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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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누군가 내개 묻는다면 격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모든 걸 가진 자에게서보다 거의 가진 게 없는 자에게서 더 잘 목격할 수 있는 가치이고 모든 걸 가진 자가 이미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유일한 가치이고 거의 가진 게 없는 자가 유일하게 잃기 싫은 마지막 가치이기때문이다.  

 

아버지가 없는 밥상에서 더불어 없어졌던 메뉴 

 

금을 밟지 말라는 뜻에서 선을 넘지 말라는 뜻에서 설정된다. 금은 타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선을 나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서.

 

시각이라는 감각에만 의존해 우리가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시각의 즐거움도 시각의 도움도 외면한 채 살아간다. 보이는 것만 잘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에 여전히 무지한 채로.

 

 

타인에게 요구하며 가혹한 것.

스스로에게 요구하면 치열한 것

 

 

얼굴에 많이 칠하면 원하는 내 얼굴과 가까워지고 가슴에 많이 쌓이면 원하던 나 자신과 멀어진다.  

 

 

송곳니가 없는 초식동물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적을 향해 내세우는 것.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다. 물어뜯는 것은 잡아먹으려는 공격에 가깝고 들이받는 것은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방어에 가깝다.  

 

 

빛이 없으면 색도 존재하지 않는다. 색은 사물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사물에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다. 가시광선만을 색으로 인식한다. 물체가 흡수한 색이 아니라 반사한 색을 인식한다. 그러니 색을 쓰는 여자는 없다. 색을 밝히는 남자의 시선에만 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아프지 않아도 먹는다. 낫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나아지기 위해 먹는다. 음식 대신 이걸 먹기도 한다. 운동 대신 이걸 먹기도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잠 대신 이걸 먹기도 한다. 언젠가 물 대신 먹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행복 대신 먹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요리왕'  ' 농구왕' 처럼 어떤 분야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칭찬할 때 뒤에 붙여 쓴다. '왕재수' '왕싸가지'처럼 앞에 붙여 쓸 때는 비아냥을 뜻한다. 단 '왕만두' '왕돈가스'처럼 크기가 큰 것을 나타낼 때는 제외하고

 

 

얼마나 덩치가 크든 얼마나 무겁든 얼마나 대단하든 얼마나 소중하든 그 무엇이든 다 타고 나면 한 줌 토

 

 

 

적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적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적을 이해하면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있으면 적이 아니다. 적을 용서하라고 했지만 용서는 이해 이후에나 겨우 가능하다.

 

 

남의 말에 토를 달면 건방져 보이고 자기가 한 말에 토를 달면 비겁해 보인다. 

 

 

이것에 딱 맞으면 재미가 없고 이것에 갇히면 부자유스럽고 이것에 맞추면 성의가 없고 이것에 박히면  구태의연해진다. 이것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기득권의 욕망이고 이것을 깨고 싶어하는 것은 피기득권의 소망이다.

 

 

폼을 잡는 사람한테서는 폼이 안 나고 폼이 나는 사람은 폼을 안 잡는다. 

 

 

 

뜻을 같이하는 게 아니라 배격을 가티하기 위하여 무리를 지을 때 가장 팀워크가 좋다. 같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격도기 싫어서 무리에 가담할 수 밖에 없다.

 

 

 

(중략)

'어떤 집에 사나요?' 하고 묻는 일은 '어떤 창문을 갖고 있나요?'라는 질문일 것이다. 또한 '당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일 것이다. 결국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나요?'라는 질문인 셈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집의 창이었다.

영화 첫장면에서 길게 잡혔던 기우 기정네 집의 창은 가로로 길고 좁다. 그 너머에 보이는 풍경은 지저분하고 지리멸렬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들이다.

박사장네 넓고 멋진 정원을 보여주는 창은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고 풍광이고 여유였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틀렸다.

자연도 이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고 돈이 많으면 더 멋지고 여유로운 풍경을 얻고 자연을 가질 수 있다. 나무도 꽃도 하늘도 저너머 내것이 아닌 풍경들도 돈으로 살 수 있다.

