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짧은 글이었지만 무척이나 좋았다. 하루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에세이.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 P34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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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출간 후에 읽고 6년 반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 표지로 된 알라딘 노트가 있어서(지금도 다이어리로 쓰고 있습니다) 6년 반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재독이지만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첫번째로 읽었을 때보다 좋았겠거니 생각했지만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쓴 리뷰와 페이퍼를 보니 또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습니다. 첫번째로 읽었을 때도 분명 감동받았고 좋았던 거 같습니다. 


 이 책은 하루키 씨의 에세이 입니다. 소설가로서의 하루키씨의 삶과 생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루키씨의 독자나 소설가를 지망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하루키를 아시는 분들 대부분은 아시다시피 그는 30살의 어느 날 야구장에서 불현듯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떠한 습작이나 훈련도 없이 처음으로 쓴 소설이 군조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학이란 링 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링에서 40년이 넘게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하루키씨의 말에 의하면 링 위에 오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초반에 반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링 위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여전히 달리고 있는 그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어떠한 훈련이나 연습없이 그는 갑자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요? 역시나 엄청난 다독이 있었습니다. 


 다만 책 읽기는 예전부터 좋아해서 상당히 열심히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나만큼 대량의 책을 읽은 사람은 주위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음악도 좋아해서 쏟아붓듯이 다양한 음악을 들었습니다. -p39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 중에 다독가가 아닌 사람은 드뭅니다. 책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나는 작가가 되겠구나, 혹은 될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하루키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불편듯 소설을 써야겠다 결심하거나 무언가를 무척이나 쓰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소설가가 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을 써낸 시점에는 틀림없이 그보다 더 잘 쓰는 건 나로서는 못 했을 것이다, 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그 시점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쏟아붓고 싶은 만큼 긴 시간을 쏟아부었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입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총력전'을 온 힘을 다해 치른 것입니다. 그러한 '모조리 쏟아부었다'는 실감이 지금도 내게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장편소설에 있어서는 청탁을 받아서 쓴 적도 없고 마감에 쫓겨서 쓴 일도 없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때에 쓰고 싶은 만큼 썼습니다. 그것만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부분은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후회하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p165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 같은 느낌입니다. 최대한으로 준비를 하고 아낌없이 남김없이 온 힘을 쏟아붓는. 저도 재수 때 전력을 다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때문에 후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1년 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주가 있습니다. '아, 이번 한 주는 전국의 모든 수험생 중에서 내가 제일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했을 거 같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만한 생각이지만 그 때는 분명 그렇게 느꼈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언가에 온 힘을 다하는 감각을 느껴본지가 너무 오래됐습니다. 하루키씨는 장편 소설을 쓸 때 마다 그런 감각을 느낀다고 하니 너무도 부럽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 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성을 대할 때와 똑같은 일이지요. -p168


 다시 한 번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해야겠습니다.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내 나름의 고유한 시스템을 나는 오랜 세월을 들여 마련하고 내 나름대로 꼼꼼하고 주의 깊게 정비해가며 소중하게 유지 관리해왔습니다. 먼지를 닦고 기름을 칠하고 녹이 슬지 않게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보잘것없지만, 자부심을 느낍니다. 개개의 작품의 완성도나 평가에 대해 말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나로서는 더 즐겁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구체적인 보람도 있습니다. -p170 


 


 












 최근에 <더 시스템>의 페이퍼를 썼습니다. 이 책을 훑어보고 하루키씨의 에세이를 보니 그의 시스템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역시 중요한 건 시스템, 달리 말하면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 편으로 만들 것. -p181   


 모든 것의 기본은 체력, 건강입니다. 이 단순하고 중요한 사실을 잊고 혹은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두고 삽니다. 앞으로는 매일 매일 운동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 별로 달리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래저래 따질 것없이 그냥 달렸습니다. 그 문구는 지금도 나에게 일종의 만트라주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라는 것. -p186 

 

 저도 하루키씨 처럼 몸이 안 좋아도 쉬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경험 상 몸이 좋지 않을 때 운동을 하면 감기에 걸리거나 해서 더 몸이 안 좋아져 운동을 더 오래 쉬어야 했던 경험이 많습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으니 함부로 하루키씨를 따라하면 안되겠습니다. 평생 두통이나 소화불량을 경험한 적 없는 하루키씨와 현재 자주 감기, 두통, 소화불량을 겪는 제 몸상태를 똑같이 생각하면 안되겠지요.


 

 나는 고등학교 중반쯤부터 영어 소설을 원문으로 읽었습니다. 딱히 영어가 특기였던 것은 아니지만, 꼭 원어로 소설을 읽고 싶어서 혹은 아직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은 소설을 읽고 싶어서 고베 항 근처 헌책방에서 영어 페이퍼백을 한 무더기에 얼마, 라는 식으로 사다가 뜻을 알든 모르든 닥치는 대로 와작와작 난폭하게 읽어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튼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할까, 그다지 저항감 없이 알파벳 책을 읽어냈습니다. -p210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 때문에 영어(혹은 특정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가'라는 목적의식입니다. 그것이 애매하면 공부는 그냥 '고역' 이 되어버립니다. 내 경우는 목적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아무튼 영어로(원어로) 소설을 읽고 싶다. 우선은 그것뿐입니다. -p212

  

 저는 영어를 잘하고 싶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고 애매해서 항상 영어공부를 조금하다 희지부지 됐습니다. 다음에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생기면 해야겠습니다. 


 하루키씨는 영어 덕을 많이 봤습니다. 영어실력 덕분에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는 미국 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 과정도 상당히 재밌으니 이 책을 읽어보시길.


