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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진주성 비가 상 ㅣ 진주성 비가 1
조열태 / 이북이십사(ebook24) / 2012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소설이란 형태로 역사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이해할수 있다는 건 참 좋은 방법인것 같다. 교과서에서 억지로 외워야했던 말로만 들어도 장황한 "임진왜란"을 생각보다 명쾌하고 재미있게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역사가 취미인 작가는 특히 진주성 2차 전쟁에 관심이 꽂혔다. 진주성 전투에 대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실인것마냥 전해지고, 논문지에 쓰이고 있는 현실에 놀라고 분노했다.
이 책은 1,2차 전주성 전투와 이 싸움에서 겁쟁이로 기록되어 오인받고 있는 "서예원"이란 인물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전쟁으로 사실상 가장 혹독한 영향을 받는 백성을 빼놓을 수 없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백성 최억술의 고향 밀양에서 함안과 의령에 걸친 피난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최억술의 피난기와 전장의 전투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백성들과 전장의 장수들을 엇갈려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어수선함과 피가마르는 불안감이 단순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1592년 왜군이 부산을 통해 조선에 강제적으로 들어왔다. 초반에 여러 전투에서 부산진성, 동래성 등이 무참하도록 빠른 시간내에 무너졌다. 하지만 조선이 자존심을 필 수 있었던 승리가 찾아왔는데 바로 진주성 1차 전쟁이다. 임진왜란 기간 중 조선군이 육지에서 이룬 첫 대승이었다. 진주는 전라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왜군이 전라도를 목적으로 악착같고 치밀하게 공격을 했다.
적군의 끝없는 조총공격과 해자(연못)을 건너 성벽에 오르려는 왜군들을 상대로 화살을 퍼붓고 큰 돌로 내려찍거나 가마솥에 끓인 물을 들이붓기를 계속한 끝에 승리했다. 왜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며 말많은 왜군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 싸움이었다.
이 소설에서 주요 인물인 서예원은 김해성 전투를 이끈 장수이다. 김해성 전투 초반을 잘 이끌었는데 커다란 왜군의 세력에 압도되어 김해 사또 이유겸이 도망을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순간 서예원은 어쩌면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유겸을 쫓는 다는 명분으로 성에서 뛰쳐 나와 반대쪽으로 도망을 간 것이다. 이 명분 하나로 겨우 죽음을 면했다가 다시 진주성의 성주로 발탁이 되었다.
2차 진주성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 싸움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1차진주성 전투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왜는 15만8천명에서 반으로 줄어들었다. 왜는 조선을 돕기위해 들어와있는 명과의 협상으로(강화협상) 조선에서 후퇴를 결정한다. 조선에서 이루어졌지만 조선만 빠진 양국간의 협상이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에서의 치욕을 씻고 얼마간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진주성을 점령하라고 공개적으로 떠벌렸다.
이미 후퇴를 약속한 왜가 자그마한 성을 차지해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풍신수길을 하는 상황에서 임금의 성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가운데 서예원은 고민한다. 왜는 10만여명, 조선은 고작 5천명뿐이 되지 않는 말도안되는 싸움이었다.
수성과 공성을 두고 장군간의 싸움끝에 서예원은 성에 남아 싸우기로 결정한다.
"그 병사들로 진주성을 치려고 모여드는 10만 왜군과 맞서 싸우겠다고 의연히 나섰다. 감탄할 일이었다. 그 대범함과 용감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 순진함과 무식함이란! 아무튼 그 임금에 그 신하들이었다."
작가는 수성을 강요한 임금에 대해 풍자적이고 냉소적이다. 왕은 잔인하거나 무식하거나 둘중에 하나라고. 성을 비우고 모두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성에 있던 백성들 수를 합하면 6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거의 도륙당했다. 수성을 명령한 임금은 이 싸움중에 암것도 도와주지 않았다. 당파의 눈치만 보고 잇속만 챙기는 대신들도 어처구니가 없다.
전장에서 피튀겨가며 싸우는 무인들과 현장에서 멀찌감이 떨어진 임금과 조정대신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못하고 임금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말못하는 장수도 안타깝다.
하지만 서예원은 목숨을 바쳐 성을 지켰고 가족까지 불러들여 그 진실성을 입증하려 한 진주성의 성주였다는 사실에 충신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당시 우세한 서인이 기록한 기록에는 서예원이 겁쟁이라고 되어있고 용감히 맞선 장수들의 이름에서 빠져있다. 서예원이 동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후손들이 나중에 상소를 올려 육절려를 내려주었다.
작가는 잘못된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면 기록과 여러 자료들이 꼭 수정해야 할 정도로 억울한 거 아닐까.
최억술을 통해 억울한 백성의 삶을 충분히 들여다 볼수 있었다. 성인으로 보이는 모든 남자는 장병으로 끌려가 피난도 쉽지 않았던 백성들, 성벽 수리며 부역에 끌려다니고 군포와 각종 세금을 내야했지만 양반은 그 어떤 의무도 지지 않고 권리만을 누렸던 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세상이 불과 2백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왜군이 진주성내 조선사람들을 도륙한 것은 약 400년밖에 안되었다.
일본은 과거에 우리한테 피해만 준셈이다. 지금도 양국간에 낀 약소국을 면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젠 그 어떤나라에도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러한 역사소설이 많이 나와서 과거와 더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기회을 갖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