼 어떤 힘과 마음을 글과 그림에 담아서.

이수지처럼 단순한 몇 가지에 집중해서.

뫼비우스처럼 뜻을 담고도 넘치는 상상력으로.

모리미 도미히코처럼 잘하고 좋아하는 걸 꾸준하게.

와카타케 나나미처럼 심각한 일도 편안하게.

우사미 린처럼 무거운 주제도 쉬운 언어로.

보내보자. 


 8월 한달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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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0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1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8-30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월에 무려 28권이나 읽으셨군요~!! 겹치는 책은 없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 휴직을 다시하시지만 몸 건강해지시길 바라겠습니다~!!

link123q34 2022-08-31 07:02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응원 감사해요~ 건강은 애서가의 기본 구성요소인데 소홀했으니 반성합니다. 연말을 위해 중간점검차 서재 다녀왔는데 좋았던 책 중심으로 정리중이셔서 염탐 불가ㅎㅎ 리뷰하신 책 중에서 한 권 이번주에 봐놔야겠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22-09-0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섯시 반쯤 일어나자마자 문을 열었다. 어제 자기전 아침에 맞바람 환기 좀 하자고 몇 시쯤이 적당할지 얘기했었다. 여덟시 전이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요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 때문. 8개월전 맞바람이 불어 여름에도 시원하다는 복도식 아파트. 집을 보여주던 중개사는 그렇게 말했고, 언니가 이 동네 산다는 지인은 겨울이 굉장히 추운 동네라고 말했다. 초여름에는 현관 방충문 설치업자가 엘리베이터에 광고지를 걸었다. 현관문-내 책상-베란다가 일직선상에 있다. 책상 위 자유 종이가 있다+방충망 없는 쪽 베란다문 조합이라면 종이가 바깥으로 날아갈 지경. 맞바람 위력이 대단했다. 20분 정도 환기를 하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안 지나갔다. 초여름 때 시원하다고 했어~ 하고 처음 열어본 날.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다 거실을 보고 갔다. 한여름에 맞바람 부니까 시원한지 알지 못하고 지나갔다. 초가을 아침에는 확실히 추웠다. 치즈팝을 만드려고 전자렌지 문을 열어보니 유독가스 냄새가 아직 난다.


 환기시켜놓고 일기 쓰면서 책상에 앉아있는데 집앞 축구장에서 구호 소리가 들린다. 브!알!씨!티!오!알!아! 같은 뭔가 팀 이름 같은걸 우렁차게 합! 합! 하면서 다같이 외치는 소리. 단체 기합 소리. 다 큰 사람들이 떼로 모여서 진짜 한 마음으로 지른 소리였다. 이런 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만일까? 저녁에 산책하다 보면 야외 에어로빅 수업이 있는데 거기 선생님이 가끔 절도있게 으! 악! 으! 으! 기합을 넣긴 한다. 처음은 너무 이상했는데 듣다보니 점점 건강해보여서 부러워졌다. 하지만 단체기합은 TV로 도쿄올림픽 때 여자배구 경기볼 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기억이 없다. 들은 기억도 없고 그런 기합을 같이 넣어본 기억도 없다. 아침부터 별일이네. 


 점심은 냉동 대패삼겹살 쌈. 핀란드산인데 300g씩 진공포장 돼있다. 면적 70%쯤 겹치게 계단식으로 한덩이로 얼어있다. 20분 전에 꺼냈더니 안 녹고 덩어리채다. 그대로 자른 봉지에 물을 채워서 손에 안 묻게 대충 씻어서 팬에 올렸다. 익히면서 녹는 바깥쪽부터 한장씩 뗀다. 원래 움푹한 조리음식용 접시를 쓰는데 오전에 게임하느라 설거지를 안 했다. 납작한 접시에 뜯어서 먼저 익은 고기를 한 점씩 집게로 옮긴다. 보통 한 팩에 15장 정도라 납작한 접시는 금방 산처럼 됐다. 마지막 한 점을 산 위에 올렸는데 굴러떨어져 접시를 잡은 엄지손가락 위에 닿았다. 너무 뜨거워! 얼른 다 내팽개치고 싱크대에 가서 물을 틀었다. 고기가 안 녹았다고 뜨거운 물을 담궈서 씻는다고 뜨거운 물이 나왓다. 으 뜨거!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조치가 늦어서 색이 빨개지고 아프다. 이럴 때 쓰는 미니 아이스팩을 항상 얼려두는데 오늘따라 없다. 대형 아이스팩을 올리고 있다가 아이스팩을 식탁에 두고 손가락을 눕혀서 댔다. 


