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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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지 않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서로 곁을 내준다. 옆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라서 불편하고 달라서 상처받지만 때로 달라서 위로가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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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사적 영역의 개인과 공젹 영역의 개인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실제 개인의 삶에서 그 영역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음을 고려할 때 여성 서사 및 그 서사와 관게 맺는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의 영역이 넓어진다.

감정도 생각도 느낌도 자기만의 언어도 없는 인형이라는 희원의 자기 표현은 개인적인 것이 소거당한 여성 화자의 자기 인식으로 읽힐 수도 있고 그것은 아주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 구성적인 문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 학생이 자신 및 자신과 관계되는 삶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한다. 발표자는 영성의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말한다. 육아의 문제와 고용 불안정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사회적인 역할과 결합됨으로써 발생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 학생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적 현실은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이 어떤 문제들은 사적/공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치판단하고 있는지 생각해야한다.

 

개인적인 일이야. 그리고 공과 사는 구분하는게 좋겠어. 일의 능률을 위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긴장하고 보여지는 나에 치중해야 하는 공간과 모든 끈을 놓아버리고 마음대로 풀어져도 되는 공간을 나누게 된다. 자아는 그렇게 조금씩 분열한다. 누구에게 책잡히지 않고 나는 개인의 나가 아닌 어떤 역할의 나가 된다. 사무실의 주임 학교의 비정규직 교사. 남편가족들 사이의 며느리. 올케 형수 그리고 사회 시민으로 규칙과 상식을 지키는 나까지.. 그 속엔 개인인 나는 과연 없을까?

그리고 내가 마음껏 흐트러져도 괜찮은 내 집에서도 나는 온전한 나일 수는 없다.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옆집 같은 반 아이 엄마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를 죽이고 아닌 척 하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고 믿으면서 나는 점점 내 속에서 소멸한다.

만약 내가 권력이 있다면 이렇게 분열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걸까?

힘이 있는 존재라면 (그것이 남성이든 아니든) 사회에서 보여지는 나 속에 내가 가진 욕망과 본능을 그대로 드러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고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런 면이 있네요. 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설령 돌아서서 저런 꼰대같으니... 라는 뒷담화를 들을지라도 그 앞에서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건 힘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가지지 못해도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딱딱 구분해서 살 수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물들면서 둘은 어느 순간 만난다.

감정없이 사람 수만큼 커피를 주문하고 새로운 정책을 기안하는 내 속에 뭔가 부조리하다고 느끼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내가 전혀 없을 수 있을까. 아침에 조금만 더 눈을 붙이고 싶지만 타인을 위해 화장을 해야하고 가족을 위해 뭔가 먹을 걸 준비해야 해서 결국 채 다섯시간을 못채운 수면에서 억지로 눈을 떠야 하는 순간. 그때 온전한 나였을까

그런건 원래 그런 거예요. 늘 해오던 방식이고 아무도 뭐라고 한 적 없는데 꽤 까탈스러우시네요. 라는 타인의 말이 울컥하는 내 속에는 공적인 내가 있는 걸까 사적인 내가 있는 걸까 내 감정과 정서가 들어있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부당함에 대한 표현도 함께 들어있다. 그건 나의 모든 부분이 함께 스며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한다. 늘 하나를 택해야 하고 하나를 디폴트값으로 삼으면서 하나를 죽인다. 꼰대도 될 수 없고 진상도 될 수 없어서 그냥 나를 죽인다.

이문제는 개인적인거잖아요. 저마다 입장이 다른 거예요. 라는 말.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적인 문제/ 공적인 문제라는 것이 딱딱 아귀가 맞게 떨어지게끔 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무슨 기준으로 그것을 정할까. 문제는 그걸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이야기는 평범한 이야기가 될 수 없는가? 평범한 이야기라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가?

 

중요한 이야기는 내용의 경중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시선과 관련된다.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중요한 이야기는 어떻게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가? 로 대체된다.

 

어떤 사실을 지나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어던 방식으로 말하고자 했는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보다 스스로 그 사실에 대해 방어적으로 굴고 타인의 평가를 우려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 그 부분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모든 글에는 글쓴이의 감정이나 생각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애써서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독자가 자기 입장에서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 방어적이고 누구나 들어도 괜찮은 다시 말하면 없어도 그만인 글도 분명 존재한다. 그 글들은 아무런 주장이나 의미가 없는게 아니다. 기득권에 대한 다수의 생각에 능동적을 순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사실을 말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어떤 형태로 발화되든지 어떤 추가적인 의미를 얻든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사실이라면 그대로 말해도 괜찮은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가며 여성-강사가 당면한 부당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남성이 되거나 정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여성이자 비정규직인 선생님이 어떤 불공정한 일을 겪어내야 극복해야 할지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어떤 사실들은 종종 슬프다. 나를 억압하는 인식들이 어던 구조속에서 사실로 굳어졌을까?

