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유행하는 책을 혐오했으며, 그런 걸 따라잡을 시간이 없으리란 걸 잘 알았다
- P39

그러나 며칠이 지난 다음에, 바뀐 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의식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항상 자기를 바라보지 않는 삶을 살아왔는데, 그해 섬에서 돌아와서야 처음으로 응징과 경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 P41

7월의 첫 무더위와 함께 그녀의 가슴속에서 섬으로 돌아갈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됐다. 길고 긴 달이었다. 그리고 불확실성 때문에 더욱 길게 느껴진 달이었다. 
- P55

청바지와 지난 몇 년 동안 가지고 다니던 비치백대신, 그녀는 아마 천 투피스를 입고 금빛 샌들을 신고, 가방을 꾸리면서 정장 한 벌과 하이힐, 그리고 모조 에메랄드 장신구를 넣었다. 그러자 다른 여자,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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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아주 무례한 짓이에요."
앨리스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 P109

"딴 생각을 하는구나, 얘야. 말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말이야. 지금 당장 이런 상황에 맞는 교훈이 떠오르지 않는다만, 좀 있으면 기억이 날 거야."
"어쩌면 교훈이 없을 수도 있죠."
앨리스가 겁도 없이 대꾸했다.
"쯧쯧! 얘야! 찾기만 한다면 교훈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란다."
- P143

"왜 저렇게 슬퍼하는 거죠?"
앨리스가 그리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리핀은 조금 전과 똑같은 대답을 했다.
"다 자기 상상일 뿐이야. 슬픈 일 따위는 없어. 이리 와!"
- P153

앨리스가 약간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 모험은, 그러니까 오늘 아침부터였다고 할 수 있어요. 어제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전 어제의 제가 아니거든요."
- P168

"누가 당신 말에 신경이나 쓴대요?"
앨리스가 말했다.
(이제 앨리스는 온전히 제키로 돌아와 있었다.)
"고작 종이 카드일 뿐이면서!"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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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준이 엄격했던 이유는 ‘무엇이든 한 가지로 통일해야 좋다‘라는 획일과 효율의 강박이 한국인의 가치규범으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식당에 가도
‘메뉴를 통일하라‘는 독촉에 시달립니다. 
- P80

당신의 욕망은 감춰야 했습니다. 이유는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뭐가 중요해, ‘우리‘가 중요하지."
- P80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급여 현실화 등 인간 노동자가 처우 개선을 요구할수록 자동화의 속도는 빨라집니다. 그리고 그 자동화는 결국 각자 혼자서 엄청난 일을 하는사람, 다시 말해 ‘AI 디렉터‘로서 인간의 진화를 추동합니다. - P94

로봇이 섬세한 케어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돌봄 로봇, 서빙 로봇이 보편화되면 이제 ‘인간 서비스‘가 다시 프리미엄 시장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봇의 핵심은 물리적, 정서적 행위의 자동화입니다. AI의 핵심은 지능적, 창조적 활동의 자동화입니다. 
- P104

"차장님은 업무가 뭐예요?"
"내 업무는 일정 관리와 부서 간 업무 조율이지."
이제 개인은 직접 배워서 AI의 도움으로 업무를 처리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은 프로세스를 정규화시킨 뒤에는 자동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자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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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지만 요만큼도 당연한건 없었다.
- P5

"미안해."
그냥 알았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모든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 P8

뒷모습만 보여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여자애가 아저씨의 천벌이 분명하다는거다.  - P15

"엄마랑 저 버릴 땐 시간 주고 버리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진짜 완벽한 대답이다. 좋아. 여기서 매일 같이 날카로운 칼날을 가는 거야. 아빠라는 사람의 마음에 피를 철철 내고 상처를 짓무르게 할 날카로운 말들로다가 아주 쏙쏙 뽑아서 말이지.
- P17

그 짧은 순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영원같이 느껴져 그 아이가 내 옆을 스쳐 가고, 다시 소음이 들려오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P25

그럼 그렇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엄마의 말과 달리 이 학교가 이름처럼 유도로 번영하던 건 십팔 년 전의 일이었다. 즉, 무려 십팔 년 전부터 쭉 내리막을 걸어왔다는 뜻이다. 십팔 년! 아주 입에 착착 붙네, 붙어.
- P30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게 어느새 익숙해졌나 보다. 끔찍하게 느껴졌던 일인데 이 아이 앞에서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 P43

비 맞은 새끼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던 녀석이 비 같은 건 맞은 적도 없다는 듯, 애초부터 고양이가 아니라 사나운 맹수였다는 듯 깔보는 저 말투며 태도, 그 모든 게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 P49

그런 날이 있다. 그냥 세상이 몽땅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날 마주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시비를 걸고, 뾰족하고 날카롭게 굴 수 있을 것 같은 날, 그런 날이 나한테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날은 견딜 만하다가, 또 어떤 날은 와르르 무너졌다. 바로 오늘처럼.
- P51

