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 P7

어느 곳에서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풍경들은 오직 내 눈동자 속에만 기록되었다. 어차피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 들은 귀와 코와 얼굴과 손에 낱낱이 새겨졌다. 아직 세계와 나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 P8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나는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어리석은 속성이 내 어리석음을일깨워 마침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걸까요.
- P44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 P49

어떤 것도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고, 어떤 것도 내부로 스며들어오지 않는다.
- P58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눈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물들의 상이 맺히고, 그녀가 걷는 속력에 따라 움직이며 지워진다. 지워지면서, 어떤 말로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다.
- P67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파편으로 다가와,
파편인 채 그대로 흩어진다. 사라진다.
- P102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 P105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봐. 삶에 대한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 P112

그때 왜 그렇게 가슴이 서늘해졌던 걸까. 느리디 느린 작별을 고하는 것 같던 그 광경이, 헤아릴 수 없는 무슨 말들로 가득 찬 것 같던 침묵이, 여태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마치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대답해주었던 것처럼, 뼈아픈 축복 같은 대답은 이미주어졌으니, 어떻게든 그걸 내 힘으로 이해해내야 하는 것처럼.
- P115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으 거 같다고.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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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글쓰기를 지난한 참호전에 비유한다. ‘고립‘은 그의 글쓰기 제1원칙.
- P105

일단 재밌는 이야기를 쓸 것, 그 이야기로 납득할 만한결말을 제공할 것. 그가 설명한 소설 쓰기의 원칙이다.
- P112

딕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현실이란 무엇인가?‘처럼 한 번도 해보지않았던 질문을 하게 되었다. 
- P124

나이에 비해 인생의 서사가 뚜렷한 작가다. 
- P131

독자들이 ‘삶에서 고단한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이 모든 걸 겪는게 좋구나‘ 느끼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독자들이 "오늘을 살아내는 게 너무 버거웠는데 이슬아 책의 한 구절덕에 하루를 견딜 힘을 얻었다"고 할 때마다 ‘살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 P137

‘문학‘이라는 것이 울타리를 쳐서 구역을 설정한 것도아니고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 물줄기가 흐르고 합쳐졌다 다시 갈라지듯 유동적인 것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실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진단하는 사람도, 저처럼 ‘그런 말은 내가 감히 하는 게 아니다‘ 하고 겨우 이런 식으로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 물줄기를 더 풍요롭게 하는 데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P144

흰 수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는
"비우고 비우는 이 삶이 만만치가 않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 P150

이른바 ‘힐링‘ 계열 책이지만응석을 받아주지 않는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때론버티는 것이 답‘이라는 것.
- P175

사소한 일까지 ‘상처‘라고 말하면 삶이 문제 덩어리가 돼버려요. 일상이라는 게 갈등도 있고, 기분 나쁜 일도 있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죠.  - P177

잠에서 깨어나 깨달았어요. 이 고통은 내가 살면서 겪는 해프닝일 뿐이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내 인생도, 가족들 인생도 달라질 거라는 걸.
- P183

그는 "마음 깊은 곳에 호소하는, 꿈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깨닫지 못했던 마음속상처가 아주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 했다.  - P198

요시모토 바나나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란 뭘까. 그는 과거에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주는 것이가장 좋은 문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는 "좋은 소설은 그 사람만의 언어로 쓰인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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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곧 자기 삶이라고.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재미를 위해, 혹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
작가들에겐 돈의 논리와 별개로, 펜을 놓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 P9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문득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는 타인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길을 바꿔도 괜찮은지 참고할 수 있다. 부디 이 책이 작가지망생이나 작가를 위한 ‘글쓰기 지침서‘일 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그릴 수 있는 책으로 읽혔으면 한다.
- P10

어떤 일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물에 서서히 잠길 때는 알지 못하다가 홀딱 젖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 P14

가끔 길을 잃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말해야 하나. 그것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에 관한 실존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 P22

누구든 단번에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요. 한 번 읽고, 다시 돌아와서 보고, 나중에 또 보고, 그러면서 이해가 이뤄집니다. 
- P30

