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으로 살펴주시지요.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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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로 퇴근합니다
고윤아 (지은이), 제작자 고간호사, 2023-07-07, 에세이, 142쪽

#독립출판 #병실로퇴근합니다 #간호사이자환자 #고간호사

🍊 표지 오른쪽 아래 3줄로 쓰여진 ‘환자 고윤아 /담당 간호사 고윤아 / 글쓴이 고윤아‘ 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표지를 넘기지 못하게 하는 세줄이다. 그 옆 좌측에는 ‘난치병과 함께 사는 고간호사의 담담한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그럴 것 같다. 예전 30일 미션 글쓰기에서 고간호사 고윤아 작가님의 짧은 글을 한 달 글쓰던 동료로서, 독자로서 매일매일 기다렸다. 담담한 이야기. 연약함도 강함도 같이 느껴지고, 슬픔도 따뜻함도 미묘하게 깔린 그 많은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나간 글이었다.

🍊 책날개의 글을 보며 살짝 나올까봐 힘주던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눈물 대신 공감을 하고 응원을 보냈다. 특히 ‘바꿀 수 없는 현실은 받아들이고, 억울함과 슬픔은 버리며 삽니다.‘ 이 문장에... 그랬는데 들어가는 글을 읽다가 더 눈에 힘을 주어야했다. 나의 표내지 못하는 감정을 들킨것만 같았다.

🍊 ‘숨기진 않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았던 지난날‘이란 표현을 다는 몰라도 충분히 짐작한다. 내 방식대로겠지만. 아니 더욱더 복잡한 마음이다. 고윤아 작가님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해 생각한다. 차마 표내지 못했던 내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마음도. 차마.. 남기진 못하겠다.

🍊 더 남기고 싶은 구절들

🌱불안함과 좌절과 슬픔과 우울과 괴로움을 포장한 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17

🌱간호사와 환자 역할 그 사이에서 늘 양쪽의 마음을 이해해본다.
42

🌱이쯤에서 잠깐 얘기하자면 ‘아픈데 왜일을 하냐‘, ‘집에서 쉬면 되지않냐?‘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 말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돈 없이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도 생활은 해야 하니 돈은 있어야 했다. 
47

🌱한참을 실컷 울고 정신을 차렸다. 그날, 나는 절대적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정신차리고 살겠다고, 아프고 힘들어도 버틸 것이라고. 68

🌱슬프면 펑펑 울고, 괜찮아지면 다시 또 살아갈 방법을 궁리했다. 방법은 반드시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뭐든 해보길 바란다.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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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은과 인곤은 함께 생각의 고리를 짚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각자 서로를 평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P41

자은은 질문만 사슬처럼 늘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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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석영중, 정지원 (옮긴이) 열린책들 2024-03-05, 224쪽, 러시아소설

#빈칸놀이터프로그램
#문학을낭독하는사람들
#문낭사

🍊 문학을 낭독하는 사람들, 5월도서로 톨스토이를 만나게 되었다. 열린책들 모노에디션으로 나온 이 책은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미완성 단편 <광인의 수기 > 두 편이, 단편만큼 긴 역자 해설 과 함께 묶여있다. 톨스토이라면 지금은 기억이 99%소실된 학상시절 읽었던 <안나 카레리나>와 너무나도 유명한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유일하게 읽었던 전부인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두 책을 다시 읽어보고,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 5월 문낭사 책 두 권의 후보 중 고민할 때, 4월을 함께했던 분께서 봄에는 죽음을 생각해야한다는 멋있는(?) 말씀을 하셔서 최종 선정하게 된 책이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의 죽음> 뿐 아니라 <광인의 수기>,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이전 읽었던 톨스토이 작품까지 모두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역자 해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네 편 뿐 아니라 평생 톨스토이는 죽음을 성찰했고 작품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 최근 3년 정도 내가 가장 고민하고 깊게 생각해온 두 세가지 중 하나가 죽음이었다. 책리뷰 때 가끔, 그리고 얼마전 공저로 나온 글에서도 남긴 나의 미완성 결론은 죽음도 삶도 다른 게 아닌가 보다 였다. 대문호 톨스토이에 근접했다는 오만이나 무지는 아니다. 그저 이런 생각을 이미 많은 문인들이 했고 톨스토이가 작품에서 말하는 바라는 걸 역자 해설에서 다시 확인하며, 뭔가 위로와 격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 꼭 봄 (무언가 시작되는 시기. 생명의 시작) 뿐 만이 아니다. 삶에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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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법원 건물에서 멜빈스키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들과 검사들은 휴정 시간이 되자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크의 집무실에 모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크라소프사건에 대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 P9

동료의 죽음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불러일으킨 것은 그로 인해 가능해진 자리 이동이나 직위 변경에 대한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까운 지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 으레 그렇듯이 죽은 것은 자기가 아닌 그 사람이라는 데에서 모종의 기쁨을 느꼈다.
- P11

