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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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라고 한다

이 책은 나와의 관계 회복하는 이야기이고 나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과정이다.

 

내 몸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은 내 정신 혹은 내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다.

꾸밀 수 없다.

내 몸은 나보다 타인이 더 냉정하게 볼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거울이라는 도구를 통해 볼 수 밖에 없고 내 눈의 위치에서밖에 볼 수가 없지만

타인은 나를 사방 어디서든 입체적으로  훓어보고 빤히 오래 바라볼 수 있다.

몸에 대해서는 꾸밀수도  감출 수도 없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몸은 그대로 나 자신이며 내 존재이고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축척이며 내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고 나의 삶이고 역사다.

내 몸은 무의식으로 나를 드러낸다.

눈빛  무심한 손버릇, 서 있는 다리의 모양새 걸음걸이 말할때의 손짓이나 고개각도 태도등 삶의 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쉽지 않은 글쓰기였을 것이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고통을 엮어서 쓴 글일텐데 이렇게 쉽게 넘기며 남의 일이라고 읽는 것이 과연  바른 태도일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몸을 통해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쓰기 위해

몸으로 겪은 고통을 드러내고 그래서 몸을 숨기기 위해 몸을 불리고 존재감을 없애면서 동시에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더 크고 강하게 만들고 싶은 상반된 욕구를 행동으로 드러내는 과정의 기록이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행동이 결국은 내 몸을 망치고 학대하는 행위가 된다.

오히려 스스로 하는 학대가 위안을 준다는 아이러니가 있었고 남들은 쉽게 일반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건강을 염려하고 미용적인 관점을 들이대고 걱정하는 척 미웃고 비판하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다. 한번 쉽게 보게 된 대상은 계속 쉽고 만만하다.

만약 내 주위에 록산 게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건강을 생각해야지.. 힘들지 않니? 하며 걱정하는 척 간섭할거고 동시에 일반적인 기준이나 사회전반의 기준들이 조금이라도 정상이라는 범주를 벗어나면 모든 것이 불편하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가 불편할거라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무시하며 피해버릴 것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에 대해서 쉬이 해석하지 말아야한다.

쉽게 판단하는 일이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읽고 받아들이는 일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금 시야를 넓히고 나를 돌아보는 일

그것만이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예의라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이 생각보다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고 손가락질 받는 것도 싫고 작은 흉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남을 많이 의식하는 행동이었다.

완벽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지만 적어도 경멸을 받거나 누군가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사람이었다.

지적질을 잘 하지만 지적질을 받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통제하고 반듯하게 주름을 펴고 티끌조차 없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사소한 실수나 무심한 언행으로  쯔쯔하는 눈빛이나 비웃음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바른 사람이 아니라 그저 튀기 싫고  사회의 질서에 맞추어 그렇게 무난하게 넘어가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행동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이의 잘못을 알려주려고 그래서 고쳐주고 싶은게 아니라 그 행동의 결과가 나에게 튀는 게 싫어서였다

아이의  실수나 건방져보이는 모습이 나에게까지 비난으로 올까봐 그게 싫은 거였다

비난의 끝에 나에게 향하는게 싫었던 것이다.

무심한 척 남에게 관심없는 척 하지만 사실 나는 늘 외부에 안테나를 세우고 주위의 눈치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당분간 이렇게 솔직하고 절실하며 동시에 당당한 고백은 만나기 쉽지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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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읽는 법 - 코넌 도일, 레이먼드 챈들러, 움베르토 에코, 미야베 미유키로 미스터리 입문
양자오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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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질을 만들어내는 것

추리소설을 읽는 방식이다.

저자는 무협소설과 추리소설은 많이 읽어봄으로 더 잘 이해하고 알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장르소설이라는 특징에 맞게 일정한 법칙과 긴장감이 있고 마지막에는 카타르시스같은 해결책이 나오는 것. 그리고 추리의 방법이 몇가지로 분류가 가능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 분류안에서 다시 차용되고 변주된다.

 

차갑고 논리적인 홈즈부터  인간적이고 약점이 많은 챈들러의 말로 형사 그리고 똑똑하기가 재수없을 지경인 에코의 이야기를 지나 일본의 사회파 작가 미야베 미유키까지 이어진다.

나름 이 분야의 대표선수들이고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다.

