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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그레이브 판사 
법점과 신문지상에서 교수형 판사로 소문난 자가운노인,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그들 중에는과연 몇 명이 죄가 있을지 ...…..

베라 클레이슨 - 여학교 교사.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사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불안하게 몸을 떤다.

필립 바드 대위 - 과거가 확실하지 않은 군인 출신의 건장한 남자. 인디언 섬에 총을 가져온 유일한 사람이다.

에밀리 브렌트 - 65살의 독신녀. 불안한 꿈과 산만한 일기로 그녀의 마음이 복잡하고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카서 장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던 장군. 「나는 인디언 섬을빠져 나갈 수 없을 거요.」 하고 이상한 말투로 중얼거린다.

암스트롱 의사-사인을 진단하고 진정제를 조제해 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독약을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다.

앤소니 마스턴 - 젊은 미남으로 자동차 드라이브를 즐긴다. 감각과 행동만으로 생활하며, 한번 결정한 일은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블로어 - 런던 경시청 형사 출신의 무뚝뚝한 사립 탐정.

프레드 내러코트 - 데번 주의 뱃사공으로, 캐론이 스틱스 강을 건너는것처럼 불운의 사람들을 인디언 섬으로 실어다 준다.

로저스 부부 - 조금 말을 더듬는 하인 부부. 인디언 섬에 모인 사람들에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하고 극진하게 보살펴 준다.
토머스 레그 경-런던 경시청의 부경시총감. 검시관의 보고서와 고백서, 그리고 10명의 시체를 조사한다.

메인 경감-런던 경시청의 경감. 부경시총감과 함께 침착하고 세밀하게 범죄 자료를 수집한 끝에 인디언 섬 살인사건은 도저히 믿어지지않는다고 결론내린다.
- P7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며 흥미로운 일들을 수없이 많이 본 남자같군….‘
- P13

정말 생각해 보면 기묘했다 — 모든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매우….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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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술 취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들이 와서 아빠를 말리자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삼촌은 그런 아빠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미소 지었다. 그런 그가 글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는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단 한 번이라도 공감해보기는 했을까.
- P275

"하나하나 맞서면서 살 수는 없어, 지연아. 그냥 피하면 돼. 그게지혜로운 거야."
"난 다 피했어,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 내가 무슨 기분인지도모르게 됐어.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가슴은 텅 비어서 아무 느낌도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피하는 게 너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말이야."
"날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 있는 게 날 보호하는 거야?"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끝내면 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P278

공공장소에서 남편이나 자식에게 화를 내는 여자들, 버스에서 홀쩍이며 눈물을 흘리는 여자들, 길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여자들을 엄마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상스럽고 저급한 짓을 하는 건 자기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런 엄마가 본인이 평생을 피해가고자 했던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엄마의 지적이 마음에 내리꽂히는 것과는 별개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신의 분노를 발산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 P283

새비 아주머니는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불위에 누워서 증조모가 말을 하면 눈짓으로 반응했다.
새비 아주머니의 시선은 증조모의 몸을 지나서, 마음을 지나서,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에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아직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증조모는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돌멩이를 안고서 내 동무야, 내 동무야, 말을 걸고 있다. 그런 작은 따뜻함이라도 간절해서, 하지만 사람은 너무 무서워서. 증조모는 마당 구석에쪼그려앉아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다.
그때 자신이 누구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간절히 부르던 사람이 바로 새비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을 증조모는 그녀의 시선 속에서 이해했다.
- P288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 P300

"감사해요, 할머니."
"축하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다."
"놀러올게요."
"그래. 언제든 돌아와도 돼."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고,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밀려드는 잠에 몸을 맡겼다. 나는 희령을 떠나고 할머니를 떠난다...…힘들게 버티던 곳이었는데도, 언제든 떠나기만을 바라던 곳이었는데도나는 할머니보다 이 헤어짐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 P321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 P337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만난다. 그애들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해가 지는 놀이터 벤치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시 혼자 학교에갈 채비를 하던 열 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울음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내 몸을 해치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스무 살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 P337

