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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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전달된 편지를 호기심에 못 이겨 펼쳐본 기분

이건 나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닌데 내가 무심하게 들여다 본 묘한 기분이었다.


#1  재희

정말 미안하다.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럼 어쩌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이 감정을 배신감이라고 이름 붙인다. 

진심으로 분노했음을 한 템포 늦게 깨닫는다. 

내가 화를 내고 어쩔줄 몰라하는 감정에 대해 이름붙일 수 없는 혼란스러움 이후 이름붙여진 것

그건 배신감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기대감이 없었던 내가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숨기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가장 먼저 나의 비밀을 알았던 나의 다른 한조각처럼 여겼던 친구를 통해 커밍아웃되었다는 것

내 정체성이 밝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발설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관계 회복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냥 재희와 그 남자의 관계 회복에 쓰였다는 것보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 도구로 그저 순간적인 임시방편으로 나의 정체성이 아무렇지 않게 갖다붙여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 않았을까


어딘가 몹시 낯익은 감정이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면 너무 쪼잔할 거 같아서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더 화가 나는데

상대는 이게 화가 날 일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분명 미안해 하고 잘못했다고 하는데 완전 백퍼센트의 미안함이 아니라 그냥 별 일 아닌데 니가 너무 펄펄 뛰니까 내가 사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뉘앙스를 아닌 척 풍겨대는 그런 상황

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회로를 돌리면서도 마음속에서 이름붙일 수 없는 불쾌감과 불편함이 끓어오르면서 이렇게 감정이 터지는 나에게 오히려 더 화가나고 못나보이는 상황이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감정과는 택도 없이 다른 상황일 수도 있겠다.

감정과 상황이라는게 결국 주관적이고 내 것이 가장 날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므로..)


사람이 저마다 말을 하지 않지만 감추고 싶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부분이 있을텐데

타인의 그런 부분을 아무렇지 앟게 말해버리는 일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거야

그렇게 심각한 건아니야 라고 싶게 말하고 충고하고 그냥 무의식중에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건 그 나이에 다 겪는 거야

니 잘못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전전긍긍하니  그냥 당당하게 말해 그게 더 나아 그게 이기는 거야


누구는 더 낫다는 걸 모를까

그게 이기는 거라는 걸 모를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텐데... 이제 나는 무뎌졌다고 굳은 살이 덮혔다고 타인의 말랑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학 벗겨낸다.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사실 나의 편리성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건

그에게 전부를 들키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알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똑같은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나를 혼란하게 만든다는 거다.

좋아하니까 다 말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니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자꾸 감추는 마음이 자꾸 반복된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있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이미  까발린 그 부분을 상대가 절대 아는 척 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이없는 마음이 있다. 나는 말할 수 있지만 너는 입에 담을 수 없다고... 감히 너가 어떻게 나에게... 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동시에 그게 뭐라고 이렇게 속좁게 쫌팽이같이 이러고 있나 라는 마음이 함께 커진다.

그런 혼란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따가 다시 밀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쪼그라 든다. (영원히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맞다.)

그리고 조금 허탈하고 처량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개운하고 가볍고 편안해진다.

그렇게 남이 되거나 진짜 친구가 된다.


# 2, 우주 한점 우럭의 맛  /   대도시의 사랑


이건 정말 잘못 전달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이걸 읽어야 하나하면서도 호기심에  계속 다음 문장을 읽고 있다.

아픈 엄마와 한심한 내 삶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호기심을 가지고 욕구에 끌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

지금 나의 지리멸렬한 처지때문인건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과 끝내야지 하는 마음의 무게만큼 이 사람과 계속 함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똑같이 밀려온다. 

타인의 오래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의 일기들을 붉은색 펜으로 교정을 본 그 원고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서 내가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읽어버린 것 같이 먹먹하고 아프다.


끝이 보이는 사항이라도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이건 도데체 어디 쓰이는 종자인지 궁금해지면 일단 게임끝이다.

안쓰러우면 끝이라거나 

귀여우면 끝이라던데

나는 궁금해지는 순간 끝이다.

결국 에이 별거 아니잖아 라는 실망으로 돌아서게 되는 상황이더라도

내가 궁금했던 것이 설마 이렇게 끝은 아닐거라는 미련이 너무 많고 끈적거리는 사람이라

결국 궁금한 상대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정이 드는 이상한 사람이다.

일단 정이 들어버리면 그냥 내 삶에서 쉽게 뜯어내질 못한다.

궁금한 그것이 안쓰러워지고 때로는 귀여워지면서.. 그렇게 관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삶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더 나은 삶을 살 거 같지도 않아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질질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폼을 잡는다.

