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스승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렇게 끝나는 편지였다.
"슬아, 생이란 아흔아홉 겹 꿈의 한 꿈이니부디 그 꿈에서 무심히 찬연하기를."

할머니는 설레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작가님이 꼭 결혼하면 좋겠어요. 애도 낳고요. 그럼 또 얼마나 삶이 달라지겠어요? 그럼 또 얼마나 이야기가 생겨나겠어요? 나는요. 계속 달라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 P28

나는 무대에서서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인생을 본다. 그중 살아볼 수 있는 건 하나의 생뿐이다.
- P29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눈물 대신 하품이 났다. 친구의 사정은 슬펐지만...... 슬픔도 지루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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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진 모양새는 언어표현력을 더욱 높였다. 농밀해진 표현력은 연상에 깊이더했다. 한 젊은이의 견습 시절 분위기를 전하는 묘사, 사회 변동기의 의료업, 그리고 잘못을 지적하기만 할 뿐 칭찬에는 인색한 스승에 대한 양가감정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하나의 드라마가 짜였다. 이러한 짜임새를 결texture 이라고 한다. 나를 흔들어놓은 것은, 그리고 추억의 대상인 고인뿐만 아니라 추억을 되짚는 자의 존재감까지 훨씬 더 생생히, 아주 즉각적으로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이 결이었다. 
- P8

덕분에 나는 말해지지 않은 것, 결코 말로 할 수 없는 것까지 전부 알아차렸다. 인간관계의 따스하고도 고통스러운 불완전함을 통감했다. 
- P9

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그런 페르소나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도구나 마찬가지다. 이게 없으면, 주제도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회고록이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그런 페르소나를 빚어내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 P12

우리의 연사가 갈팡질팡하며 찾아 헤매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복잡한 감정. 먼저, 그런 감정이 있음을 이해한다. 다음엔 그 감정을 시인한다. 그리고 이를 통로 삼아 경험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이 곧 경험임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쓰기 시작한다.
익숙한 것을 꿰뚫고 들어가기란 당연한 듯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힘들고 또 힘든 일이다.
- P13

 내 책은 신기하게도 이집트자체를 흉내 낸다. 그것이 강점이자 한계이다.
- P17

『존경하는 어머니 Mommie Dearest "처럼 서술자는 아무잘못 없는 사람, 서술 대상은 괴물로 묘사되는 회고록은 상황이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기에 실패작이 된다. 드라마가 깊어지려면, 괴물의 외로움과 무고한 자의 교활함이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서술자가 단순하지 않아야 대상에게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

- P43

결국, 서술자가 고백이 아닌 이런 종류의 자기 연구, 즉 움직임과 목적과 극적 긴장을안겨줄 자기 연구에 몰두할 때 비로소 작품이 구축된다. 여기서 필요한 요소는 적나라한 자기 폭로이다. 자신이 상황이 일조한 부분-즉 자신의 두려움이나 비겁함이나 자기기만을이해해야 역동성이 만들어진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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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슬픔에 대한 책이지…………." 내 주변의 한 어른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늙음과 그리움, 그리고 필연적인 죽음에 대한 책이야..." 다른 어른은 이렇게 말했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실은 토베 얀손 자신의 가족, 자기 조카와 엄마에 대한 책이지." 등등....... 그래, 그렇게 이해해야 한단다.
- P7

"겁이라도 나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모든 우아한 비유들보다, 감성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돌려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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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굴지 마. 태도를 바꾸지 말라고. 내 무기를 없애지 말고, 당신을 떠날 좋은 이유들도 없애지 마.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조제는 생각했다.
- P66

그녀는 당신에게 굴복했고, 당신들은 같은 음표에 관한 슬프고 감상적인 희극을 함께 공연했어요. 당신들의 바이올린은 단조에서 화음이 잘 맞죠.
- P76

이곳에선 바람이 모든 것을 붙잡고 모든 것을 놓아주었다. 저녁마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는 즐거움이, 흙냄새와 고독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 P79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시간조차도. 
- P76

나한테 거의 우정을 품으면서 혹시라도 네가 나한테 연락을 해오면 나를 미워하려고작정하고 기다린다니까. 더는 감당 못 하겠어.
- P84

"넌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상상초월이라고.자기 결혼 생활 문제로 나를 비난하다니, 너를 엄청 사랑했던 나를...... 아......! 여전히 널 좋아하는 나를...... 아! 2주 전부터 네 남편의 손을 잡고 다니는 나를….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베르나르가 꺽꺽대며 말했다.
- P87

당신은 당신 없는 인생을 상상하는 거야?
- P103

이 짧고 겸손한 대화는 그의 용모와 연결되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것에 대해 사람들이 거의 조제를 탓할 지경이었다. 매일 밤 앨런이 그 사람들을 차갑고 가혹할 정도로 낱낱이 평가하는것을 들은 그녀로서는 이런 상황이 법률적 실수처럼 희극적이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 
- P111

 사실 앨런의 입장은 이랬다. ‘내가 당신의 삶 전체를 공유해야 한다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해.‘ 그리고 조제의 입장은 이랬다. ‘당신이 내 삶 전체는 아니라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 해.‘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다.
- P112

다른 곳, 거기서는 그들 단둘이서만 지낼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앨런은 조제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였다. 때때로 우리가 타인의 변덕에서 발견하는 상냥함 말이다. 
- P114

"내가 설명할게. 앨런은 모든 사람이 근원적인 수렁 속을걸어다닌다는 걸, 그 무엇도 거기서 인간을 끌어낼 수 없다는 걸 납득했어. 하지만 그가 매일 하려고 혹은 발음하려고애쓰는 막연한 몸짓과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은 그것과 상관이 없어. 이런 의미에서 그는 타협을 모르고 단절된 사람이지."
- P116

그렇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삶은 계속되고 있다.
- P125

조제는 그가 칭찬에 냉담할 거라고 믿은 자신이 퍽이나 순진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앨런처럼 초연한 남자들에게조차 허영심은 견고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P132

"확실해요. 그 사람이 당신만 바라보던 걸요. 내 아내가그 사람만 바라보고 당신이 허공만 바라보는 것처럼."
"귀여운 3인조네요." 조제가 메마른 어조로 말했다.
"귀여운 4인조죠. 내가 증권거래소의 시세표만 바라본다는 걸 당신이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 P138

앨런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그를 보지 않았다. "나는 너한테 묻고 있어, 조제. 너 예전엔 착했잖아. 왜그 여자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드는 걸 손 놓고 보고 있어?
모두들 그 여자를 조롱하고 있어. 모른다고는 하지 마."
- P146

베르나르는 어둠 속에, 층계참 위에 있었다. 그가 그녀의손목을 잡았다.
"앨런이 널 망가뜨릴 거야, 내가 장담해, 제발 너 자신을구원해."
- P150

삶에서 도망쳐,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도망쳐, 온갖 감정들로부터 도망쳐, 내 장점과 단점들로부터 도망쳐, 수없이 많은 은하수 중 하나의 100만분의 1 면적에서 잠시의 호흡이 되고 싶었다. 
- P152

"어떻게 할 건데?"
세브랭은 웃음과 두려움 사이에서 양분되어 있었다. 조제의 각성은 재앙을 불러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 P167

그녀의 결혼의 진실은 너무나 연약한 동시에 너무나 정열적이었고, 애정·기쁨. 악의의 순간들이 두루 존재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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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나를 떠나고 싶다면 떠나. 나를 완전히 포기해. 아니면 나를 견뎌내든가."
- P48

사실 절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그것의 필요성을 훨씬 더 혐오했다. 오직 앨런만 그런 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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