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pearl0305의 서재 (pearl0305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86515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9 Apr 2026 18:22: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pearl0305</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86515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pearl0305</description></image><item><author>pearl0305</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새해 주말 아침, 나를 깨운 일곱 살 ‘빼그녕’의 특별한 순수함 - [빼그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865152/17009490</link><pubDate>Fri, 09 Jan 2026 07: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865152/170094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034340&TPaperId=170094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25/61/coveroff/k932034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034340&TPaperId=170094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빼그녕</a><br/>류현재 지음 / 마름모 / 2026년 01월<br/></td></tr></table><br/>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책장을 넘기고 있다기보다, 오래전 골목길을 다시 걸어가는 기분으로 초등학교 시절의 토요일 하굣길을 함께 돌아다녔다.<br/><br/> 그때 나는 친구들과 “오늘 밤 방영될 주말 가족드라마의 다음 회차”를 각자 상상해서 떠들어 대곤 했다. 그 시절의 공기, 온도, 친구들의 목소리가 『빼그녕』을 읽는 동안 다시 살아났다. 마치 한 주를 꼬박 기다리게 만들던 옛날 주말드라마처럼, 이 소설도 한 편, 한 편이 다음 이야기를 참을 수 없이 궁금하게 만든다.<br/><br/>  '전원일기’와 ‘아들과 딸’ 사이 어디쯤<br/>『빼그녕』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전원일기’가 떠오르는 시골 마을의 촘촘한 관계망과 ‘아들과 딸’을 연상시키는 가부장적 공기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동네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br/><br/> 이 마을은 각 집에 수저와 젓가락이 몇 벌 있는지까지 알 것 같은 가까움으로, 송가와 백가, 송백리와 대백송리 사이에 얽힌 기득권과 위계, “사돈의 팔촌만 잘 뻗어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은” 그 시절의 믿음까지, 정겹고도 답답한 분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 일상을 7살 은영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결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잔인함, 그리고 집요한 진실성에 있다.<br/><br/>“평범은 싫고, 들키기도 싫은” 일곱 살 빼그녕<br/>모든 것을 기억하는 일곱 살 소녀 백은영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 대신 스스로를 ‘빼그녕’이라 부른다. 자신의 특별함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삐뚤게 쓰면서도, 어른들의 꾸중과 핀잔을 당당하게 받아내는 이 아이에게서 묘하게 당돌한 귀여움이 터져 나온다. “7살 맞아?”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br/><br/>“아무리 칠성님이라도 그건 너무 무리한 소원인 것 같아… 판잣집에서 살아도 좋으니 서울특별시에서 살게 해달라고.”(p.21)<br/>서울 그 자체보다 ‘특별시’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 일곱 살의 상상력은, 순수해서 더 기발하고, 엉뚱해서 더 사랑스럽다.<br/><br/> 또 “왜 할마가 귀머거리인 척하는지, 왜 세상일에 신경을 끄고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p.22)라는 대목에서는, 매일 티격태격 싸우는 부모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투정 속에, 혹시 우리 아이들도 나를 이렇게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뜨끔한 마음이 스며든다. 은영이의 말이 그냥 귀여운 투정으로만 읽히지 않는 지점이다.<br/><br/> 춘입과 똘배, 소문보다 진짜 사람을 보는 일<br/>이야기는 의문의 사고로 오른손목을 잃은 법대생 똘배가, 이방인 춘입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면서 한층 깊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똘배와 춘입을 각종 소문과 편견 속에 가둬 두지만, 은영의 눈앞에 펼쳐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br/><br/> 은영의 특별함을 가장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이 바로 춘입이라는 점은, 이 소설을 단순한 성장담에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축이다.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춘입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걸 기억하고 있으면 슬픔도 더 많을 거 같다고 했는데 딱 맞는 말이다.”(p.66)라는 문장에서, 있는 그대로 은영을 인정해 주는 춘입의 마음과, 소문 너머의 춘입을 알아보는 은영의 감각이 동시에 반짝인다.<br/><br/> 똘배 역시 마을 어른들의 ‘카더라’를 통해 들은 이미지와 실제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 차멀미가 심한 은영을 위해 버스 대신 경운기를 선택하는 장면, 비 소식도 없는 날 우산을 미리 챙긴 이유, 케이크 하나로 아이에게 잊지 못할 기쁨을 선물해 주려는 마음은,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똘배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그 배려와 온기가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져, 은영이 느끼는 혼란과 섭섭함, 그리고 서서히 찾아오는 이해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든다.