떼어버리자니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냥 두자니 내가 영 폼이 살지 않는 기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치사하고 수준에 맞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남의 연애를 엿보면서 나의 연애를 생각한다.

지루하고 치사하고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연애를 그래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된다


#3. 늦은 우기의 바캉스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우연히도 하자가 있는 방을 받아서 공짜로 업그레이드도 하고 싶고

그냥 마음이 편해질정도로 비를 맞고 거리에 누워버리고 싶다.

지나간 사랑은 다 추억이 된다.

글이 좀 쓸쓸하다.



사족: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작가의 상황이 독자와 다를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생각이 감정이 삶이 달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런데 사람이 다르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에 따라 다시 받아들이는 지점이 달라진다

어쩌면 딱 이주 전에 내가 읽었더라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딱 이주 뒤 지금 이순간 읽었던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냥 지리멸렬하고 지우고 싶으면서도 지우고 싶지않은 그것 역시 나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딱 그런 지점의 나를 건드린다. 

별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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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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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들에게 아빠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아빠를 극복하면 (극복한다는 표현이 좀 진부하지만) 아빠를 넘어서면 그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다만 21세기에 부친을 넘어서는 아들은 드물다.

시대의 문제인지  속된 말로 요즘 아이들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건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굳이 넘어설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세대보다 더 잘살기는 커명 현상유지조차 아득한 시대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동료가 되거나  남남이 되거나 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엄마와 딸은 좀 묘하다.

딸이 엄마를 극복하고 넘어서면 못된 년이 된다.

딸은 엄마의 눈치를 보고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오래된,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몸에 익은 관습이 있다.

아무리 엄마를 떠나고 싶어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해도 엄마와 딸 사이의 탯줄은 쉽게 끊어낼 수 없다. (그런 경우가 많다.)

엄마를 두고 멀리 떠난 딸이 좋은 결과를 갖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돌보거나 엄마를 잊지 않은 딸이 언제나  좋은 결말(?)을 맞는다

좋다기 보다 그냥 착한 딸  좋은 사람 이라는 주변 사람의 칭찬을 듣는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제 스포가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도 사에와 나쓰코의 관계를 그냥 오랜 친구라고만 생각했으니까 나도 참 둔하지

그저 사랑만 받아서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양가집 아가씨같은 사에와 부모에게 억압당하고 자기를 죽이고 살아온 나쓰코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남편이 죽겠구나 생각은 했으니 그런 면에서 좀 판에 박힌 이야기이기는 하나

결국 친구같은 모녀 이야기였다니.....


나쓰코는 엄마가 어렵고 힘들었고 인정받지 못한 채 성장을 했고 엄마같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엄마의 마음이겠지만

그저 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약하게 오기를... 나쁜 것이 몰려와도 내 아이가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

어떤 것이 오든 내 선에서 다 처단해버리겠다는 마음

나쓰코는 그렇게 자녀를 돌봤다.

억압하고 군림하는 엄마가 아니라 친구같은 엄마가 되겠다


어디선 봤을까

친구같은 엄마 친구같은 딸과의 관계에서 누가 누구의 친구인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그저 딸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광을 부리고  자신을 돌봐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내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은 아닌지...

결국 낫짱은 딸의 친구였고 모든 것을 나누고 터놓는 관계가 되어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관계는 사에에게 엄마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에는 엄마가 없다.

돌봐주고 엄격하게 훈육하고 공감해주는 엄마가 없다.

그냥 내 응석을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함께 험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편하지만 그렇게 의존하다보면 내가 없다.

나쓰코 역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맞춰 살아온 방식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엄마와 정 반대의 방식으로 똑같이 딸을 자기에게 종속시킨다.

너무 많이 도망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


엄마의 집착과 엄마의 사랑이 상대가 원하는 것과 많이 다를 때

그러나 엄마에게 악의가 전혀 없고 상대를 위하는 희생만 있을때

뭐라고 해야할까

원망을 해도 되는지... 원망하는 내가 나쁜 건지 혼란스러운 상황

엄마와 딸은 혼란스럼지만 그 상황을 혼란스럽다고 말을 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내가 나쁜 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는다. 내가 참으면 된다고 

그리고 참으면 참을 수록 나는 착한 딸이 되고 상대는 나를 칭찬한다.

그렇게 왜곡된 애정관계는 다시 대를 이어 내려간다.