 

추리소설에 흥미가 없던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입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한번 쯤 자기가 읽었던 책들을 되씹어 볼 수 있겠다.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다가

딱 한 군데 아가사 크리스티를 잠깐 언급한 곳에서 고개를 젓는다.

밀실사건, 완벽한 살인  마치 자로 잰듯한 사건들의 흐름이 너무 인위적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홈즈 못지 않게 추리물의 다양한 트릭을 만들어낸 작가이지만 동시에 홈즈보다는 인간적인 캐릭터들도 만들었다. 포와로와 미스 마플은 과학적이거나 냉철하진 않지만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누구못지 않다 사람이 왜 살인을 하는지 어째서 죽을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복잡한 트릭을 만들어야만 하는지를 읽다보면 무릎을 치며 동의하게 된다. (아주 주관적인 주장이지만...)

그녀는 사건 못지 않게 사람에 관심을 가진 작가이다.

 

확실히 읽다 보면  내가 접하지 않았던 챈들러에 흥미가 갔고 미미여사의 모방범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괜찮은 작가구나 하는 게 가장 큰 수확이었고 다른 추리물 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챈들러 부분을 보면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이 필요하다

그중에서 추리소설은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알아가는데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사람은 한가지 모습이 아니라는 것

언제든 강해질 수 있고 더할 수 없이 약할 수 있다

순수한 얼굴 뒤에 악마의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건 추리소설 이상 좋은 교재가 없다고 믿는다.

읽어 볼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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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지키다
오사 게렌발 지음, 이유진 옮김 / 우리나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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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부끄러웠다.

언제까지 니 이야기를 할꺼야? 이제 할만큼 하지 않았니?

라는 생각을 나도 했었다.

감추고 싶고  없었던 일처럼 여기고 싶었을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가감없이 있는그대로 보여준다는게 놀랍고 감동스러우면서 동시에  힘들고 짜증스러웠던 모양이다.

남의 힘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다는게 어떤 기간동안은 가능하겠지만

만날때 마다 자기 이야기를 그것도 즐겁지 않고 어둡고 우울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만을 쏟아내는 지인은 꺼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7층>을 통해 데이트 폭력을 이야기하고 < 가족의 초상> 과 <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를 통해 가정 폭력 (방임과 정서적 학대)를 이야기를 들었는데 또 뭐가 남은거야?

하는 마음이 첫마음이었다.

지금은 모든게 나아졌고 좋은 가족이 생겼고 사랑할  사람이 있는데

계속 과거의 아픔을 계속 되씹는게 무슨 도움이 되나 생각했다.

결국 나 역시 타인이었다.

끝낸다는 것 이제 그만해야한다는 것은 타인의 입장이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타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내것이고 그 상처가 내것일 때는  마무리가 되고 아물고 흉터조차 희미해지는 시간은 짧을 수 없다. 언제든 오사가 괜찮을때 까지 되뇌이고 이야기하고 드러낼 수 있다.

이번 작품은 그렇게 상처가 아물어가는 쉽지않은  어쩌면 이제 마무리를 해야한다는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마음이 더 힘들게 다가 올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가족이라는게 안본다고 끝나는것이 아니고

누구나 타인에게 모질고 무책임한 자식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을 건 당연하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진데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문제이고 더구나 가족이고 그 가족이 그 문제를 회피하고 여전히 모른 척 하고 있다면 쉽게 정리되고 마무리 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참고 다가가지만 가족은 쉽지 않다.

이야기는 다른 책과 달리 짧은 이야기들로 나뉘어져 있다.

아직도 상처받은 어린 아이를 달래야 하는 오사가 있고

시간이 지나서 나이들기만을 바라는 오사가 있고

받지 못한 사랑을 주기 위해 아이에게 지독하게 집착하는 오사가 있고

결국 참지 못하고 터트리지만 결국 전전긍긍하는 오사가 있고

기억 구석에 숨은 행복했던 순간을 꺼집어내는 오사가 있고

아직 미완석이고 마무리 되지 않은 갈등과 감정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놓아가는 오사가 있다.

 

남의 아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너만 아픈게 아니라고 무시하고 싶고 나도 그 못지 않다고 대들고 싶기도 하다.

굳이 아픈 걸 드러낸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오사 역시 달라진 것 없다. 스스로 바뀐 것 말고) 따지고 싶고 왜 그렇게 어둡고 칙칙하냐고 판잔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면엔 그걸 용감하게 오픈하는 그녀를 부러워하는 내가 있었다.

