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틱 29호>에 소개된 책과 글들을 살펴보려한다. 



 















 <마음을 바꾸는 방법>, 유발 하라리, 조던 B. 피터슨, 팀 패리스, 올리버 색스의 추천사가 있는 책이라 관심이 간다. 금지된 마약이었던 약물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약물로 부활했는지에 관한 책이다.



 문턱아래자극이란 개인의 의식적 지각을 위한 문턱 값보다 낮은 감각 자극을 말한다. "팝콘을 먹어라" "코카콜라를 마셔라" 같은 문구를 영화 상영 중에 짧은 순간 번쩍이게 하면 제품 판매가 증가한다고 시장 분석가 제임스 비카리는 주장했다. 그러나 문턱아래자극 광고가 행동 변화를 일으킨다는 증거는 매우 빈약했고 지금도 그렇다. 제임스 비카리는 5년 뒤 자신이 연구를 날조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연방 통신 위원회는 효과와 상관없이 문턱아래자극을 사용한 방송은 기만적이라는 이유로 이런 광고를 금지했다. 


 지금까지 문턱아래자극 광고가 효과가 있는 줄 알았다. 여러 자기계발서나 기타 책들에서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예시로 많이 드는 예였는데 알고보니 날조였다니. 간혹 과거의 유명한 연구나 일화가 실은 거짓이고 날조고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후라는 분의 글이 좋아서 그의 책이 읽어보고 싶다. 글을 재밌게 잘 쓰신다. 



  우리는 이제 먼지와 기체 구름이 합쳐져 형성된 별과 행성이 태양계를 이루기까지 몇 백만 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은하에서만 이런 현상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우리 우주에서는 매초 1000개의 태양계가 새로 탄생한다는 뜻이다. -p214


 우주의 규모는 항상 상상을 초월하고 경탄하게 한다. 1초 마다 천 개의 새로운 태양계가 탄생한다니. 상상도 안되는 스케일이다. 


 

  대략적으로 설명해보면 베이즈 추론은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를 나타내며, 증거를 기반으로 주장이 참일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추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p217



  이망증이란 철새가 이주 시기에 보이는 불안 행동을 말한다. (중략) 이망증의 유전율은 무려 0.72에 이른다. 타고난 이주 본능, 타고난 역마살이다.-p252


 인간에게도 유목 생활과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농업혁명 이전에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동물이었다. 유목 생활과 역마살에 대한 재밌는 글이었다. 



 <스켑틱 29호> 재밌었다. 집에 사놓은 스켑틱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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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모사하는 회화는 카메라의 등장 이후 존재 가치가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화가의 감정이나 인상이 중요시 된다. 미술가들은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색깔, 독특함이 있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었나 싶다. 그 과정 중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나오게 된다. 미술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게 된다. 미술은 점차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것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것이 각광받는다. 


 "나는 '아름다움' 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회화는 탐구이며 실험일 뿐이다." -피카소, p255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다. 일반적인 대중의 시각을 봤을 때 피카소부터는 내게 아름다운 미술로 느껴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봤을 때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가 떠오르는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르셀 뒤샹은 자신의 풍자적인 정신을 미술에 접목시킨다.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한 거 까진 좋다고 본다. 다양성에서 존중한다. 하지만 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이 그런 쪽으로 가버린 것은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 미술은 대중과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버렸다.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야수주의에서 입체주의로 넘어오면서 '회화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 이라는 관념이 깨지게 되죠. 그리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회화를 만들겠다는 '개념 만들기 놀이' 가 됩니다. 그렇기에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2> 같은 그림을 볼 때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 즐거움보다 신선한 지적 충격을 느끼는 즐거움을 받게 되는 거죠. -p319


 예술가는 자신이 연마한 손기술을 바탕으로 회화 혹은 조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고정관념으로 보고 거부합니다. 회화도, 조각도 안 한다? 뒤샹은 인류 탄생 이후 존재한 적 없는 미술을 창조해내려고 합니다. 그는 손재주가 아닌 '머리로 하는 예술' 의 가능성을 어렴풋이 발견한 것입니다. 예술가의 기술력이 아닌 사고력으로 예술을 하려고 합니다. -p324


 

 독서모임을 하면서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다. 역시나 모두 반 고흐, 모네 같은 봤을 때 아름다운 그림을 좋아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일반 대중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선호하진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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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11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의 감상은 정말 어려워요. 미술 전공 출신이 아니면 더더욱 그렇지요.ㅠㅠ

고양이라디오 2023-06-12 11:14   좋아요 0 | URL
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현대미술은 모르면 전혀 안보이는 거 같아요ㅠㅋ
 


