사실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부모에게 받은 상처나  외로움을 핑계로 원망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내 경험치에서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 



가끔 엄마들은 자식들 때문에 지금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선택이란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는 선택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할까

지금 남편과 헤어져야 할까 

지금 집을 나가야 할까 

지금 소리치고 화를 내고 부당하다고 주장해야할까 

모든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를 우선 생각하고 일단 참고 본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클 때 까지.

아이가 대학을 갈 때까지

아이가 취직만 하면

아이가 결혼만 하면

손주가 태어가기만 하면......

아이의 성장은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좋은 핑계까 된다.

핑계라는 의식은 없겠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가 되어준다.

좋은 핑계다.

그런 핑계가 슬프고 짠하긴 하지만 .... 엄마도 가끔  아니 자주 이기적이고 못된 년이 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녀는 특히 딸이라면 못됐지만 행복한 엄마가 더 좋지 않을까 

적어도 엄마에게 내가 가장 우선... 이라는 거라도 배우지 않을까...

내 욕망과 내 바램과 내 감정을 우선으로 생각해보는 것...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그걸 알았더라면 나쓰코도  사에도 지금보다 덜 불행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의 희생은 어딘가 빈 구석이 있고 딸은 귀신같이 그 빈 틈을 잘 찾아내는 ... 그래서

결국 나쓰코의 희생이 사에에게 죄책감을 준 것 처럼...

가끔... 아니 대부분 희생이란.... 상대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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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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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이의 경계. 나와너 라는 구분은 필요하다.
내가 낳아도 나는 아니며 나와 다르다.
어리석은 모녀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의 통념이나 인식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유독 엄마와 딸의 애증이나 의존이 많은 이야기를 갖는지 생각해볼 일이다.자유는 없으면서 기대하고 바라는게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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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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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가끔 스산하고 먹먹하다

지난 시간이  마무리되지 않고 흐지부지 지나가버렸다면 더욱 그러하다.

만나서 마음을 나누었고 시간을 공유한 사이가 어느 순간 오래 연락이 없고 만나지 못해 그냥 그렇게 흐릿하게 지워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누군들 쉬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상대가 어떤 오해를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카메라>의 문정이 그러했다.

한참이후 관희를 만나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들과 말을 통해 조금씩 지난 시간을 유추한다.

왜 관주가 연락을 끊었는지 그리고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녀가 모르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퍼즐을 맞춰간다. 

이 단편은 그리스 비극을 닮았다.

빗나간 과녁의 화살처럼 누구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 거리에 돌을 깔았던 지자체를 원망해야할지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나 자신을 원망해야할지 아니면 오해하고 두려웠던 그 노숙인을 원망해야할지

어떤 우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비극은 발생한다

부당하게 불행을 겪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연민과 그 불행속의 사람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공포감은 비극을 더 크게 만든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실수라고 하기엔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불행은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그 대상을 찾아 해매다가 결국 그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빗나간 화살은 나에게 돌아온다.

관희가 그랬고 이제 문정이 그렇다.

물른 그때 그 노숙인이 가장 잘못했다. 오해했고 두려웠다고 타인을 폭행하고 내버려둬서는 안되지만

결국 그런 일이 일어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가다보면 사람은 누군나 그 끝에 자신이 있다고 믿는다.

관희는 그끝에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불행이 묻을까봐 말로 꺼내지도 못한 동생을  잃었고 

어느날의 말다툼같지도 않은 갈등에서 서로 서먹해진채 연락하지 않았던 문정은 긴 시간 오해만 했다.


희미하게 끝이 난 관계는 이렇게 쓸쓸하고 아릿하다

자신에게 겨눠진 화살로 결론을 내려야 비로소 뭔가 아귀가 맞아지는 불행과 슬픔은 아직도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고 있다.


<층>의 남녀는 다른 양상의 비극을 보인다.

그리스 비극을 이어 세익스피어의 비극처럼 개인의 성격적 결함으로  불행하다.

여자는 남자의 통화를 듣고 그동안 남자에 대해 쌓아왔던 이미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남자의 쌍소리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차단하고 판단 내린다.

어쩌면 그 소리를 듣는 그 시간 여자가 겪은 상황과  맥락이 또 존재할 것이다.

힘든 가족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온 남자의 일상은 그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한 한두 마디로 그냥 오해된다.

그렇게 오해하고  판단한 뒤 여자는 행복했을까

여자는 자신의 무심한 한마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은 남자는 다시 무너진다.

어쩌면 자신이 그녀에게 무엇을 듣게 했는지 모르는 남자는 여자의 그 말이 비수였고  원망이었고 배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희미한 이별은 여기에도 있다.

다만 여자는 자신이 그 관계를 끊어냈다고 믿으면서도 일상에서 불쑥 떠오르는 기억마저 지우지는 못한다.

