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직업 니시카와 미와 산문집 1
니시카와 미와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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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으면 자꾸 작가를궁금해한다. 그는 이 책에 얼마나 자기를 보여줄지. 숨기고싶어하는 걸 내가 포착할 수 있을지 속된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긴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그를 평가하고 사랑하고 밀어낸다. 사적인 글을 내멋대로 읽으며 그를 알아가고 나를 안다.이번에도 속물이다.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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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읽어본다
서효인.박혜진 지음 / 난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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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읽는 책을 훔쳐보는 맛은 짜릿하다.
내가 다음 읽어야할 목록을 만들고 내가 읽어 느낀 감상도 비교하고 미처 잡아내지못한 미묘함과 맛을 잡아낸다. 이렇게 리뷰를 써도 좋겠다. 짧고 진하게. 일먼식 없는 두 사람이 유난히 다정하고 익숙해졌다. 우선 뒤라스부터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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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40대처럼  보인다

혼자 살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 이곳이 익숙한 곳인 동시에 몹시 어색하고 불안한 곳이다. 이웃을 잘 알고 있고 동시에 낯설다.

관계가 서툴고 요즘말로 인싸는 아니다.늘 경계에서 머물면서 주위를 관찰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곳에 있는 스스로를 관찰하고 탐색한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자꾸 읽다보면 에세이같다

이야기가 없고 그저 그 주인공이 관찰하고 느끼는 것들만 묘사되어 그런 모양이다

다만 늘 불안하고 낯설어 하는 모습

오래 살았던 장소이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자꾸 흔들리고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 남같지 않다

그녀는 왜 삶에 이리도 불안할까

친구도 있고 다정한 이웃도 있다. 안정된 일도 있고 어쩌면 그 일에서 성공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몇번의 뜨거운 연애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인데

그녀는 뿌리가 뽑혀 낯선 곳에 심겨진 식물처럼 불안하고 적응하기 힘들어하는것 같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 보여지는 풍경들을  그녀의 눈을 통해 느낀다

어떤 근사한  드라마틱한 일들이 벌어지진 않지만 소제목들의 짧은 이야기는 늘 휘몰아치는것같다묘사되지는 않지만 유년시절의 불안과 외로움이 있고 결혼하지 않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지만그 선택에 대해 늘 흔들리고 있으며 현재 만족하면서동시에 불안정하다

 

나는  어느 순간 삶을 계획하는 것과 되돌아보는 것의 비중이 비슷해진 나이가 되었다

되돌아 보며  추억만을 하기엔 현재 인간 생명이너무 많이 연장되어버렸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하기엔 세상에 나를 받아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행동에  대해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모르겠다.

아직도 연애를 할 수 있고 무언가 근사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동시에 무탈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밤에 눈을 감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일상들

그리고 평화롭고 동시에 불안하다.

줌파 라히리의 글들이 그냥 밋밋하면서 동시에 자꾸 어딘가를 쿡쿡 찔러대는게

지금 내가 느끼는 걸 고스란히 글로 옮겨놓았기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과 꼼짝않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싶은 마음

새롭게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이번 생엔 다 틀렸어 하는'마음

지금 이순간해야 할일에서 도망치고싶은마음과 동시에꾸역꾸역하고있는 내몸

그리고 오래 살아 익숙한 이 곳이 순간 낯설고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나를알지 못할거라는 두려움들이 순간순간 찾아온다

쉽게 뿌리를 옮겨 심고 싶다가도 어딘가 낯선 곳에 다시 옮겨가야 할지모른다는 엉뚱한 두려움을 느끼는 일 그래서 익숙한 것들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해서 도데체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지금 이 지상에 있긴 한지 하는 생각들

그런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 작은책에 씌여 있다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자꾸 에세이로 느끼는 건

이 책에서 주인공을 자꾸 저자에 포개서 바라보게되고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작가와 비슷한 연배의 독자를 자꾸 또 덧쒸워서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내 직관대로 판단하면서

그녀도 외롭구나. 불안하구나 하고 혼자 위안하고

때때로 이렇게 읽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화도 냈다가 이건 그냥독서일뿐이라고 변명도 하며 한권을 읽는다.

 

 

 

아빠, 아빠를 만나러 왔어요.꽃다발을 드릴게요. 아빠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이런 게 무슨 쓸모가 있니?

