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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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이론은 진화론이다. 생물학 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정신에 관해서도 진화론은 강력하다. 우리의 뇌 역시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의 마음, 본성, 의식, 생각, 심리까지 모두 다 진화론을 벗어날 수 없다. 절대로.


 그래서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모든 학문 역시 진화론의 틀 안에 있다. 이것이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을 통해 주장하려고 했던 내용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혹은 자신이 사는 세계, 자신이 믿는 신이 특별하길 바랬다. 의식이 너무 발달하다보니 자의식 과잉으로 빠져버린 걸까? 그러다 보니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는 특별함을 찾기 위해 애썼다. 인간만이 의식이 있다는 둥, 인간만이 감정이 있다는 둥, 인간만이 이타심이 있다는 둥, 인간만이 현재를 벗어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둥,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둥. 목록은 끝이 없다. 결국 인간의 이런 기대는 모두 무너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진화는 불연속보다는 연속을 좋아한다. 우리의 뇌는 조류, 포유류, 영장류의 뇌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류가 다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의식이 있다면 가까운 종들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위가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지 않듯이 우리 뇌의 모든 능력도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다람쥐와 까마귀는 우리보다 물건의 위치를 잘 기억한다. 클라크잣까마귀는 가을에 수백 군데에 잣을 2만 개 이상 숨겨 놓고 겨울과 봄에 그중 대부분을 회수한다.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사진 기억능력은 침팬지가 우리보다 우월하다. 인간은 인지할 수 없는 아주 짧은 시간의 사진도 침팬지는 캐치해서 기억할 수 있다. 공감능력, 평화적 해결능력 또한 보노보가 우리보다 우월할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진화 사다리의 꼭대기도 아니다. 인간이 대단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만 그동안 과학자들은 동물에 대해 너무 얕봤다. 동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인간은 놀라고 겸손해지리라.


 이 책에는 놀라운 사실들이 많이 쓰여져 있지만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동물들이 의인화된 모습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동물이 우리와 같이 생각을 하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아마 과학자들보다 일반인들이 훨씬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앞으로도 동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서 나를 놀래켜줬으면 좋겠다.  




 인간과 고등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차이는

 비록 크기는 하지만, 분명히 정도의 문제이지 종류의 문제는 아니다.


 -찰스 다윈(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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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1-05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란스 드 발의 책은 우리나라에 유독 많이 번역된 걸 보면, 애독자층이 두터운가봐요. 아직 읽지 못한 책인데, 항상 부지런하신 고양이라디오님 서재에서 리뷰로 먼저 만나고 갑니다!

고양이 라디오님, 놀라실 준비 되셨다니 동물행동학연구자분들 분주히!!^^

고양이라디오 2023-01-05 16:08   좋아요 0 | URL
프란스 드 발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많이 번역되었나요ㅎ? 저는 최근에 알게 된 분이라 몰랐네요ㅎ

얄라님도 항상 즐거운 독서하시고요^^
 
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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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에 출간되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몰고온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섭, 통섭하면서 통섭 바람이 불었습니다. 예전부터 관심있던 책인데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먼저 통섭이 도대체 뭔지 알아봅시다. 책을 봐도 통섭의 정의를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알라딘 책 소개에서 통섭에 대한 내용을 먼저 소개해 보겠습니다.



  책의 원제는 <Consilience>.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 를 뜻하는 말이다. 이를 '큰 줄기'라는 뜻의 통과 '잡다' 라는 뜻의 섭을 합쳐 만든 말, <통섭>으로 옮겨 제목을 달았다.

 

 제목이 단적으로 드러내듯 책은 '인간 인식/지식의 대통합'에 대해 논한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지식들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것이 주요 주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이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며, 이해란 본래 통합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지식이 갖고 있는 본유의 통일성이다. 지식은 과연 본유의 통일성을 지니는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을까 싶다. 나는 이것이 철학의 중심 논제라고 생각하다. 이 세상에는 다수의 진리가 존재하는가? 지식은 언제까지나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으로 나뉘어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영원히 각각의 진리 영역에만 예속되어 있을 것이가?"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저자는 여러 학문분야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는 지식들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을 철학, 종교, 과학에서 각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 지식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일관된 설명을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각각의 진리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 지식을 주고 받고 토론을 통해 통섭의 길로 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과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진화론에 입각한 생물학이 인간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밝혀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환원주의는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생물학에서도 물리학처럼 세포, 유전자, 분자 수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설명을 할 수 있는 환원주의적 이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큰 틀에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또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진화론을 기반으로한 생물학은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학은 진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론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환원주의적 과학관에는 조금 비판적입니다. 물론 환원주의적 과학관은 그동안 수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환원주의가 아니었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식과 기술들을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원주의의 한계와 부작용 또한 있습니다.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이 책에서 많이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생물학은 화학, 물리학과 다릅니다. 뇌의 복잡성은 우주의 복잡성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환원주의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창발성이 있습니다. 산소원자와 수소원자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이해해봐도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가 결합한 물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각기 다른 계에서는 각기 다른 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아주 먼 미래에는 에드워드 윌슨이 말대로 생명과 의식을 낱낱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DNA의 존재가 밝혀지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면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 하나하나 낱낱이 알게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와 우리의 특성들은 1대1로 대응되지 않고 유전자끼리의 상호작용,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등 그 복잡성의 늪에 파묻혔습니다. 물론 1대1로 대응되는 질병들을 밝혀내고 한걸음씩 한걸음씩 성과를 거두긴했지만요. 