내가 어느 계급에 속했느냐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진다

내가 선 그 위치에서 내게 보여지는 것만 나는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늘 바라보는 그 풍경이 나의 환경이 되고 나의 어떤 성격을 형성하고 내 습관을 만들고 내가 꾸는 꿈을 규정짓는다. 내가 본 것 이상 알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지만 인간은 결국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무언가를 덧붙여 상상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가치가 달라지고 내가 다르게 규정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공정하게 배분되는 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슬프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세상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우에게 박사장네 정원이 웅장하고 근사할 수 밖에 없을테고

박사장네 가족은 죽었다 깨어나도 기우네의 창밖 풍경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아는 그 한뼘보다 더 크고 넓고 다양하다.

먼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처럼 내가 아는 것은 그저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내가 전부를 안다고 믿고 살고 죽는다.

창을 가진다는 것

그것이 사람을 정의내리는 게 아닐까.

내 집 뿌연 창밖에서 보이는 풍경

내가 가진 어떤 프레임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별거 아니지만 동시에 대단한 것이다.

 

 

 

언어가 생각을 만들고  어떤 정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규정된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가끔 내가 아는 것이 타인이 아는 것과 같은 것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내가 뜻하는 그것이 그에게도 같은 뜻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언제나 변하지 않고 상하지 않고 늘 그대로일까?

모르겠다.

읽는내내 유쾌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사전이란 어쩌면 저마다 다르게 쓰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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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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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한창이던 그 해 소녀가 살해되었다.

흉기로 인한 두부 손상

소녀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두 소년이 용의자로 좁혀졌다.

한 소년은 차에 소녀를 태우고 갔다는 것이 목격되었지만 알리바이가 충분했고

다른 소년은 배달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차에 탄 소녀를 보았다고 했는데 그 증언이 어딘가 삐걱거리서 계속 용의자로 의심받고 또 의심받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유야무야되었다.

그리고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졌고

두 소년의 인생은 조금 뒤틀렸고 죽은 소녀의 가족은 멀리 신도시로 이사했다.

소녀의 동생은 상상하지 못한 다른 삶을 살아야 했고

그저 옆에서 사건을 지켜보기만 했던 소녀의 동창은 또 다른 이유로 예상밖의 삶을 산다

 

누구나 그렇다.

삶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철없이 꿈꾸었거나 단언했던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전혀 상사할 수 없던 일들이 자꾸 생기고 예외들이 자꾸 쌓이면서 그것이 마치 내가 계획했던 일처럼 내 운명처럼 내 삶을 직조하며 나를 앞으로 밀어낸다.

죽음이란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에도 늘 죽음은 삶에서 의외의 사건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늘 낯설고 의외다.

그 죽음을 납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 되었을때 우리는 비로소 그 죽음을 인정하고 애도하며 그를 보낼 수 있다.

어느 한 순간 이해되지 않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앙금이 남게 되면 좀처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타인이 나에게 이해시키거나 내가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는 유일한 대목이 죽음이 아닐까  어떤 방식이 되었건 어떤 경로를 통했건 설령 그것이 오롯이 나만의 아집이거나 망상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삶도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서 꽃망울을 보면서 우리는 겨울이 다 갔음을 안다.

그 나무들이 연두연두하게 변하는 걸 보며 우리는 봄이 이미 갔음을 알게 되고

비가 내리고 낮과 밤의 온도차를 느끼며 이미 여름이 다 갔구나 하고 쓸쓸해진다.

그렇게 살아있는 시간 역시 지나고 난 뒤 그것이었구나 하고 알아간다.

어쩌면 사람은 지금 이순간을 살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지금이 봄인지 여름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인지 증오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습관처럼 정에 끌려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지 못한다.

화를 내고 미련을 털어내고 한바탕 퍼부은 후에 우리는 사랑이 끝났음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내가 그동안 그를 많이 사랑했음을 혹은 사랑을 재고 있었음을 안다.

단칼에 무를 베어내고서야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언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희는 어떻게 그리고 한만우를 잃은 선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태람은 이제 좀 덜 혼란스러울까?

