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뚱단지 공작소 (푸른희망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86017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HERE AND NOW!!</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5 Sep 2026 09:11:08 +0900</lastBuildDate><image><title>푸른희망</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786017322734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86017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푸른희망</description></image><item><author>푸른희망</author><category>2026</category><title>근접한 세계 - [근접한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860173/17434036</link><pubDate>Wed, 05 Aug 2026 17: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860173/1743403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6744&TPaperId=174340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off/k1721367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6744&TPaperId=1743403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근접한 세계</a><br/>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03월<br/></td></tr></table><br/>(두 사람의 대담 중 김연수의 말)‘무아’는 한 인간의 정체성이 타인 혹은 셰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결정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부모에게 나는 아들이나 딸이고 아들과 딸에게 나는 부모입니다. 회사에 가면 과장이지만 동창회게 나가면 오래전의 왕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은 그때그때 관계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존재인데 그걸 망각하고 커피점에서 아버지처럼 굴거나 옛 스승을 만난 자리에서 사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린다면 낭패를 보게 되죠.자아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어떤 인간이 될지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차별 받는 사람을 볼 때 부당함을 느낀다면 나는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행동은 그 다음 가능해지죠.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는 또한 차별받는 사람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그건 정신적 운동, 상상을 통해서입니다. 낯선 이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수 있는 능력은 모두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상상을 통해 가능합니다.   &nbsp;  윤리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을 생각합니다만 이건 실험실처럼 모든 조건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진공의 상태에서나 가능합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인간들의 욕망이 뒤엉키면서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을 단번에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고 옳음과 진실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윤리적 딜레마는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사이의 번민이 아니라 나의 옳음 나의 진실 그 자체에 대한 번민에 가깝다고 봅니다.   &nbsp;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미래가 다가오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nbsp;  (우리들의 실패)   &nbsp;  미래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물어 본 후 이를 종합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건 미래를 만드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는 것이지 미래 그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인간은 조금씩 무지하다.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뜻에서도, 과거에서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각각 다른 존재라는 점에서도) 덕분에 그 의견의 총합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미래는 대다수가 원하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nbsp;  노자의 도덕경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인만물위추구)하늘과 땅이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세상은 나의 후회와 희망과 아랑곳없이 자기 뜻대로 변해간다   &nbsp;  초견연주에서 중요한 것은 연주의 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연주할 수 없다고 느낀뒤에도 계속 연주할 수 있는 힘이지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주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nbsp;    &nbsp;  고통에 관한한 우리는 모두 짚으로 만든 개의 처지입니다. 그 개들은 각자의 무지로 쌓아올린 벽에 갇혀 지내고 있지요.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우리의 목소리는 그 벽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과 땅을 원망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이 먼저 그 벽을  그 다음에는 상대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이겠지요(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아무리 원망하고 발버둥을 쳐도 그 흐름을 개인이 어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상대를 알지못함을 먼저 인정하는 것내 뜻대로 될 리 없다라는 마음을 먼저 갖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합니다.