 불운은 어떤 식으로든 파울리를 따라다녔다. 동료들 사이에, 특히 실험물리학자들 사이에, '파울리 효과' 라는 말이 유행했다.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이론이 하나 있다.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 사이에 '천재 보존의 법칙' 이 적용된다는 이론이다. 천재 이론가가 한 명 있으면, 멍청한 실험가가 한 명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파울리는 이 이론의 살아 있는 증거이다. 그의 천재성은 모두 이론 쪽에 쏠려 있다. 파울리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뭔가가 깨진다는 미신이 자리를 잡았다. 파울리가 천문대를 방문하자, 갑자기 거대한 굴절망원경이 고장 났다. 한 번은 괴팅겐의 한 실험실에서 원자를 연구하기 위한 복잡한 실험 장치가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망가졌다. 실험가들이 놀랐다. 파울리는 지금 멀리 스위스에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실험실 책임자가 취리히의 파울리 주소지로 이 사건에 대한 익살맞은 편지를 보냈다. 덴마크 소인이 찍힌 답장이 왔다. 파울리는 코펜하겐에서 잡장을 쓴 것이다. 실험 장치가 고장 난 바로 그 순간에 파울리가 탄 기차가 괴팅겐역에 정차해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가는 실험실 문이 잠겨 있을 때만 파울리와 얘기했다. 자신의 실험 장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p354


 예전부터 '파울리 효과'는 참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였다. 물리학자들도 미신을 믿었다니 왠지 더 귀엽다. 실제로 '파울리 효과'는 굉장히 유명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수에 사로잡혀 있다. 파울리는 종종 알파로 표기되는 전자기력의 강도를 나타내는 우주의 기본값, 미세구조 상수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그의 스승 조머펠트는 그것을 1/137이라고 기록했다. 왜 하필 137일까? 누가 또는 무엇이 알파를 그렇게 지정하여 원자와 붕괴가 붕괴하지 않게 했을까? 

 137! 융은 이 수를 카발라에서 보았다. 그렇다. 137은 카발라다! 히브리어의 모든 알파벳은 수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카발라' 라는 단어의 알파벳을 합하면 137이 된다. 융과 파울리는 그것이 우연일 수가 없다고 믿었다. -p366 


 (중략) 그리고 1958년 12월 5일 극심한 위통으로 적십자병원에 이송되었고, 병실 번호를 본 파울리가 외쳤다. "137호야! 살아서 나갈 수 없겠군." 그는 열흘 뒤에 사망했다. -p367


 파울리에 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파울리는 정신과 상담을 위해 융을 방문했다. 둘은 137이라는 숫자에서 물리학과 유대교 신비주의의 연관성을 보았다. 둘은 <자연의 해석과 정신>이라는 책을 같이 썼다. 어떤 책일지 궁금하다. 


 
















 1945년 8월 6싱 라침, 히로시마에 햇살이 비친다. 8시에 25만 명의 시민 대다수가 아침을 먹고 신문을 읽고 출근을 하거나 등교했다. 분홍색 불빛이 하늘을 밝히고 나자 8만 명이 즉사했다. -p474


 찬란했던 양자역학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쳐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책은 1945년으로 막을 내린다.



 아래는 이 책의 에필로그 마지막 글이다. 


 양자역학은 누구도 혼자 힘으로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기이한 이론이였다. 그들은 양자역학을 탄생시키기 위해 협력하고 경쟁하고 친구이자 적이 되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썼던 편지, 메모, 연구 논문, 일기, 회고록에서 양분을 얻어 이 책이 탄생했다. 

 진짜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언젠가 끝난다. 이 책의 물리학자들은 1945년 이후에도 계속 활동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에 견줄 만한 진보를 더는 이루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공식을 찾고자 했다. 하이젠베르크 역시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100년 전에 세운 그들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굳건히 서 있고, 우리의 컴퓨터칩과 의료장비 안에 들어 있고, 당시 이런 이론의 해석을 두고 그들이 겨뤘던 논쟁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심에 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제기한 이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회의적인 물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이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p479 



 뉴턴의 중력 법칙이후 200년의 시간이 흘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나왔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다. 앞으로 이만큼 거대한 이론, 세계들 변화시킬 이론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상상하긴 힘들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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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미술 관련 책을 읽는다. <방구석 미술관>은 3년 연속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한다. 베스트셀러라 그런지 책 제목을 많이 들어봤다. 19세기에서 20세기 서양미술가들의 이야기와 작품,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룬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미술 입문서이다. 

 


˝지금 나는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 곡물 창고로 가서 목을 매는 게 낫지 않은가 매일 자문한다. 그림만이 나를 지탱해준다.˝

-p155


˝내 그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이젠 명성을 기대하지 않아. 모든 것이 암담한 지경이고 무엇보다도 나는 여전히 빈털터리야. 좌절과 치욕, 기대 그리고 더 큰 좌절.˝ -p208


 첫 번째는 고갱의 말이고 두 번째는 모네의 말이다. 둘 다 미술을 시작하고 10년 후에 한 말이다. 10년을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둘 다 인정을 받지 못하고 좌절한다. 다행인 건 좌절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둘은 그림에 대한 열망이 컸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회화는 탐구이며 실험일 뿐이다." -p255 


 피카소가 한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한 피카소를 혐오한다.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피카소가 시작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과 멀어진. 그 후 현대미술은 정말 아름다움과 결별하고 탐구와 실험이 되어갔다. 나는 아름다운 미술이 좋다. 반 고흐와 모네의 그림이 좋다. 


