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읽고 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나 신기하고 인상적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그 때의 느낌이 안나서 아쉽다.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올리버 색스는 책 속에서 자신의 책 이야기를 참 많이 한다. <깨어남>이 많이 언급되서 읽어보고 싶다. 















 <깨어남>은 어떤 하나의 병으로 인해 발생한 혼돈의 '복구와 재통합'을 묘사한 연구이다. -p24 





 자체츠키와 P선생은 모두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의 가장 안타까운 차이는 루리야가 말한 것처럼 자체츠키는 '그 지옥 같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잃어버린 자신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싸운' 반면에 P선생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비극적일까? 둘 중 누가 더 지옥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일까? 상황을 알고 있는 쪽?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쪽? -p40


 자체츠키에 대한 설명을 찾아봤는데 못 찾겠다. P선생은 얼굴인식불인증에 걸린 남자다. 시각은 문제가 없다. 세세한 부분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한 차원 높게 종합해내지는 못한다. 눈, 코, 입, 귀 등 하나하나를 보고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 얼굴을 전체적으로 보고 누구인지 모른다. 더 나아가 얼굴과 모자를 헷갈릴 정도이다. 자신의 잃어버린 능력을 인식하는 쪽과 인식하지 못하는 쪽 어느 쪽이 더 비극적일까?


 

 따라서 P선생의 사례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에게 던져진 하나의 경고이자 우화일 수도 있다. 판단이나 구체적인 것, 개별적인 것을 등한시하고 완전히 추상적이고 계량적으로만 변해가는 과학이 장차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경고 말이다. -P46 


 P선생의 사례를 과학에 대한 경고로 인식하는 부분이 좋았다. 학문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통섭이 필요하다.



 그들 대부분은 건강 숭배자이거나 비타민제 광신자들로, 비타민B6(피리독신)를 엄청나게 복용한 사람들이다. 현재 몸이 없어진 채 살아가는 환자는 남녀 수백 명에 달한다. -p102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한 감각이 있다.우리는 눈을 감아도 우리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다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를 고유감각이라고 한다. 비타민B6를 과다복용하면 이런 감각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신체장애인이 아무리 늦게 어떤 능력의 습득에 나선다 해도 그들에게 놀라운 가능성이 펼쳐진다는 것을 그녀의 사례가 웅변적으로 입증했다. 앞도 보지 못하고 마비 증상까지 있었던 여성, 세상과 단절된 채 무기력하게 일생을 과보호 속에서 지낸 이 여성의 내면에 놀라운 예술적 천성의 씨앗이 숨어 있었고, 그 씨앗이 60년 동안이나 동면 상태로 시들어 있다가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답게 활짝 꽃피우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p119

 

 <매들린의 손>이라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뇌 가소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설득력이 없어요. 문장이 엉망이고 조리도 없어요. 머리가 돌았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p151 


 <대통령의 연설>이란 에프소드가 가장 재밌었다. 위에 글은 음색인식불능증 환자가 대통령의 연설을 보고 느낀 점이다. 은색인식불능증이란 목소리에 담긴 감정, 희노애락을 판단할 수 없다. 말을 하는 상대방의 얼굴과 태도, 움직임도 볼 수 없다. 때문에 오로지 서술적인 문장만을 이해할 수 있다. 



 



 











 색스가 자주 인용하고 존경하는 신경학자가 있다. 그는 루리야이다. 그가 쓴 두 권의 임상기록이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과잉에 대해서,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더 재밌다고 한다. 색스의 책말고 그가 추천하는 책을 보고 싶다. 휴, 도서관에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루리야의 저서가 없다. 아쉽다.



 레이가 낙담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틱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엔 뭐가 남나요? 전 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 하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p172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인 주중에는 할돌 덕분에 '성실하고 분별력 있고 반듯한' 사람이 된다. 그의 말마따나 '할돌 인간' 이 되는 것이다. 동작과 판단도 느긋하고 신중해진다. 할돌을 투여받기 이전의 조급한 성격과 성급한 행동도 사라진다. 그러나 즉흥성과 영감도 함께 사라진다. 심지어는 꿈도 완전히 달라진다. (중략) 그토록 민첩하던 두뇌회전도 느려지고 대답도 느릿느릿 한다. -p175


 레이의 익살스러움, 음악성, 빠른 반사능력, 뻔뻔함, 용기, 외설스러움 등은 틱 증상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다음 에피소드 <큐피드 병>도 레이와 비슷하다. 신경매독에 걸린 89세의 노인은 행복감과 건강함을 느끼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이다. -p187  

 

 앞으로 우리는 과학의 발전으로 손쉽게 우리의 행복감을 증가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 때 우리의 선택은?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기억의 천재 푸네스' 라는 소설이 있는 거 같다. 보고 싶다.