 일단 이 책에 대한 제 입장은 과학을 중심으로한 통섭은 환영하나 생물학에서 환원주의의 승리는 요원해보인다입니다. 이 책에 대한 비판을 몇 가지 더 해보겠습니다. 


 첫번째,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라 학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 같습니다. 책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어려웠습니다. 예상 외로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니었습니다. 일반인들 보다는 학자들에게 통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책 같습니다.


 두번째, 번역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을 번역한 분은 전문 번역가가 아닌 거 같습니다. 과학자가 번역하다 보니 우리말로 매끄럽게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 기준에는 새로운 내용도 새로운 통찰도 별로 없어서 그다지 재밌게 읽지 못했습니다.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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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12-27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세에 비해 별로인 책 맞습니다. ㅋㅋ
번역자는 유명한 장대익 교수인데 당시 넘 어린 나이에 번역한 듯 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2-12-27 23:42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느낀 게 틀린 건 아니었군요ㅎ 명성에 비해 별로였어요ㅋ

짜라투스트라 2022-12-27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요새는 이 책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의 통섭은 과학의 영역이 다른 영역을 흡수하는 느낌의 통합이라고. 이건 동등한 의미의 통섭이 아니라 일종의 흡수 합병 느낌 아닌가요?^^;; 고양이라디오 님의 글을 보니 더욱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2-12-27 23:4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ㅎ 흡수 합병하려는 야심찬 시도ㅎㅎ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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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이었습니다. 5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로 통합되며 멋지게 어울어집니다. 


 과학이 가져온 번영과 파괴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실존 과학자들의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에 픽션을 곁들여서 선보입니다. 과학자들의 고뇌와 광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바깥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어떤 파괴와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무관심합니다. 원자와 우주의 원리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알아가고 있지만 인간의 광기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란츠 하버는 화학적으로 질소를 만들어 냄으로 인해서 인류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질소 비료 덕분에 농업생산성이 높아져 수억명의 사람이 기근을 면했고 인구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독가스는 전쟁에서 수백만명을 희생시켰습니다.


 독가스의 위력은 너무나 강해서 독가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곤충을 비롯한 어떤 생물체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국들은 다시는 독가스를 사용하지 말자고 합의합니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말자고 합의할 수는 없었을까요? 수많은 부상자를 몰고 온 싸움이 끝나고 "자, 우리 앞으로는 싸울 때 눈찌르기, 낭심차기는 하지 맙시다." 라고 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세계 3차 대전이 끝나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합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합의할 사람들이 남아있다면요.


 블랙홀을 처음 발견한 슈바르츠실트의 고뇌.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깨달은 하이젠베르크의 고뇌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포함해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직관과 너무도 다른 세상의 진리는 아인슈타인 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상대성이론에는 핵폭탄이 딸려 왔습니다. 양자역학에는 어떤 무시무시한 패키지가 따라올까요? 


 파괴적 종말 직전에 번영을 맞이하는 레몬나무, 연어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 인류의 번영이 종말의 전단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제게는 행복한 선물이었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번역되어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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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엄지>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그의 저서 <다윈 이후>를 재밌게 읽고 그의 책을 더 읽어봐야지 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다시 그의 책들을 읽고 싶습니다.


 아래에 이 책을 읽고 좋았던 부분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재밌었던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아주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만약 생물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의 생물에 선조의 여러 단계의 '흔적' 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미를 갖지 않는 과거의 흔적들, 즉 무용한 것, 기묘한 것, 특이한 것, 불균형한 것들이 역사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징후인 것이다. 그것들은 세계가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만약 역사에 끝이 있고 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면 그런 흔적들도 사라질 것이다 -p35


 창조론자들은 모든 생물 종이 처음 창조된 이래 변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이런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근거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는 진화의 가장 인상적인 결과, 즉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생물을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그는 기이한 것, 불완전한 것, 쓸모없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현재에는 필요없지만 과거에는 필요했으리라 생각되는 그런 흔적들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흔적들이 존재합니다. 