그러나 대부분 자기 마음과 잘 맞는 것은 스스로 추궁하지 않죠. 그건
‘고장난 기계‘가 되는 길입니다.
- P32

어쭙잖은 단단함보다 냉소의 끝에서 길어 올린 단단함이 더욱 절실한 시대이기에.
- P88

그는 인문학의 효용 중 하나는 ‘성찰‘인데, 요즘은 성찰이 사라지고 인문학적 지식의 소유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향을 안타까워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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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그 풍경이 내어주고 앗아간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고, 그렇게 우리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 P14

이 남자와 눈을 마주친 첫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눈에 담긴 다정함이다. 마치 상냥함이 넘쳐흐르는우물이 있을 것만 같은 눈이었다. 
- P20

이 남자의 뒤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이 사람이 어디서 어떤 경험을 하며 살다 왔든 우리 둘은 17년간(이 남자에게는 조금 더 길거나 짧을 수 있겠지만)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둘의 삶이 어떤 이유에서든 교차하고 있었다. 
- P24

그는 좀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었고, 과거를 돌이키는 일은 그보다도 없었으며,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경탄하는 사람이었다. 
- P29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려고?"
내가 물었다.
"어디든 상관없어." 그가 대꾸했다.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잖아, 안 그래?"
- P30

그러니까 아니었다. 내게는 이곳이든 저곳이든 똑같이 좋은 게 아니었다.
- P32

나를 감싼 윌의 거대한 품에 비하면 아빠, 이모부, 권위, 공중도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변의 거대한 산들도, 이 일이 불러올 결과마저 무의미할 만큼 하찮아 보였다.
- P40

나는 파멸의 집요함이 어떤 것인지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 P53

기억을 돌이켜 보면, 본성이 선한 오빠는 옛날부터 제각기 흘렀던 우리 가족의 개울을 하나의 강으로 통합하는 합류점이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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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가 엄청 유명한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완독을 한 건 이번 책이 처음이었다. 그런 책이 아마도 많겠지. 읽었다 생각했으나 읽지 않았던 책. 나는 앨리스를 몰랐었다. 아니 얘는 왜 이렇게 겁이 없는가. 난 앨리스가 우연히, 어쩌다, 운이 없어서 그런 모험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오해였다. 지팔지꼰. 앨리스는 처음부터 신기한 일에 익숙해져 평범한 일은 시시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당연히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케이크를 먹어치우기도 한다. 그리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상황을 버거워하면서도, 본인에게 일어날 일을 재미있어 하고 궁금해한다. 알고보니 앨리스는 맨탈 갑오브갑이었다.

🐰 그리고 고양이는 시크하지만 정말 필요하고 맞는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토끼랑 하트여왕만 어릴 때 기억에 있었는데, 고양이는 은근 매력있는 캐릭터. 이걸 몰랐다. 미친 사람들이 있는 곳이 싫다는 앨리스에게 시크하게 말한다. 나도 미쳤고 너도 미쳤다고. 자신이 미친 걸 어떻게 아냐는 앨리스에게 쐐기를 박기도 한다. ˝넌 미쳤어. 안 미쳤으면 여기 올 리가 없거든.˝ 아, 나 현실에서 이런 친구 만나고 싶다.

🐰 의외로 은근 지금과 비슷한 세계관을 발견하고 놀랐다. 앨리스는 개인적인 일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아주 무례한 짓이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또 교훈을 항상 찾는 자에게는 어쩌면 교훈이 없을 수도 있다며 겁도 없이 대꾸한다. 예의가 없어 보일수도 있는 앨리스의 이런 발언들은 너무 선을 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게끔 한다. 하지만... 나는 앨리스가 될 수 없다.

🐰 작년 7월에 읽은 책인데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가, 2월 모임에 앨리스를 읽는 모임이 있어서 뒤늦게 남기고 있다. 2월엔 다른 출판사 버젼으로 읽어봐야지. 사실 내게 앨리스의 이미지는 디즈니 버젼의 노란머리, 머리띠. 파란 원피스, 하얀 앞치마. 딱 그거였다. 이번 책은 일러스트가 너무 예뻤다. 그래도 내게는 앨리스는 여전히 어린 시절 그 버젼. 럭키비키의 앨리스. 2월 모임에서 더 나눌 걸 기대하며 작년 7월의 앨리스 정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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