나는 오랜만에 할머니 집 소파에 앉아서 집을 둘러봤다. 텔레비전장식장 위에 처음 보는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가까이로 가서 액자를 들여다봤다. 액자 속에는 거북이 해변에서 나와 언니,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손을 잡고 서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액자를 들어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고개를 끄덕였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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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다시 말을 하려다가 입을 열지않았다. 얼굴에 내내 어렸던 미소가 사라졌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냥……"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봤다. "보고 싶지."
할머니는 내가 마치 할머니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다 입가에 힘을 줘서 웃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지 뭐." - P51

- 같이 가자.
고조모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도 데리고 가라.
병자에게 무슨 힘이 있었는지, 증조모는 치맛자락에서 고조모의손을 떼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겨우 손을 떼어내자 고조모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기래, 가라. 내레 다음 생에선 네 딸로 태어날 테니. 네 딸로 다시 태어나서 에미일 때 못다 해준 걸 마저 해줄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 P34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정말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오고 마른 까치가 하늘을 날았다. 철길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에게 내려오라고 손짓하는 그녀를 보며 그는 그 순간이 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직감이었다.
- P37

- 가고 말고는 너가 정하라우, 군인들이 널 데려가면 내 견딜 수없을 것 같아서 이러는 기야. 네 말이 맞다. 내 너를 몰라. 너도 내를모른다. 기래두 알 수 있는 기가 있잖아. 너가 이렇게 가버리면 내는불행해질 기야 되돌릴 수도 없이 고통스러워질 기야. 내를 믿지 않는것이 옳다. 내는 너가 지금처럼 사람들을 의심하며 살았시면 좋갔어.
- P43

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봐 두려워하며잠들지 못하는 나이, 아침마다 옥수수를 삶아 한 광주리를 이고 팔러다녀야 하는 나이,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의 공포와 노여움과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나이, 영영 자기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나이, 백정이라는 표식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할머니는 증조모가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P47

시계를 보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주무셔야 하는데 눈치도 없이 일아 있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니 할머니는 할머니 집에서는 결코, 어떤경우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법이라고 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하는 합머니는 이상하게도 섭섭해 보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내가 죄송하다는 말로 예의를 차린 것이 할머니에게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여겨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50

그녀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뽑아내도 잡초처럼 퍼져나가서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망을 지배할 수 없었다.
희망이 끌고 가면 그곳이 가시덤불이라도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그건 안전한 삶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는남자를 따라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의 경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괴로운것이었을까.
- P56

사람들은 원래 기래.‘ 고조모가 증조모의 마음속에서 말했다. ‘사람한테 기대하지 말라우.‘
‘어마이, 나는 사람들한테 기대하는 기 아니라요.‘ 증조모는 생각했다. 나는 새비한테 기대하는 기야.‘
언젠가부터 증조모는 마음속으로 고조모와 이야기를 했다. 혼자집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고조모에게 말했다. 너무 외로워서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던 때였다.
- P65

"오래된 편지들, 내가 받은 것도 있고 우리 엄마가 받은 것도 있고작은 집에 살면서도 엄마가 얼마나 편지들을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신줏단지 모시듯이 정성껏 보관했는데, 엄마 가셨다고 그걸 폐기버리듯이 버릴 수가 없었어. 엄마가 받은 편지들을 읽으면 꼭 엄마가살아 계신 것 같구 그랬어. 그걸 어떻게 버려. 읽지 못하더라도 그갖고 있는 거지."
- P72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는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 P82

그 껍데기들을 다 치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깊이 잠든 남편 옆에서 소리 죽여 울던 내 모습이, 논문이 잘 써지지 않으면 내 존재가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나를 다그치던 내 모습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숨쉬듯 나를 비난하고 비웃던 내 모습이. - P86

나는 아줌마에게 엄마의 계좌번호를 적어주면서도, 엄마가 친구를위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처럼 차갑고 곁을내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않았기 때문이었다.
- P87

할머니가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바깥에서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집에와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 마음은무엇이었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곤 하던 내 존재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던것 같다.
- P95

년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야. 어느 날 말을 이을 수 없어 눈물만흘리던 내게 지우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널 더 많이 사람할게. 이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도 느끼며 살아.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있다는 것을 나는 지우를 보며 알았다.
- P102

"아무한테나 그런 건 아니야."
네가 내 친구여서 고마워. 나는 그 말 한마디를 소리 내어 하지 못했다. 지우는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첫차를고 서울로 돌아갔다.
- P106