 

 자연 선택설은 자연계의 많은 사실로부터 능숙하게 귀납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또한 우연히 맬서스의 책을 읽은 덕분에 다윈의 잠재 의식이 촉발되어 번개처럼 떠오른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여러 곳으로 가지를 뻗었지만, 그 자체로 질서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의식적이고 생산적인 탐색의 결과였다. 그 탐색은, 다윈 자신의 생물학과는 거리가 먼, 여러 분야에서 얻은 놀랄 만큼 폭넓은 범위의 통찰과 자연학의 수많은 사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다윈은 귀납주의와 유레카주의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재능은 범속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비범한 것도 아니었다. -p85


 그루버는 다윈이 끊임없이 여러 가지 가설을 생각해 낸 다음 그것들을 시험하고 잘못된 가설을 폐기시켰고, 그 과정에서 결코 사실들을 이것저것 맹목적으로 긁어모으는 식으로 수집하지 않았따는 것을 보여준다. 다윈은 새로운 종이 처음부터 결정된 수명을 가진다는 개념을 포함하는 기발한 공상적 가설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종이 생존 경쟁의 세계에서 경쟁에 의해 멸종한다는 개념에, 가끔 멈추기도 했지만 점차 접근해 갔다. 다윈이 맬서스의 <인구론>를 읽었을 때 느꼈던 희열에 가까운 느낌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때 이미 그 조각 맞추기 퍼즐은 한두개의 조각만 더 맞추면 완성되는 단계에까지 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p86


 자연 선택설은 합리적인 경제를 추구한 애덤 스미스의 기본 주장을 생물학으로 창조적으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연의 균형과 질서는 고도의 외재적(신에 의한)통제나, 전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가지 법칙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오늘날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생식에서 각 개체가 거두는 성공의 편차에 따라 유전자를 미래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개체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p89


 5장 중용을 취한 다윈이란 글을 정말 멋졌습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과학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는 멋진 에세이였습니다.


 과학은 무수한 사실로부터 이론을 도출하는 단순한 귀납주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불현듯 천재적인 생각이 떠로르는 유레카적이지도 않습니다. 그 중간에 있습니다. 또한 창조성은 여러가지 분야의 새로운 사실들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과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의 기본 이념을 흡수했습니다. 



  만약 천재성에 어떠한 공통 분모가 있다면, 나는 관심의 폭과 여러 분야 사이에서 유용한 유사성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우선 꼽고 싶다. -p87

  

 무척 공감가는 말입니다. 저도 100% 동의합니다. 폭넓은 호기심은 천재의 징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통찰의 일차적 원인을 행운이라는 막연한 현상으로 돌리기 위해 이렇게 주장한다. 즉 다윈이 부유한 집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며, 비글 호에 동승하게 된 것도 행운이며, 우연히 맬서스 목사의 저서를 읽게 된 것도 행운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시기적절하게 적재적소에 있었던 것뿐이다. 그렇지만 사물을 이해하려고 애쓴 다윈의 개인적인 고투, 그의 관심과 연구의 폭넓음, 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탐구의 방향성 등에 대한 많은 문헌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루이 파스퇴르가 "준비된 사람에게는 운이 따른다." 라는 유명한 경구를 만들어 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p90 



 아래는 저자가 도킨스의 이론에 대해 비판한 글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도킨스는 앙숙이였습니다. 진화론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견해가 상충했습니다. 저는 한 때 도킨스의 책만 읽어서 도킨스의 주장만을 받아들였었습니다. 굴드의 책을 읽으니 도킨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견해는 굴드 쪽에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결국 나는 도킨스의 이론이 주는 매력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몇 가지 악습(우리가 원자론, 환원주의, 결정론 등으로 부르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체란 모두 '기본' 단위로 분해시킬 때에만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 방식, 미시적 단위가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거시적 결과의 거동을 낳으며,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리고 모든 사건이나 사물은 명백하고 예측 가능하고 결정론적인 원일을 가진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몇 개의 작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과거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단순한 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유효했다. 지금 나는 가스 스토브의 손잡이를 돌리면 불이 붙을 것이라고 확신한다.(실제로 불이 붙는다.) 여러 가지 기체 법칙은 분자에서 시작해서 그것보다 큰 예측 가능한 부피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생물은 서로 합병한 유전자들 이상의 무엇이다. 생물은 역사라는 중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몸의 여러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 생물의 몸은 협동하며 작용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선택에 노출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된다. 물과 그것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분자들이라는 비유는 몸과 유전자의 관계와는 빗댈 수도 없는 형편없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나 자신의 운명에는 정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전체성에 대한 나의 직관은 생물학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p125



