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 이 사이의 시간들은 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는 일 없이 또한 존재할 것이다. 끝없이 도래하고 머물고 지나가고 또 다가올 것이다. 이것이 생의 진실이고 아름다움이다.
- P139

가을 하늘이 왜 그렇게 맑고 깊고 텅 비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봐,나는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어. 사방이열려 있어. 모든 곳이 길들이야. 그러니 날아올라. 날개 아래 가득한 바람을 타고......
- P152

그의 몸은 나날이 망가졌지만 정신은 나날이 빛났다, 라는 식의 역설은 옳지 않다.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 P160

이 기록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한다. 그 경계 위에서 나는 매일 매 순간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댄스의 스텝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줄타기.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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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해 시장에 못 간 지가 벌써 한달이었고, 말썽을 부리는 나 때문에 걱정할 게 없었다면 정말 사는 의미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 P147

나는 가끔씩 길거리에 주저앉아 녹음실에서처럼 세상을 뒤로 더 뒤로 거꾸로 돌렸다.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오면 다시 그들을 들어가게 했고, 보도 위에 앉아서 차와 사람들을 멀리 뒤로 돌려보내며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했다. 내 기분이 정말 더러웠으니까.
- P159

샤르메트 씨가 기차며, 역, 그리고 출발시간 따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들어줄 만했다. 마치 그는 아직도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환승역에서 갈아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탄 기차가 이미 종착역에 다다라서 이제 내릴 일만 남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P168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생각해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양탄자를 팔러 다니던 생활을 그만둔 뒤로는 매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보니 백지 위에 백지만 쌓아온 셈이어서 별다른 기억이있을 리 없었다. 
- P175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 P178

그러나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내가 아직은 여기에 설명할 수 없는 저 민족적 대재난이 벌어졌다. 그 일로 나는 단번에 몇 살이나 더 나이를 먹게 되어 다른 문제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기뻤다.
- P207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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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 P81

환자의 주체성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그 사이에서 환자의 주체성은 새로운 삶의 영토를 연다.
- P83

사랑한다는 것이다. 생 안에는 모든 것들이 충만하다. 눈물도 가득하고 사랑도 가득하다. 왜 생 안에 가득한 축복과 자유들을 다 쓰지 못했던가.
- P85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 P90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둘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 P97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 P103

선택은 쉽지 않고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그건 어느 쪽이든 나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다는 것. 이제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는 단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 P109

문득 차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은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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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시골집에서 며칠을 머물던 어느 겨울날,
들판 건너편의 오래 비어 있는 폐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마을의 풍경이 어떻게든 지금의 나를 이루었겠구나, 하고. 
- P230

그러니 사라져가는 것, 망가지고 부서진 것,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어떤 것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일에 대해 이유를 묻는다면, 아직 그것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없다. 
- P232

그런 생각 끝에는 늘, 가고 싶은 데는 되도록 가보며 살자는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나를 마침내 그곳에 데려갈 사람도 결국은 나밖에 없다. 우리는 후회를 늘리려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중간생략)
가보고 싶은 곳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아직 오지 않은 무수한 오늘들은 살아볼 만한 날들이 되기 때문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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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처럼 사는 일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저무는 해가 아쉽게 느껴지는 날이라면, 잘 살아낸 하루일 것이다. 그런 하루가 모이고 모여 삶을 이룬다면, 그것은 잘 살아낸 삶일 것이다.
- P205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바다는 늘 달랐다. 내가 보는 바다는 사실이 세계를 채우고 있는 단 하나의 바다일 뿐인데, 매번 다른 바다에 당도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은 꼭 시간에 대한 은유 같기도 했다. 삶이란 수많은 날들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에 도착한다는 점에서.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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