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편히 쉬면서 생각을 비우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가는 곳이거든.
- P3

도심을 빠져나온 기차 주변으로 풍경이 겹쳐지며 파도처럼 밀려왔어.
역시 기차 여행은 창가에 앉는 게 최고지.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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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암시나 불쾌한 질문을 회피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상황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심지어 찬성하고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척했다.
- P472

그는 그녀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즉 남편을 불행하게 만들고 남편과 아들을 버린 데다 좋은 평판마저 잃었는데 어떻게 활기차고 명랑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473

브론스키의 재능에 대한 골레니셰프의 확신은 그가 자신의 논문과 사상에 대해 브론스키의 공감과 찬사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도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는 칭찬과 협력이 상호적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 P508

그가 그녀에게 불만을 느낀 까닭은, 그녀가 필요한 경우에 스스로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녀의 사랑을 받는 행복을 감히 믿지 못하던 그가 이제는 그녀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 P530

다들 그가 반드시 곧 죽으리라는 것, 그가 이미 반쯤 죽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감춘 채 그에게 병에 든 약을 주기도 하고 약과 의사를 찾기도 하면서, 그와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 P558

그는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랑이 그를 절망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 그 사랑이 절망의 위협 아래서 더욱 강해지고 순수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 P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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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자네가 내 의견을 알고 싶다면......"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안나와 이야기할 때처럼 아몬드 버터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선한 미소가 너무나 믿음직스러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유약함을 느끼며 그 미소에 굴복하고 말았고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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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며 결심을 뇌 깊숙한 곳에서 꺼내듯 하여 그것을 확인하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속임수일 경우, 조용히 무시하고 떠날 것. 사실일 경우, 예의를 지킬 것‘.
- P368

브론스키는 일어나 구부정한 자세로 흘깃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압도되었다. 그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것이 자신의 세계관으로는 아예 도달할 수도 없는 지고한 무언가라고 느꼈다.
- P377

남편은 슬픔 속에서도 관대한 데 반해, 자신은 기만 속에서 비열하고 보잘것없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부당하게 경멸했던 사람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자각은 그의 슬픔에서 작은 일부만을 차지했다. 
- P379

그는 병든 아내의 침대 옆에서 난생 처음으로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부드러운 연민에 자신을 내맡겼다. 예전에 그는 그러한 감정을 해로운 약점으로 생각하여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녀에 대한 연민, 그녀의 죽음을 바란 것에 대한 후회, 무엇보다 용서의 기쁨은 그로 하여금 갑자기 고통의 완화뿐 아니라 정신적 평온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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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가까워 오면 할아버지의 침에 절어 시척지근한 냄새가 밴 베수건에 싸 둔 곶감이나 밤 따위가 다 절절히 그리워지곤 했다. 그건 먹고 싶다는 것하고는 달랐다. 핏빛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건들대는 수수이삭을 보고 싶은 것과 같은 감미롭고도 쓸쓸한 정서였다. 
- P127

그러나 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 행위는 얼핏 보기에는 정의감 같으면서 실은 도피였다. 오빠는 국방복 입고 각반 치고 징 박은 군화 신고 군수공장에 다니는 일을 못 견디어 했다.
- P167

관념적으로 모호하게 미화됐던 은방울꽃의 실체를 발견한 날은 온종일 이상하게 우울하고 마음이 아팠다. 장차 이 세상은 어찌 될 것이며 나는 어찌될 것인가, 내가 지금의 이 상태에 완벽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이 상태가 영속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막연하게지만 자연과 행복하게 일치된 것 같은 자신을 믿을 수 없는 마음이 생겼고, 나의 중요한 일부를 서울에 남겨놓고 온 것처럼 느꼈다.
- P174

언니의 화법은 특이했다. 옆에서 듣는 사람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면서도 오빠의 자존심을 긁는 신랄함이 없이 다만 구수했다. 오빠가 언니를 보고 첫 눈에 마음에 들어 한 것도 아마 이성 간의 직감으로 그런 소질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때가 마침 오빠에게 얼마나 충고와 위안이 필요한 시기였던가도 알 것 같았다.
- P225

그럴 때 엄마는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오빠의 전향을 지켜보고있는 어떤 음산한 시선을 향해 변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게 열성스럽고도 조금은 비굴하게 굴었다. 
- P229

그 엄청난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악용, 선용, 남용, 절제 아무거나 다 매혹적이었다. 앞으로는 모든 것을 그것과 더불어 공모하리라. 그 꿈이야말로 장미와 라일락과 모란을 피게 하는 5월의 햇빛보다 더 찬란했다.
- P236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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