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세이책을 읽고 직접 쓴 에세이를 공유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첫 번째 모임이었다. 솔직히 자만했다. 그래도 나는 평소 꾸준히 읽고 쓰고 있어서 남들보다는 더 나을꺼라 생각했다. 에세이 한 편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쓴 글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긴장도 되고 설렘도 있었다.
일단 글쓰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미술 고자였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림보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 혹은 화가였던 것이다. 그림을 봤을 때 '좋다.' 정도의 느낌을 받을 뿐이다. 한참을 그림을 바라본다거나 그림에 큰 감흥을 받는 인간이 아니었다.
대학교 때 동기 누나가 빌려준 클림트 책을 읽었다. 소설이었던 거 같다. 무척 재밌게 읽었다. 유럽 여행을 갔는데 클림트의 <키스> 원본을 보게 되었다. 보기 전에 기대했었다. 책도 재밌게 읽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 사람들이 직접보니 더 좋았다는 그 그림. 부푼 기대를 안고 그림을 봤는데 '응? 머지? 왜 아무 느낌이 안오네? 내 어디가 고장난 건가? 인터넷으로 본 그림하고 똑같네. 크기만 클 뿐이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한참을 봐도 똑같았다. 그 때 그림이 아닌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런 나였기에 책 한 챕터의 12점의 그림을 봐도 엄청 끌리는 그림이 없었다. 그래도 한 편을 써야했기에 고흐에 대한 그림 에세이를 썼다. 그래도 맞춤법, 띄어쓰기를 신경쓰고 글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여러 번 수정을 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모임원은 나까지 총 6명인데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자 내 글이 부끄러웠다. 2명의 글이 특히 좋았다. 나도 저렇게 글쓰면 좋을텐데 싶었다. 글쓰기도 역시 재능인건가 싶었다.
내 글에 대한 칭찬이나 코멘트는 없었다. 비록 모임 자체가 글을 평가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는 글이었다. 혼자 '이 정도면 괜찮네.' 라고 착각한 글이었다.
솔직히 슬펐다. 이렇게 목표없이 글을 쓰고 집중적인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많이 읽고 많이 쓰면 글을 잘 쓰게 될 거라 생각했다. 안일했다. 단순한 반복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계속되는 피드백과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책에서 그랬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다음 모임에는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더 신경써서 써야겠다. 더 솔직하게. 더 재미있게. 너무 점잔빼지 말고. 부끄럽지만 지난 모임에 쓴 글을 밑에 수록한다.
나는 그림을 보고 크게 감명받은 적이 없다. 내가 그림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 영화, 음악, 자연을 통해 얻는 감동의 크기를 그림에서 느껴본 적이 없을 뿐이다. 이 책의 제2장에 수록된 12점의 그림들을 본 감상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그림들이 좋았지만 강렬하게 매료되진 않았다. 그래서 무슨 그림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장 시메옹 샤르댕의 <셔틀 콕을 든 소녀> 작품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 이에 대한 글을 써볼까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인터넷으로 더 찾아봤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본 그림과 책 속 그림의 차이가 많이 났다. 책 속의 그림들은 채도가 많이 낮았다. 아쉽긴 했지만 이 책의 저자가 가장 많이 아쉬웠으리라.
12장의 그림들을 인터넷으로 다시 봤다. 그림들은 보다 선명하고 다채로웠다. 그림이 가진 힘과 생명력이 느껴졌다. 다시 보니 고흐의 그림이 다르게 느껴졌다. 훨씬 붉고 화려했다. 그러면서 따뜻했다. <꽃 핀 복숭아나무> 그림은 밝고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실 내가 고흐의 그림들을 좋아하게 된 건 그의 그림들보다 고흐라는 인간을 좋아하게 된 것이 먼저였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모은 책 <영혼의 편지>를 읽고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책에는 고흐의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림에 대한 그의 한없이 깊은 사랑과 열정, 하지만 팔리지 않는 그림, 동생에게 계속 손을 빌려야만 하는 미안함과 그런 자신에 대한 비참함이 모두 담겨있다.
고흐는 매일 물감과 캔버스, 붓과 의자를 들고 그림을 그리러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질 때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빛과 자연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으리라. 고흐는 그리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목사가 되려 했지만 실패하고 사랑에도 여러 번 실패했다. 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았으며 아버지와도 사이가 나빴다. 10년간 그림을 그렸지만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고흐는 매일 좌절감, 절망감을 느꼈을까? 분명 그런 감정들로부터 자유롭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이 물감값보다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동생도 그의 그림이 후대에 인정받으리라 믿었다.
고흐는 서른다섯에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르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겨울을 나고 처음 맞이한 봄에 <꽃 핀 복숭아나무>를 그린다. 그는 사촌 매형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사촌 누나에게 이 그림을 선물로 보낸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긴 아내에게 보내는 그림치고는 너무 밝은 그림이다. 하지만 고흐의 인생과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슬픈 상황이라도 그는 밝고 따뜻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사촌 누나도 이해해줬으리라 믿는다. 분명 사촌 누나는 슬픔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으리라.
우리의 마음은 언제 치유될까? 고흐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치유되었을 것이다. 고흐의 그림과 그의 이야기는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안을 준다. 자신보다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밝고 따뜻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고흐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면 당신도 그림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