 아래는 과거의 잘못된 과학들을 비판하는 글 중에 좋았던 부분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시각으로 우생학이나 골상학을 어리석은 해프닝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판단하면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시점에서 다시 이해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들, 믿고 있는 사실들이 먼 훗날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사실또한 명심해야 됩니다. 아래의 해프닝이랑 과거의 인류학자들은 뇌의 크기가 지능에 비례한다고 보았고, 그로 인해 동료 학자 모자의 크기를 지능의 판단 근거로 보고 벌어진 격론을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보연 이 이야기는 한바탕 웃어넘길 해프닝처럼 들린다. 프랑스 최고의 인류학자들이 세상을 떠난 동료 학자의 모자가 가지는 의미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였다는 사실은 역사에 대해 가장 범하기 쉬운 위험한 추론, 즉 과거를 소박한 얼간이들의 영역으로 보고, 역사의 글을 진보로 보고, 그리고 현재를 세련되고 개화된 세계로 보는 관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이야기를 그저 비웃어 넘겨 버리면 우리는 결코 사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옛날의 지적인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문제에 엄청난 정력을 기울였다면, 잘못된 것은 그들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지 그들의 왜곡된 인식 자체가 아니다. -p200 



 절반을 읽고 좋았던 부분들을 소개했습니다. 나머지 절반 재밌게 읽고 재밌난 이야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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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동물에게서 인간 사회를 읽다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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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속이 시원해지는 책이었습니다. 간혹 과학책을 읽다보면 동물의 감정과 의식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의 글을 접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분명 이 생각은 틀렸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저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과학자를 만나진 못했습니다. 


 물론 신중해야겠지요. 특히 아직 의식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관찰, 실험, 합의가 필요합니다. 의식이 무엇인지도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하는 상황인데 동물의 의식에 대해 논하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각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계획하고 판단하는 등의 다양한 정신활동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들 또한 비슷하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유추의 손은 동물에게 까지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는 동물도 의식이 있다는 쪽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갑자기 인간에게서만 의식이 생겨났다고 보는 쪽보다 의식은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다고 보는 쪽이 더 타당합니다. 


 특히나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동물이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당연한 사실들에 눈돌리고 있었습니다. 동물이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패러다임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데카르트로 이어졌고 스키너의 행동주의로 인해 더욱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전학, 뇌과학, 뇌를 직접 촬영할 수 있는 MRI 등의 발전에 힘입어 동물들도 감정이 있다는 관찰과 증거들이 많이 쌓였습니다. 더는 동물을 자동기계장치가 아닌 우리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생명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더이상 동물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실험실이나 사육장에서의 동물들의 처우, 도축과정, 동물원, 심지어 이제는 물고기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압니다. 물론 우리는 잡식 동물이고 자연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있고 또 필요 이상으로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논리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아직 육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지만 비용이 더 비싸더라도 동물들에게 더 나은 환경이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을 지지하고 존경합니다.


 예전에 제인 구달의 <인간의 그늘에서>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점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포옹하고 키스하고 흥분하면 포효하고 뛰고 가슴을 두드리고 등등 너무나 많은 행동이 인간과 유사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입니다. 그래서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침팬지, 원숭이들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99% 유전자를 공유합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점보다 차이점을 찾는 것이 더 빠릅니다. 침팬지는 무리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침팬지들의 사회생활을 보면서 인간의 사회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최근에는 보노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보노보는 폭력이 거의 없는 평화로운 종입니다. 한 때는 우리 인간을 침팬지와 많이 비교해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종의 모습으로 많이 묘사했는데 이제는 인간은 이타적인 종으로 생각하고 보노보와 많이 비교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동물들의 영상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특히 사자, 호랑이, 늑대 등의 육식동물이 인간 혹은 다른 동물들과의 우정어린 모습을 담은 영상을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인간을 부둥켜 안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혹자는 '저런 육식동물들의 우정도 굶주리면 끝이다.' 라는 식으로 폄하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다를까요? 우리가 굶주리고 먹을 게 없어 죽기 직전의 상황이 오면 과연 우리의 작고 귀여운 반려동물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동물의 감정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 감동적이고 신기한 동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추천드립니다!



 p.s) 별점 4.5점을 주고 싶은데 0.5점이 없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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