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십팔 일 뒤 외롭고 배척당하는 십팔 년의 삶이 이어졌다.
285p
이때였다. 빌러비드가 콧노래를 마치는 순간, 세서는 딸깍하는 소리를 떠올렸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그것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지고 고안된 자리로 딱 맞아들어가는 소리를 컵에 담긴 우유를 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지 않았으니까. 세서는 그저 고개를 돌려 빌러비드의 옆모습을 바라볼뿐이었다. 288p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나? 내가?" 445p
이후에 마거릿 가너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도망노예에 대한 재판이 단 하루면 끝나는 데 반해 이 재판은 이례적으로 길어졌는데, 그녀의 행동에 대한 인간적 이해나 연민 때문이 아니라, 마거릿 가너를 사람으로 인정하여 딸을 죽인 살인죄로 기소할 것인가, 아니면 1850년에 발효된 도망노예법에 따라 단순히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하여 무죄방면할 것인가 하는 논쟁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지만 마거릿 가너의 변호사는 그녀를 살인죄로 재판해줄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가너 역시 자신의 행동을 그저 이성이없는 노예의 미친 짓으로 여기고 관대히 넘기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마거릿 가너는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판받 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
해설 457p
토니 모리스은 1987년<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은 노예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노예제는 매우 예측 가능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고 그것에 관한 이런저런 사실들이 있고그다음에는 거기서 벗어나거나 벗어나지 않거나 할 뿐입니다. 노예제만으로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노예제에 대한 공포로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들 역시 사람일 뿐입니다………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458p
결국 세서는 어린 딸아이를 죽여야 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그 소름 끼치는 사건을 다시 겪은 후에야 비로소 빌러비드, 혹은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난다. 하지만 다시 겪은 과거에서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어린 딸아이의 목을 긋는 대신, 노예 사냥꾼이라고 착각한 집주인 보드윈을 향해 얼음송곳을 휘두른 것이다. 세서의 새로운선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빌러비드에 관한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마을여자들 때문이었을까, 빌러비드는 나쁜 꿈처럼 사라져버린다. 해설 461p
나는 이것이 출몰하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과거가 되길 바랐습니다. 과거, 유령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 말이죠.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도파해나가기 전까지는, 4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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