 점심 먹고는 날짜가 가득 찬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다녀왔다. 간 김에 얇은 소설도 두 권 가져오고 신간 코너도 구경. 최근 리모델링한 후로 신간 코너 책장이 작아졌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알라딘 왔다갔다 하면서 제목 들어봤는데 용케 여기 있네? 들고있는 책 앞표지 소독 안한 거라 옆구리에 끼기 싫어서 한 바퀴 돌아보고 한 번에 빼려고 움찔움찔거리면서 게처럼 이동.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체크하고 있었는데 아주 잠깐. 입구 쪽에서 들어온 남자 분이 나와 같은 루트로 요란한 소리로 신간 체크. 회전할 때 노련하게 슬쩍 봤는데 남자분은 두 권을 골랐다. 설마는 역시. 한바퀴 돌고오니 그 찰나에 없어졌다. 두 권중 아래쪽에 깔려있었나봄. 원래 빌리려던 책이 아니었는데도 괜히 분하다. 


 저녁은 콩나물 톳국수 비빔이랑 콩물, 고구마. 콩나물 머리 떼기가 귀찮아 숙주를 더 자주 먹는데 오늘따라 집앞 마트에 숙주가 다 떨어졌다. 언니는 콩을 일정량 넘게 먹으면 가스가 찬다. 톳국수는 양념이 잘 안 배서 대신 흡수해줄 채소류가 필요하다. 팔도 비빔면 양념장 파는 걸로 혼합하면 비빔면 대용식같이 된다. 양념장 뚜껑만 열어도 바로 비빔면월드. 비빔면 대체라기보다는 그냥 콩나물 톳국수 비빔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지혜롭다. 하지만 식감, 맛 모두 좋아하고 변비도 해결돼서 실용적인 메뉴. 톳국수는 수분흡수 없이 찰랑거려서 씻고 남은 물기랑 합쳐져 빨간 비빔면 양념이 옷이랑 조리대에 흩뿌려졌다. 부엌의 잭슨폴록. 거침없이. 숙주사러 마트 가려고 여름에 제일 잘 입는 베이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안 지면 버려도 돼. 많이 입어서 얇아졌어. 언니는 순식간에 조리대를 닦아놨다. 우무콩물해먹고 남은 콩물도 마셔서 없애긴 하는데 단백질이 부족한 식사가 됐다. 지난주에 엄마택배로 받은 햇 밤고구마. 밤고구마는 맛없다는 인상에 별로인데 띠용하게 새로운 맛이었다. 싫어하는 포슬포슬한 식감에 고구마맛이라는 게 압축된 맛. 묘하게 맛은 압축맛인데 포슬하게 분포되어 절묘하게 조화로웠다. 포슬포슬한 찐 감자 싫은데. 포슬포슬한 밤고구마 맛있는 거구나~ 언니가 그래서 밤고구마인가봐. 밤처럼 포슬포슬해. 포슬포슬이란 말 언제 써봤을까? 싶은 저녁. 엄마가 햇포슬포슬을 담아 택배로 보내준 걸 알게 된 저녁.


 저녁 산책하면서 보니 플랜카드가 바뀌었다. 오늘 축구대회가 있었다. 어쩐지 그동안 뛰면서 혼자 파이팅넘치는 사람은 많았는데 이상하다 했지. 미스터리는 풀렸다. 게임하면서 목이랑 무릎, 눈이 이상해졌는데 걷고 나니 아주 약간 덜 이상한 느낌. 평소보다 시간이 약간 늦어져 주자 D만 뛰고 있었다.


 돌아와서 마저 게임하는데, 오류가 떴다. <피싱라이프>라는 낚시 게임. 지난주 핸드폰 배터리를 교체하러 삼성서비스센터에 갔더니 기사님이 피싱라이프는 게임이에요? 물어봤다. 네. 낚시 게임이라 낚는 위치가 중요하다. 오류로 멈춰서 종료하고 다시 켜면 자리를 다시 찾고 낚싯줄 내려가는 라인을 따라 다시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 껐다 키니까 1레벨 미끼가 자동으로 계속 걸려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서 소환퀘스트로 많이 잡아야하는 2레벨 물고기들을 멸종시킬 기세로 잡았다. 언니는 잠시 오류인건지 아까 오류난데 보상인건지 궁금해하면서 스트레스받는다. 잠시 오류인거면 지금 바로 소환퀘 준비하려고. 오류 보상으로 일정시간 혜택 줄 거면 이따가 시간안에 하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단 먼저 잡아. 나중에 1미끼 계속 달려면 힘들잖아. 언니는 나름대로 플레이 계획이 있는데 갑자기 방해를 받아서 스트레스받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원래 자연스럽게 가만히 내버려두면 행동형이었다.