망자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아빠를 만나요. 치장을 하고 우편함처럼 줄지어 땅에 묻힌 영혼들 하지만 아빠는 늘 아빠의 벽감 안에 있었어요. 뚝 떨어진아빠의 왕국에서 사는 걸 좋아하셨죠.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직까지 난 아빠와 엄마 사이의 거리를채우려 애쓰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겠어요? 아빠는 어쩌다가 엄마와 삶을 함꼐 나누고 아이를 만들기로 결심한 거예요?  지금까지도 아빠는 내 머릿속에서 엄마 일미터 앞에서 걸어가요. 어린 시절 나무 그루터기 사이의 줄이고 싶던,아니 지우고 싶던 그 거리는 아빠와 어마 사이의 거리와 다름없었어요.

아빠는 엄마와 내가 귀찮게 굴면 벗어나기만을 바라면서 문제를 더 어렵게 했어요. 나와 엄마가 싸우는 동안 아빠는 암묵적으로 분명히 말했어요. 뭘 원해. 나는 상관않겠어 아빠는 잔인하고 비겁한 그 두문장만을 되풀이했어ㅛ.그래서 난 아빠를 위험한 상황에 끌어들이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아빤 상관있었어요 나와 상관있었어요. 아빠는 아빠의 그 작은 묘소에 들어가 있는데도 여전히 지금도 나와 상관있어요. 그래서 난 아빠의 차가운 묘소 앞에서 지금까지도 아빠를 용서 못해요. 아빠가 끼어들지 않았던 것 날 보호해주지 못했던 것. 보호자의역할을 거부하고 아빠 자신을 폭풍우 치는 집안 환경의 희새아로 생각했던 것을요. 용암은 아빠를 스치고 지나가지 못했어요. 아빠는 이미 주변에 대리석 구조물의 아주 높고두꺼운 담을 빙 둘러쳤거든요.

어떻게 늘 어둠 속에 있을 수 있어요?  아빠는 환한 불빛을 싫어해서가능한 모든 방의 물을 여기저기 끄고 다녔어요.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게 다 낭비야" 하고 투덜거리곤 했어요 일요일. 아무 일 없이,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 없이, 탈출구도 없이 우리와 온종일 있어야만 했을 때 아빠는 거실 안락의자에 몸을 푹 누이고 당신의 어둠 속에 계셨어요. "다 시간 낭비야" 하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난 뒤 말씀하셨죠

이젠 더는혼자 산택도 못해요.아빤 더는 움직이지 못해요. 아빠는 바다가 절대 흔들리지 않기를원했어요. 아빠는 모두와 다 잘 지내고 방해를 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바다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빠는 내게 그걸 요구했어요. 아빠의 절약을 받아들이고 아빠는 헌신적인 사람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집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달라고 요구했어요.

우리가 여행 가방을 싸서현관에 나란히 놓은지 몇 시간 뒤에 아빠는 갑자기 열이 났죠. 다음 날 아침 새벽에 떠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자정쯤 축 늘어졌어요. 겁에 질려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병원에서 이틀쨰 되는 날 신체 기관이 이미 기력을 다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우리는 함께 극장에가기로 했었지요. 아빠와날 이어주는 끈.아빠가 열정을 품었던 유일한 거였죠. 아빠는 다른 이들의 갈등에 몰두한 채 극장의 어둠, 아빠만의 그 자리에 있는 걸 소중히 여겼어요.한 달 동안 난 여행가방을 풀지 않았어요. 아빠 때문이 아니라 극장표, 날아간 그 모험 때문에 가슴이 아팠죠.

 

이 짧은 글은 어느 시간 내 마음과 너무 닮아서 순간 멈칫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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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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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호르몬이 가득한 작은 공간 베어타운에서 하키를 향한 사람들의 정확히는 남자들의 의리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편이었다면 이번 편은 그 저 남성 호르몬이 가득한 상남자들의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페로몬이 가득한 공간에서 성폭행사건이 일어나고 그 가해자가 그 공동체의 영웅이었고 희망이었다면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수 밖에 없는지 그 마을의 성향과 결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분투하고 애를 쓰며 살아가려고 하는지를 보여줬다면 이제 사건이 마무리가 되었다고 여겨지는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을의 자부심이던 하키는 팀은 거의 해체되다시피하고  그나마 하키에 재능이 있던 청소년들과 코치는 라이벌팀인 헤드로 넘어가고 이제 베어타운은 그냥 잊혀질 쇠락한 소읍이 되고 말 지경이다.