이미 죽어버린 소녀는 그 죽음에서 이제 평안해졌을까?

 

가끔 생각했다.

사람이 가진 끔찍한 능력중 하나가 어쩌면 공감과 이해가 아닐까

사람은 누구든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은 단한가지 면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악함에서 선함에 이러는 수백수만수천 수억개의 스펙트럼을 가진 것이 사람이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의 어떤 행동의 사람도 그 전후맥락과 환경과 그때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만인이 만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세상 어느 귀퉁이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사람이 분명이 있고 감정없고 건조한 인간도 어디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꼐 눈물을 흘려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고통스럽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이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마음에서 스르르 녹아버리면 어쩌지 못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 사람의 그 맥락을 알아버리는 건 두렵다.

다언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에게 복수하며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프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고  가장 큰 복수는 잊고 내가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것조차 개소리가 되어버린 상황이 애처롭다.

 

소설이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가 되어 누가 범인이며 그의 트릭이 무엇이었는지 화끈하게 밝혔다면 차라라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언정 시원하고 통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이 남기는 것은 그렇게 개운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아무것도 해결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죽음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아프고 화가 나고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개운할 수 없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해결한다는 경험을 했다면 그건 그 아픔의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소설 표지의 레몬이 선명하고 상큼하지 않다.

뿌옇고 흐릿해져서 입에 침이 고이지도 않는다.

세상엔 이런 레몬도 있다.

보고 있어도 신맛이 느껴지지 않고 입안이 자꾸 말라가는 레몬들

그게 죽음이든 지나간 사랑이든 상처이든 선명하지 못한 것들은 늘 남아서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산 것들은 살아야 한다.

 

 

사족1  한만우의 이야기를 선우의 입장에서 한 번 듣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많은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와 함께 그를 기억하는 선우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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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더 큰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었을까?

안나가 가진 큰 비밀은 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건 그녀에게 큰 비밀이며 동시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수치심이다. 글을 모르는 그는 글을 아는 이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푹 빠진다.

마이클과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는 행위는 그녀의 수치심을 감출 수 있고 스스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 마이클이 책이야기를 해 줄 때  그리고 사랑에 들떠서 안나를 바라볼 때 자기의 비밀을 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렇지 않았을것이다.

수용소에서도 어린 소녀들을 불러 다정하게 대하며 책을 읽어주게 했고 마이클도 그녀에게는 어린 아이였다. 그녀는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절대 자신의 문맹을 들키지 않을 상대들에게 말이다. 그렇게 안나는 자기의 비밀을 꼭꼭 숨기길 원했다.

글을 읽지 못해 사무직으로 승진도 하지 않았다. 수용소로 가기전 지멘스에서도 아마 승진이 두려워 이직을 했을 것이다.글을 읽지 못해 자기가 서명한 서류가 무엇인지 알 지못하면서도  문맹임을 밝혀서 스스로의 범죄를 낮출 생각보다 차라리 죄를 모두 자기가 뒤집어쓰는 쪽을 택한다.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죽음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수치였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을 뒤늦게 법정참관을 한 마이클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안나는 글은 알지 못하지만 참 완벽한 감시원이었다.

수용자를 감시해야한다는 자신의 업무를 고지식하게 철저하게 지킨다.

자기의 신념이 타인에게 어떤 폭력으로 가해지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수감자를 감시해야하고 그들이 절대 소용시설 밖으로 나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하면 안되는 것이 그녀가 해야할 모든 것이다. 가스실로 가야할 사람을 골라내라고 하면 스스로의 기준으로 아무런 감정없이 사람들을 골라냈고 새로 오는 수용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가스실로 가야한다는 당위성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명령받은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그녀에겐 전부였고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문맹이어서였을까 스스로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았다.

내가 글을 알지 못한다는 수치심이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통제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걸까?

법정에서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하고 당당하게 자기의 행동을 구술한다. 어떤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치장도 없이 말이다.

굳이 악의 보편성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은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나가 잘 보여줬다.