상대가 변하기를 끝내주기를 기다려줄 수는 없다.

결국 내가 힘든 것은 내가 내가 끊어내거나 내가 달라지는 수밖에....

나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가 죽으면 나아질까 하고 참고 참다가 결국 그 어머니가 아흔 아홉에 돌아가시더라는 말...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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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여섯권의 책

여섯권은 이야기중심이라기 보다 인물 중심으로 펼쳐진다.

스토리는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실 별 사건은 아니고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통속적이기도 하고 상투적이기도 하다.

자기만 모르는 자기의 이기심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자기만 참고 견딘다고 믿으며 소극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

지금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는 선거를 두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계략과 전술들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편견에 가득한 모습

내가 주고 싶은 사랑만 생각할뿐 상대가 받고 싶은사랑은 생각하지않은 것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인 삶 (두번째 봄과 자서전은 많은 부분이 겹치고 얽힌다)

저주받은 천재의 이야기 그러나 지루한 이야기

 

이야기는 지루하기도 하고 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대단하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지만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배려하는 인물

괸대지만 그 댓가를 바라는 인물

그건 내 모습이고 누구의 모습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차며 따라가다보면 거기에는 내가 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려는 건 성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않은 마음이 우선한 것이었고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정의감이 아니라 질투였거나 뒷담화를 하고싶었고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이 모든갈등의 원인이었다.

모든 상황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내가 그 기준값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1. 두번째 봄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었다면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걸 알 수 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집을 지켜내는 일. 어머니. 그리고 전쟁 결혼  출산과 이혼까지 자서전이 솔직했다면 이 소설도 가감없이 솔직하다.

누구나 그렇지않을까만 그녀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다.

이 책을 읽으며 박완서를 떠올린다

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시작한 글쓰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무심하게 흘리지 않고 꼭꼭 기억했다가 글로 풀어내리라는 은밀하고 강한 소망까지 닮아 있다. 기록하고 싶어서 기록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하지않을 수 없어서 소설을 쓰게 된 두 사람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그 결심이 부럽다.

크리스티가 명성을 얻은 건 추리물이지만 그녀가 쓰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고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

한 사람 속의 다양한 모습

작가가 되어 어쩌면 그녀는 자기의 삶을 공개적으로 그러나 조금은 의뭉스럽게 정리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도 나오고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삶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선택이다.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2. 장미와주목

읽는 동안 누가 주인공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없었다.삶에서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일테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내 삶을 돌아볼 때 누군가 타인의 영향이 너무 커서 그를 빼 놓고는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야기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볼 곳인가. 그 순간 주인공이 결정되고 이야기의 성격도 결정된다.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를 매혹시킨 상대는 게이브리얼이다.

계산적이고 냉혹하고 잔인한  그러나 더 할 수없이 솔직하고 본능적인 인물이다.

노리스의 입장에서 게이브리얼은 악인이다 그렇다면 게이브리얼이 본 노리스는 그저 불행한 장애인이었을까?

우리는 화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

결국 내가 아는 건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의 풍경뿐이다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 밖에 없지만 전부를 단정짓는 일은 언제나 끔찍하고 오만한 일이다

 

" 욕심많고 이기적인 인간은 세상에 아무런해도 끼치지않아.세상에 그런 인간의 자리는 충분하지  (중략) 이상에 도취된 인물이야 말로 평범한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고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고 여자들을 괴롭히지 .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개의치 않네

하지만 자기 본위의 욕심이 많은 녀석은 큰 해를 끼치지 않아"

 

게이브리얼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큰 이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서 누군가 곤경에 처하거나 힘들다면 나서게 되고 그로 인해 명성에 흠이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게이브리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그들이 어쩌면 더 큰 야망을 가졌다

자기 본위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았던 게이브리얼은 어느 순간 더 할 수 없는 악인이 되지만

그것 역시 노리스의 관점일 뿐이다.

게이브리얼은 뻔뻔한 짓을 했을 때는 명성이 높ㅇ아지고 딱 한번 발휘한 돈키호테식 기사도가 그를 주저앉히는 상황을 부른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불쌍한 여자를 동정해서도 안되고 인간을 보아서도 안되며 이상과 가치만을 부르짖어야 한다

 

" 나는 악 자체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볼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 말로 위험하니까 암흑같은 바다위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취선 같아요"

 

결국 게이브리얼은 폭력적이고 오만했지만 그들이 그를 미워하고 잊게 된건 그가 이방인이었기때문이 아닐까  선거에 이기기 위해 영입했던 사람, 이용가치가 있어 함꼐 했던 사람,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 뿐 진정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마지만 반전이 충격적인건 게이브리얼을 이용할줄 알았지 알아보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다.