가장 힘들고 가장 지쳤을 때 만나 물에 말은 밥에  잘 구운 굴비살을 올려주었던 기억

그날의 맛과 온도와 분위기에 대한 기억은 오래간다.

사실 굴비를 먹던 날 여자는 남자의 사촌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남자만 혼자 전전긍긍했고 모든 비극은 사촌의 혀에서 시작되었고 그 말을 듣고 믿은 여자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또 믿어버린다.

남자의 성급함 불안함이 비극을 잉태했고

여자의 성급함과 편견 역시 비극을 완성했다.


비극은 언제나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찝찝함이 있고 내가 그때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생각을 한다.

역시 빗나간 화살이다.

다만 이번에 화살은 자신에게 꽂히지는 않고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서 두렵고 자책한다. 


<이모>는  비극을 관통하는 인물이 나온다.

이모는 가장으로 집안을 책임지고 자신을 희생하다가 어느 순간 그런 삶의 도돌이표를  던져버린다.

더 이상 같은 공간 같은 관계에서 맴돌지 않으려고 결단을 내린다.

모두가 냉정하다고 말하지만 관계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끊어낼 수 없다.

작가의 최근 작 <실버들 만천사>처럼 끊어낸다고 아무리 시도해도 점점 더 엉켜서 서로가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친밀한 사이일 수록 더욱 그러하다.

좋은 말로 서로 좋게 좋게 끊어지는 관계란 없다. 

이모는 스스로 비극을 선택했다. 

다만 본인의 선택에도 본인이 납득해야할 이유가 필요하다.

나레티브는 우연의 연속과 맥락없이 성립될 수 없다.

예전 남자의 손에 담배불을 비벼 끈 일과   좀 더 가까운 시간에 얼어붙은 수도계량기를 녹이며 옆집과 일어난 헤프닝 등은

본인의 비극에 맥락과 연관성을 넣어준다.

그런 전환점이 필요하다.

길게 이어진 시간에서 어떤 전환점은 꼭 필요하다.

그게 나에게 밥을 주지도 않고 사랑을 주지도 않지만 삶을 길게길게 지루하게 늘어뜨리는 것 말고 단계 단계 잘라서 맥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하고 내 삶의 의미가 된다.

이모의 정갈하고 소박한 생활속에 그런 맥락들은 그녀의 삶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음을 말해준다.

비극이지만 깔끔하고 명쾌하다.

이모도 그렇게 생각하고 삶을 매듭지었을까... 그건 모르겠다.


술냄새를 푹푹 풍기는 <봄밤>이나 주구장창 먹어대는 <삼인행> 이나 친구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주는 <실내화 한켤레> 등

모든 이야기는 비극을 안고 있다.

내가 선택한 엇갈림도 있고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우연의 결과도 있다.

결국 세상 일은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정해지는 것도 아닌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인간은 언제나 그 원인을 알고 싶어한다.

원인을 알면 다시 그런 비극을 겪지 않을 것이고 그 원인을 기록하고 보존해서 다음 세대로 넘기면 내 자손들은 나보다 편안할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비극은 여전히 반복되고 

여전히 원인을 찾아내고 

여전히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하거나  스스로 자책해야 편안해지는 모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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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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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그렇게 아무렇지않을 수 있지?

라는 짓들이

어느 순간 나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더라

나만 모르고 있더라

내가 무수히 손가락질하고 뒷말을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을 그런 짓을

나도 다르지 않게 하고 있더라

뭐라고 해야하나

그때 흔들어댄 내 손가락 탓을 해야할까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염치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사니?

라는  악다구니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그럴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런 일도 가능하고 염치없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숱하다.

젊은 시절은 젊은 줄 모른다.

한없이 젊음이 지속될거라고 믿거나 이미 더 이상 젊지않다고  착각하거나 

아주 긴 시간이 있다고 믿거나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믿거나 나는 늘 지금의 내가 옳다고 새각했다  틀리지 않은 내가 영원히 지속될거라고 믿었다. 젊음이 계속되는 동안 지속되거나 이미 젊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계속 흘러오는 시간동안 나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렇게 흘러내리는 시간을 나는 겪어내고 살아냈다고 믿었다.

변하지 않았다고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는데

나는 흐르는 시간에 휩쓸려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었고 상황이 바뀌었고 그렇게 변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어쩌면 그 때 그 시간의 내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따.

사슴벌레문답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인간은 무었으로 살아?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강철은 어떻게 단련돼?  강철은 어떻게든 단련돼


답이 있따고 길이 있따고 믿었던 질문과 계획은 널 어디선가 어그러질졌다.