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고 옳다고 믿는 일들이 늘 승리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그 세상앞에 욕하고 될대로 되라 라고 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우리는 초연을 연주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냥 서툴고 실수가 많아 쓸모없다 싶어도 그대로 살아가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야 실패라도 남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시 연주를 할 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큰 흐름을 바꿀 수 없어도 그 흐름속에서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알지만 받아들이는 것 그 힘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nbsp;  개인의 의지인지 운명인지지금 이순간 나의 선택은 지난 시간의 여러 가지 경험과 나의 생각과 내 감정이 모여서 만들어낸 것 그리고 어쩌면 미래에 결정된 어떤 힘이 있을지도거스를 수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조금씩 걷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nbsp;  나라의 혼란을 앞두고 도망치지 않고 모든 것을 잃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겠다는 동하는 화자에게 그 이야기와 함께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아팠던 엄마 아빠와의 서울행 거기서 만난 친척 어른들과 정혜인편지에 써준 멀버린의 이야기와 강한 염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혜인의 이야기결론을 알면서도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마법사와간절히 빌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한 어린 날의 소원들그리고 지금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지만그 의지는 어디서 왔을까누군가 나도 모르게 이끌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순한 나의 의지일까무엇이든 그게 중요하지 않다.지금 내가 조금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믿음이다.   &nbsp;    &nbsp;  (결정적 순간)전시회를 돌 듯이 각 코너의 주제들을 만난다.그 각각의 소제목은 결국 큰 흐름을 보여준다.누군가의 감정에만 몰두하지 않은 다양한 상황들을 보면서 결국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지금은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누군가의 잘못을 알아차린 순간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하나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쉬워보이지만 그것이 몰고올 파장도 생각한다.그 파장은 내가 몰락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깨는 일이다.다시 돌아가서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는 살아갈 수 없다는 알아차림 사이의 딜레마를 보여준다.없는 일로 할 수 있고 모른 척 할 수 있지만모른 척은 그냥 내가 눈을 감는 일 이상이다.내가 어떤 가해나 폭력에 눈을 감는다면 그 일에 동조하는 것이고 그래도 된다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글로서 선명한 이 문장이 내 앞에서 선택을 요구할 때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그 선택으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말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쏟아지고 내가 감당해야한다면?윤리적 딜레마라는 선명한 주제가 보인다.   &nbsp;  김연수의 글은 많이 생각을 하면서 개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를 관조한다면 히라노 게이치로는 계속 너라면 어떻게 할까? 이 선택을 너는 지지할거냐고 물어보고 있다. 내 삶을 돌아보고 그리고 질문을 마주하는 것읽기에서 느낄 수 있는 쪼는 느낌 제대로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br>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 &lt;good sister&gt;가 있다.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영화다정한 오빠가 있다. 동생을 위해 침대 한쪽을 내어주고 커피를 내려주고 다리가 아픈 동생을 업어줄 수 있는 사람. 연인에게도 다정한 사람그냥 내가 아는 오빠가 오빠의 전부라고 생각했다.어느날 오빠가 성폭력피의자가 되어 있고 나는 참고인이 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고 무조건 믿는 가족과 성폭력범은 너무 멀어 동생 로즈는 고민한다.오빠가 그럴리 없다는 믿음이 있다. 무한 믿음과 지지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는 마음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야 하고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무감그 사이에서 로즈는 흔들린다.영화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로즈를 따라갈 뿐이다.가족이란 한 순간의 의심에도 흔들리고  균열될 수 있다.의심은 한 순간이지만 관계는 지속된다. 내 가족이 나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은 남아있고 관계를 꺼끌하게 만든다.그러나 피해자가 있다면 내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른 척하거나 덮어도 되는 걸까만약 정말 오빠가 성폭력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하나가족의 믿음과 안전을 선택해야할지 어떤 진실을 선택해야할지 혼란스럽다.어떤 선택도 후회나 갈등이 남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nbsp;  가끔 가족이 그런 말을 한다.어떻게 니가 그럴 수 있어?가족인데 내 편을 들어야지 어떻게 상대편을 들고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무조건 내 편이어야지  &nbsp;  그 무조건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마음나는 다른 의견이 있는데 그럼 내 의견은 어떻게 되는 건데 라는 마음가족안에서 다른 의견과 다른 생각들 모나고 뾰족한 모서리들은 갈리고 깍여야 하는 부분이다.둥글게 둥글게  서로 괜찮다고 하는 것사실 그 안에서 나도 안전함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낀다. 그걸 깨고 싶지 않다.  &nbsp;  그러나 그 둥글고 안전한 소속감이 어떤 진실을 덮어버릴 때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진실을 밝히겠다고 가족에게 상처를 줘도 되나   &nbsp;  사건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오빠의 예상대로 무혐의로 끝날 수도 있다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 본인 진술 이외 더 이상 없을 것이다.그래서 내가 증언을 한 이후가족사이의 불편함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그리고...영화는 질문을 던지고 끝난다.로즈는 경찰에 전화를 했지만 어떻게 했을지 우리는 모른다.그리고 로즈가 오빠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 우리는 모른다.이제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해야할 차례다.   &nbsp;  &lt;미루&gt; 도 비슷한 주제로 볼 수 있다.어린 시절 친족 성추행 경험을 가진 아영이 있다.지금은 잘 자란 평범한 대학생이고 생활을 잘 하고 있다.어느날 집에 갔을 때 친척오빠의 청첩장을 보면서 지난 일을 떠올린다.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도와준 친척이니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는 엄마에게 아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지난 일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고 이제는 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잊었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그러나 이렇게 마주한 순간 이건 끝난 일이 아니었다.오랜 시간 고민하던 아영은 엄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그래서 나는 안가그리고 혼란 갈등 고민.. 그 끝에 길을 찾는다.중국어 수업의 시험  &lt;말하지 못한 비밀&gt; 이라는 작문에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어쩌면 낯선 언어 그래서 에둘러 말하지 못하고 사실 그대로 어떤 수사없이 서술해야 하는 언어로 드러낸다.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의미일거라는 교수의 말이 따뜻하게 들리는 건내내 고민하고 생각했던 아영을 우리가 계속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아영은 개운하게 집으로 돌아간다.그동안 엄마는 엄마답게 가해자를 만났다.어떤 말이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편안한 표정으로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한다.어쩌면 고민하는 내내 아영은 엄마를 아프게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나 혼자 너무 힘들다는 생각사이를 오갔을 것이다.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와 이 상처를 처리하고 싶은 마음그런데 그 마음은 양쪽에서 팽팽한 것이 아니라 한 방향에 있었다.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 그것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nbsp;  어쩌면 가해자 처벌과 사과가 중요한 건 아닐지 모르겠다.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그리고 내가 더 이상 그 문제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마음이 개운함을 가져다 주나 보다.   &nbsp;  우리가 왜 떠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왜 떠날 수 없느지를 담담히 보여주는 &lt;부바&gt;위험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lt;파도처럼 지나가&gt;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다름을 보여주는 &lt;우리가 죽지 않은 한&gt;오랜 가정 폭력을 파헤쳐보고 사과받고 인정받기 보다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질긴 악연을 내가 끊어내겠다고 결심하는 &lt; welcom home fleckles&gt;  주근깨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손녀와 그 주근깨가 못생겨보인다고 말하는 외할머니의 유쾌한 대화가 좋았는데그래도 내때 보다는 낫다는 말이 먹먹하기도 했다. 폭력의 뿌리를 찾아보고 그래도 내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변하겠다는 그 마음이 참 예쁘다. &lt;아빠들&gt;은 좋은 아빠란  좋은 가족이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가족을 지키는 일이 누군가와의 연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 그래서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 우리를 지키는 일이다가장 큰 힘은 서로 도와달라고 말하고 기꺼이 도와주는 일임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아빠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아빠란 내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그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다른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150/k1721367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229138</link></image></item><item><author>푸른희망</author><category>2026</category><title>대화할 수 있다는 힘이 부럽다. -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 이 대화는 가능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860173/17395054</link><pubDate>Thu, 16 Jul 2026 13: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860173/173950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5362&TPaperId=173950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1/29/coveroff/k6421353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5362&TPaperId=173950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피해자가 가해자에게 - 이 대화는 가능할까?</a><br/>사이토 아키요시.니노미야 사오리 지음, 조지혜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01월<br/></td></tr></table><br/>2017년부터 이어져온 피해자와 가해자의 왕복 서신과 대면 프로그램을 기록한 책이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 니노미야 사오리와 가해자 임상 전문가 사이토 아키요시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회복적 대화’라는 전례 없는 실천을 시작한다. 