 우리가 개가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려면 아마도 억제가 필요할 것이다. -p269

 

 <내 안의 개>라는 에피소드도 상당히 기억에 남았다. 약물 복용으로 후각이 과민해진 남자의 이야기다.



 "후각?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보통 때 누가 그런 게 있다는 걸 의식이나 하겠어요? 하지만 막상 후각을 잃고 보니, 눈이 보이지 않는 거랑 똑같았어요. 인생의 맛을 꽤 많이 잃어버렸지요.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냄새에 얼마나 많은 '맛'이 있는지를. 사람들 냄새를 맡고, 책 냄새를 맡고, 도시 냄새를 맡고, 봄 냄새를 맡지요. 물론 의식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모든 것의 뒤에는 온갖 풍요로운 냄새가 있답니다. 그렇듯 풍요로운 세상이 어느 날 아주 빈곤한 세상으로 돌변해버린 거예요." -p270 

 

 나는 오감 중 하나를 잃는다 후각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에 위 글을 읽고 나니 조금 고민이 된다. 

 

 

 아직 100p가 남았다. 내일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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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6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30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동안 습관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 필요성과 방법을 안다고 해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계속 꾸준히 노력해야할 일이다. 이 책 생각보다 좋았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다음 작품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도 읽어봐야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할 일을 전날 저녁에 준비해두면 좋다. 이것은 애쓰고 있는 나를 위해 앞질러 가서 준비해두는 것이다. '지금도 잘하고 있네.', '수고했어.' 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p168


 참신한 발상이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준비해두는 것. 항상 미래의 나에게 미루고 책임을 전가했는데 앞으로 마인드를 좀 바꿔야겠다. 


 

 자신과의 약속을 가장 중요한 친구와 한 약속이라고 생각하자. -p181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과의 약속을 정말 잘 지키는 거 같다. 자신과의 약속을 가장 중요한 친구와의 약속이라 생각해보자. 역시 좋은 발상이다.



 달리기 기록이 빠른 것과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별개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눈물이 난다. 운동이 서툰 그 여자아이는 가슴이 터질 듯한 상태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다. -p272

 

 저자는 <운동화를 신의 뇌>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데 사뭇 감동적이다. 운동이 서툰 11세 여자아이에게 심박계를 붙여 달리게 했다. 기록은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심박수를 보면 그 여자 아이는 최선을 다해 최대 심박수까지 뛰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항상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녀는 달리기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분명 다른 부분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운동선수나 음악가, 학자 등 전 세계의 상위 플레이어들을 연구한 안데르스 에릭슨은 초일류 중에서 연습이 즐겁다고 답한 사람이 단 1명도 없다고 말했다. -p285 


 연습은 누구에게나 고되고 힘든 것이구나 싶다.



 '하지 않을 일'을 먼저 정한다

 '신호'와 '보상'을 구체적으로 정한다

 핵심습관을 공략한다

 시작하기 전에는 의욕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초기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목표는 말도 안 되게 작게 정한다

 지금 당장, 오늘부터 시작한다

 '어른의 시간표' 를 만든다

 날을 정해서 행동한다

 중간 단계마다 촘촘히 보상을 준다

 조금 멈추더라도,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충분히 휴식하되,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면서 쉰다

 '목적'과 '목표'를 혼동하지 않는다

 습관이 몸에 붙으려면 반드시 실패를 거쳐야 한다

 습관이 자리 잡았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항상 실패하지만 계속 시도해보자. 24년 좋은 습관 만들기! 이 책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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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비판할 부분들에 포스트 잇을 붙였다. 비판할 부분들이 많은데 옮기기는 귀찮아서 그냥 책에서 좋았던 구절들만 적어 둔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강사 에드 바티스타Ed Batista의 말처럼,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되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 P156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것을 ‘미학적‘ 모드에 있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새로움만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모든 것이 재미있거나, 반대로 지루하다고 느낀다. - P203

우리가 소지한 또 다른 무기는 장거리 여정을 단계별로 쪼개서 생각하는 방법이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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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씨의 책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유명 미니멀리스트입니다. 미니멀리스트와 습관은 상당히 어울립니다. 