"헤어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증조할머니랑 새비 아주머니가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다면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았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가만히 차를 마셨다. 내가 진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끝이 슬프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구나."
할머니가 나를 보고 다정하게 미소 짓다가 입을 열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엄마의 상처였어. 그렇지만 자랑이기도 했지. 엄마를 크게 넘어뜨렸지만, 매번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새비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거였어, 새비가 나를 얼마나 귀애해줬는지 몰라, 새비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시비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사람처럼 말이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처 같은 거 받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는 삶을 택하셨겠네요.
"그래. 그게 우리 엄마야."
- P116

어쩌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갔어. 끝이 같으니까렇게 말하는 게 아직도 두렵지만서두, 희자 아바이가 어차피 가야 한다.
면……… 차라리 그 모습을 내가 보지 않고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어쩌면… 회자 아바이를 생각하면 그게 나았을지도 몰라. 차라리순간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희자 아바이가 이렇게 아플 일이 없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이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 욕심이라고 욕해좋다. 희자 아바이 말고 내 위주로 생각한다고 욕해도 좋다. 그래두 눈희자 아바이가 살아 돌아오고, 그렇게 살아서 나랑 희자랑 같이 지냈던시간이 좋았더랬어.
회자 아바이가 히로시마에서 죽었다면 내가 무얼 빌었을까 생각보면 말이야…… 고저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십 분이라도 희자아바이를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안아보는 거, 내 기걸 원했을 것 같아.
돌아와 고작 몇 년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다고, 마음만 더 아른거아니냐고 말하는 동무들도 있었지. 그런데 삼천아 봐봐라. 한 시간, 한순간에 비한다면 이 몇 년은 참으루 긴 시간 아니갔어. 나, 희자 아바이가 참 귀해. 기래, 얼마 있으면 희자 아바이가 가겠지. 내 기걸 생각하면제정신이 아니야. 그런데 난 이쪽이 더 좋다. 희자 아바이가 어떤 모습이어두 내 곁에 있잖아.
- P120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희자 아바이가 말했어. 조선 사람이고 일본 사람이고 중국 사람이고 간에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사람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고, 사람이 저지른 일이야. 사람이 저지른 일이야. 희자 아바이는 내 손을 붙잡고서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어.
- P123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제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 P130

" (앞 생략)그런데 이번에 명희 언니 만나면서 잡고 싶어졌어."
"뭘?"
"인생을."
친구들과 1박 2일로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외국이라고는 부부 동반으로 일본에 가본 것이 전부인 사람이 인생을 잡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명희 언니가 그러는 거야. 우리 같이 우체국에서 일했을 때 내가그렇게 얘기했대. 세상을 구경해보고 싶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싶다고. 그러다 결혼했고, 그다음은 너도 잘 알잖아."
- P133

엄마가 벤치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의 마음을 짐작하려고했다. 엄마는 별다른 감정 없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지만 화가단)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지쳐 보이했다. 엄마는 나를 등지고서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도 없곁에서 나란히 걸었다.
- P134

나는 희자가 높은 하늘에 연을 띄우듯이, 기억이라는 바람으로 일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음에 띄워 올리곤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바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으고 짐작하면서.

- P152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나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당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P156

팀장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린 팀장의 얼굴을 상상해봤다. 예의바르고 말을 가려 하고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잘 얘기하지 않는 그녀가 내게 틈을 보인 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위안이 되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어쩌면 그것이 그녀 방식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59

"너 요즘 괜찮냐."
"네."
할머니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거짓말을 했다.
"괜찮아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괜찮아요."
내 목소리가 내 귀에도 조금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할머니는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160

나는 목에 두른 목도리가 다 젖도록 소리 없이 울었다. 그후로 누구도 다시는 봄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봄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그냥 개일 뿐이야.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그런 거짓말로스스로를 위로할 수는 없었다.
- P162

그믐밤이었다. 별 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 천한 존재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 P167