오랜 감옥생활에서도 안나는 스스로의 죄를 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키는대로 했다는 것 그들의 명령이 당위성만을 생각하며 그냥 그 속에서 견디고만 살았을 것이다.그런 안나에게 마이클의 녹음이 도착하고 책을 읽고 글을 읽게 되면서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마이클을 만나면서 그녀는 자기의 진짜 수치심과 마주하지 않았을까?

글을 모른다는 건 수치감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아무 생각없이 아무 감정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그 명령에 당위성을 주며 따랐다는  사실이 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별 거 아닌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죄를 만들고 죄책감을 알게 된 안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안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마이클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가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 더 큰 다른 것이었다는 것 그것을 마주 하고서 말이다.

 

마이클은 ...

열다섯살 소년에게 안나의 존재와 안나와의 관계는 큰 충격이고 영향을 준다.

내가 사랑한다고 순진하게 믿었던 상대가 말도 없이 떠나고 그리고 훗날 우연히 만난 그녀의 더 큰 비밀을 알게 되면서 마이클은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 내 곁을 쉽게 떠날 수 있을 것이고 크다란 비밀을 나몰래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

믿음에 대한 배신과 함께  마이클과 그가 속한 사회가 가진 신념에 전혀 맞지 않는 안나를 보며 또 다시 실망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져 혼자만 알게 된 안나의 비밀을 안나를 위해서? 아니면 안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국 혼자 안고 입을 다물어버린 행동까지 더해지면서 그 역시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한 때 사랑했던  시간과 기억으로 각각 죄책감을 안고 간다.

사랑이 죄책감을 붚풀린다.

마이클은 죄책감이 책을 녹음해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알게 된 안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안나가 조금 더 일찍 자기의 진짜 수치와 죄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생을 허비하며 마감했을까?

사랑에 대한 배신이 죄책감을 만들과 그리고 삶을 다른 방향으로 쿨꼬를 돌리기도 한다.

 

그저 19금의 격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라고만 보기엔 뭐랄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가진 신념이 신념인지 모른다.

그저 타인이 가진 신념을 비판하고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다.

혹은 신념과 현실은 다르다며 나의 타협을 인정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 생각이 없다고 그저 현실에 맞춘다고 믿었던 나의 말과 행동도 결국은 내가 가진 신념이고 틀이라는 걸 나만 모른다.

 

다시 책을 읽어 봐야 겠다.

 

 

 

사랑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 그 시간을 되돌아 볼 때 왠지 뭉클해진다.

그 사람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다시 볼 일이 없게 되어 그때의 열정은 이제 두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쓸쓸하게 남겨져 있거나 그마저 없거나 할테지만

가끔 아주 오랜 후에 되돌아 보는 미쳤거나  격정적이었을 그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안달하고 애태웠나 알 수 없으면서도 그 감정이 슬프다.

그렇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렇게 미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경주마처럼 오직 눈앞에 그 사람만 보였던 그 시간이 부질없다 싶게 쓸쓸하면서도

그것 마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외롭고 슬프고 삭막할까 생각한다.

엣사랑은 그것이 무엇이건 다 조금씩 상투적이며 유치하고 속물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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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9-06-2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이자 책이었습니다. 나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치나 친일은 단죄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푸른희망 2019-06-27 22:31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입니다~^^
 
페미니즘 교실 구르는돌 6
김고연주 외 지음, 수신지 그림 / 돌베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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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공부도 필요하다. 또 내가 아는 것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는 것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버벅대지 않고 꼬이지않고 쉽게 공감되게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다. 쉽게 읽히지만 많은 것을 담고있고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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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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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몸이 세계라면

 

기생충에서 영화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기사나 개인적인 글 아래 달린 댓글들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무엇이냐에 따라 영화에서 느끼는 흥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고 감정도 달랐다.

 

나는 어떨까?

처음 봤을 때 몹시도 경악스러웠다.