그러나 베어타운에서 나고 자라서 이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의 자부심이 어떻게 뻗어가는지를 그려낸다

사실 크게 일어나는 중심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은 어떤 단체에 속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맥락이 더 중요하다. 한 개인을 정의하는 건 그의 소속이나 환경보다 스스로가 가진 어떤 관계들과 감정들로 인한 맥락이다. 맥락이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좋은사람과나쁜사람을둘러싼문제가복잡해지는 이유도 우리가 대부분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중심 이야기가 따로 없다. 분량의 차이는 있을 망정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편 너희편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베어타운이냐 헤느냐의 강한 라이벌 구도가 존재하지만 개개인은 자기 이익에 따라 감정에 따라 혹은 그동안의 정에 따라 누구랑도 편을 먹기도 하고 누구와도 등을 진다. 좋은 아버지고 좋은 남편이더라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없기도 하고 무심하고 문제가 많은 가장이지만 어디선가는 꼭 필요한 사람이거나 모두가 피하는 폭력배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내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모두가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이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들 가운데 가장 치악을 꼽으라면  우리의 삶이 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나머지 바보들의 경우에도 말이다 내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 운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식당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며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노로바이러스를 옮기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 주차를 엉망으로 하고 우리 일자리를 가로채며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매 순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미워하는가

 

페쇄된 마을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뻔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고 타인들이 모래처럼 모인 삭막한 도시에서도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가 나를 딱 지목하고 저 사람을 망치겠어. 저 사람을 변화시키겠어. 좋은 영향을 주겠어라고 선언할리 없지만 우연한 작은 행동들이 한사람 한사람을 거치면서 혹은 곧장 나에게로 날아와 혹 나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건 나의 몸짓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환한 데서만 달리기를 하고 말은 하지 않지만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나자들은 평생 어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건 그들의 인생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남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귀신과 괴물때문이겠지만 여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

 

" 폭력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싸움을 벌인 사람에게는 항상 그럴 듯한 변명이 있다. '도발한 네 잘못이야' '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면서' '네 탓이야. 너는 당해도 싸. 네가 자초한 거야'

 

전작에 이어 성폭력은 이미 일어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 소설에서는 많이 보여준다.

마을의 영웅이 성폭행을 했고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 마을의 마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내리막에서 누군가를 원망해야한다면 그건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케빈이 아니다. 케빈으로 하여금 문제를 일으키게 꼬리를 친(?) 마야다. 마야는 헤프고 불안하고 경박한 걸레가 된다. 그래야만 문제는 케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야에게 있는 것이고 마야를 원망하고 공격하는 자기들이 안전하고 당연하게 된다.

모든 것이 드러나고도 마야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두렵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마야에게 쪽지 폭탄을 던지고  폭력적인 눈길을 보내며 아는 척 하지 않는다.

단 한명의 단짝과 가족이 있지만 그들도 자기의 삶이 있다.

자기의 문제가 있고 자기가 해야할 일이 있고 고민이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가장 만만한 상대가 좋고 내가 그래도 상관없는 사람이면 더 좋다.

마야는 그런 존재였다. 이제 전부는 아니지만 아직 누군가에게는

자기 가족에게 자기 편에게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마야에게는 가혹하다.

 

 

중간은 없다. 완전히 들통나든지 전혀 아무도 모르든지 둘 중 하나다. 세상 밖으로 흘러나가는 순간 비밀은 지진이 되고 산사태가 되고 쓰나미가 된다.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 언뜻 지나간 생각 상처를 입은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만으로도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는 새 돌이 굴러 떨어지고 눈이 쏟아지고 넘을 수 없는 파도의 벽이 밀려들 수있고 그때부터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 칠월의 향기를 오므린 두 손에 담으려는 것처럼 부질 없는 짓이 된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알 면 안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

 

"벤이는 그들의 주장을 숱하게 들었다. 관중석에서 시합을 치르러 가는 버스안에서 그의 옆에 앉은 어른들이 '아이스하키의 세계에 동성애자는 없다'고들 했다. 통상적으로 주고 받는 농담들이 벤이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가장 심한 상처는 너도나도 욕을 하고 싶을 때 '호모'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이다. (중략)