그것이 삶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얼마만큼 부정하고 또 인정해야할까 그러나 삶이 늘 슬픈 것은 아니다. 어떤 사실이 관계에 균열을 낼 것임을 염려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실에 의문을 던져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가 나와 언어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향해 서로를 지탱해줄 것임을 빛을 보고자 하는 자는 안다.

 

나는 최은영 작가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글을 자주 쓰지 않아도 오래 썼으면 좋겠다.

많이 고민하고 이게 옳은 걸까 과연 나에게 옳은 것이 타인에게도 옳은 걸까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아파하는 작가가 그럼에도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글을 써야 할 때 나의 입장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 예의를 차리는 일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쉬운 일도 아니라는 걸 말할 때도

관계 속에서 내가 소멸할 것같이 힘든 순간 그냥 타인의 눈에 띄지 않고 그렇게 멈춰버리는 걸 해도 괜찮다고 말할 때

그래도 기다려주는 내가 있다고 말해줄 때

아주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그렇게 말할 자신도 없었다고 혼자 나지막히 말할 때도

촌스럽고 21세기 작가답지 않은 서사임에도 나는 여전히 그의 글을 기다린다.

그는 글을 잘 쓰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오래오래 멈추게 된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나는 관계속에서 어떤 사람일까

나도 괜찮은데...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가 지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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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인권으로 한 걸음 -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성교육을 향하여
엄주하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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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혹은 성폭력예방교육을 위한 강의를 위해 참고하기 좋다. 알고있으나 불명확한 인식을 아이들이 이해하기좋은 예시와 언어로 되어있다. 다 안다고 하더라도 대상에 맞게 전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무엇보다 ‘가해자 되지않기‘라는 시각이 가장 맘에 든다 좋은 방향이다. 물론 다들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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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7-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다 알고 있어”라는 생각은 무서워요. 평생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게 돼요. 또 그런 생각 때문에 잘못된 언행을 저지를 수 있어요. 이런 자만심을 경계해야겠어요.
 
책과 열쇠의 계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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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이고 싶은 마음. 아닌 척 하는 마음. 내 속에 숨은 무서운 내 얼굴이 불쑥 나오지 않게 누르면서도 그게 필요할 때면 용기내어? 꺼내보여야하는 상황들이 있다. 소년들도 다르지 않다. 다른 성향의 콤비가 풀어가는 추리. 인간을 보는 시선. 그리고 내모습까지 여전히 슴슴하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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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조용하고 말이 없지만 느닷없이 내편을 들어주는 사람.

무조건 내편이어서 마구 상대에게 쎈소리를 해가며 역성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틀렸음을 옳지 않음을 조곤조곰 말햐면서 내가 당신 편을 들려고 하는게 아니라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하려는 것 뿐이라는 태도로 내 편을 들어 줄 사람.

그럼에도 그의 편이 되기는 쉽지 않은 사람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늘 괜찮은 얼굴로 괜찮은 이야기만 하고 정말 괜찮아 보여서 참 잘 살고 있구나 편안한 삶이구나 싶어 어느 정도 이상 관심을 끌지 않는 사람

사실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라 자기 상처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이걸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드러낸다는 걸 배우지도 못했고 그래도 된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 다들 힘들테니까 굳이 나까지 무게를 얹지 않겠다고 늘 괜찮은 얼굴로 말갛게 있는 사람 어쩌면 자기 상황이 폭력속에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폭력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쉽게 잊히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아보여 팔자편해보이기도 하고 무심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 그래서 그가 무언가를 말하는 순간 목청을 높이는 순간이 참 많이 어색하고 낯설기도 한 사람

그런 사람이 떠올랐다.

시미는 자기 아픔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화인의 아픔을 쉽게 알아차린다. 무심학 다가가지 않음을 예의로 삼은 시미는 병실에서 자기 옷자락을 잡은 화인의 아픔을 알아차린다.

그리워했던 아이를 대면하는 순간 아이가 내뱉는 차가운 한마디에 그리고 남긴 커피잔에서 아이의 기호릉 알아내고 아이가 그동안 혼자 얼마나 외로움과 버려짐을 견뎌냈는지를 알아차린다.

너무 잘 알아차려서 자기 통각을 잊었다.

 

폭력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높기도 하지만 굉장히 둔감하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묻는다.

아니 상대의 잘못일거라고 생각해도 그 생각을 언어로 꺼집어 내거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분명 상대의 문제지만 드러내는 순간 말하는 순간 그건 내가 감당해야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 선명하게 안다.

그리고 눈앞의 폭력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순간 순간 불쑥 올라오는 불안과 공포를 내가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여길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사람은 시미만 아니고 화인도 그렇다.그리고 나도 그렇다.

내 심장에 새겨진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심장에 수를 놓는다.

절대 잊힐 수 없는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고통을  내 몸에 새긴다. 그리고 나를 지켜줄 무언가를 내 몸에 새긴다.

내 고통은 무엇이 지켜줄까

시미를 닮은 화인을 닮은 그들은 무엇이 지켜줄까

 

책을 읽으며 속에 뭔가 얹혀서 내려가지도 올라오지도 않는  그것이 생겨버렸다.

심장에 수 놓는 일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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