자세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다.

- 당신이 옳다 1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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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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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리 모리슨이 쓴 자기 소설에 대한 설명.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에 대한 통찰. 타인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 역사와 흔적에 대한 추적. 이방인을 설정하는 본질적인 이유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사유를 쉽고 간결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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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달째 아침에는 계란 스크램블을 해서 먹는다. 제일 먼저 커피내릴 물을 올려놓는다. 물이 끓기 전에 베트남 커피핀에 카페인 하나, 디카페인 하나를 부어둔다. 슬라이스치즈를 과일칼 등으로 눌러서 16등분하고 전자렌지에 3분 정도 돌린다. 냉동실에서 버터 한 조각을 꺼내 팬에 먼저 올린다. 버터를 다시 냉동실에 넣으려다가 놓쳤다. 전날 새로 8분할해둔 113g짜리 스틱버터. 녹기전에 얼른 주워 모았는데 한 조각이 없다. 식탁에 뭐가 많이 올라가있긴 하지만 버터가 들어간 곳은 내가 쓰는 물컵. 얼른 주워서 팬에 같이 올린다. 갑자기 오늘은 버터 2조각짜리 스크램블. 팬에 넣기 전에 흘렸으면 1조각짜리인데. 덕분에 왠지 더 풍미있는 기분.


 먹고난 자리 옆에 냄비뚜껑이 있고 다른 옆에는 먹고 남은 냄비가 있어서 옮겨서 덮으려고 했다. 냄비뚜껑 손잡이가 떨어졌다. 다이소에서 산지 세 달이 안된 것 같은데 3중으로 경사져서 다양한 크기 냄비에 덮을 수 있어서 좋은 뚜껑. 뚜껑 유리 부분과 손잡이 부분만 있고 구멍이 훤하다. 연결하고 있던 뭔가는 사라지고 없다. 언니가 끝까지 찾더니 냄비 안에서 나사를 찾았다. 일반 냄비를 안 쓰고 인스턴트팟을 써서 그렇다. 냄비에 들어있던 요리는 우삼겹1kg, 숙주 한봉지, 다진마늘 2큰술, 간장3큰술, 물 400ml를 넣고 육류-약-20분 버튼으로 눌러만든 것. 버튼만 눌러두면 알아서 익으니까 좋은데 압력뚜껑이라 꺼낸 내솥 위에 덮긴 거추장스럽다. 나사는 나중에 씻게 싱크대 위에 올려둔다.

 

 남은 고기국을 유리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다가 언니가 와사비가 한칸 밑으로 떨어져있는 걸 발견했다.


 반납이 임박한 책을 가지고 도서관에 갔다. 한권은 아직 덜 봤는데 반납하려다 막판에 다시 빌리기로 했다. 다시 빌리려고 반납을 하고 재대출하려고 하니 언니 이름에도 남은 자리가 없어 반납을 해야했다. 급하게 자리에 앉아서 택붙인 곳은 핸드폰에 메모하고 반납했다. 모임책 참고책으로 빌렸던 거라 급하지 않은 책. 


 오후에 간식 먹으려고 커피를 내렸다. 이번에 받은 디카페인 원두는 콜롬비아산인데 다크로스팅 된거라 아아로 하면 프랜차이즈 맛. 먹다 남겨 냉장실에 넣어둔 각종 바 재고가 많아 겸겸 카페세트처럼 먹는다. 키토식을 전도한 지인이 샘플로 준 체인저스 프로틴바. 그냥 먹을 때는 약간 과쫀득한데 냉장고에 넣으면 딱딱해진다. 살짝 렌지에 데우면 부드러워지나 싶었는데 유독가스가 나면서 탔다. 현관문까지 여니 맞바람이 세차다. 저녁까지 고무탄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날짜 지난 바 재고는 수두룩해서 다시 꺼내먹었다. 두 번째 프로틴바는 물 조금 쳐서 조금만 돌리자 했는데 언니가 그냥 씹어먹자고 했다. 오랜만에 카페 디저트세트 느낌.