 습관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때 마다 조금 알 거 같았고 바뀔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을 열심히 만들어도 어느 샌가 금방 나쁜 습관이 자리를 잡습니다. 뭐, 어쩔 수 없습니다. 계속 투쟁하는 수 밖에. 평생의 숙제입니다. 나쁜 습관을 줄이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 


 



 어느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간이 하루 7시간 이상일 때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정말 뼈저리게 동감한다. 시간적인 여유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는 행복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것도 과도하면 행복에서 멀어진다. 

 부자유에서 벗어난 뒤에는 자유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게으름은 즐겁지만 괴로운 상태다. 행복해지려면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p17


 저도 자유시간이 많으면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어느 정도 일상의 루틴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결핍이 필요합니다. 


 

 뇌 속의 세로토닌을 일시적으로 증감시킨 실험에 따르면 세로토닌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눈앞의 보상에 집착하고, 세로토닌이 많으면 나중에 받을 보상을 기다린다고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불안한 상태가 되면 의지력이 사라져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p37 


 세로토닌에 대한 책 한 권 읽어봐야겠습니다.


 

 뇌의 신경회로는 무의식이라는 무대 뒤에서 신문기자처럼 방대한 정보를 긁어 모으고 있다. 그리고 요약된 정보만 신문처럼 의식에 배달된다. -p59


 의식이란 신문과 같다는 비유가 참 와닿습니다. 수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그 중에서 중요한 정보만이 신문에 실리듯 우리 몸 속, 우리 뇌 속에도 수많은 정보가 처리되지만 중요한 정보만 의식에 떠오릅니다.



  "코는 언제나 보이는 데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p60


 생각보니 항상 코는 우리 눈에 보이는 데 우리는 그것을 의식 못 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습관의 3가지 요소는 신호, 반복행동, 보상이라고 했다. -p70


 좋은 습관을 만들거나 나쁜 습관을 없애려고 할 때 습관의 3요소를 꼭 기억해고 활용해야 합니다. 



  "내 자식의 습관이 돼도 좋은가?" -p92


 저는 자식이 없지만 나쁜 습관을 행할 때 머리 속에 떠올려봐야겠습니다.



 네가 버린 것, 버리려고 하는 것의 크기를 보면 네가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의 크기도 알 수 있다. 

 -만화 <신들의 봉우리> 중에서


 멋진 구절입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전반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p119 


 앞으로 '나는 원래 그래.' 라는 말을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조금 일찍 잠에서 깨면 좀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모든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122


 요즘 점점 더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점점 지각하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정말 정신 차려야겠습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의욕이 나지 않는다. 뇌의 측좌핵이 활동하면 의욕이 생기는데, 측좌핵은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p131


 아마 다들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의욕이 없다가 일단 활동하면 의욕이 생기는 것을. 저는 매일 이것을 경험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말 아무 의욕이 없습니다. 하지만 샤워를 하면 의욕이 생깁니다!



 일단 올해의 목표는 매일 달리는 습관입니다. 매일 못 달려도 괜찮습니다. 아프거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거나 하면요. 하지만 의식 한 구석에는 "매일 달린다." 가 저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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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입니다. 주위에 강력히 추천하고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달릴 때에는 대체로 록 음악을 듣는다. 때로는 재즈를 듣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달리는 리듬에 맞추는 걸 생각할 때, 역시 반주 음악으로서는 록이 가장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나 고릴라즈라든가, 제프 벡이라든가 또는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비치 보이스 같은 오래된 음악. 되도록 심플한 리듬의 음악이 좋다. -p33


 예전에는 달릴 때 뭐 하나라도 더 지식을 얻고 싶어서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를 들었습니다. 그게 습관이 되서 최근에 달릴 때에 유튜브를 듣거나 했습니다. 그러다 하루키의 위 글을 보고 달릴 때 음악을 들었는데 좋더군요! 확실히 록 음악이 좋은 거 같습니다.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누가 그런 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다지 머리가 좋은 인간은 아니다. 살아 있는 몸을 통해서만이, 그리고 손에 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야만,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일단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꿔놓아야만 비로소 납득을 할 수 있다. 지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적인 인간인 것이다. 물론 조금쯤의 지성은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전혀 없으면, 아무리 뭐래도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 순수한 이론이나 도리를 조립해서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이른바 사변을 연료로 해서 전진하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매달리고,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단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 -p58


