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 일상 속, 화내는 것도 지친 당신을 위한 분노 감정을 관리하는 연습
공진수 지음 / 대림북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노조절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적요할 수 있는 도서. 다만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학교 폭력등의 문제를 분노라는 감정만으로 풀어나가다 보니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에서의 폭력은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장이 좀더 깔끔했더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정말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어디에도 없다.

뚱하고 하는 일 없는 아르바이트생 혜미를 잘라야 하는 건 중간간부의 몫이다.

위에 눈치를 보고 불쌍하고 가난한 알바생의 눈치도 봐야 한다.

누구 하나 똑 부러지게 그녀에게 지시하지 않는다. 그냥 슬쩍 뉘앙스만 뿌릴 뿐이다.

가운데서 전전긍긍하는 그녀는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그냥 그가 선 위치에서 보이는대로 그리고 자기하나 방어하려는 작은 의도하나로 선하게 생각하려는 마음을 자꾸 모질게 먹을 뿐이다.

혜미는 그냥 법대로 자기 권리를 물어보고 요구했을 뿐인데 그걸 지키지 않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분명 거대한 조직이고 책임자들인데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중간간부인 그녀만 혼자 죄책감을 느꼈다가 배신감을 느꼈다가 점점 마모되어간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고 제대로 일하고 싶을 뿐이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정해진 규칙대로

당일 배송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당일 배송이 되어야 하고 고장나지 않은 기기는 고장난게 아니라고 꼭 말을 해야 하고 고객을 납득 시켜야 한다. 고객조차 민망하고 부담스러운 배웅은 그대로 행해져야 한다. 그걸 규칙이랍시고 만든 사람들은 데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현장을 관리하고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은 매뉴얼을 만들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만능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현장 사람들은 일도 하고 고객도 맞고 매뉴얼도 따라야 한다. 다들 선하다. 화가 나고 억울하지만 내가 화를 내며 감정을 터뜨려야 할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낼 수도 없다.

어디선가 입장이 바뀌면 내가 무의미한 매뉴얼을 읋어가며 누군가의 분통을 터뜨릴 것이고 그리고 그 사람이 터져버린다면 그 감정 찌꺼기를 고스란히 내가 뒤집어써야 한다. 우리는 어디서든 그 상대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매뉴얼이란 규칙이란 그걸 지키는 사람은 전혀 참여할 수 없다. 다만 부리는 사람 마음이다.

 

 

같은 동네에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빵집들은 제살깍아먹기에 여념없다. 뻔히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도 먼저 멈출 수 없다. 먼저 멈추는 쪽이 지는 것이고 지는 건 죽는 것이다.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작은 내 이익과 손실계산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나 보낼 수 없다. 여차하면 작은 손실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몇 개가 있을까 세어봤다. 다들 장사는 잘 되는지.... 그래도 그들은 지금도 웃으며 고객을 맞이 하고 있다. 어두운 바다 오징어잡이 배처럼 불을 밝히고

 

 

경력직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뽑으려고 하는데 아무도 뽑아주지 않으면 경력을 가질 수도 없다. 그래서 뭐든 해보려고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시도하고 경험하면 닳고 닳아서 신선한 맛이 없다고 또다시 탈락시킨다.

어떤 일이든 쉽게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너무 쉽게 가지기도 한다.

공감없는 이해는 잔인하고 이해없는 공감은 공허하다.

 

마음을 주고 공감하다보면 아무것도 내 손에 남는게 없는 허탈감이 들고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내가 왜 이렇게 삭막해지나 싶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등을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 하는 말은 공염불과 다르지 않고 뭐든 잘잘못을 따지고 하나하나 짚어 나가는 그 똑똑함에 섬뜩하게 살의를 느낀다.

뭐든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쉽게 판단할 수 없고 쉽게 마음을 나눌 수도 없다. 그리고 삶은 점점 사람을 소외시킨다.

산업이 이제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부분보다 사람을 배제하고 기계화되고 조직화되어 사람도 작은 부품이고 하나의 과정으로 대상화되어버린다.

나는 사람인데 너도 사람인데

서로 잘 살아보려고 하는 일인데

아니 그냥 평범하게 행복해지고 싶을 뿐인데

너무 사는게 힘들고 두렵다.

