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바를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가 대부분은 -물론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지녔다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또한 보아하니, 그리 큰 소리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칭찬하기 힘든 특수한 성향이며 기묘한 생활 습관이며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 P9
소설가라는 인종은 수많은 결함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대범하고 포용적인 것 같습니다. 그건 어째서일까요? 내가 생각건대 그 답은 아주 확실합니다. 소설 따위-‘소설따위‘라는 말투는 약간 난폭하긴 합니다만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14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효율성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 P24
자, 그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 한 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과연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난폭한 말이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먹은 모양이에요. 게다가 애초에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아도(혹은 오히려 쓰지 않는 편이)인생은 얼마든지 총명하게, 유효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 P29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 P46
하지만 동시에, 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내게 맞는 스케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싶다. 그것이 작가인 내가 가져야 할 최저한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 P105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 P119
그에 비하면 처음부터 묵직한 소재를 갖고 출발한 작가들은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엔가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 P134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 매일 20매의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 P151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내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고 노력합니다. 단지 그 달아오른 머리를 지나치게 식혀버리면 퇴고 자체를 못 하니까 그런 쪽으로는 약간 조심해야 합니다만. 그러고는 외부의 비판에 견뎌낼 태세를 정비합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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