 최근 <전념>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전념을 다하다가 언제 그만두어야할 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간혹 TV나 주위에서 10년 혹은 몇 십년이상 고시공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오싹합니다. 저도 쉽게 단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만약 제가 고시공부를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면 계속 붙들고 있을 거 같기 때문입니다. 전력을 다해서 매달리고,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단념한다. 단념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머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45 

  

 아마 이 책에서 베스트 문장이 아닐까 싶다. 오늘 런닝머신을 달리려고 했는데 이 글을 보니 야외에서 달리고 싶다.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달려보고 싶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때 강요받는 일을 예전부터 참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면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했다. -p62 

 

 저도 비슷한 성향입니다. 왠지 하루키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마다 위안이 됩니다. 



 가게를 경영하고 있을 때도 대체로 같은 방침이었다. 가게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그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상당히 좋은 가게다, 마음에 든다, 또 오고 싶다'라고 생각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열 명 중에 한 명이 단골이 되어준다면 경영은 이루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 '한 사람' 에게는 철저하게 마음에 들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경영자는 명확한 자세와 철학 같은 것을 기치로 내걸고, 그것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비바람을 견디며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가게를 경영하면서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이었다. -p66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면, 나는 '오늘은 달리고 싶지 않은데' 하고 생각했을 때는 항상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너는 일단 소설가로서 생활하고 있고, 네가 하고 싶은 시간에 집에서 혼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만원 전철에 흔들리면서 아침저녁으로 통근할 필요도 없고 따분한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다.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비하면 근처를 1시간 달리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는가? 만원 전철과 회의의 광경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의지를 복돋아 러닝슈즈의 끝을 고쳐 매고 비교적 매끈하게 달려 나갈 수 있다. '그렇고말고.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야'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하루 평균 1시간 달리는 것보다 혼잡한 전철을 타고 회의에 참석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할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 것뿐이다. -p76


 저도 의지를 복돋우기 위해서 하루키식으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103


 하루키씨는 아테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합니다.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 않았다고 합니다ㅎ 그걸 저렇게 멋진 문장으로 표현하다니요ㅎ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p116 


 올해 매일 달리려고 마음 먹었는데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리고 컨디션이 안좋아서도 쉬었고 게으름 때문에 쉰 적도 있었습니다. 쉴 이유는 정말 한 트럭있는데 달려야할 이유는 소금 알갱이 하나만큼 밖에 없습니다. 위 글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는 천성적으로 '종합적 경향' 같은 것이 있어서, 본인이 그것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정도이다. 경향은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천성이라고 부른다. -p130 

 

 천성이 곧 유전자가 아닐까요.



 어제는 롤링 스톤스의 <베거스 뱅큇>을 들으면서 달렸다. <심퍼시 포 더 데빌>의 예의 '후후'라고 하는 펑키풍의 백코러스는 달리는 데 실로 안성맞춤이다. (중략) 스 전날에는 에릭 클랩튼의 <렙타일>을 들으면서 달렸다. -p147


 달리기를 할 때 들어봐야겠습니다.


 

 무리를 해서 계속 달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걷는 쪽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주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다리를 쉬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걷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위한 휴식은 확실하게 취했다. 그러나 걷지는 않는다.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건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그 때문에 - 그 목적 하나를 위해 - 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일본의 북녘 끝까지 날아온 것이다.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p172 


 하루키는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안주합니다. 기록은 11시간 42분. 그는 결코 걷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정한 규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 할지라도. 



 다만 이것만은 꽤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좋아, 이번에는 잘 달렸다' 라고 하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라는 점이다. 신체가 나에게 허락하는 한 가령 꼬부랑 영감이 되어도, 가령 주위 사람들이 "무라카미 씨,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 라고 충고해도 아마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설령 기록이 더 떨어진다 해도 나는 아무튼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목표를 향해서 예전과 같이 - 때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 -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전갈이 쏘는 것처럼,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원앙이 서로를 갈구하는 것처럼. -p228 


 아니 이렇게 멋진 비유로 글을 마무리하는 건 반칙아닙니까? 그후로도 계속 명문장이 이어집니다.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p246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오늘의 레이스를 내가 진심으로 즐겼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 자잘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그렇지만 나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고, 그 노력의 보상 같은 것이 아직도 몸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p255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p256 


 저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 과정을 즐겼다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분명 남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글을 끝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이 책을 읽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휸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p258-259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제 좌우명으로 삼고 싶습니다. 올 한 해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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