어쩌면 나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고 동동거렸지만 누구에게도 티내지 않았던 내 속의 불안이 쑥 화면에 펼쳐졌다,

나도 저렇게 반지하로 떨어질 수 있고 더 깊이 빛이 한줌도 없는 지하로 떨어질 수 있다

그 가능성이 나에게도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고

뻔뻔하고 사기성이 강한 기택 가족의 행위를 좋아할 수 없지만 왠지 자꾸 면죄부를 주고 싶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싫었다.

어떤 방법으로 들어왔든 그들은 박사장네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가?

그런 극악스러운 상황에 마주하지 않았다면 약간의 거짓과 위선을 섞을지언정 받는 돈에 응당한 댓가를 치르며 살지 않았을까 하며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박사장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손해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마음?

누군가 이 정신없는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고 혼자 킬킬대고 있을 존재가 있을거 같고 그 존재를 모른 채 연교나 기택이나 정신없이 휘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킬킬대는 누군가의 목을 졸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리고 두번째 봤을때는 그냥 슬펐다.

이룰 수 없다는 게 뻔한 꿈을 꾸는 기우가 슬펐고

그렇게 언제 탈줄 할지 알 수 없는 지하생활을 계속해야하는 우택이 슬펐고

순간 드러낸 민낯때문에 죽어버린 박사장이 허무했고

죽는 순간까지 리스펙을 외치는 그 남자도 짠했다.

누군가가 죽어버리는 것만큼 앞으로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다는 막막함에 더 서러웠다.

어떻게든 발버둥쳐도 늘 제자리라는 사실이 서럽고 서럽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좋고 이루어 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는 건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는 세상에서 내 노력 한 방울 더하는 것  그건 축복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이 되지 않은 빡빡한 삶에서 태어나 한 번도 " 가지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골라"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꼭 필요한 거 하나만 골라"라는 말만 듣고 살았다면

아무 거나 골라서 이건 쓸모가 없구나 가치가 없구나 하는 걸 경험할 수 없다.

제일 좋지 않아도 중간쯤은 될 수 있는 것 내가 알고 있어서 익숙하고 실패할 수 없는 것만 선택한다. 모험이라는 건 누군가에게는 사치다.

많이 따지는 가성비라는 것이 그래서 때로는 슬프다.

써야할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최고의 만족은 아니지만 최하는 아니어야 하고 적정하게 만족하고 그 값어치에 비해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정도?  무난한 색상 무난한 기능 무난한 디자인 어디에서 사용가능한 동시에 어디에서나 애매한 존재 그런 걸 고를 수 밖에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때로는 슬프다.

 

예전에 이과를 가기 위해 필요한 재능이 상상력이라고 했다가 판잔을 들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을 공부하는데 왠 엉뚱한 상상력? 이라고 했다.

내 딴에는 일단 지구가 둥글지도 모른다는 상상  태양이 지구를 돌지도 모른다는 상상  저 지구 밖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의 가설에서 실험하고 관찷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게 과학이 아니냐고 지극히 문과적인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다.

돌아온 답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리와 원칙 뭐 그랬던 거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결국 상상력이 어디든 필요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주를 날아가는 택시 같은 상상력도 필요하고 내가 아닌 타인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보는 상상력도 필요하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있는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력

내가 알고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이 필요한게 아닐까

 

가끔 생각했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을 뺀 나머지 어마어마한 부분이 존재할 거라고

내가 보고 겪고 안다고믿는것은세상의한 점뿐일거라고 말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걸 망상이라고 믿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원래 없던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게에 종업원대신 기기가 주문을 받을 때  몇번 버벅거리면서 투덜거렸고

아이에게 용돈을 주며 사먹어라고 했더니 이젠 돈받는 주문은 잘받지도 않아서 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기가 서툰 사람들 그리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햄버거를 사먹고 국수를 사먹고 차를 마실까?

그저 종업원의 고용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기기주문이 단순히 기기가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뿐 아니라 수없이 존재하고 있을 신용카드나 여타 카드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원칙이 그렇다고  정해버린 규칙은 누가 만든 것일까?

그 원칙이 불편하고 불안한 누구가는 그저 깐깐하고 까다로운 사람이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일뿐일까?