물론 그 단어를 절대 쓰지 않는 어른들도 있었다. 그중 일부는 그대신 다른 표현을 썼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만  벤이는 그들이 나눈 대화의 조그만 파편들을 몇 년동안 간직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키 안 해도 돼.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로커룸이랑기타 등등 어쩌라고 만일의경우를 대비해서 로커룸을 세개 만들어야 하나?'  평범한 학부모, 아이들의 하키단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친절하고 마음씨 넓은 학부모들이 이런 소리를 했다. 그들은 극단적인 정당에 투표하지 않았고 누가 죽길 바라지 않았고 폭력 행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들은 누가 들어도 빤한 소리를 했다. '그런 사람들은 하키가 불편하게 느껴질 거야. 다른 걸 좋아할 거야. 하키는 거친 운동이잖아.' 어떨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외쳤다."하키는 남자들을 위한 스포츠잖아!" 그들은 '남자들'이라고 했지만 벤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의 속뜻은 '진짜 남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잠자코 그 옆에 서 있곤 했다.

 

'벤이는 더 이상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오늘 팀 훈련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무엇이 되길 바라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번 편에서는 벤이의 비밀이 드러난다. 순간의 질투심과 민망함이  누군가의 비밀을 순간적으로 발설하고 퍼진다. 퍼지는 소문은 발이 없다.. 날개가 없다. 가만 어디든 내려앉고  누구에게든 스며든다. 벤이의 성적취향이 문제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우리편이었던 벤이가 우리를 속였다는 것이 더 큰 배신이다. 나랑 다르지 않다고 믿었는데 나랑 달랐다. 이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것이 혼란스럽다.

어쩌면 타인 내가 모르는 사람이 두렵고 미운 것은  그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모르니까 어떻게 내가 대처해야할지 모르니까 그냥 괴물로 만들거나 쓰레기로 만든다.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려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것이다.

 

 

어쩌면 전편 "베어타운"에서 문제를 드러냈던 인물들이 여기서 조금씩 마무리가 되고 자기 자리를 잡아간다. 뭐 극적인 해피앤딩도 있고 뭔가 희망적인 마무리지만 그 마무리에 닿기까지 많은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고 부재의 자리들이 생겼다.

삶이란 그렇다.

이렇게 하나의 고비가 마무리 되나 싶으면 또 다른 모퉁에에서 다 끝났다 싶은 마무리가 다시 헤집어지면서 다른 문제와 연결되고 꼬여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냥 지금 이 순간 문제에 집중해서 하나씩 해결하는 수 밖에

삶은 어쩌면 크게 목적을 정하고 멀리 바라보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앞에 놓은 숙제를 해치워나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꺼운 책을 다 읽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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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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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도의 폭력"이라는 단어가 꽂힌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에 나오는 독서모임에서 누군가가 <선원 빌리 버드>를 읽고 난 후의 소감을 말하면서 뱉은 단어를 주인공은 이렇게 반문한다.

"선한 의도라는 건 누가 판단해요?"

그걸 누가 판단할까?

촌스럽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건 권력이 정하는 일이다.

권력이란 누군가 대단한 무언가를 가진 소수의 상류층? 뭐 그런게 아니라 비교적인 의미다.

어떤 관계에서든 인간은 권력이 있다.

동등하다는 건 그냥 이론속에 있을 뿐이고 누군가 앞서서 잘났다고 믿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 그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이 꼭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절대 혼자 독고다이로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 함께 있을 때 그래서 그 사이에 관계가 형성될 때 그 관계속에는 권력이 언제나 존재한다. 조금 덜 여문 권력이 있고 단단해서 중앙에 콱 박혀서 이도저도 못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이에서 권력이 존재하는 법이니 인간 둘 이상이 모은 곳에는 무엇보다 어김없이 권력이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한 의도를 결정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누군가 마음 아픈 일이 생겨도 누군가 다치게 될지라도 그 권력자의 원래 의도가 그게 아니면 선한 일이 된다. 그 누군가 아프고 다치고 손해를 보거나 뭔가 찜찜한 인간은 그냥 재수가 없거나 사회의 흐름에 거스르는 사람이거나 다수의 뜻에 반하는 사람 혹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농장주가 소작농들에게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노인이 젊은이에게 혹은 젊은이가 노인에게

백인이 유색인종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많이 배운 사람이 덜 배운 사람에게

혹은 그 반대로 권력은 어디에서든 단 하나의 기준값을 가질 뿐이다

사람은 생긴것이 다 다른 것처럼 제각각의 라듬을 가지고 저마다가 자기의 기준이 되지만 천만에 세상에는 이미 기준이라는게 정해져 있고 세상의 흐름이라는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 거기에 맞추어야 하고 맞지 않으면  내 개인의 잘못이므로 내가 틀렸고 내가 고쳐야 하고 내가 반성해야 하는 곳이다.