나는 학교에 들어갔고 한글과 숫자를 배웠고 시계를 읽는 법을 배웠고 죽은 사람은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거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여기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다. 나는 엄마에게 죽은 언니와 놀았다고 말하던 날을 떠올렸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은 사람 앞에서 나의 진실을 떠벌리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엄마의 고통 앞에서 나의 진실은 가치가 없었다. 어떤경우에도 엄마의 불행에 나의 불행을 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거짓말을 했다.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자고 잘 먹고 있다고, 문제가 없다고, 나는 언제나 잘 웃는 아이였고, 자라서는 잘 웃는어른이 됐다.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때도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P171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뒤에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 악의 없는 웃음을 보이면서 다른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흔하고 흔했다.
그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성질인지도 몰랐다. 그런의미에서 명숙 할머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고양이 같았다. 움직이는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걷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랬다. 고양이 중에서도 결코 인간의 무릎에 앉지 않고,
인간에게 치대지 않는 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늘 인간에게서 등을 돌러 앉고, 인간이 자신을 보지 않을 때는 멀리서 바라보다가도 눈길을주면 외면하는 척하는 고양이, 명숙 할머니는 그런 고양이를 닮아 있었다. 능숙하게 페달을 밟으며 재봉질을 하는 고양이라니. 
- P195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은 증조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 P199

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영옥아. 우린 다시 만난다이. 내 기걸 알갔어. 기래 생각하니 슬프지도 않누나. 결국은 다시 만날 테니 말이다.
- P204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관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 P220

"그림, 넌 내 손녀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었을 거다."
"어떻게 살았어요, 할머니?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살 수 있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정말 그럴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 P230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날 아침 의사가 내게 귀리의 죽음을 알렸을때 느낀 감정이 슬픔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나는 안도했다. 나의일부는 안도했다. 귀리의 고통이 이제 사라졌다는 사실에, 고통을 받는 그애의 모습을 보고 겪어야 했을 나의 괴로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그 이기적인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 P233

- 새비야.
.
- 내레 아까워.
-뭐가.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다않아.
그 말에 증조모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 P258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터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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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에 첫 출근을 한 날,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 한번 했었다고 답하고는, 더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읽고 작년에 이혼했다고 덧붙였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뛰었고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른 주제로 말을돌렸다.
12 - P12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13 - P13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이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14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할머니가 말했다.
"아가씨, 내 손녀랑 닮았어. 그애를 열 살 때 마지막으로 보고 못봤어. 내 딸의 딸인데."
할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손녀 이름이 지연이예요, 이지연, 딸 이름은 길미선, "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나와 우리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않았다.
20 - P20


"밥은 같이 먹어야 맛이야."
할머니의 말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은 어떤 사람과 먹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 다르니까. 혼자 넷플릭스를보며 밥을 먹는 게 훨씬 더 편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법은 맛이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28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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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가 생일선물로 책을 사줄테니 목록을 달라고 해서 고민없이 부탁 했던 책이다. 알라딘의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보았는데 그 표지에나와 있는문구가 내 속으로 거침없이 강하게 들어왔다.

나는 선한 사람은 아니고, 중간에서 선한 사람을 사랑하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는 건은 그 경계 어디선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담스럽지 않은 선의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작가 이소영 교수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책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진도가 잘 안나갔다.

그러나 표지에 나와 있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 ‘나는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 이 문장에 계속 책을 읽을 힘이 났다. 이 문구가 거침없이 강하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던 그 문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에 남은 구절, 내 맘대로 pick. 그리고 덧붙이는 내 느낌.

「 지친 몸을 잠시 의자에 누이도록 해준 것은 특별히 선하거나 자비롭지 않은 한 인간이 건넨, 별것 아닌 호의였다.
- P18 」
특별히 선하거나 자비롭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별것 아닌 호의가 모여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될거라 믿는다. 정말 작은 호의를 기꺼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내 모습이 감정과 상황과는 무관하게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그리고 우리들이 계속 그러하기를 빌어본다.

「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 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 P62 」
다시 돌아가거나 의미가 있는기억들이 있다.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특정한 하루가 매일 반복이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에게 하루가 무한히 반복된다면 어느 날을 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생각한 날은 생각보다 보람차거나 행복하거나 그런 날은 아니었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벚꽃이 피어 있던 날이고, 그냥 어떤 걱정도 하지 않은 채 평온하게 길을 걷던 날이 었다. 얼마 전 아빠의 생신을 맞아 뷔페에서 저녁을 먹던 날도, 아빠의 소리없는 웃음과 혜민이의 수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얼마전 예전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이 날 참 행복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날들이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 수호천사 같은 날들은 아닌 것 같다. 아직 그런 날이나 장면이나 맛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날들의 추억이 나를 더 따뜻하게해줄거라 믿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기를 바란다.