 아직 예술가 두 명이 남았지만 미리 페이퍼를 쓴다. 혹시 추가할 게 있으면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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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은 막스 플랑크로 인해 시작된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다. 그가 한 교수에게 음악대학의 전망을 묻자 퉁명스럽게 생각을 바꾸라고 이야기했다. 막스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자 아버지가 그를 물리학교수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하지 말라고 열심히 설득하는 사람이었다. 뉴턴의 운동법칙, 에너지 보존법칙의 발견이후 물리학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학문이고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시각이 그 당시 팽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스 플랑크는 이런 물리학이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막스 플랑크는 혁명가라기보다 공무원같은 인물이었다. 막스는 양자를 발견했지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막스 플랑크는 양자에서 다시 벗어나려고 수년간 노력했다. 영국의 존 윌리엄 스트럿, 제임스 진스, 핸드릭 로렌츠 같은 다른 물리학자들도 양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들은 에테르의 연속체를 믿었다. 그들은 뉴턴과 맥스웰을 믿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유지될 것이다. -p29  



 시간은 흘러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관한 재미난 사실이 있어서 이야기해본다. 1918년 세계 1차대전시기에 세계를 강타한 독감이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5천만명이 이 바이러스로 인해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지만 그 당시 스페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전쟁 선전과 보안 검열이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신문만이 전명병 기사를 낼 수 있었다. 



 아래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재미난 일화이다. 3년 만에 조우한 두 사람은 만자나마다 물리학에 관한 대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전차를 타고 보어의 연구소로 향하는데 이야기에 몰두하느라 계속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보어는 나중에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전차를 타고 같은 구간을 여러 번 오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중에 없었다." -p150  

 

 두 천재의 집중과 몰입을 보여주는 재미난 일화이다. 


 

 아래는 디랙에 관한 재미난 일화이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디랙은 자폐 성향이 있었다. 


 하루는 식사 도중 어떤 사람이 디랙과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 휴가 때 어디로 갈 생각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후식을 먹은 뒤에 디랙이 되물었다. "그게 왜 궁금합니까?" 타인의 관심이 싫어서 이렇게 대꾸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일에 관심이 있을 수 있는지 그로서는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디랙은 스몰토크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원자와 특수상대성이론이다. 그리고 위대한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p190


 디랙은 뛰어난 수학자였다. 나도 스몰토크 감각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디랙에게 공감이 됐다. 



 책을 보면 재밌게도 세계의 모든 의견은 대립하는 거 같다. 물리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 때 기분이 상한다.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지만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아래는 파울리가 슈뢰딩거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의 내용이다. 

 

 "친애하는 슈뢰딩거 교수님, 부디 날 비난하진 마십시오. 당신의 이론은 아주 멋집니다만, 세계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티끌만큼도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곧 인격인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p250  



 아래는 다시 디랙에 관한 글이다.


 디랙은 코펜하겐에서 단 세 가지 표현으로 대부분의 대화를 해결했다. "네", "아니요.", "모릅니다." 그는 거의 이마누엘 칸트처럼 매우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일주일에 5일은 이론을 작업하고, 토요일에는 기술 프로젝트를 작업했다. 일요일에는 트레킹을 했다. 매주 똑같은 리듬이 다시 반복되었다. -p259



 아래는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논문으로 쓴 후의 이야기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논문으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물리학의 토대라고 여겼던 인과성을 흔들었다.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인과법칙의 명확한 진술에서 틀린 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현재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전자의 미래 위치와 속도의 가능성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통해 인과법칙의 무효성이 명확히 입증된다." 논문의 마지막 문장이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한 시공간혁명에서 감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못했었다. 한때 뉴턴이 상상했던 시계태엽 우주는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는 이마누엘 칸트의 문장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p28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물리학 세계를 굳걷히 지탱했던 인과법칙이 양자의 세계에서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가 없다.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아래는 물리학자들의 모임인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의 발표이다. 


 아인슈타인이 조심스럽게 발표를 시작했다. "나는 양자역학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깊이 숙고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몇 가지 일반적인 언급만 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그는 나중에 한 친구에게 "일반상대성이론보다 양자 문제를 100배나 많이 숙고했다" 고 털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약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잘못 알았다. 그는 양자역학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다. 그는 그것이 불완전하다고 여겼기에 단지 동의하지 않았을뿐이다. -p317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론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둘 중 하나다.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양자역학은 현실세계에서 아주 잘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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