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해 시장에 못 간 지가 벌써 한달이었고, 말썽을 부리는 나 때문에 걱정할 게 없었다면 정말 사는 의미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 P147
나는 가끔씩 길거리에 주저앉아 녹음실에서처럼 세상을 뒤로 더 뒤로 거꾸로 돌렸다.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오면 다시 그들을 들어가게 했고, 보도 위에 앉아서 차와 사람들을 멀리 뒤로 돌려보내며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했다. 내 기분이 정말 더러웠으니까. - P159
샤르메트 씨가 기차며, 역, 그리고 출발시간 따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들어줄 만했다. 마치 그는 아직도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환승역에서 갈아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탄 기차가 이미 종착역에 다다라서 이제 내릴 일만 남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P168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생각해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양탄자를 팔러 다니던 생활을 그만둔 뒤로는 매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보니 백지 위에 백지만 쌓아온 셈이어서 별다른 기억이있을 리 없었다. - P175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 P178
그러나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내가 아직은 여기에 설명할 수 없는 저 민족적 대재난이 벌어졌다. 그 일로 나는 단번에 몇 살이나 더 나이를 먹게 되어 다른 문제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기뻤다. - P207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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