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대한 의무는 다른 모든 의무에 우선하며, 상황과 관계없이 지켜져야 한다."
260p

도일은 자신이 직접 건넨 증거를 무시하는 관료들을 보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료들에게 이성과 정의를 기대하다니, 도일이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263p

도일과 관련해 기록해둘 만한 논쟁이 하나 더 있다. 이 논쟁은 그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한편, 그 자체로도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지닌다. 도일은 약자를 위해 돌진하는 보통사람의 모험적 본능을 대변했던 것처럼, 비극적인 사건의 그림 같고 감상적인 면에 반응하는 일반시민의 감성을 공유하고 표현했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두고 그와버나드 쇼가 벌인 결투에서 우리는 두 유형의 아일랜드인을 보게 된다.
한쪽이 충동적이고 진지하고 낭만적인 가톨릭교도라면, 다른 한쪽은논리적이고 풍자적이고 현실적인 개신교도다.
269p

도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건 그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보통사람을 너무 정확하게 대변해서 ‘보통사람의 전형‘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보통사람은 신문이 우리에게 심어주려는 이미지처럼 그렇게 건강하고 순수하지 않다. 보통사람은 이상한 욕망과 가정적인 성격, 잔혹함과 친절함, 불건전함의 복합체다. 도일은 그러한 보통사람의 별로 유쾌하지 않은 특징들도 보다 괜찮은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표현해냈다.
295~296p

1930년 7월 7일 오전 9시 30분 그는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그보다 8년 전 그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묘비명을 썼다.

내 소박한 계획은 이뤄질 것이다.
내가 한 시간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절반은 어른인 소년에게,
혹은 절반은 소년인 어른에게.

370p

(영문학의 아이돌 시리즈)에서 버나드 쇼가 더는 사고하려 하지 않 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면,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삶과 작품들은 더는 행동하려 하지 않는 우리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대에 이미 인정을 받은 최고의 피조물 덕이나 보며 편히 살 수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도일은 충분히 멋진 작가라 하겠다.

김지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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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에서는 ‘지금’이라는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을 ‘여기’와 비교해보지요. ‘여기’는 말하는 사람이 위치한 장소입니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각자 ‘여기’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서로 다른 두 장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는 언급된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단어를 전문용어로 ‘지시적’ 단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말을 한 순간에 한정된 단어입니다. [‘지금’도 지시적 용어입니다.] 어떤 사물이 ‘여기’에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데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중에서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우리의 자연이기 때문이지요. 자연은 여기, 우리 지구에서 자신의 일부들과 상관관계를 맺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끝없이 조합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외에 어떻게, 얼마나 많은 독특한 복합성을 지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자연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로 무한한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중에서

예측하기에는, 특히 우리 스스로 예측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스피노자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이미지가 우리의 내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극단적으로 더 거칠어지고 퇴색했을 때 내면적인 자유를 강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놀라움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 은하계 하나를 채울 만큼의 숫자인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신경세포들이 이룰 수 있는 관계나 조합을 생각하면 훨씬 더 천문학적인 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얼마 되지 않는 세포들이 아닌, 모든 세포의 총체로 만들어진 하나의 프로세스라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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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찰실에서 대기하고,
대기실에서는 아무도 대기하지 않았다.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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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십팔 일 뒤 외롭고 배척당하는 십팔 년의 삶이 이어졌다.
285p












이때였다. 빌러비드가 콧노래를 마치는 순간, 세서는 딸깍하는 소리를 떠올렸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그것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지고 고안된 자리로 딱 맞아들어가는 소리를 컵에 담긴 우유를 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지 않았으니까. 세서는 그저 고개를 돌려 빌러비드의 옆모습을 바라볼뿐이었다.
288p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나? 내가?"
445p

이후에 마거릿 가너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도망노예에 대한 재판이 단 하루면 끝나는 데 반해 이 재판은 이례적으로 길어졌는데, 그녀의 행동에 대한 인간적 이해나 연민 때문이 아니라, 마거릿 가너를 사람으로 인정하여 딸을 죽인 살인죄로 기소할 것인가,
아니면 1850년에 발효된 도망노예법에 따라 단순히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하여 무죄방면할 것인가 하는 논쟁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지만 마거릿 가너의 변호사는 그녀를 살인죄로 재판해줄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가너 역시 자신의 행동을 그저 이성이없는 노예의 미친 짓으로 여기고 관대히 넘기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마거릿 가너는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판받 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

해설 457p

토니 모리스은 1987년<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은 노예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노예제는 매우 예측 가능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고 그것에 관한 이런저런 사실들이 있고그다음에는 거기서 벗어나거나 벗어나지 않거나 할 뿐입니다. 노예제만으로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노예제에 대한 공포로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들 역시 사람일 뿐입니다………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458p

결국 세서는 어린 딸아이를 죽여야 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그 소름 끼치는 사건을 다시 겪은 후에야 비로소 빌러비드, 혹은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난다. 하지만 다시 겪은 과거에서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어린 딸아이의 목을 긋는 대신, 노예 사냥꾼이라고 착각한 집주인 보드윈을 향해 얼음송곳을 휘두른 것이다. 세서의 새로운선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빌러비드에 관한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마을여자들 때문이었을까, 빌러비드는 나쁜 꿈처럼 사라져버린다.
해설 461p

나는 이것이 출몰하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과거가 되길 바랐습니다. 과거, 유령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 말이죠.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도파해나가기 전까지는,
4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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