 

기사의 글은 그저 머리를 스치고 지워지지만 이렇게 이야기로 만들어진 글을 마음에 박힌다.

내가 이해를 했든 경험을 했든 이건 타인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힘을 가진다.

좋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예전과 같지 않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예전과 같지 않을 경험들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건 삶이 흔들리는 커다란 충격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소한 어떤 만남이거나 깨달음이거나 스치듯 지나갔던 경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이 책의 인물들은 그런 순간을 겪는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다.

그냥 스쳐지날 순간들에서 문득 든 생각들이 그렇게 통찰을 준다.

어쩌면 그들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냥 그렇게 순간 느끼고 말아도 그만인 일일테니까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들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를 끌어당길지는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니까

 

삶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 자신의 상처 때문에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볼 눈을 가리고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의 고통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가까운 사이에서 주고받은 상처들은 더욱 사람을 단단하게 닫게 만든다. 믿었던 만큼 내 편이라고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만큼 나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받은 충격은 대단하다.

어머니가 어느 순간 가족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택하고 떠나버렸던 순간의 공포 그건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 어쩌면 그건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인정을 해버리는 자신을 말리고도 싶다. 내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그 가까운 타인- 엄마가 준 상실과 빈 자리때문이라는 것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미시시피 메리)

오랫동안 믿어왔고 의심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또 다른 실체를 알게 된 순간의 충격은 그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지며 내가 봤던 것 믿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눈의 빛에 눈멀다)

서로 다른 길을 갔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를 기억하는 때 서로의 기억이 다르고 서로의 기억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느끼는 전율같은 것. 그것은 기쁨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는 이해가 되는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자기 스스로의 말랑말랑해진 감정선에 감동할지도 모른다. (동생)

전쟁의 경험으로 순수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동시에 그것을 갈망하는 남자는 낯설지만 따뜻하고 안전하다고 믿는 민박집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엄지치기 이론)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성장한 남매는 이제 안정되었다. 오빠는 부유한 사업가로 일에서 가정에서 성공했고 동생은 안정된 민박집을 운영하며 타인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지금은 안정된 그 남매가 가난한 시절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을 구걸하는 기억을 간직하고 지금의 부유함이 주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지니고 있는 한 그들은 타인에 대한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일 수 있다. (도티의 민박집/ 선물)

내가 평생 믿어왔던 것 그것이 하늘의 계시였다고 믿었던 어떤 신념.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보았던 어떤 믿음이 어느 순간 깨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살아온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부정해야만 할까? 하지만 현명한 아내는 그걸 굳이 깨어야 할까라고 반문한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은 순간이지만 그걸 다시 되돌리는 것은 어쩌면 나의 마음일지 모르겠다. (계시)

아무도 내색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나 깊은 곳에 상처를 숨기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나만 그런것도 아닌데 다들 입을 닫고 있으니 알 수 없고 내 상처에 침잠할 수밖에. 나의 이웃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에게도 고통과 상처가 깊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살아갈 일이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 그건 누군가보다 비교우위를 갖는 속물적 마음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다르지 않다는 엉뚱한 연대감일 수도 있겠다 (풍차)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왜 그랬을까요?

당신 속의 상처는 어떤 건가요? 

하나를 고르기는 참 쉽지 않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의 상처는 남의 상처일 뿐이다.

타인의 아픔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지만 그냥 비슷한 모양새일뿐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 비슷하고 같아서 그게 그거 같아보일 수도 있지만 자기에겐 자기의 아픔이 유일하고 강하고 독해서 다른 것은 비교할 수 없다. 상처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우열을 따질 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의 상처에서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냥 타인의 아픔에 대해 내가 알아갈 뿐이다.

힘들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도무지 상상할 수 없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어쩌면 공감을 훈련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을 간접 경험하기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모르고 넘어가는 것보다 낫지 않는 위안한다.

내가 몰라서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서 이해할 수 없어 무시하거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일은 없도록 ... 가능한한 요만큼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다.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손타지 않은 아이.. 라는 말이었다.