「 이렇듯 한심하고 불완전한 존재로도 누군가에겐 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그건 그가 자기 한계를 알면서도 사제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끔 하는 동인이 되었으리라.
- P69 」
완전한 사람만이 다른 누구를 구하거나 도울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심하고 힘 없고 죄 만은 누군가도,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고 위로가 된다.

「 다만 60이면서 90인 척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70, 80을 다시금 채워가는 지난한 길에서 이탈하지 않는 묵묵함을 지니려 한다. 길게 내다봤을 때 축복인 지금이 우리에게 항상 열려 있기를.
- P78 」
이 구절의 앞 뒤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 나지 않아 왜 이 문구를 기록해 두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척 속이지 않는 마음과 부족함을채워가는 묵묵함이란 말에 마음이 간다.

「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88 」
인터넷에서 잘못한 사람의 잘못보다 더 큰 분노로 매장하는 여론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게 과연 정의감일까란 생각을 자주 해왔다. 그냥 나는 그렇지 않은 편이라는 안도감과 착한 사람이길 원하는 나쁜 분노감이 아닐까란 생각도 자주 해왔다.모든 사람이 그런게 아니겠지만, 연민 없이 예의 없이 나를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만 가지고 매장 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소영 교수의 이 부분을 읽을 때 고마웠다.

「 이 글을 쓰던 중에도 또 한 건의 아동학대에 대해 들었다. 극악한 부모라는 자들에게 더 무거운 형이 언도되길 바라는 청원에 목소리를 얹기보다는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가 ˝그러니까 집안 내력이 중요한 거야˝, ˝아무튼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과 사귀어야 해˝라는 식의, 선량한 이웃이 무심코 던진 말과 시선에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92 」
읽진 않았지만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책이 있다. 꼭 읽어 봐야지 하면서도 아직 못읽었다. 읽어 봐야지 했던 건 주위에 은근히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보곤 했다. 예를 든다면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고, 내 생각에 우려와 비판하는 지인들이 많을 줄 알지만... 동성애자들에 대해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크리스찬의 시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고... 도와준다는 말 뒤에 본인도 모를 만한 날카로움도 목격했다. 나는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는데, 나 역시 은근한 무언가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며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 본인이 그런 줄 몰랐을 거다. 나 역시도. 그래서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 어디선가 읽은 명제가 떠올랐다. ˝연민은 쉽게 지친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한 즉각적인 연민은 너무나 얕아서 저렇듯 세 번을 넘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 해 지난 지금 드는 생각은, 타인을 위해 기도했던 그 아침의 몇 십 분이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없는 세상보다는 따스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얕음을 부끄러워하되 마음 자체에 대해서는 냉소하지 않으려 한다. 성자가 아닌 내가 고아와 과부의 얼굴로 온 타자‘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은 참으로 작고 비루할테지만 매번 조금씩 더디게 지치기를, 다음에는 세 번째 아닌 네 번째에, 그다음엔 다섯 번째에. 그렇게 생을 통해 ˝연민은 더디게 지친다˝는 명제를 만들어가고 싶다.
- P96 」
할 수 있는 게 작아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의문스러워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좋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큰 거를 하다가 지칠 수있지만, 작고 보잘 것 없어서 누구에게 잘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들을 꾸준히 할 수 있기를. 그런 마음을 꾸준히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개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가 아닐까. 이를 저버리는 순간 나는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배부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P100 」
은근히 자본주의 적이고, 어쩌면 상당히 속물인 나는 내가, 내 가족이, 내 사랑하는 지인들이 더 잘살기를 바란다. .잘산다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물질적인 것들이 상당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나아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쉽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고민을 놓지 않는 사람이길 바란다. 대단하거나 엄청 선한 사람이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이 무언가는 못해도고미을 놓지 않는 사람이기를.