 

<줄 게 있어> 에서 나의 친구 기열이는 나를 만나러 오다가 죽었다.단편 속에서는 기열이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고인지 사건인지도 모른다. 다만 죽었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리고 마지막 만나려고 한 사람이 나였고 나와 기열이가 꽤 친했고 그러므로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아야 하고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세상은 정해버린다

아직 어떤 애도도 시작되지 않았거나 시작되었으되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나에게 세상은 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많이 아프고 슬프고 죄스러울거라고 단정해버린다. 그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고 믿고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든 그 고난을 견디는 행동이라고 판단하고 지래 나를 죄스러워야 한다거나 견뎌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그 기대가 무겁고 버거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상한 사람을 만들어 버리고는 대안학교로 보내지지만 상처받은 어린 청소년의 모습으로만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에게 어떻게 맞춰줘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기열의 죽음보다 그 이후 타인들이 특히 어른들이 바라보는 그 시선에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가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절대 상담가가 아니고 다른 어른들처럼 그저 폭력적일 뿐이다.

그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병원>에서 유림는은 자살할 요량으로 약을 백이십알을 먹고 들어온 환자다. 사실 자살할 의도였는지 아니면 먹어도 먹어도 감기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먹다먹다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다만 자살시도 환자였고 그럴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이 되지 않아 비싼 병원비를 내야 하는데 그걸 알려주러 온 공단 사람들은 은근 슬쩍 정신병처방을 받으면 보험료를 적용받을 수ㅇ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당연히 선한 의도일 것이다.유림은 는 다니던 아카데미에 더 이상 빠질 수도 없고 돈도 없는 딱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정신과를 예약하고 진단서를 요구하지만 거기에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고내가 정신이 이상한지 아닌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의사는 진단서를 쉽게 끊어주고 싶지만 정말 내가 환자인지 아닌지 그걸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답한 소리나 하고 아카데미 원장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결국 유리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진단서를 받고 보험을 적용받아 병원을 빠져나온다. 내가 자살을 했는지 아닌지 왜 하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정신병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한 검사와 치료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아카데미에거 짤렸지만 어찌어찌 사정하면 다시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병든것은 의사조차 모르면서 내가 멀쩡하다고 믿는 부분은 또 아무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을 그냥 내 위치에서 내가 아는 상식과 질서로 판단할 뿐이다.

자살이냐 아니냐

정신병이냐 아니냐

그냥 판단할 뿐이다. 자살시도를 하거나 정신병에 걸린 대상이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늘 깜빡한다. 그냥 명확한 인과관계만 필요하다.

 

<다시 하자고 > 도데체 진짜 이름은 모르겠지만 가짜로 살아가는 두 여자가 있다 전혀 방음이 되지 않는 방에서 조금이라도 소리를 줄여보려고 침대를 세우려는 시도를 하는데 웃기게도 그 침대 하나 세우겠다고 볼트 리무버에 드라이버까지 구입하고 그것이 택배되어 올때까지 침대 세우기를 연기하는 사람들이다. 뭔가 중요한 해야할 것이 있는 거 같은데 아무 가치 없는 일에 연연해 하는 것 결국 내가 중요하게 여기느냐 아니냐는 내가 기준이 아니다. 그냥 세상이 기준이라고 하면 그게 기준이 된다.살아갈 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면 내가 남의 말을 듣고 남의 기준에 연연하며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려고 많이 전전긍긍했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후회스럽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아마 똑같이 살지 싶어서 후회할 수도 없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어쩌면 병원의 유림이 퇴원을 한 후 어찌어찌 아카데미를 마치고 난 후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내 인생에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끼어들어온 언니가  내 인생을 결정하고 방향을 정하고 나를 멋대로 가엾게 여기고 돌봐준다. 내가 있으니까 좋지? 이런 폭력적인 말이 어디 있을까?

 

가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해주고 상대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이렇게 잘 해주는데 이렇게 내가 희생하고 도와주는데 어쩌면 고마워할 줄을 모를까

염치없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나눠주고 안부를 물어주고 함께 뭔가를 하자고 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에

나는 그저 감사하고 고마워해야만 한다.

