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 P56

흔히 혼용하지만 사생활과 프라이버시 Privacy는 엄연히 다릅니다. 미국에서 발전한
‘프라이버시권‘은 초상권·성명권·명예권과 같은 ‘인격권‘에서 출발한 권리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의 결정권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 P57

인간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넘나들며 살아가지만 사실 양자는 엄격히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단독자로 존재하기에 홀로 숨쉴 수 있는 내밀한 최소한의 영역은 보장받아야 합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가장 덜 외롭습니다. 그 순간 온전히 ‘나만의 나‘로 존재하며 타인은 천국도 지옥도 아닙니다. 
- P57

그래서 나는 나의 말을 정연하게 하기 위해 ‘나‘에게는 모든 말을, 소중한 ‘너‘에게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 P59

인간에게는 양심의 자유와 함께 사상의 자유도 있는데,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사상의 자유는 인간 내면의 사유체계에 속한다는점에서 양심의 자유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사상은 선악에 대한 판단뿐만 아니라지적·논리적 판단을 포괄하므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판단을 대상으로 하는 양심의 자유와는 구별됩니다.  - P61

하지만 인간을 믿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인간이 그 자체로 믿을 수 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는 깊은 연민과 함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깨진 거울을 볼 때 나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하고 연민과 사랑을 느낍니다.
- P61

중국의 고전 대학에서 "물유본말 사유종시했습니라고다. 모든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모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다는 뜻으로, 곱씹어 보면 근본이 끝이며 말단이 시작이라고 읽힙니다. 이를 우리 삶에 대응시키면죽음이 근본이고 출생이 말단입니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니 다시 말해 죽음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삶의 본질이 죽음이라면 잘 태어나기보다 잘 죽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물론 잘 죽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잘 살아야합니다.
- P63

하지만 청원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개인의 욕심이 아닌 것이지요. 국가는 인간의 욕심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까요? 인간의 욕심은 일시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욕구‘와 영원히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으로구분됩니다. 욕구는 수용될 수 있을지라도 욕망은 충족될수록 커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버림으로써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 P75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수입니다. 이때 ‘자기를 타자화해야지 ‘타자를 자기화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타자화하는 경우에만 나와 타인을 모두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타자를 자기화하면 타인을 오해하고 폭력적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 P77

법은 정의를 지향하지만 인간이 만들었기에 완벽하지 못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법을 집행하는 것이 불법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법을 위반하는것이 적법한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 P81

나는 노동으로써 살아 있음을 느끼고, 노동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노동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침놀에서 나를 돌아보면 언제나 자괴합니다. 내 삶은 후회에 대한 후회의 연속이며, 부끄러움이 미장아빔 Mise en abyme"" 으로 무한히 반복됩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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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가치는 내가 마주하는 ‘너‘를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고, 제삼자인 ‘그‘
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더 나아가 ‘너‘와 ‘그‘가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할 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 P7

또한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준수된다‘는 것은 국가가 국군을 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되며 국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헌정사에서 국군이 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군부독재의 역사적 현실을 헌법에 반영한 것입니다.
- P29

누구나 평화로운 삶을 원하지만 평화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평화의 소극적 정의는 ‘폭력이 없는 상태이지만 폭력의 정의가 다양한 만큼 평화의 정의도 천차만별입니다. 평화와 폭력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물리적 폭력보다 심리적 폭력이 음험하고, 현실적 폭력보다 잠재적 폭력이 간교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 P31

공간은 시간과 더불어 삶의 실존적 조건이 되며 때로는 공간이 시간의 의미를 조건 짓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고유한 의미가 드러나며 그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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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맞다. 내가 진료 중이었지
어느 어리버리 정신과 의사의 비밀일기
노현재 (지은이) 독립출판, 2024-07-17, 168쪽, 에세이

🐥 표지나 제목만 보고도 끌리는 걸 넘어서 꼭 읽어보리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노란 표지에 곰인지 토끼인지 모를 귀요미(책을 읽다 보니 작가님이었다는.)가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실제 책 내내 스스로를 어리바리라고 하는 작가님의 귀여운 변명과 메타인지의 장이 나옴). 거기에 제목은 심상치 않다. 정신과 의사의 비밀 일기라니. 정신과 의사의 본인 얘기를 듣거나 시청하거나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 책을 읽기 전에는 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한 걸까, 정신과 의사를 지원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다른 전문의와 다를 것 같은 학업 과정과 레지던트 과정의 흥미진진함을 엿볼 수 있겠지, 아니 개원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환자들이 많이 올까 등 아주 현실적인 궁금함이 있었다. 그래, 그랬다. 다소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분의 에세이라니, 속물적인 궁금함이 나의 순수한 질문이자 설렘이었다. 이런 부연 설명을 사전에 깔아둔다는 것의 의미는 예상되듯이 그것이다. 이런 음흉한 자가 가지고 있던 기대에 부응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아니, 난 정신과 의사의 직업이 궁금했는데 말이지.

