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바뀔 수도 있어. 생각보다 빨리."
"어쨌든 지금은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지나치게 가혹한옛날 선생님 같잖아."
"손바닥을 때리려나?"
"깡패처럼 뺨을 안 때리면 다행이지."
29p

"어쨌든 그게 가부장제야. 당신 눈에는 안 보여도 내 눈에는 보여,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주 많아."
30p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필경사 바틀비]면서!
 결혼을 통해 스스로에게 관습에 순응하는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 여자는, 자주 ‘이것이 관습일 뿐인가?‘ 검토하는 사람이 되었다.
의미를 두지 않는 행동은 되도록 하지 않는 사람이.
34p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만 빛내며 판다 동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보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면 가끔 짠해. 그런 날은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거든, 너도 힘들구나, 그게 우리 관계의 바탕인 거 같아.
47p

아빠의 눈에 내가 온전한 한 사람이 아니란 걸터득한 지는 벌써 오래여서 결국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고, 소환되어 온 오빠가 나 대신 싸웠어. 건성으로 싸웠는데도 아빠를 설득해냈어. 오빠의 결정적인 한마디는 ‘남들이 흉본다‘ 였지. 어릴 때 내내 때리고 괴롭혔던 걸 그 설득으로 갚았다고 생각해.
51p

그사이 언젠가부터 근이와 나는 헤어져 있더라.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어. 맨홀에 낀 굽을 빼주는 정도의 귀여운 일은 언제나 일어나고,
근이는 좀처럼 집요한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억눌리지도 뒤틀리지도 않은 사람이 집요하기란 쉽지 않아, 그치?
56p

가장 좋아했던 남자애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냐. 나는 굉장히 여러가지로부터 도망쳤거든.
57p 효진

그리고 그해가 다 가기도 전에 그 후배는 교수들 사이를, 교수와 조교들 사이를, 선후배 동기 사이를 굉장히 복잡한 선으로 이간질했어. 교수 임용과 장학금 수령 결과가 바뀔 정도로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던 모양인데 애초에 악의가 있어서 벌인 일이면 빨리 탄로가 났겠지만 그저 자기 안의 불안을 사방에 던진 꼴이어서 꼬리가 늦게 붙잡혔어. 불안정한 사람 한명이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였다고 할까. 나도 큰 타격을 입은 사람 중 하나였어. 그런 거짓말은 거짓말로 밝혀지고 나서도 이상한 효력을 발휘하잖아. 사람들은 지쳤고 그 어떤 것도 회복할 의지가 없었어. 덕분에살이 몇 킬로쯤 빠졌지만 사실 너무 흔한 일이지. 분명 지금도 어디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걸.
57-58p 효진

가난하기로 치면 나도 가난하고 사실 내가 도망친 건 가난보다 좀더 어둡게 끈적이는 어떤 것으로부터였는데 나는 무슨무슨 녀라고 유행하는 비속어들로 요약되어버렸어. 그 사람은 새벽에 전화해 돌아와달라고 울면서도 매일매일 글을 올리더라. 욕설이 섞인 게시물과 간절한 전화 사이의 간극이 더 소름 끼쳤어.
59p 효진

태어난 곳으로부터, 소속된 모든 딥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관계로부터 도망쳐왔어.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 남보다 못한 가족들과도 어떻게든 연을 이어가려고애쓰고, 처음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지옥 같은 회사를 개선시키고, 성격이 안 맞는 애인과 다투고 다퉈서는 안정적인 관계에 다다르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망쳤어. 위기의 순간이 오면, 핑글 돌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지. 정말은 위기의순간이 오기도 전에 도망친 걸지도 모르고.
61~62p 효진

"하지만 네 말은 그거잖아, 우리가 언젠가 뿔뿔이 돌아가고 ‘알다시피‘에 다른 멤버들이 들어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은 우리들 것이라서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거, 다른 사람에겐 지분이 없다는 거, 효짱 얘기가 그 얘기 아니야?"  가끔 똑똑해지는 타케루의 명료한 정리에 마음이 편해져서 고개 를 끄덕이기도 했다. 
84p 알다시피, 은열