능력이 뛰어나서 도드라져서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스타일도 아니고 말썽을 부리거나 너무 손이 많이가는 처리곤한한 문제아도 아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묻혀가는 아이

조금 무심해도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하고 도드라지지 않고 조금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그런 아이 나는 그런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지만  못하지도 않았고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간 아~ 할만큼 못나지도 않았고 예민하게 신경써야할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둔하지도 않은 그런 아이. 그냥 중간은 하는 그래서 좀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칭찬하고 잘 해주면 순종적인 채로 나이 드는 아이 뭐 그런 아이

사실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샘도 많았고 내가 가진 것과 타인이 가진 걸 비교하느라 혼자 속을 복달거렸고 실망하고 세상 막막하게 우울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나지 않았다. 내향적이라 말이 없고 뚱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서 고집있어 보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똥고집을 부리고 몽니를 부리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형제중에서도 중간에 위치해서   언니 챙겨야 하니까 잠깐 저 집에 동생이 아직 어려서 잠깐 이쪽으로 여기저기 옮겨 놓아도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혼자 잘 놀고 말도 잘 듣고 밥도 찬투정 없이 잘 먹고 잘 자서 맡아주는 사람도 점차 무심해지는 그런 아이였다.

혼자 오래 외가집에 맡겨진 기억도 있고 명절에 이동할때 한차에 타기에 넘쳐서 혼자 다른 가족과 타고 간 기억도 있다. (언니는 커서 안되고 동생은 어려서 안된다는 적확한 이유가 있었고 나는 나이는 어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성숙하지도 않아서 적당해야했다.)

그렇게 손이 가지 않은 아이는 그렇게 컸다.

물론 매년 매 순간 온순한 아이이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냥  내가 하고 말거나 참고 말거나 하는게 편했다.

힘들어 보이는 엄마에게 나까지 무게를 얹고 싶지 않았고 언니나 동생에게 샘내는 걸 들키는 일이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고 대낮 빈집에서 혼자 낮잠에서 깼을 때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마루에 앉아서 혼자 쓸쓸했었지만 누구에게도 그 감정을 말한 적이 없었다.

책가방도 내가 싸고 내 옷도 내 물건도 내가 챙겼고 누군가가 주는 내 몫에 대해서 주저하지도 않았다. 챙길건 챙기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니까 손이 안가는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정도 가지 않은 아이였을 수도 있다. 대단히 잘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페끼치는 것도 싫고 뭔가 나누기보다 그냥 다 주고 마는게 더 편하다보니 깍쟁이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아이일지라도 누군가 관심을 주면 참 좋았던 거같다.

다만 좋은 티를 이상하게 냈다는게 문제지만 틱틱거리는 거.. 뭐 그런걸로

 

부모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상식적이었고 책임은 강했다.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던 거 같다. 상대가 원하는 걸 주기보다 내가 줘야 한다고 믿었던 것을 주었다. 그들이 주었다는 걸 잘 알았기에 원망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이를 먹어 보니 누군가를 공감하는 게 많이 서툴고 타인의 아픔에 마음이 저릴 만큼 이해가 가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곁에 있어줘야할지는 너무 어렵고 서툴렀다.

원만하게 잘 자랐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고 어떤 부분은 넘치게 가졌으나 어떤 부분은 지독하게 매말라서 언제든 바싹 바스라져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모르고 나이를 먹었다.

사랑과 공감을 글로 배워서 머리로 익혔다.

감정이나 정서라는게 타고난 것보다 배우고  흉내내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고 연습해서 익히는 거란걸 몰랐다.

나는 내가 사람들을 열외시켰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냉정하게 그냥 내가 원하지 않아서 상대를 누락시켰다고 믿었다.

그냥 티나지 않게 조용히 예의있게

그런데 사실 나는 나를 누락시켰다.

나를 제외함으로서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상처받을까봐 미움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조용히 티안나게 한 구석에 자리 잡아서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이건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믿었고 그래도 힘든 관계에서는 내가 조용히 정리하고 제외시켰다 믿으면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투명해져갔다.

 

사실 나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고 싶었다.

저 녀석때문에 내가 못살아 하면서 엉덩이를 맞아가면서도 뭔가 관심을 받고 토닥임을 받고 싶었던 거다.

뛰어나서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건 너무 먼 길이라 그냥 손이 많이 가고 조금 어딘가 어설프고 어리석어서  자꾸 지켜봐야하고 걱정해야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같다.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 같다.