내가 누군가 타인을 볼때 내가 가진 얄량한 정보와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지적하고 충고하는 일이 과연 상대방에게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일일까?

어쩌면 내가 못나서 불편했던 것들이 내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이 무심하게 정해놓은 기준탓은 아닐까

 

 

사실  길게 리뷰를 썼는데 저장이 잘못되었는지 다 날라가고 ... 밑줄 그은 부분도  다 지워져서 이제 더 쓰고 싶지 않다 ㅜㅜ

그냥 최근에 본 영화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늘어놓을 뿐이다.

 

저자의 첫책도 좋았고 지금의 책도 참 좋다.

세상을 또다른 시각을바라본다는 것도좋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거라고 믿는 과학  역시 누군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의 일이라는 것과 그 합리성의 빈틈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떤 제도나 규칙 학문적인 논리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전부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위한연구나사람을 위한제도가결국 어딘가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없는 사람으로 없는 행위로 없는 부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늘 생각하고 의심하고 한 번 도 질문하는 자세를 다시 배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침착하고 조곤조곤한 어투로 단정하게 씌여진 글들이 좋았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책을 가득 채운 내용들도 버릴 것 없이 좋았지만 마지막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가장 좋았다

 

그러기에 이러한 연구의 결과물을 두고서 그 타당성을 다지는 데서 멈추면 안됩니다. (중략) 그와 함께 이러한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질문해야 이 현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 시기에 그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을 답하기 위한 연구들은 어느 기관의 지원을 받ㅇ아 어디에 발표되었는지 그리고 그러게 만들어진 지식은 이후 어떻게 활용되었ㄴ느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 연구의 결과물을 시공간을 초월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식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 맥락속에서 구성도니 산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제 강점기의 인종주의 과학은 실증적 정량적 측정이라는 측면에서 과학적인 외피를 둘렀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통치해아하는 이웃집 원주민 조선인에 비해 일본인이 인종적으로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식민 지배의 합리화라는 정답을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근거를 수집하는 작업이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오리가 이 연구들을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86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습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느끼기때문에그세계의ㅈㄹ서가누군가를 상처입힐 수있다고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때리는 줄 모르고 던진 돌도 맞는 사람입장에서는 아프기는 매한가지지요그래서 다수자 입장에서는 과돠다고 생각되는 문제제기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혹시라도 왜 그리 불편한긴장을 계속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 다수자인 한국인이 있다면 한반도만 벗어나면 한국인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177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의 종류를 불문하고가난한  사람들이 암으로 더 많이 죽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 사망의 불평등이 명확한 한국 사회에서 그 부령등에 영향응ㄹ 미치는 사회적 요인은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개인의 불운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에게 '왜 가난한 사람이 더 운이 나쁜지' 되물어야 합니다.

의사가 암에 걸린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암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개인인 의사와 개인인 환자가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요하게 캐묻고 대책을 요구하지 않으면 운과 유전자와 개인의 생활습관만 부각되고 암은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당사자의 잘모으로 인해 발생한 불행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보지요.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매년 8만 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가는 , 아마도 당신과 나를 사망ㅇ 이르게 할 이 질병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203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이나 우리가 몸으로 경험해 얻은 직관이 틀릴 수있다는 점을 기억하는일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과학의 출발점이지요. (중략)

그래서 더욱 오늘날 우리가 상시기라고 생각하는 이론이나 직접 경험했다는 이유로 확신하는 사실들 역시 우리시대의 천동설일 가능성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 생각이 틀린 것일 수있다는 비판적 사고는 인류가 과거의 상식과 맞서 싸우며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할 수 있었던 거대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순간 지구는 돌고 있으니까요    316

 

 

그동안 실내 온도를 21도로 맞추었던 관리인과 과도한 용량의 수면제를 처방했던 의사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아프게 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보고 배운 메뉴얼과 교과서의 내용에 충실하게 행동했을 뿐이지요. 문제는 메뉴얼과 교과서 역시 누군가의 관점에서 생산된 과거의 지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생산 과정에는 과거의 편견과 권력 관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몸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지는 상식에 대해 우리가 왜 의심하고 질문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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