 

 그와 동시에, 다양한 종류의 책을 샅샅이 읽으면서 시야가 어느 정도 내추럴하게 '상대화' 된 것도 십 대의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묘사된 온갖 다양한 감정을 거의나 자신의 것으로서 체험하고, 상상 소에서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온갖 신기한 풍경을 바라보고 온갖 언어를 내 몸속에 통과시키는 것으로 내 시점은 얼마간 복합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즉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다른 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모습까지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듭니다. 온몸이 긴장하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시점에서 자신이 선 위치를 바라보게 되면, 바꿔 말해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뭔가 다른 체계에 맡길 수 있게 되면, 세계는 좀 더 입체성과 유연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건 인간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세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그것을 배운 것은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만일 책이라는 게 없었다면, 만일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썰렁하고 뻑뻑한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나에게는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하나의 큰 학교였습니다. -p226

 

 하루키씨에게 학교보다 훨씬 가치있고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또 다른 학교는 독서였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도회지를 벗어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체력 유지를 위해 날마다 달리기를 했습니다. 마음먹고 내 삶을 밑바탕부터 바꿔버린 것입니다. -p226 


 하루키씨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가게를 팔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생활도 싹 바꿨습니다. 역시 대단합니다. 항상 결심만 하고 작심삼일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 하루키씨를 떠올려야겠습니다.


 

 하나의 포지션, 하나의 장소(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장소)에 안주해서는 창작 의욕의 신선도는 감퇴하고 이윽고 상실됩니다. 나는 다행히 마침 적당한 때에 바람직한 목표, 건전한 야심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p311


 그 프런티어가 제대로 유효하게 개척될지 어떨지, 나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어떤 기치를 목표로 내건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몇 살이 되더라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p314


 이 글을 보며 저는 요즘 너무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바람직한 목표와 건전한 야심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계발서로 독서를 시작해서 그런지 모든 책을 자기계발서로 접근하는 면이 제게는 있습니다. 그래도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는 게 나쁜 건 아니겠지요. 제가 소개한 내용 외에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에세이였습니다. 6년 6개월 만에 재독했습니다. 1, 2년에 한 번씩 읽어도 좋을 책 같습니다. 아니면 이 페이퍼 만이라도 1년에 한 번씩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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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재밌게 읽은 거 같다. 아주 즐거운 독서였다. 언젠가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으리라.



 "그렇습니다. 이른바 난징학살사건입니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p88 



 하루키는 소설에서 일본 역사의 치부를 자주 들쑤신다.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어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 명의 죽음도 보기가 힘들고 괴로웠다. 그것이 영화라고 해도.



 아마다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꽤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말이야."

 "그건 좀 위험한 생각인지도 몰라."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무슨 소설에 썼지."

-p305 

  


 아마다 도모히코는 한층 크게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직시했다. 내가 기사단장을 찔러 죽이는 광경을. 아니, 그렇지 않다. 그의 눈이 보기에 지금 여기서 내 손에 죽어가는 상대는 기사단장이 아니다. 그가 보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빈에서 암살을 계획했던 나치 고관일까. 난징 성내에서 동생에게 일본도를 건네며 중국인 포로 세 명의 목을 베개 한 젊은 소위일까. 그도 아니면 그들 모두를 탄생시킨, 보다 근원적이고 보다 사악한 무언가일까. 물론 나는 알 수 없다. 

-p358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유즈가 말했다. "나는 물론 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은 나와 상관없는 데서 멋대로 결정되고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시 말해 나는 언뜻 자유의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지도 몰라. 임신해버린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p581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몰라." 내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p584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오다와라 근교의 산머리 집에 살면서 몇 가지 예사롭지 않은 체험을 통해 배운 점이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새벽의 화재로 영원히 소실되어버렸지만, 그 훌륭한 예술작품은 내 마음속에 지금도 실재한다. 나는 기사단장과 돈나 안나와 긴 얼굴의 모습을 눈앞에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그들을 생각하면 드넓은 저수지 수면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볼 때처럼 기분이 지극히 고요해진다. 내 마음속에서 그 비가 그치는 일은 없다. 

 나는 아마 그들과 함께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리라. 그리고 무로는, 내 어린 딸은,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은총의 한 형태로.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기사단장은 정말로 있었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든 무로를 향해 말했다. "너는 그걸 믿는 게 좋아." -p598


 위는 소설의 마지막 문단이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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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1-12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 장편중 <기사단장 죽이기> 좀 별로였는데 다시 읽으면 괜찮을까요? 다음 번 하루키 재독은 이 책으로 해야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1-13 10:37   좋아요 2 | URL
전 하루키빠라ㅎ... 처음에도 좋았는데 두번째로 읽으니 더 좋더라고요!
 
양을 쫓는 모험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신태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합니다. 하루키의 소설이 예전처럼 재밌지가 않네요. 유튜브 중독 때문인지 책이 예전처럼 재밌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또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루키 소설만 예전처럼 재밌지 않을걸까요? 재독해서 덜 재밌는 걸까요? 


 아무튼 <양을 쫓는 모험 (상)>은 과거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보통이었습니다. (하) 부터는 더 재밌어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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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년에 새로운 표지로 책이 나왔습니다. 예전 표지보다 나은 거 같습니다.


 <양을 쫓는 모험 - 상>을 읽었습니다. 초기 '쥐3부작'의 완결편입니다. 상권에서는 신비한 귀를 가진 여인이 등장하고 양을 찾아 떠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인간을 대충 두 가지로 나누면 현실적으로 평범한 그룹과 비현실적으로 평범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당신은 분명히 후자에 속하지. 이건 기억해두는 게 좋을걸. 당신이 걸어온 운명은 비현실적인 평범함이 걸어온 운명이기도 하니까."

-p194


 왠지 위 글을 읽으면서 소설을 쓰기 전 하루키씨는 비현실적인 평범한 그룹에 속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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