 

뱀다리로 ... 여기 나오는 인물 밀리 버트는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피해자인 동시에 모든 문제가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돌린다.

남편의 폭력도 동네에 떠도는 풍문도 모두 자기 탓이다.

그러나 무엇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 그녀의 죄책감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주변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패턴을 버리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나쁜 남자들을 반복해서 찾게 되고 동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또 다시 자책한다. 

시대는 달라도 성격유형은 다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다르지 않다.

소설속의 선거운동은 지금의 것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3.  사랑을 배우다.

 

지나친 연민은 모욕이다.

그것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연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그냥 내버려 뒤야 한다. 그를 신의 손에 맡길 뿐이다.

이야기는 지루한 편이다.

큰 흐름이 없다

완벽한 오빠가 죽고 이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던 아이는 뜻밖에 동생이 생겨버린다.

동생이 죽기를 기원했던 아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동생을 구하고 그 아이를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모두 바쳐 동생을 사랑하기로..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야

 

그 사랑은 무겁다.

노라가 베푸는 사랑은 동생을 숨막히게 하고 견디게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죽음으로 내몬다. 그게 다 노라 탓이냐고 할 수도 있다

노라도 어쩌면 불행한 희생자다

부모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떼쓰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은 옆으로 비껴서 있었고 요구를 참고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주기도 힘들다. 내가 아는 사랑이 전부이다.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노라의 잘못도 아닌데. 노라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밖에없어서 애닮다.

 

4. 딸은 딸이다

 

가족은 가장 의지하고 가까운 관계인 동시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이기에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받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녀를 위해 자녀는 부모를 위해 서로 자신이 가장 많이 참고 희생하고 견딘다고 믿는다. 말로 끊임없이 부담을 주는 부류도 있고 절대 드러내지 않지만 스스로의 희생을 세며  댓가를 바라기도 하고 가족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불가능한 기대를 걸기도 한다

가까워야 한다 라는 명제가 모두에게 다르기에 가족은 견뎌야 하지만 견디기 쉽지 않다

 

세라와 앤은 세상에 단 둘이 남은 가족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최우선이며 전부다 그러나 서로는 각자의 인격체이고 서로 다른 존재이며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둘은 서로가 자신이라고생각한다

분리되지 못한 모녀는 "상대를 위해" 간섭하고 삶에 기꺼이 끼어들기도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모른 척하며 사이를 벌여간다.

앤은  세라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세라는 앤을 위해 수단을 다해 위험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믿는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한 믿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는 닿지도 않으며 상처가 된다는 것조차 모른다. 알았다면 후회했을까? 아니 화를 내고 더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며 상황을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앤이 만난 소소한 행복이 될 재혼은 세라읭 반대로 깨어지고  세라의 결혼 선택은 앤의 무관심으로 불행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다 해주었는데 알아주지 못한다고 조금씩 어긋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치닫기 전에 서로는 충돌하고  솔직하게 미움과 서운함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결국 부딪치고 싸우고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말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왜 미워하는지 왜 미움을 받는지 알아야 고치든 설득하든 관계를 끊어내든 할게 아닌가

사랑도 숨길 수 없지만 미움도 숨길 수 없다

소설속에 꽤 괜찮은 직설적인 상담가가 등장한다

 

희생이라니 얼어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지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끝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건 거기서 자기의 본 모습이 훌륭해지는 순간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 않았어

 

전 세라를 위해 제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포기했어요. 그런데 로라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모두 제 잘못이라는 거잖아요.

 

우리 인생 고민거리의 절반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 내가 앤이라면 리처드를 포기한 것이 세라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기 마음의 평화때문이었는지 생각해 볼거야.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것 하나

아이를 위해 걱정하고 안달하고 그의 고민을 내가 끌어안고 해결해주어야 할것같은 사명감을 느끼고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  오롯한 희생이 아니다.

