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황홀하나 비애는 깊다." "삶은 짧고 비극은 길다."
제주 땅을 태로 둔 내게 이 땅이 주는 말이다. 젊은 날엔 떠나고 싶던 땅, 자잘한 모의만 하다 봄은 해마다 해일처럼 밀려왔고, 밀려갔다.
4p 작가의 말

감히 어떻게 안다 하겠는가. 나는 그들의 시간을 살지 않았으므로.
4p 작가의 말

그럼에도 그지독한 시간이 남긴 것을 조금 안다면, 그들의 시간 속에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물음 이 있고, 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슬픔을 넘어선 울음, 죽음을 건너온 희망의 언어가 나를 위로했다. 역설적으로, 지금아프다 하는 것이 죽음의 불구덩이를 살아나와 꽃을 피운 그들의 고통만 하겠는가.
5p 작가의 말

또다시, 바다마저 통곡을 삼킨 애도의 봄이 오고 있다. 피워보지 못한 짧은 생이었기에, 그 서러운 봄을 대면하지 못한 사람들의 봄을 생각한다. 죽은 자들이 말한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산 자들이 말한다. 당신과 딱 한 번의 봄이라도 살고 싶지만.
9p 작가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미로운 것은 경민의 가족들도, 대단한 우정을 과시하던친구들도 경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는 점이었다. 한아는 그 부분에서 솔직히 섬뜩함마저 느꼈다. 완전히 태양계 밖으로 사라졌는데, 전혀 다른 존재가 그자리를 대신했는데 알아차린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니. 원래의 경민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145p

그러니 어쩌면, 한아는 이제야 깨닫는 것이었는데, 한아만이 경민을 여기 붙잡아두던 유일한 닻이었는지 몰랐다.
닻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약하고 가벼운 닻, 가진 게 없어줄 것도 없었던 경민은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고 종국에는 지구를 떠나버린 거다.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을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닻이 없는 경민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까?
146p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147p

알고 보니 우주의 고래형 지능체들은 지구의 고래들을 매우 걱정해서, 그들을 돕기 위해 무슨 단체인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151p

경민이 와준 건, 왠지 대놓고 인정하긴 싫었지만 행운이었다. 우주적 행운, 한 반광물 생명체의획기적 진화. 대단한 희생을 기반으로 한 기적.
156p

"우주의 광막함을 견디고 싶지 않고, 긴 여행에 필요하한정된 자원을 미래 세대에게 양보하고 싶대."
161p

"아니, 해야겠어. 세상에……… 우주 끝까지 갔더니 네가그걸 아는 게 나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더라. 진부하게 말이지."
204p

우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러브 스 토리의 시작이면서, 끝이었다.
21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 하루만 나한테 시간을 줘. 그러고도 안 된다면, 내가 물러설게, 깨끗하게 놓아줄 테니까."
경민의 마지막 제안이 타당하게 느껴졌으므로, 한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68p

어두운 한아의 표정에도 경민은 반가웠고, 북받쳐올랐고, 사랑을 확신했다. 등을 곧게 폈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었다.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78p

말이 잠시 끊긴다.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불편하게 꽉찬 침묵이 흐른다. 젤리 같은 공기, 아주 맛없는 젤리 같은 공기를 못 견디고 경민이 다시 입을 연다.
81p

"바보 같다고 생각 안 해. 한 번도 너 바보 같다고 생각한적 없어.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81p

"그래도 누구랑 이야기를 하니까 덜 미친 이론인 것 같고안심되네요."
국가 공무원이 비슷한 의심으로 같은 장소에 와 있다는것이 상당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주영이었다.
88p

한아는 경민의, 아니 경민이라 생각해왔던 이의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동시에 모두 이해했다.
94p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95p

그 무서움의 도치가 더 무서웠다.
99p

지구에서도 아주 좁은 면적을.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그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어.
101p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꿈을 꿀 수 없었고.
102p

궁상 맞은 연기를 하는 외계인을 보니 짜증이 났다.
107p

"괜찮아요. 얘기 들어요. 경민아, 너도 입에 불 빼라."
"하지만..
경민은 망설였다.
"반지 뺀다?"
"알았어."
114p

네가 없으면 내 여행은 의미가 없어져.
12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아는 시각에 편중된 편이라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폴로의 대표곡들과 대표곡이 아닌 곡들을좋아했다. 어느 쪽이냐면 대표곡이 아닌 노래들이 더 좋다고 여기면서, 사운드를 산뜻하고 화려하게 쓰는데도 어딘지본질적인 느낌이 나는 곡들이었다. 척추로 색채감을 느끼게하는 음악을 쓴달까,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이해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사가 정말 좋았다. 좋은 음악가인데다 세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27p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다. 이쪽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빙글빙글, 그를 가운데두고 궤도를 돌 수 있다면.
29p

"고마워요. 오늘 그런 말을 듣는 게 정말 필요했어요."
그날 아폴로가 건넨 피크는 모서리가 형편없이 닳아가고 있지만, 주영의 마음은 닳지 않았다. 
31p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익숙해져볼까 하고 이것저것 찾아봤어요. 재밌더라고요, 인터넷."
"어디에 익숙해진다는 거야?"
"그냥……. 여기에."
32p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33p

주영이 아폴로를 발견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정말이지 다채로운 톤으로 들어왔다. 영하 40도의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 112도의 분노로.
36p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 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37p

평소에는 거의 해체했다 다시 잇다시피 혁신적인 변화를주기도 하는 한아지만, 애도하는 손님들이 찾아오면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아주 살짝만 새로움을 더한 다. 그 새로움이 슬픔을 조금 지울 수 있을 정도로만.
38p

할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 아까 어쩐지 안아주고 싶더라. 부적절할 것 같아서 관뒀지 만 포옹이 자연스러운 문화권이라면 안아줬을 텐데."
40p

 다행히 모두 흔쾌히 응해주었다. 아티스트의 실종에 연관된 것이 그들에겐 일종의 흥미진진한 이벤트인 듯 보였다.
나도 그냥 이벤트였으면 좋겠어. 이렇게 모든 중심을 다 내어주지 않아도 되는, 잠깐의 이벤트면 좋을 텐데, 서늘한 안쪽을 숨기며 주영은 생각했다.
5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상순 엄마, 정태화 아빠께
아무리 해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기 때문일 거예요.

좋게 말하면 아주 사적인 데가 있는 가게였고, 나쁘게 마하면 시대착오적이라 할 만큼 생산성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12p

잔잔하게 이어질 줄 알았던 행복이, 배수구로 빠져나가듯흔적을 감춘 것은 최근이었다. 
13p

"뭐, 나도 남들이 보면 답답하게 신다 싶을 거고, 애초에개의 그런 점이 좋았는걸 난 모험가 타입이 아니라 늘 익숙한 곳에 있으려 하니까 경민이가 내 몫까지 모험을 해주는거 같아서 갤 보며 대리 만족을 할 때도 있고…… 그렇게서로 보완해주며 사는 거지, 뭘 "
19p

하얀 캔버스화에 꽃잎을 떨구기 시작하는 친구를 물끄러미 보았다. 호흡속도까지 신경을 쓰며 집중한 옆모습에 혼자 감탄하고 말았 다. 그런 모습에 처음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리는 언제나 한아의 편이었다. 
2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