「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뒤이어 조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불평등과 빈곤은 단발성 봉사로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잠시 동안의 선의는 어떤 면에선 무책임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분의 답변이 예상과 달랐다. 문구를 정확하게 복기할 순 없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맞아요. 이걸로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거, 당연히 맞죠. 그렇게 되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요. 근데 그건 제가 지금 당장 어떻게 못해요. 오늘 한 명 더 먹고 입게 하는 데엔 뭐라도 하나 보탤 수 있으니까 일단 저는 한 명 더 먹이고 입힐래요.˝ 차갑게 비웃는 나의 심장에 더운 물을 끼얹는 대답이었다.
- P102 」
당장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걸로 몰지 말고,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하나라도 할 수 있는 내가 되자. 물론 나는 지금까지 그런 나와 그렇지 않은 나가 묘하게 섞여서 살아왔지만.

「 빈곤과 부조리를 미담으로 덮으려는 사회가 문제적이란데에 동의한다. ‘신사와 노숙인‘으로 대비되는 이미지가 자칫 후자를 온정에 감사해야 할 수혜자로 박제화할 수 있음도, 아름다운 한순간을 이렇게나 많이 기억하며, 우리가 어제와 다음 날의 서울역은 마치 없는 것인 양 착각할 가능성도, 문제의 원인을 치열하게 파고들어 투쟁해야 할 사안에서 약자를 동정하는 데 그치게 만드는 ‘분노 없는 연민‘은,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난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제해진 세상에 비해 그 크기만큼은 나을 거라 생각해서다. 설령 이를 통해 부당하게 가진 자들이 회개하거나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호주머니를 열거나 서울역 노숙인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닐지라도 찰나의 선의는 그 자체로 귀하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 P103 」
찰나의 선의에 대해 이렇게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다니. 그 자체로 귀하고,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할 수 있다니. 찰나의 선의를 논리적으로 비판하여 똑똑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진 말자.

「 환승역 계단에서 그녀를 보았다 팔다리가 뒤틀려 온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어 보이는 그녀와 등에 업힌 아기 그 앞을 지날 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돈을 건넨 적도 없다 나의 설부른 동정에 내가 머뭇거려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그래서 더 그녀와 아기가 맘에 걸렸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늦은 밤 그곳을 지나다 또 그녀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바닥에서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 집에 가자 등에 업힌 아기의게 백년을 참다 터진 말처럼 입을 열었다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앉았다 놀라워라! 배신감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그녀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두부사세요 내 마음을 건넸다 그녀가 자신의 주머니에 내 마음을 받아 넣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아기에게 먹일 것이다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말 다행이다.
- 천양희, 다행이라는 말〉,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재인용
- P111~112 」
나라면 엄청나게 비판했을 텐데. 어떻게 다행이다란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학생때에 많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동냥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실제 아는 게 없으면서도, 저 사람들 사실은 먹고 살만하다,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식의 말에 근거 없이 동의 했고, 한 술 더 떠 높은 수준으로 비난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은 안했지만 그런 마음을 오랜 시간동안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지하철역이나 그런 분들을 볼 때 어느 순간엔 그런 마음도 없고 불편한 마음 반, 무심한 마음 반으로 지나 갔다. 그 때 마다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건 아니다. 사실 나 역시 경제적으로 많이도 힘들었던 때가 많았기에 돕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도울 마음의 여지도 없었다. 그래도 저런 상황에서 다행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저 글을 보며 가져 보았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인 골을 뛰어넘어 더 다가가지는 않은 채 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써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보려는 그것이 너일 수 없는 나와 ‘나일 수 없는 너‘가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선물 아닐까.
- P117 」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써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 보려는 마음의 가치.

「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세심증을 앓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다. 어서 만회하려 애쓰지 않고 매일의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관계가 제자리를 찾기도 하더라고 말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조급함이 그대 안의 좋은 것들을 시들게 하지 않기를, 자책과 절망으로 그대를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 P146 」
자책하고 절망하지 않기를. 부디 부탁하고 기도한다.

「 기뻐 어쩔 줄 몰랐던 찰나부터 작은 웃음 조각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기를, 각별했던 관계가 더 이상 파도 더미처럼 자신을 휘감지 않더라도 그가 한때 새겨 넣어준 고유한 색채를 억지로 지우진 않기를.
- P162 」
관계는 계속 변하겠지만 한 때의 소중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기를 예전 사진들을 보며 바래보았다.

「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 P167 」
관계의 밀도라는 말을 쓰다니 너무나 딱 맞는 말이라 감탄한다. 관계의 밀도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기억들이 추억들이 다 휘발되지 않고 남아있기를.