그렇게 라도 해야 내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니까 이정도 희생은 이정도 부담은 당연하다. 라는 것이 스스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는 희생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희생하고 힘들어하며 견디는 부모를 원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희생하고 참고 말잘 듣는 쉬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부담이 되지 않고 편안하고 언제나 기댈 수 있지만 언제든 죄책감 없이 떠날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 언제나 옆에 있으면 좋지만 떠나도 서운하지 않고 개운할 수도 있는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단순하고 깔끔한 관계는 늘 부족해 보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쉽게 뭉개지고  누굴 위해서인지도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최선을 다하는 것만 남는다.

서로 피곤하다.

어쩌면 서로를 위한 희생이라고 믿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어떤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큰 폭력일 수도 있다.

 

5. 봄에 나는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마주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나의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본다면 진실이 보일까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덜이 모두 거짓이고 꿈일지 모른다고  반대로 환상일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진실일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선과 허식을 마주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두 다시 구멍속으로 몰아넣어버리면 그만일까

나를 알고 내가 주었던 상처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익숙한 습관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나만 나의 실체를 알지못한 채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두렵다.

나를 안다는 것도 두렵고 나를 모른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내가 잘 알아... 이말은 진실도 아니며 오만이다

나는 누구지? 이건 삶이 지속되는한 계속되어야 할 질문이다.

안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나를 바꾸는 일이다.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는 존재이지면 결국은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존재이다.

단순하지만 섬뜩한 내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다.

 

6. 마음의 양식

지루하다.

타고난 천재라는 건 매력이 없다.

재능이 인간을 선택하고 그 밖에 다른 기회를 모두 막아버리는 일... 그것이 천재라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버넌의 재능은 오랬동안 스스로가  부정했고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건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행복과 상반된다.

그게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버넌보다 그 주위의 인물들 조. 넬 그녀들이 오히려 흥미롭다.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조연으로 물러난 넬의 삶이 더 관심이 간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알겠지만 ... 재미난 스토리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삶에서 내가 선택받는 부분과 선택하는 부분..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삶은 그 시점에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현재에 살았다면 소설보다 드라마를 쓰지 않았을까

이야기도 좋지만 인물과 대사가 매력적이다.

추리물에서도 그랬고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고 완벽하게 선악을 나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어떤 순간에는 더 할 수 없이 선량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서는 돌변한다. 사람이 그렇지 아니한가

아수라백작처럼 달랑 선악의 두가지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까지 변해가는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천사처럼 순수한 모습이나 더 이상 무엇을 더 첨가할 수 없는 완벽한 악이 아니라 보이는 위치에 다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처럼 다른 색깔 다른 질감 다른 농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처음 책들을 읽었을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착각이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읽을 수록 비슷비슷한 분위기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다 읽었다는 대서 뿌듯한 만족감을 얻었다.

그때도 무언가를 끄적였는데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뭔지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불안하고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책읽기도 재미없고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일들이 시시해졌다.

일상은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혼자인 시간이 되면 끝없이 가라앉아서 안자던 낮잠을 자고

먹는게 귀찮아졌고 리모컨만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 책은 끝없이 쏟아지는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책을 욕심스레 읽을 이유가 뭐가 있나 싶었고 굳이 뭔가를 읽는다는게 귀찮아졌다

소설은 어짜피 현실이 더 극적인것이고 시는 현실도피인것만 같고 사회문제나 인문학은 그저 썰만 푸는 일이거나 굳이 그렇게 콕콕 찍어주지 않아도 살아가기 팍팍하다는 건 다 아는게 아닌가

그렇게 모든 게 싫고 모든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그저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싶어져서

그냥 내가 손만 뻗으면 잡을 수있는 책.. 심각하지 않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지만  너무 낭만적이지도 않은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다시 읽은 아거사 크리스티는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뭐가 달라졌냐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지만... 사람이 다 그런거 아니겠니? 너만 그런것도 아니지.. 그런 소리가 들린다

뭐 흔하다면 흔한 위로지만  때로는 상투적인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매일이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한번 아래로 쪼르르 흐르고 나면 다시 뒤집어 쪼르르 모래를 흘려보내야 하는 모래시계 같은 나날이다. 뒤집어 졌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반복들 그래본들 모래만 흘려내리는 단순한 리듬에서

딱  눈 감고 모래시계를 눞혀놓은 기분  옆으로는 흐를 수 없이 그냥 그대로 멈춘 시간

그렇게 가라앉아 막막하다가 그래도 다시 모래를 흘러내릴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모래 시계를 바로 세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반복이 되길,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메콧이었다가 다시 애거사 크리스티로 돌아갔듯이

그렇게 잠시 다른 멈추는 시간.