너무 어두워 위험하다고 말하려는데 하지오가 내 말을 끊는다.
"그깟 마음 좀 들린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음? 네가들린다는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알아?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하루는 조금 괜찮았다가,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미칠것처럼 화가 나 죽겠다고."
- P57

"범죄자 잡는 데 속마음은 아무 소용도 없어."
"왜 소용이 없어? 확실한 건데."
"속마음은 증거가 될 수 없으니까."
"그런가 넌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
"......이미 해봤거든."
- P82

"너희 아빠는 많이 어렸어. 무서웠을 거야."
"엄마도 어렸어. 엄마도 무서웠잖아."
그리고 나는, 나는 더 어렸어, 엄마. 너무 어렸었다고.
- P86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들어간다. 저 아이가 새별이 형에게도 위안이 될까 봐. 그래서 형에게도 나처럼 평안이 찾아올까 봐.
- P91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그 말투가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나는 한숨 같은 숨을 내뱉고 어느새 훌쩍 커버린 형의 동생들을바라본다. 내 안에서 수십 개의 마음이 갈라져 싸워 댄다. 미움과 그리움이, 분노와 동정이 뒤섞인다. 더는 견디지 못한 마음이터져 버릴 것만 같아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 P97

어렵고 힘든 것들이 늘 그러하듯 답이 없는 문제는 언제나 가슴을 세게 짓눌렀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채 원망만 하는 게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맞다. 나는 늘 원망하는 쪽이었다. 엄마가 아픈 게 내 탓이라고, 날 버린 아빠와 사는 게 화가 난다고, 잘하는 건지도 모를 유도를 붙잡고 있는 게 버겁다고 징징대며 탓하기만 했다.
- P128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매일같이 채워져 있던 믹스커피는 누군가의 마음이었나 보다. 마르지 않고 새어 나오고 또 새어 나오는 마음.
- P130

"하나를 지키려면 하나를 잃기도 한다. 엄마가 나를 지키려고아빠를 잃었던 것처럼. 근데 아빠는 엄마를 잃었는데 유도를 지키지 못했다. 지킨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두 개나 잃은 거지. 억울했을 것 같은데 코치님이 그러는 거야. 선택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래도 선택을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고."
- P139

"네 선택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을 해야만 하면? 널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그 사람한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데 그 사정을 네가 모두 알게 된다면, 그러면 어떨 것 같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 P139

"비켜 선 넘지 말고."
유찬의 입에서 ‘선‘이라는 말이 나오자 녀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굵고 선명한 선이 생겨 버렸다. 다시는 지울 수도넘을 수도 없을 것처럼.
- P145

아이스크림 먹는데 먹고 싶은 마음 말고 뭐가 더 필요하냐는 표정이었다. 그러곤 잘 보라는 듯, 학교 담벼락을 밟고 올라서서 세로 창살에 매달리고는 학교마트를 향해 소리쳤다.
"이모, 쭈쭈바!"
- P146

"찬이는 지한테 소중한 뭔가가 생기면 또 잃어버릴까 봐 무서운기다. 근데 나는 잃어버리든 빼앗기든 소중한 게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 잃어버리면 슬프겠지만 소중한 건 또 생기기 마련이다이가. 소중한 게 평생 딱 하나뿐이겠나"

- P148

어릴 때 나는 블록 놀이를 할 때마다 높이 쌓인 블록이 무너질까 봐 더 쌓지도 못하고 언제 무너질까 걱정만 하면서 불안해했다. 하루는 엄마가 그랬다. 무너질 걸 두려워하면 어떻게 블록을 쌓을 수 있냐고 무너지면 다시 튼튼하게 쌓으면 되지 않느냐고.
엄마 말이 맞다. 다시 쌓으면 된다. 처음부터 튼튼히, 그리고천천히 지켜만 보면서 언제 무너질까 걱정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 P150

그렇게 새별이 형의 불행을 확인하던 나는, 남경사 아저씨의 천별을 확인하던 나는 이제 하지오 그 애의 평안을 확인해야 했다.
- P153

확실히 알겠다. 선함은 다른 사람까지 선하게 만들고야 만다는 것을.
- P164

‘뭐 그라모, 한번 해 보든가‘
놀라운 건 이런 거다.
내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는 거.
그리고 나는 그걸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 P171

이제야 나는 할머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오 년 전, 마을회관에서 모든 걸 잊자고, 없던 일로 하자고 했던 사람이 바로 할머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P179

큰일이다.
이제 매미 소리도 모자라 저 태양만 봐도 지금이 생각날 테니까.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 P187

그러다 문득,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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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미친 사람들 있는 데는 가기 싫어."
앨리스가 말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여기 사람들은 다 미쳤으니까. 나도 미쳤고 너도 미쳤고."
고양이가 말했다.
"내가 미쳤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앨리스가 물었다.
"넌 미쳤어. 안 미쳤으면 여기 올 리가 없거든."
고양이가 대답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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