「 아마도 나의 두 고양이는 언제가 되었든 인간인 나보다 일찍 세상 너머로 떠날 것이고, 그 친구들의 생명이 서서히 잦아드는 순간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내 애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슬픔이다. 나는 법정스님 보다 조금은 더 강해서, 혹은 더 약해서, 애착의 고리를 끊어 내기보다 끌어안으려 한다. 깨어지는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두려움 없이 그것을 끌어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지만, 각별한 대상들과의 관계 안에서 매 순간 사랑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쪽을 택하련다. 아낌없이 사랑함으로써 도리어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고양이와 가족을 이루며 갖게 된 생의 지향이다.
- P171~172 」
상당히 동의하는 말이다. 얼마전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읽고 남긴 글에도 썼지만, 나의 네 야옹이들과의 이별이 엄청 힘들고 다신 야옹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매 순간 더 사랑하여 내 사랑과 책임을 더해야지. 무지개를 건너는 순간까지 아낌없이. 그게 내 사랑이니까.

「 돌이켜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을 막연히 동경하는 것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빈틈을 통해서였다.
- P182 」
이렇게 잘 설명할 수 있다니. 나 역시 그랬다 !

「 심지어 ˝그대 표정에 정 떨어졌소˝라는 말을 어디서 듣더라도 상처 받지 않을 것 같다. 정 떨어지는 표정을 두고 매력‘이라 말해준 속 깊은 우정을 한번 가져본 적 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사한 이해의 선물은 이토록 값진 것이다.
- P187 」
저렇게 싶은 선물을 해 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그렇게 해줄 수 있기를.

「 미래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라면,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아픈 배움들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니기를, 오늘보다는 내일 더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인용하며)
- P192 」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삶은 아름다운 것일까.

「 갖가지 기억들을 길어내어 글로 쓰면서도 끝내 건드리지 못할 어떤 시기가 있었다. 버둥거리던 나는 어느 고래 등에 올라 그 시간을 횡단해 대지에 다시 발 디뎠다. 이제는 내륙 깊숙이 들어온 듯도 하다. 그렇지만 행여 큰 풍랑이 일어 나의 고래가 파도에 떠밀려오면, 해변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이 바닷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나의 힘이 밀알보다 작음을 인정하고 큰 코끼리를 불러올 엽렵함을 갖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내가 은혜 갚은 생쥐 역할을 못해도 괜찮으니 그 고래는 일생 동안 풍랑 같은 것을 만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 P197 」
이 구절 앞에 생쥐와 고래의 동화가 있었다. 이 마음이 예쁘다. 내가 은혜를 못 갚아도 좋으니, 그 대상에게 풍랑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 그악스럽게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역시 서로에 대해 그러리라. 그렇게 믿으려 한다. 약한 척하더니 생명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함부로 냉소하는 대신 안도의 숨을 내쉴 거라고 말이다.
- P217 」
냉소하지 말고 배신감 느끼지 않는 대신, 다행이라 생각하고 안도 할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아직 나는 없다. 앞으로 그럴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그래도 그런 마음이 더 좋다는 생각을 이런 저런 일을 겪고 하게 되었다.

「 어두운 터널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깨닫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터널이야말로 찬란했음을, 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보던 우리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이 역시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나는 안다. 끝이라 생각해온 어느 지점은 끝이 아니다. 거기에 빛나는 것들이 새로이 채워 넣어질 것이다. 두근거리며 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에도 우린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
- P241 」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모두를 대하고 있지만, 사실 저 깊은 곳 불안한 마음이 있는 지금이 어쩌면 아름다운 시절일까. 아니러니하게도 가족들에게 정말 잘 하고 싶고, 친구들의 연락이 고마운 건 지금이기도 하다.

「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창 상담 모드로 들어서 있던 나는 무방비상태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선생인데, 뭐든 내 쪽에서 해주어야 하는데 하며 울먹였다. 위로의 순간은 도둑처럼 왔다. 도움과 조언을 내줄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던 중에, 뜻밖의 상대로부터 기습적으로, 손윗 사람의표정과 자세로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 P263 」
위로의 순간은 도둑처럼 왔다니.. 그러게. 위로의 순간은 도둑처럼 온다. 이 말로도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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