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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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 그 점이 오늘날 복합적으로 융합하는 산업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힘들게 한다."


긍정심리학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말이라고 한다(p.37). 우리나라의 교육에 관해 이래저래 말이 많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솔직히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런데 저 말을 들으니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가 하는 위기감이 벼락처럼 찾아왔다.




이 책은 여러 '공부'에 관해 말한다. 공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학생의 성적을 위한 공부도 있고, 점수와는 상관이 없어도 내 길을 찾기 위한 공부나, 더 넓게는 인생 공부까지도. 어째 우리는 이 공부들을 다 다르게 하고(아니면 안 하고) 있지만 결국 공부란 하나고, 최재천 교수의 의견으로는 그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할 테다. 우리는 공부 없이 살 수 없다.


최재천의 공부, 그리고 안희경의 공부

통째로 대담으로 이루어진 책은 처음 읽어본다(... 플라톤의 향연을 제외한다면ㅋㅋ).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인데, 제목에서부터 보이는 최재천 교수,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이다.

재미 저널리스트라는 단어를 이 책의 저자 소개에서 처음 봤다. '세계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에 관한 글을 써왔다'고도 적혀 있다. 이것만 봐서는 어떤 직업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대담집이 어떤 건지 잘 모르기도 했고 안희경 저널리스트의 직업도 생소했기 때문에 질문 한 줄과 기나긴 답변으로 이뤄진 책인 줄 알았다. 안희경 저널리스트가 주로 질문하고 최재천 교수가 주로 답하는 건 맞지만, 내가 상상한 것처럼 평면적인 인터뷰는 아니다. 


나보다 똑똑하고 열정적인 친구가 바로 옆에 있어 그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최재천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나는 교수님의 말을 바로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하는데 안희경이라는 친구가 교수님과도 상호작용하며 질문을 해 강의를 더 매끄럽게 이어주고, 예시를 보태며 내 상상에 도움을 주는 식이다. 최재천 교수의 강의가 어렵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안희경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단순히 질문자의 역할에 그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책을 읽으며 최재천 교수만큼이나 안희경 저널리스트를 향한 관심도 커졌다. 대화의 곳곳에서 그가 만난 다른 유명인사들이 등장하는데 그 명성이 대충 봐도 대단하다. 그가 기획하고 펴낸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배우며' '살기'가 아니라 '배우며 살기'

책의 부제는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는 배우기와 살기를 따로따로 읽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부제를 다시 봤을 때는 '배우며 살기'라는 하나의 동사로 머리에 들어왔다.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을 때,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내가 흥미를 가질 책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저자 소개와 목차까지 훑어보고 읽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그때도 크게 마음이 가진 않는 상태였다. '공부'하는 방법을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또 더 이상 '공부'하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부라는 게 다양한 뜻을 지닌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최재천 교수는 위에서 서술한 첫번째 공부, 그러니까 학생들이 하는 성적을 위한 공부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게 아무리 파격적인 방법이래도 거기서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본 것이다. 


여기까지 썼으니 알겠지만 그건 당연히 내 착각이었다. 최재천 교수가 보여주는 것은 훨씬 더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공부다. 그 공부는 시험용도 아니고, 자기계발용도 아니고, 삶과 나 자신을 배우는 방법이다.

이 책의 주제는 '공부'다. 이건 정확한 표현이지만 언어는 원래 사회에 의해 뜻이 변질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에게는 저 단어로 의미가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와도 뜻이 통하는 다른 단어로 다시 설명하자면, 이 책의 주제는 '삶에 대한 태도'다.


​대화의 초반에서부터 틈틈이 등장하는 최재천 교수와 그 아내분의 관계가 매우 평등하게 나와서 계속 놀라며 읽었다. 시대나 최재천 교수의 엘리트성을 생각하면 충격적일 정도로. 그래서 교수의 가정이 그런 가정이었던 건가 싶었는데, 오히려 가부장적인 가정이었다고 한다. 최재천 교수는 아내와 생활하면서 다시 배워나간 것이다. 거기에는 아내분의 역할도 크고 다른 영향도 또 많겠지만, 최재천 교수가 스스로 공부하며 알아나간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어떤 것이든 공부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안희경 저널리스트의 비슷한 말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p. 293

이 단어들(공부, 교육, 학습, 배움, 가르침 등)을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진한 자각입니다. 공부란 한 사람을 성숙시키는 길이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체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을 사려 깊게 만드는 도구 같아요. 공부가 익을수록 우리는 관계를 보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죠. '삶으로서의 공부'로 다가옵니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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