그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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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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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아니면 괜찮지 '

'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거잖아 '

아홉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점점 명화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상황과 인물들이 오로지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이기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누구나 불행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걸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동적으로 본 드라마속의 인물과 전혀 다른 경찰들이 등장해서 소년하나를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고가는 이야기나  (소년 7의 고백)

너만 아픈게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해 - 나의 자제력, 의지, 능력의 부족-벌어지는 것처럼 몰아가는 말들 그것들이 주는 콕콕 찔러대는 불쾌하고 아프지만 말할 수없는 고통

(불행한 사람들)

내 일이 아니니까 모른 척 했던 일과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모든 비난을 뒤집어써야하는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그 속에 내가 갇혀버린 상황 ( 포스트잇)

불행의 원인을 누구에게 떠밀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상황들

모든 것이 내탓은 아니가 니탓이라고 밀어버리고 싶은 본능과 아무데도 밀어낼 수 없어 구석으로 몰린 약한 아이들의  밑도끝도 없어진 수치심과 죄책감 (여진)

내가 밀려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한다는 강박

원인-결과가 아니라 결과에서 도출되는 원인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유를 붙여대는 인물의 이야기  (이형의 계절)

내게 중요한 일과 소용없는 일을 적확하게 구분하게 만드는 말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결국 몽골리안의 시력을 가지고도 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 때로는 아무것도)

모두가 일그러진 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의 불완전한 모습만 보는 사람들

바닷속에서 외롭게 돌아가는 소금 맷돌과  길을 막고 선 차들로 인해 아이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봐야하는 부모  나의 이기심과 뻔뻔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아이.. 세상은 기울어져 있고 일그러져 있고 느닷없다 ( 일그러진 남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배우 이야기 (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이야기 하나를 읽고 그만 덮어버릴까 ... 한참을 고민하다가

또 한 이야기를 읽고 이젠 정말 그만 읽을까 하다가 또 다시 읽기 시작했다가

그냥 내리 다 읽어버렸다.

기왕 아플거 불편할 거 그냥 내쳐 겪어내고 말자

단편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들의 나열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섬세하게 쪼개놓고 보면 그 하나하나 아귀가 맞아지기도 한다.

귀찮은 일  불행의 냄새를 풍기는 일 아파보이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이런 모습을 알지못하면 좋겠다. 나는 정의롭고 공정하고 꽤 괜찮은 사람이고 싶지만 그건 내 주위가 평화롭고 안온하며 느긋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저 내가 눈감고  몸을 돌리고 담장을 침으로서 유지할 수 있는 인격이다.

내 일이 아니어서 어떤 사건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고  나쁜 짓을 하는 걸 번번히 목격했으므로 결국 사건의 주범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못생기고 성격이 불안하고 행실에 문제가 있기때문에 파양을 당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고  남의 가정사에는 끼어들지 않은 것이 예의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건 나와 하등의 상관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끔찍한 살인은 잘못이지만 공동주거생활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옳지않다고 나는 스스로 선하면서도  무심하고  냉혹한 심판관이 된다.

왜냐면 그건 나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소설을 읽고 혀를 차고 비난을 하고 판단을 내리는 나는 소설속 모든 상황과 인물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

쉽게 돈을 벌수 있다면 혹할 수 밖에 없고

문제아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단단하게 믿고 있고

개인의 의지가 문제이기에 하면 된다는 유행지난 구호를 믿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판단한다.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실대로 내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골라가며 보고 듣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도 없다.

좋은 사람인 척  알고 있는 척 등등 누군가인척을 잘 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도 할 수 있다.

사람은 악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일은 행복과 불행으로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사에에 무수하게 많은 유형의 인간들이 존재하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 다양한 감정과 기분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다만 내가 보는 것 아는 것은 일부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불편하다.

이러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는구나.

소년범죄. 젠더차별적인 것 계층의 문제 타인을 용인할 수 없는 이기심

불안과 애착의 문제가 있구나 등등  얼마든지 잘난 척 하면서 판단하고 이해하고 읽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잘 난 척을 할 수 있는 건 철저하게 나와 이야기를 분리할 때 뿐이다.

이야기는 나와 다르지 않다.

내가 그 이야기속에 등장인물이고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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