<br/><br/> “중요한 건 이별을 잘하는 거야”<br/>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 중 하나는 단연 춘입의 이 말이다.<br/>“중요한 건 이별을 잘하는 거야. 그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성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p.97)<br/><br/> 사람과의 이별, 과거와의 이별, 충격과 상처와의 이별처럼, 우리 삶에는 수많은 종류의 이별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잘 떠나보낼 것인가는 거의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 짧은 문장이 묵직하게 떠올리게 한다. 굴곡 깊은 인생을 가만히 통과해 온 사람만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을, 은영은 자신의 “특별한 친구” 춘입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인다.<br/><br/>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나도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내 특별한 친구인 춘입이 하는 말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p.119)<br/>실수와 착각을 인정하는 은영의 태도, 그리고 그걸 빠르게 받아들이고 고쳐 나가는 속도는 ‘애어른’이라는 말이 딱 맞게 느껴지는 순간이다.<br/><br/> 칠성님, 별 하나, 그리고 여과기 같은 소설<br/>이야기 곳곳에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장면들도 빼곡하다.<br/>“별 하나가 어떻게 날 도와준다는 건지 나는 궁금했다. 일곱 개나 되는 북두칠성도 내 소원을 하나도 이뤄주지 못했는데.”(p.76)<br/><br/> 마을 어른들이 “별 하나 단 군인”에게 과도한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은영은 북두칠성도 소원을 못 들어줬다며 의문을 품는다. 이 말은 어쩐지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에서 “딩동댕~”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정답 같은 문장이라, 읽는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br/><br/>  또 “일부러 새와 쥐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는데… 신의 심부름꾼들이 뭐 이래?”(p.185)라고 투덜거리는 대목에서는, 중요한 말을 전해 줄 것 같았던 존재들이 정작 아무 반응이 없을 때의 섭섭함이 익살스럽게 드러난다. 그 장면을 통해,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중요한 말과 마음을 가볍게 흘려보낸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br/><br/><br/><br/> 빼그녕은 환생일까, 이어짐일까<br/>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빼그녕”이라는 존재를 둘러싸고 더욱 많은 질문을 던진다. 빼그녕은 환생일까, 혹은 춘입와 똘배의 아이를 상징하는 또 다른 이름일까, 아니면 “기억 그 자체”의 은유일까. 소설은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 버리기 때문에, 책을 덮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나만의 ‘다음 편 드라마’를 쓰게 된다.<br/><br/> 할마는 어쩌면 삼신할매일까, 춘입과 똘배, 그리고 예비 시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마음의 계보는 또 어떻게 연결될까. 이 모든 궁금증은 시원하게 해소되기보다는, 내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상상 놀이터”가 된다. 그래서 『빼그녕』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br/><br/><br/><br/> 라떼 시절을 잘 아는 엄마독자의 특권<br/> 아이들에게 이 소설을 건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br/>“엄마 때 소설 같아. 완전 라떼 감성이야.”<br/><br/> 실제로 『빼그녕』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가 마치 내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살짝 바꿔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초등 시절, “아들과 딸”과 “전원일기”를 보던 그 시절의 나를 “빼그녕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이야기 같았달까. 그 덕분에, 나는 이 소설을 조금 더 진하게, 조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독자처럼 느꼈다.<br/><br/> 빼그녕이라는 여과기를 통과한 마음<br/>소설을 다 읽고 난 뒤의 내 마음은, 마치 ‘빼그녕’이라는 여과기를 한 번 통과해 나온 것 같았다. 이전보다 더 맑아지고 순수해졌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있는 그대로도 이미 충분히 소중한 것들”을 자꾸 의미와 성취로 포장하려 들었던 내 어른스러운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br/><br/> 순수함이라는 건 완전히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덮어 두고 잊고 지냈던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니, 다시 한 번 은영의 나이로 돌아가 세상을 보고 싶어졌다. 조금은 덜 계산하고, 조금은 더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나도 다시 “특별한 순수함”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조용히 올라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25/61/cover150/k932034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25615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