깔끔하게 정리되고 매사에 주고받는 게 딱 떨어지는 그런 거 말고

그래서 돌아서면 잊히는 거 말고

 

이제 나를 사랑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기로 괜찮다고 등을 쓰다듬어주기로 하고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갈증나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책이란 어쩌면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 모양이다.

심리치유서를 참 많이 읽으면서도 늘 머리로 받아들였다.

이런 케이스 저런 케이스를 정리하면서 딱딱 맞게 서랍을 정해 넣어두었는데

지금 이순간 어쩌면 이렇게 무언가를 흔드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금 이순간 내가 조금 말랑말랑해져서 어떤 위로를 원하는 딱 그런 순간이었고

그 때 이 책이 내게 온 모양이다.

때로는 이렇게 기막힌 핀트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사는 일이 꽤 따뜻할 때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n의 세계 - 30대 한국 여성이 몸으로 겪는 언스펙터클 분투기
박문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득거리면 보다가 정색하고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간혹 문장이 꼬여서 내가 이해를 못하나 싶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나의 몸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세상에 까지 확장된다.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게 되면 나와 다르지 않을 타인을 인정한다. 사랑할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나와 너는 우리가 되고 우리들이 세상을 이루는 거다.

웃고 심각해지며 그런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내가 3n시절에 이렇게 생각이 깨어있었다면 지금 삶은 달라졌을까?

꼭 반삭을 하거나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고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지금 나의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그땐 이런 삶을 몰랐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매력적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나랑은 다른.. 전혀 상관없는 뭐 그런거?

머리는 찰랑찰랑 길어야 하고 옷은 남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고 불쾌하지 않게 조금은 있어보이게 입어야 하고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상황이 닥치더라도 조신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했고 무엇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싶었다. 그래서 뭐 그쪽 방향으로 치열하게 한눈을 감고 살았다면 어쩌면 지금  당당한 속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다만 그렇게 높고 화려한 곳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속물적인 내가 싫고 뭔가 정의롭고 옳은 일에 대한 환상도 함께 품고 있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와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3n의 나이에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었고 아이가 있다는 것은 세상에 지켜야 할 무언가가 생겨버린 일이고 이젠 나만을 위해 마이웨이를 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남들이 알려주기도 전에 지레 내가 먼저 단언하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신중하고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오래 고믾고 가능하면 아닌 쪽으로 생각을 돌려가며 어떤 도전도  단 1퍼센트의 위험만 보일라 치면 아예 귀를 막고 발을 돌렸다. 안전제일 가능한 안전하고 편안한 쪽으로...

준비없는 도전은 무모하고

이론없는 반박은 치기어린 저항이라고 생각했고

일단 저질러 보고 생각한다는 건  다시 태어나도 내 사전엔 없는 말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2n의 시절에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세상의 박자에 맞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집을 마련해야하고 집 평수를 늘여야 하고 아이에게 맞는 사교육을 고르고 시키고 조금은 내 아이로 인해 내 어깨가 펴질 수 있는 상상

내 남편의 지위나 나의 집 크기로 내 어께가 더 비대해지는 상상 그렇게 나는 없이 속물적인 마인드가 더 컸으면서 동시에 이런 저런 것들이 정의롭지 않다고 말로만 비판할 줄 알았고 세상은 내가 아는 것이상 크다고 번번히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 커다란 세상의 일부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게 3n 4n을 보내고 지금 5n이 되면서 조금씩 인간이 변하고 있다.

아주 굽벵이 기어가는 속도만큼...

 

그리고 내가 지금 알게 되고 생각한 것들을 책에서 발견한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생각들....

 

 

성폭력에 대해 내 말을 들어주는 동행 반응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말을 편하게 되풀이 할 수 있게 된 거라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발설하지 못하는 갑갑함보다 발설하고 난 후 휘몰아치는 몰이해가 훨씬 더 두려웠다.

 

내가 겪은 폭력이 흔한 불행이면 안되듯 아이들이 이 범죄를 피한 게 행운이면 안된다. 어린이는 (아니 모든 이는) 보호받는 동시에 개별 주체로서 존엄을 지켜가는 일이 사회의 의무여야 한다.

 

성이 여성이 아동을 따라하고 아동이 성인 여성 흉내를 내는 이곳에서 민감해지기를 단념하면 비참한 사고가 발생한다.