길이 있고 답은 있지만 내가 생각한것과 달랐다.

어쨌뜬 답이 나오고 길은 계속되었지만 그 뿐이다.

그렇게 허무하지만 버티고 견뎌온 밀도 높은 시간과 경험들이 있었다.

어쨌든 어떻게든 하게 되...

결국 그거였다. 후회든 뿌듯함이든


엄마와 딸의 대화가 점점 짙어진다.

처음엔 툭툭 잽을 날린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지 어쩌면  뒷주머니에 무기를 숨기고있는지 툭툭

탐색하지만 그 탐색이 애써 나를 지키려는 안간힘이 아니라  설령 뒷주머니에서 칼날이 나온다면 기꺼이 맞아주겠다는 마음?

서로에게 가지는 미안함과 그만큼의 이해가 됨이 모순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오간다.

실버들처럼 늘어진 인연을 끊어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엉기고 질기게 이어지는 것이

결국은 잘라내기를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단단히 붙들고 끝을 보자는 마음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잘라내고 멀리멀리 도망갔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동안

서로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을 것이다.

그래서 잘라냈따고 믿었던 그 실버들같이 축축 쳐진 가닥가닥들이 그냥 엉키고 설켜서 단단한 매듭같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관계라는 게 끊어내려면 쉽지 않고 그냥 두겠다 싶으면 사라진다.

좀 더 진해진 두 사람 반희와 채운의 다음이야기가 궁금하다.


마리아는 마리아구나

세상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자신의 죄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사람

언제나 속죄가 필요한 사람

태극기를 팔고 있는 그 빈 시간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

우리는 타인을 늘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한다. 

배르타를 비롯한 성당 식구들이 기억하는 마리아는  인내하고 봉사하고 겸허하게 몸을 낮추는 사람이라 표현되지만 어쩌면 그들 눈앞의 마리아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추앙하고 너도나도 좋은 말만 보태지만 날이 바뀌면 점차 기억에서 지워낼 것이다.

베르타가 느끼는  부끄러움 역시 언젠가 그냥 지워질 것이고 마리아가 지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

내가 얼마나 편협한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문득문득   내 속에서 자리잡으면

사람은 그래도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닥 믿고 싶다.

별 이야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펼쳐 아무 곳이나 읽다 보면 마리아를 읽고 있다.

(책 가운데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 많아지고 점점 딸들에게 의지하는 엄마

공주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의지하고 기대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기대는 건 딱 질색인 엄마와

깜빡깜빡하는 딸롸 무심한 딸

엄마와의 식사이후 단둘이 피우는 담배가 무척 맛있게 느껴진다.

(깜빡이)


이번 엄마는 계속 자식에게 하소연한다.

딸에 대한 하소연을 아들에게 하고 있지만 결국 딸을 빗대어 아들에게 서운한 것들을 토로한다.

오익은 좋은 아들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엄마의 하소연 정도는 감당할 수 있따고 믿었던 걸까

본인의 지리하고 여기저기 눈치보고 깊은 마음을 주지 않은 부초같은 마음이 엄마에게도 여전하다 그러나 엄마와는 댧지만 길게 이어진 뿌리가 있다.

자식에게 죄책감을 주면 엄마는 무엇을 얻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식이 못한 걸 이야기하고 한탄하면서 대놓고 요구하지도 못하면서

은근히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뭘까

어쩌면 내가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원색적으로 요구하는 유형이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가장 불현하고 힘든 대상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타인에게 부과해버리는 이런 유형이어서다.

그냥 읽으며 오익아 도망쳐... 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억의 활츠는 많이 마음이 아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산다는 것

그냥 열심히 살았고 나는 내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뒤에

문득  아파오는 것들이 있다.

숲속 국수집에서 다시 기억해는 그날의 시간들

강아지 국수 노래 활츠.. 수박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후회나 미안한 마음이 그냥 하나의 좋은 기억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그마음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게 뻔뻔해서도 아니고 정신승리도 아니다.

오래오래 미안하고 후히하고 곱씹다 보면 기억아나 시간들이 걸러지고 걸러져서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대견하고 괜찮고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누군가가 마냥 고맙다.

그렇게 된다.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 어디서 만난듯한  낯익음 

결국 나도 그렇게 뻔뻔하기도 하고 소물적이기도 하고 후회하다가도 절대 그럴지 않을거라고 극악스러워지는 사람이어서다.



타인이 이해가 되기만 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만 생기면 나이든 증거라던데..

나도 나이 먹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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