 저녁은 남은 고기국을 데워 먹었다. 요즘 익힌 고기, 묵은지, 오이지를 쌈싸서 자주 먹는다. 엄마는 오이를 생으로 씹어먹는게 가장 맛있다고 다른 조리는 별로로 생각한다. 올해는 재미로 하는 작은 텃밭에 심은 오이가 수확은 몇십개가 되어서 포대로 나왔다. 이제 멀리 살아 생오이를 못 나눠먹어서 엄마는 거의 처음으로 오이지를 만들었다. 마지막에 담근 건 살짝 매콤, 달달하니 아주 맛있게 됐다. 올해 들어 청상추를 처음 알게 됐는데 전에 아무거나 먹을 때보다 두껍고 커서 씻기가 편하다. 상추값이 금값이라 깻잎만 두봉지 사왔다. 소고기에 깻잎은 잘 어울린다. 깻잎 두 장에 국과 찜의 중간식품에서 고기를 건지고 묵은지 하나, 오이지 자른것 5개를 싸서 입으로 가져갔다. 깻잎에서 국물이 넘쳐흘러 잠옷에 묻었다. 기록적인 폭염에 여름밤을 지켜준 잠옷. 엄마가 문화센터 옷 만들기 강의에서 만든 인견 원피스다. 강사는 다음 강의 수강신청을 위해 단추 부분을 알려주지 않고 강의를 마쳤다. 엄마는 다음 강의까지 수강할 여유가 없어서 단추 대신 성기게 똑딱이를 붙였다. 들러붙지 않고 시원하다. 해가 닿지 않는 곳은 날씨가 급하게 추워졌다. 잠옷도 바꿀 때가 되긴 했다.


 저녁 먹고 엄마가 전화했다. 저녁 먹었어? 응. 동생이 추석에 하루밤 온다고 했었는데 근무가 맞지 않아 못 오게 됐다. 동생은 지금 엄마한테 집 출입금지 당한 상태. 오늘은 복숭아도 먹고 싶고 떡도 먹고 싶어서 하루 세 끼 탄수 비중이 높은 식품을 안 먹었다. 언니가 전자렌지에 돌린 쑥가래떡을 막 한 입 먹고 있었다. 하루종일 미리 치밀하게 공력을 쌓아놨고 천천히 집중해서 먹을 타이밍이다. 통화하면서 쑥떡의 맛과 효용은 70%로 감소. 근데 밥먹고 뭐먹어? 엄마는 아까 동네 하나로에 아보카도가 싸고 상태가 좋다고 신난다고 전화했다. 저녁 먹었어? 저녁 막 먹을라고. 상관없는데 저녁 먹고 또 통화할려고 기다린 모양. 떡은 거의 10개월 만에 먹는 것 같은데 아직도 유독가스 냄새가 있다. 통화가 끝나고 피싱라이프 중이던 언니가 물설사? 하고 물어본다. 물설사가 아니었다. 물쳐서 하라고? 였다. 응. 쑥떡 쪄서 먹으면 맛있는데 귀찮아서 렌지에 돌릴려면 물 조금 쳐서 돌리래. 이제 보니 프로틴바는 수분기가 거의 없어서 렌지에서 용암상태로 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엉뚱하게 듣는 일이 많았다. 엉뚱하게 듣고는 들린 그대로 상대방에게 다시 묻는다. 나도 갑작스레 예상하지 않은 거라 둘 다 어이없이 빵 터질 때가 많다. 하하 내가 그렇지. 그렇게 들렸어. 하고 말지만 기억력이 좋은 사람에게는 특정한 일화로 남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언니랑 얘기하다 얻은 깨달음. 나는 베르니케 영역 일부 기능이 미세하게 덜 발달한 것 같다. 소리로 들린 걸 지금 상황과 어울리는 키워드로 챡 연결돼서 입으로 나오게 하는 부분. 소리로 들린 정보가 비슷한 아무 키워드로 챡 연결된다. 이 상황에 그 키워드? 생각할 틈 없이 순식간에 입으로 되묻기 출력. 의사소통이나 순발력 능력치가 높으면 걸러져서 몰랐을 것 같다. 대부분 웃고 말아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이게 모두 하루동안 있었던 일이다. 하나 하나는 나에게 보통 흔한 일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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