그냥 내버려두고 굶어도 죽지 않고  모른 척 해도 되는 일일텐데 그건 인정머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뭔가를  막 퍼주는 일.. 그리고 감사를 강요하는일.. 이것도 폭력이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들

결국 그건 내 만족때문이더라

내 체면을 위해서 내 자존심을 위해서 너가 잘 되어야 하고  휠씬 더 내세우기 좋은 상품이 되어야 한다고 그게 결국은 다 너를 위하는게 아니겠냐고 믿는 마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는 내 사랑을 그렇게 몰라주냐면 따라다니고 애원하고 물량공셀르 퍼붓고 그리고 화가 나서 손이 올라가는 것도

결국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한 일이고

배려라는 말이 참 아름다운 말인데 그 속을 보면 결국 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너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노력하고 무언가를 베푸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뭔가를 주는 것

물론 그게 필요한 경우가 훨씬 많겠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더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추앙>은 이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문단에서의 미투운동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작가가 겪은 일이었던 걸까? 이야기가 더 생생하고 날것처럼 느껴진다.

"문학적 자질을 지년다"는 말이 "시적 허용"이라는 말이 이렇게 뻔뻔하고 치욕적으로 들리기는 처음이다.내가 시적 허용을 말한 것이고 문학적 표현을 한 것인데 그걸 무지하게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매너는 그 감각은 도데체 무엇이냐며 피해자엑 탓을 한다.

폭력이 폭력이라고 보이지 않는것은 폭력을 행하는 그 본인의 뻔뻔함이거나 권력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폭력을 바라보는 방관자들의 말없는 동조에 있다. 그게 뭐가 문제라고 너만 예민한 거가지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관심이고 애정인데 라고 덧붙이는 말들은 호기심으로 상철르 한번씩 건드리면서 덧나게 만들고 더 심하게 감염되게 하는 그 말없는 혹은 선한 의도의 폭력들이다.

 

<신체 적출물>에서 주인공은 분명히 내 고통을 내가 생생하게 느끼는데 그건 내 고통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말한다. 내 신체 적출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니 몸의 일부가 여기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이 곳에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은 여전하고 뜨겁다. 다시 되돌아가 구백만원의 돈을 써서라도 가져오고 싶었던 내 신체의 일부분은 누군가에게는 소독이 되지 않은 살덩어리 그래서 쓰레기가 된다.

나의 고통조차 온전히 내것이지 못하는 세상이 폭력이다

 

표제작 <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참 복잡하다.

분명 아파하는 누군가와 연대하기 위해 내 일상을 접어놓고 뛰어든 일인데 그 나의 선한 연대가 누군가에게 고통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선한 의도가 폭력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

그리고 나의 의도를 의심받는 일 그래서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도 폭력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순수한 피해자의 프레이에서 우리도 허우적거리며 그 것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지워나가는 일

연대해야 한다는 말을 참 든든하고 따뜻한 말인데 어쩌면 그 연대가 제각각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A라는 이유로 연대하지만 누군가는 A`를 이유로 연대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다르게 B라는 이유로 연대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는 일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과 다른 일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밀어붙여서 바꾸고 싶은 세상이 어쩌면 누군가는 주저하고 그냥 그대로 묻히기를 바라는 일일 수도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도 ....

머리카락이 나온 음식을 받으면 당당하게 따지고 환불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조용하게 알리고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사과로 만족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냥 말없이 덜어내고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텐데.

누군가는 정의롭고 누군가는 비겁하고 누군가는 욕심장이가 되고 누군가는 속깊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일

 

좋은 뜻으로 그랬어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위해 혹은 내가 알고있는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순수하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 위치에서 나의 순수한 의도라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혹은 원치 않은 것이라면 그건 폭력이니까

 

단편들을 읽으며 열여덟에서 서른언저리까지 어리면 어리고 젊은 화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른이 참 잘못해서 다음 세대가 아프고 힘들구나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내행동이 옳다고만 머리로 생각만 해써 때로는 그 때문에 누군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지나가는 구나

왜 말하지 않았니? 왜 나서지 않았니라고 쉽게 나무라고 충고하는 일

그것조차 조심해야 할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기성세대가 되었고 꼰대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젊고 피가 뜨거워서 쉽게 화를 내고 불만스럽고 예민하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까탈스런 꼰대가 되어있더라.

성숙한 어른의 시간은 기억나지 않은데 철없고 어리석은 젊은이에서 두꺼워서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은 꼰대가 되어버렸다. 슬프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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