여백은 채울 수 없고, 채워서도 안되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규정지을 수 없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를 비웃게 된다.
85p 알다시피, 은열

아마 친구들이 떠나고 나서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알다시피 밴드는나의 어떤 강박관념을 지운다. 하다가 안되면 노래로 만들지 뭐, 하고 가볍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나약하면서도 나약하지 않은 이상한 방식으로 힘이 된다. 
90p 알다시피, 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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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의무는 다른 모든 의무에 우선하며, 상황과 관계없이 지켜져야 한다."
260p

도일은 자신이 직접 건넨 증거를 무시하는 관료들을 보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료들에게 이성과 정의를 기대하다니, 도일이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263p

도일과 관련해 기록해둘 만한 논쟁이 하나 더 있다. 이 논쟁은 그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한편, 그 자체로도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지닌다. 도일은 약자를 위해 돌진하는 보통사람의 모험적 본능을 대변했던 것처럼, 비극적인 사건의 그림 같고 감상적인 면에 반응하는 일반시민의 감성을 공유하고 표현했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두고 그와버나드 쇼가 벌인 결투에서 우리는 두 유형의 아일랜드인을 보게 된다.
한쪽이 충동적이고 진지하고 낭만적인 가톨릭교도라면, 다른 한쪽은논리적이고 풍자적이고 현실적인 개신교도다.
269p

도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건 그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보통사람을 너무 정확하게 대변해서 ‘보통사람의 전형‘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보통사람은 신문이 우리에게 심어주려는 이미지처럼 그렇게 건강하고 순수하지 않다. 보통사람은 이상한 욕망과 가정적인 성격, 잔혹함과 친절함, 불건전함의 복합체다. 도일은 그러한 보통사람의 별로 유쾌하지 않은 특징들도 보다 괜찮은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표현해냈다.
295~296p

1930년 7월 7일 오전 9시 30분 그는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그보다 8년 전 그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묘비명을 썼다.

내 소박한 계획은 이뤄질 것이다.
내가 한 시간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절반은 어른인 소년에게,
혹은 절반은 소년인 어른에게.

370p

(영문학의 아이돌 시리즈)에서 버나드 쇼가 더는 사고하려 하지 않 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면,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삶과 작품들은 더는 행동하려 하지 않는 우리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대에 이미 인정을 받은 최고의 피조물 덕이나 보며 편히 살 수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도일은 충분히 멋진 작가라 하겠다.

김지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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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에서는 ‘지금’이라는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을 ‘여기’와 비교해보지요. ‘여기’는 말하는 사람이 위치한 장소입니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각자 ‘여기’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서로 다른 두 장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는 언급된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단어를 전문용어로 ‘지시적’ 단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말을 한 순간에 한정된 단어입니다. [‘지금’도 지시적 용어입니다.] 어떤 사물이 ‘여기’에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데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중에서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우리의 자연이기 때문이지요. 자연은 여기, 우리 지구에서 자신의 일부들과 상관관계를 맺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끝없이 조합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외에 어떻게, 얼마나 많은 독특한 복합성을 지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자연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로 무한한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중에서

예측하기에는, 특히 우리 스스로 예측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스피노자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이미지가 우리의 내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극단적으로 더 거칠어지고 퇴색했을 때 내면적인 자유를 강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놀라움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 은하계 하나를 채울 만큼의 숫자인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신경세포들이 이룰 수 있는 관계나 조합을 생각하면 훨씬 더 천문학적인 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얼마 되지 않는 세포들이 아닌, 모든 세포의 총체로 만들어진 하나의 프로세스라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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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찰실에서 대기하고,
대기실에서는 아무도 대기하지 않았다.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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