🐥 대신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의 전형적으로 차갑고도 이성적인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도 말한다. 작가님 표현대로라면 뒤쪽 책날개에 나온 xx하고 xxxx한 의사의 모습. (정답은? xx에 들어가는 단어가 궁금한 분은 책 본문 전체와 끝맺는 글을 확인하시면 된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작가님이 이러셔도 괜찮나 싶었다. 이렇게 ADHD와 우울증, 일상의 모습을 까발리는 자기 모습에 환자가 신뢰를 안 가져서 줄어들면 어쩌나 하는. 그런데 작가님 표현대로 아파야 설움을 알고, 환자의 설움을 아는 의사의 성실과 노력은 분명 공감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책 끝 맺는말처럼 결국 이 일기는 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된다. 정신과 의사의 직업이 왜 결국 우리의 일상이 되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권한다. 힌트를 드리자면 책에 나온 부분 중 나 또한 항상 마음에 놓고 있던 부분을 요약해 본다. 삶은 너무도 복잡해 정답이라는 게 있기보다, 그저 우리는 서로를 들려주고 들어줌으로 각자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며 삶을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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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상자
한강 (지은이),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2008-05-22, 71쪽, 동화

#빈칸놀이터프로그램
#문학을낭독하는 사람들
#문낭사

🐦 문낭사 2025년, 1월모임으로 추천한 책.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작품 중 이전 읽었던 소설 말고 동화도 궁금해졌다. 2024년 12월은 너무도 혼란했고 인간성, 인류애라는 걸 다른 때보다 느끼기 어려운 연말이었다. 2025년 새 해는 동화를 사랑할 수 있는 여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있는 마음으로 낭독을 시작하고 싶었다.

🐦 이렇게 눈물 종류가 많은지 새삼 느꼈다. 읽으면서 연보랏빛 눈물은 어떤 걸까, 이런 색의 눈물은 어떤걸까 궁금했다. 점점 울 일이 많지 않은데, 최근에 무슨 일로 나는 울었는지도 잠깐 생각해봤다. 내가 보통 흘린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는지 궁금하다. 나를 위한 눈물일지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자연을 보고 감탄해서 흘린 눈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의 음흉함을 들킬까 봐 겁나서 바들바들 떠는 눈물일 수도 있고.

🐦 흔히들 악어의 눈물이라고 하는데 악어가 어떻게 눈물을 흘리는지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더 궁금한 눈물은 책에 나오는 붉은 눈물이다.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뒤에, 울고 난 뒤에 그 눈물까지 마르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처음으로 다시 흘리는 눈물 이 붉은 눈물이라고 하는데... 이런 눈물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 아이는 왜 피리소리를 듣고 울었을까.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세상을 이해 한 건가? 뭉클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어른을 위한 동화가 맞다. 현대에서는 감수성이 깊고 감정적인 것들, 그런 모습이 사회생활하면서 약점으로 생각되기도 하는 듯. 그래서 감추게 되는 게 아닐까.

🐦 낭독을 하다가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 2009. 9)‘ 소설집이 생각났다. 소설의 인물들은 지금이 아름다워서 주목하지 않고, 그 아름다움이 전부 없어지는 걸 아는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너저분한 것도 아는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바닥을 알기에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눈물상자와 결이 다르지만, 비슷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느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쉬워서 하는 게 아니라, 아프지만 애쓰고 노력하는 마음. 쉬워서 하는 게 아닌 바닥을 알아도 하는,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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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환자들의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감정과 사연이 얽혀 있고, 그 속에서 저도 함께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어쩐지 저의 어리바리함이 때로는 그 복잡함을 조금은 덜어주는 것 같습니다. 
- P6

어쩌면 그곳에서는 ‘아맞다‘라는 말은 하나의 암구호로 통할 것 같다. ‘아맞다‘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만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그널일테니 말이다.
- P18

아 맞다! 하면서 그냥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포기하면 편하다 (?)
- P21

아파야 설움을 안다
- P22

2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진료를 위해 많은 번거로움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었다.
- P23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삶이라는 여정은 서로가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이라 나는 생각한다. 바닷가에 밀려오는파도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펼쳐지며, 서로의 마음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흔적을 남긴다.
- P46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냉소적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점점 냉소적인 말들만 뱉으며 어두운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주변 친구들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차가운 말들을 뱉을 뿐,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거나 도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 P67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완벽한 삶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매 순간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good enough‘라는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고 싶다.
- P78

Y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쉽지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렵고 어색하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시도해야 한다. 
- P99

염려로 인한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말들이 서슴없이 가족 면담 중 튀어나왔다.
- P109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한 가지의 정답만이 있는 것이 아닌, 복잡한 문제들의 연속이다. 삶의 문제는 각자의 상황과 감정, 그리고 경험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퍼즐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헤쳐나갈 정답을알기란 쉽지 않다. 
- P110

삶을 살아가면서힘든 일을 마주할 때,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정신적 좌절로부터 회복할 수 있다. 마치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것이다.
- P114

공감이란 무엇일까? 서로 다독여주는일? 힘들었겠다고 말해주는 것? 사전을 찾아보니,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고 한다. 사전적 정의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하는 이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또한 공감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P130

어쩌면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의 상처와 힘듦에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아픔을 밖으로 드러내고 다녀서 힘들다는 말이 그 힘을 잃어가는 것일까? 집에 돌아오는 길 위, 밝게 빛나는 저 보름달의 달빛마저 서글픈느낌이 드는 밤이었다.
- P134

용서란 내게 한 일을 마치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내 안에서 흘러 보내는 것일까?
- P147

용서는 충분히 미워해야 용서를 할 수 있는 걸까? 그 사람이 정말 진실되게 사과하면 용서를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라면 바다 같은 마음을 지녀야 용서를 할 수 있는걸까?
- P148

지난 일들을, 상대를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왜나는 상처를 놓아주지 못하고 원망과 분노를 품고 있을까. 때로는 수동-공격(passive-aggressive)을 보이는 때도 있는 나를 마주 할 때면, 나도 한참 부족한 정신과의사라는 아니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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