<어쩌겠어, 죽은 걸. 어쨌든 나는 아니잖아> 모두들이렇게 생각하거나 느꼈다. 이반 일리치와 아주 가까웠던이른바 친구들이란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이제 예절이라는 이름의 대단히 지겨운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추도식에 참석하고 홀로된 부인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해야만한다는 사실을 부지불식간에 상기했다.
- P12

그녀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연금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척했다. 하지만 분명 과부는 이미 아주 세세한 부분은 물론 심지어 표트르 이바노비치도 잘 모르는 정보까지 모조리 꿰뚫고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빌미로 국가에서 받아 낼수 있는 모든 지원금의 종류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돈을 더 긁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 P22

그리고 이러한 재미는 결국 그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밟아 버릴 수 있다는 권력의 의식, 법정에 그가 들어설때나 부하 직원들을 마주할 때면 그들의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나는 존경심, 상사와 부하 직원들을 상대로 거두는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이 모든 것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 P39

남편과 아내가 폭발하지 않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작은 섬들이 다시 떠오르곤 했지만 그 섬의 수는 아주 적었다.
- P55

이제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섭고 낯설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아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P64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에 스며든 독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 P67

그는 그렇게 파멸의 벼랑 끝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고 불쌍히 여겨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
- P68

이건 맹장 문제도 아니고 신장 문제도 아니야. 이건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자꾸만 도망가고 있어. 나는 그걸 붙잡아 둘수가 없어. 
- P73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인데, 나는 맹장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맹장 고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사실 문제는 죽음이야. 그런데 정말 나는 죽는 걸까?
- P75

이반 일리치는 서재로 돌아가 자리에 누웠다. 그는 또다시 죽음과 단둘이 남겨졌다. 죽음과 마주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차갑게 식어 가는 자신을 느낄 뿐이었다.
- P83

모든 이들의 관심은 그가 과연 언제 자신의 자리를 비워 주게 될것인지, 과연 언제 사람들을 그의 존재로 인해 야기된 의무와 압박에서 해방시켜 주고 자기 자신도 고통에서 자유롭게 될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 P84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 좀 못 할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해 고생 좀 하는 것이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으며, 그 또한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수고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 P91

늘 이런 식이었다. 어디선가 한 줄기 희망이 반짝하는가 싶다가도 금방 절망의 파도에 휩쓸려 버리고 결국 똑같은 통증, 그 빌어먹을 통증, 똑같은 절망만 남고 모든것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혼자 있을 때면 무섭도록 외로워서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이 오면 기분이 더 나빠진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P96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와 절대 고독과 사람들의 잔인함과 신의 잔인함이 서러워서, 신의 부재가 서러워서 목 놓아 울었다. <어째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어째서 저를 이 지경까지 끌고 왔나요?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저를 이다지도 괴롭히는 겁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엉엉 울었다. 대답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 때문에 더 울었다.
- P107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잘못 살아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올바르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며 그 이상한 생각을 바로 떨쳐 버렸다.
- P111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최소한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한다면 설명이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인정할 수가없어.>
- P115

<만약에, 의식적으로 살아온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그게 아닌 삶》이었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18

그는 똑바로누워 지나간 삶의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인에 이어 아내와 딸, 그리고 의사가 차례로 보여 준 행동과 말은 모두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 P119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단순해. >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 P125

「끝났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도중에 멈추더니 온몸을 쭉 뻗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 P126

1883년 10월 20일. 오늘 나는 기관에 끌려가 정신 감정을 받았다. 
- P129

그럼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검사를 받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미치게 되었으며 어떻게 나의 광기가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차례로 얘기해 보겠다. 
- P130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나쁜거지?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거지?> 「나를 두려워하는 거지.」 죽음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거든.」 온몸에 소름이 쫙끼쳤다. 그래, 죽음이야. 죽음이 오고 있어, 바로 여기 와있어. 하지만 그래선 안 돼. 
- P138

나는 아내에게 이 영지의 수익은 사람들의 가난과 슬픔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영지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순간 갑자기 내가 한말의 진실이 나를 밝게 비춰 주었다. 
- P151

이 모든 고통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고통이 없다면 죽음도 공포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전과 같이 마음이 찢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 P151

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문명을 비판했고 평생 동안 죽음을 성찰했다. 그의 무덤은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 P155

톨스토이에게 죽음은 삶의 이면이었으며 죽음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동일한 문제의 양면이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풀기 위한 문명-자연-도덕의 3중 코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코드이기도 했다. 
- P166

이때의 체험은 15년 후 「광인의 수기」라는 단편으로 구체화되었다. 비록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이 단편은 「참회록」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이에서 일종의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자전적 소설이다. 
- P175

그러니까 이반은 어느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처럼 유한한 인간 일반이고 <이반 일리치의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라 해석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자기를 사로잡아 온 죽음의 문제를 이제 가장 보편적인 차원에서 펼쳐 보이는 것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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