 

폭력에 대한 말은 더 이상 보태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어릴적 당했던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것이 나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는 게 안도감을 준다는 사실이 조금 늦게 슬펐던 기억이 난다. 꼭 이런 거지같은 걸 함께 나누고 공감해야하다니...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쨍쨍한 날도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설교는 늘 따라다닌다. 부끄러운 건 그렇게 누군가에게 상처주면서도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단세포같은 것들이지  예상도 못한 채 벼락맞는 내가 아니니까. 알지만 당당해지기 아직은 어려운 일,,, 적어도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안도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늘 바란다.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국을 몇 술 떴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울고 나면 개운했던 기억들 멋적었던 기억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감정들이 있다.

운다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해결되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꺼이꺼이 울어야 할 순간이 있었다

 

한참을 서성이다 늘 먹던 김밥으로 손을 뻗은 아이는 젤리만 포기한 것이 아니다. 호기심 성공일지 실패일지 걸어보는 작은 내기 또래문화 알아갈 수 있던 자신의 취향과 기호 안전이란 귀중하지만 작은 유희와 상실까지 지우는 안전의 기반은 부실한 것 아닐까

김밥을 택한 아이앞으로 너무 늦지 않게 쓸데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찾아들면 좋겠다.

생활과 유리딘 다만 밫나고 덧없는 것들이 그에게 우연하게 필연하게 가닿는 날이 있길 바란다.

 

가성비라는 말이. 현명한 소비를 뜻하기도 하지만  적은 금액으로 가장 최선을 얻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뜻하기도 한다. 단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결국 아는 맛, 무난한 색 어디든 어울려서 어디든 이상한 취향을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취향도 단순하고 개성도 없고 경험도 적은 그런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실패해도 그만인 작은 내기들. 후히밖에 안 남을 선택들이 주는 풍성함이 있는데

그건 실패만도 아니다. 잘못만도 아니데.. 자꾸 선택의 범위는 줄어든다. 그리고 슬프지만 점점 익숙해진다.

 

종이 속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내가 이로운 날에도 완전히 혼자는 아닐 수 있었다 사람대신 책을 친구 삼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괴괴한 학창 시절을 보낼 확율이 높아지긴 하지만 고독이 어쩌면 충만과 비슷한 뜻이란 걸 체감하는 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새로운 슬픔과 새로운 기쁨을 마무리하는 순간은 사실 멋지기도 하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건 친구를 못사귀어서라는 걸 나이먹고 알았다. 친구가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나는 외톨이였을 겍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건 늘 어렵고 두렵다. 예상밖의 인복을 만나 여태 사회관계망에서 함께 살고 있다 내가 그렇게 책으로 빠진 건 엄마의 견해처럼 잘난 척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이 두렵고 겁나고 사람들이 너무 잘나 보여 숨을 곳을 찾았던 것이다.

지금 아이가 핸드폰속으로 아이돌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도 너무 두렵기때문이다.

왕따를 당했을 때 그래서 학교가 두렵고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었을때

그래도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학교는 가야하지 않냐고.. 그깐 년들때문에 니가 니 삶을 포기할거냐고 속도 모를 옳지만 재수없는 말만 할때  아이를 위로해준건 그 아이의 오빠들이고 그 오빠들의 노래였고 퍼포먼스였고 오빠들의 팬들과 의 소통이었고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들여다 보는 그들의 불특성 대중을 향한 위안과 위로였다. 그것만으로 아이는 살아갈 힘을 얻었고 그리고 아직도 내 곁에 있다.

나만 몰랐다. 그게 꼭 책이 아니어도 괜찮았고  빠순이가 되는 거든 핸드폰에 빠져 너튜브를 보고 댓글을 다는 행위들이라도 좋았다. 그래서 아이는 아직 내 곁에 있다.

가끔 나는 잘 잊어먹고 속물이고 부모가 아닌 학부모여서 아이의 학습태도를 나무라고 화를 내지만  그래도 아이는 저만의 위안이 있어 세상이 살만하다고 믿고 있는 중이다.

 

글이나 말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전부 보여주지 않는다.

말만 잘 하고 선동만 잘 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더라도 .. 말만으로 글만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비록 프로필 사진을 보고 심한 배신감에 무릎이 꺽였지만....

그의 글과 그림은 참 위안이 된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젊었을 적에 알았더라면...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