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 P9

할아버지는 쇼코에게 자신을
‘미스터 김‘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쇼코와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다 늙은 교장선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면서.
- P12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 P14

나는 그냥 쇼코의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는데, 쇼코는 그냥 그 일기장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인데, 일기장 주제에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했다.
- P24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 P24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은 주말이면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다녔고,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나의 독서량은 그애들보다도 빈약했다.
- P33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 P34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 이상한 나의 할아버지, 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P40

할아버지는 평생 좋은 소리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는데 그게 고작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끄러움을 죽여가며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 P47

"뭐라 하셨어?
"내가 이러고 사는 게 멋지다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거니까멋지다고 하셨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영화 일이 마음으로 정리가 되더라."
"정리가 되다니?"
"이제는 끝내려고, 엄마."
- P53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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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가지를 볼 수 없다. 하나는 자신의 얼굴이다. 그래서거울이 필요했다. 또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볼 수 없다. 자신의 죽음을 보여 주는 마법 거울은 발명되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것은 타인의죽음뿐이다. 타인의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자신의 죽음에 관여할 수 없다. 그것은 내 죽음을 비춰 주는 거울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배우고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지구상에 태어난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오래된 문제, 죽음, 4800여 년 전 쓰인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의 핵심 내용도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 죽음으로부터 예술과 종교가 자라나왔다.
- P93

타인의 죽음에 대해 냉정한 사회는 철학적으로빈곤한 사회이며, 비인간적인 사회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돈을 그러모으고,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한 자에게 보내는 삶의 경고가 타인의 죽음이다.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고마운 거울이다.
- P104

이제 나에게는 엄마의 젊고 건강하던 시절의 사진이 더 낮설다. 매일매일 작아지는 몸을 가진 엄마. 그렇게 호리병에 들어가 요정이 될 것처럼 작아지는 몸을 가진 엄마라도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나는 좋다.
- P115

나는 늘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도 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의 죽음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할수록 좋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설속 라모스의 말처럼 세상 모든 것을 제대로 맛보고 감별하고 누리기위해, 지상에서의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영원히 시한부 상태로살아야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순간의 절대적인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은 죽음을 생각할 때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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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에이미와 로리 커플 때문에 받은 분노는 베스의 죽음 만큼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삶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내 어릴적 최애 빨강머리 앤은 지금 보니 내 베프는 앤이 아니었고 마릴라였으며, 항상 따뜻한 그 애는 다이애나가 아니라 메튜였다. 그리고 빨강머리 앤 보다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 좋아했던 작은아씨들은.. 지금 시대와는 좀 떨어진..그러나 이해는 되는 그런 이야기가 되었구나. 그리고 빨강머리 앤 만큼 지금의 의미는 더 이상 되지못하는구나. 씁쓸하지만 그저 어릴적 읽은 책이 되어버렸네.

역시 나는 조,베스 조합이.

이렇게 써놓고도 함께한 시간들 때문인가.,
조금은 못마땅하지만 사랑하는 내 친구들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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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에이미! 너무 슬퍼서 거의 병이 났구나, 이제 내가 돌봐줄 테니까 울지 마. 같이 산책하러 가자. 가만히 앉아있기에 바람이 너무 차네." 그는 에이미가 좋아하는, 반쯤은 달래고 반쯤은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 P830

 그러다 저녁 식사 종소리가 들리자 정신이들었다. 에이미는 마침내 외로움과 슬픔의 짐을 그 정원에 남겨두고 떠났다.
- P831

누구는 늘 화창한 햇빛 속에서 살아가는데 누구는 어둠 속에 처박혀 있어야 하다니. 도무지 공평하지가 않았다. 조는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에이미보다 더 노력했는데도 보상은커녕 실망과 괴로움, 고된 일만 떠맡게 됐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 P837

지금까지 활발하게야심에 찬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희망, 계획, 욕심을 모두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P842

"제 글에 선함이나 진실이 담겨 있다면 그건 제 것이 아니에요.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 베스 덕분이에요."  - P844

기다려요, 친구, 늦을지도 모르지만 꼭 찾아가겠습니다.
- P850

무엇보다 이 소박한 가족은 그가 가난한 남자라는 이유로 더욱 친밀감을 느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가난은 가난 속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살찌우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바에르는 길을 가다 낯선 집 문을 두드렸는데 그 집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는 나그네가 된 기분이었다.  - P872

어린 시절의 다양한 흔적들.
미래의 꿈들은 온데간데없고,
과거의 추억은 여전히 달콤하네.
쓰다가 만 시들, 거친 이야기들,
온기와 냉기가 교차하는 4월의 편지들,
고집스런 아이가 쓴 일기들,
조숙한 소녀의 흔적들이라네.
어느덧 외로이 홀로 집을 지키게 된 여인은여름의 빗소리에 섞인슬픈 노래를 듣고 있네.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내용의 노래라네.
- P921

네가 고통의 감옥 안에서슬픈 기색 하나 없이담담히 부르던 노래들이이제 영원히 감미롭게여름의 빗소리에 섞여든다.
- P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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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났다. 쥘리는 남편에게 생 프뢰를 친구로 소개하고, 남편은 두 사람의소중한 관계를 받아들인다. 그들의 방해받은 사랑은 거꾸로 끊임없는도덕 단련의 계기가 되었다. 루소는 사랑을 남녀 간의 정념의 문제에서 인생을 제대로 잘 살아가기‘라는 실천철학의 실천 과정으로 바꾸었다.
- P70

텅 빈 듯 보이지만 작은 붓질로 채워진 벽, 바닥, 하늘…… 그녀를 둘러싼 그림 속 모든 것들은 그녀의 얼룩진 삶을 닮았다. 크게 나쁘지도 않았지만 썩 좋지도 않았고, 큰 사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지워 낼 수 없는 기억과 상처가 자잘한 얼룩으로 남아 있는 여인의 삶.
- P79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세월의 주인공 로라 브라운은 그림 속여인처럼 홀로 낯선 호텔에 들었다. 그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낯선호텔에서 남편을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기획한 것도 아니고, 남편의 눈을 피해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다. 로라가 간절히 원한 것은 오직 책을 읽을 수 있는 두세 시간이었다.
- P82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바로 버지니아 울프(1882-1940)의소설 『댈러웨이 부인이다. 삶. 런던. 6월의 이 순간"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곱씹었다. 로라는 그토록 아름다운 글을 쓰고, 또 삶을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가?
- P84

라처드의 상처를 잘 알고 있던 클래리사는 로라를 보면서 복잡한 심경으로 ‘희망‘에 관해 다시 생각한다. 로라의 희망에 관해, 그리고 자신의 희망과 행복에 관해, 도시에 모여든 사람들의그림 속의 그녀는 마치 우리가 알몸으로 세상을 나오듯 그렇게빛을 향해 이끌리듯 섰다. 지리멸렬한 가운데서 살지 않을 수 없고엇갈리는 희망들에 대해서.
또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삶은 그다지 빛나는 것도, 그렇게 어두운 것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명암이 교차하는 가운데 각자는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강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옳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삶을 사랑하는 만큼 희망해야 한다. 희망은 삶을 사랑한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이니까. 늘 그래 왔듯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그냥 뜬다. 그 태양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각자가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이다. 소설 속 댈러웨이 부인 클래리사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도시를, 그리고 아침을 마음에 품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더 많은 것을 희망한다." 그래서 인간인 것이다.
그 어떤 무엇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삶에 대해 끊임없이 희망을갖는 것,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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