피해 이후의 시간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이 대화는 시작부터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다.  &nbsp;  사이토는 3000여 명의 가해자를 만나온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재범 방지 치료를 진행해 왔으며, 니노미야는 그 과정에 참여해 피해자의 언어를 직접 전달한다. 가해자성-남성성-인간성을 해부하는 이 대화는 단순한 사과나 감정적 화해를 거부하고, 왜 가해가 반복되는지를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대화는 행동 변화를 보장하지 않지만, 변화의 조건을 탐색하는 과정 자체를 기록한다.  &nbsp;  용서와 사죄를 분리하고, 교정이 아닌 갱생을 요구하는 이 책은 성폭력을 과거의 사건으로 봉인하지 않는다. 책임을 평생의 과제로 끌어안는다는 의미를 묻고, 실패한 대화조차 무용하지 않다는 믿음 위에서 언어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피해-가해의 도식을 넘어 오늘의 사회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문제작이다.  (알라딘 책소개)  &nbsp;  이상하게 폭력앞에 성이 붙으면 피해자가 늘 전전긍긍하게 된다.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내가 원인이 아닐까그리고 세상은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궁금해한다.왜 그랬대? 무슨 일이래? 그래서  살 수 있겠어?뭔가 이유가 있었던 거 아니야?  빈틈을 보였거나 뭔가 기미가 있었겠지표적이 피해자에게 몰리면서 가해자는 지워진다. 천인공로할 사건이라면 가해자 역시 죽일놈이 되어 세상의 입에 오르고 몇 번을 죽임을 당하겠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폭력들은 결국 피해자에게만 관심이 쏠리다가 잊혀진다.당했다면서 웃어? 당했다면서 화를 내고 당당하게 살아가? 뻔뻔하네혹은 아직도 그러고 사니? 그냥 잊어 지워버려 그리고 법정에서는 늘 복사해서 붙인 말처럼 앞날이 창창한~ 혹은 유능하고 다정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라는 이유로 양형이 가벼워진다.피해자가 가해자들을 만나기로 한다.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만나게 된다.서로 무슨 말을 할까편지로 소통하고 피해자의 말을 듣는 자리로 진행되고 피해자는 가해자의 바로 그 피해자가 아니다. 서로 날선 감정들이 오가지는 않지만 충분히 상대를 생각하고 직면할 수 있는 기회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떠올리기 두려운 존재이거나 궁금하지만 알 수 없는 존재일 수 있었다.사건은 있지만 잡히지 않은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알 수 없는 공포를 주고 두려움을 주고 세상에서 나를 고립시킨다. 그가 어디서 나를 보고 있을지 나를 알고 있을지 알 수 없다.알고 있는 행위자 역시 내가 겪은 고통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 않거나 받게 할 수 없을 경우 그 기억만으로도 고통스럽다.피해자의 고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해자의 입장은  어떨지 궁금했다.폭력의 예방은 당연하게도 가해자가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서 완벽하게 가능하다.그러나 그 행위하지 않음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왜 폭력을 저지를까? 왜 성폭력이 계속 발생하고 있을까그 대답은 가해자가 들려주어야 할 차례다.  &nbsp;  책에서는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사람을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어떤 대상으로 여긴다.성적인 존재일 뿐 나와 같이 생각하고 감각이 있고 존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여성에 대한 차별적이 비인간적인 통념이 있다. 그냥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면서, 저도 좋아서 했을텐데, 거부하지 않았다면 동의한거 아니야? 그런 통념들이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행위들을 당연하게 만들었다.남자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행동들, 자세들 울지 말아야 하고 당당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하는 것들을 가지지 못했을 때 가장 약한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가는 것이 폭력이다. 약한 존재를 휘두르고 마음대로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내가 살아있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각이 폭력, 성폭력을 만든다.가해자도 왜 자신이 가해자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내 행동에 대한 성찰이 없고 오랫동안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운이 좋지 않아 들켰고 그래서 가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들키지 않아서 괜찮아서 해도 괜찮을거라는 이유가 붙기도 하고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하고 그 행동에서 쾌락이나 힘을 느끼면서 더 당당해진다고 믿어지는 통념들그래서 가해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가해자로 살아가지만그 역시 스스로 알지 못한다.  &nbsp;  피해자도 가해자도 행위 이후의 삶이 있다.계속 살아야 하는 일상이 있다.,그 일상은 행위 (사건)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 상처(행위)와 함께 그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행위자는 이후의 삶을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이후의 삶을 살지만 살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문제를 살갗을 벗겨내는 것처럼 훓어내린다.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그건 삶이 없는 것보다 고통스럽다.행위자는 문제의식이 없고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한다.충격적인 이야기는 폭력행위가 일상이어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피해자에게는 이벤트처럼 다가오는 폭력이 행위자에게는 일상이어서 기억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폭력에 대한 생각이 만연하고 당연하다는 것이 더 무섭다.피해자가 피해자임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행위자도 행위자임을 기억해야한다.일상이 그 기억으로 망가지거나 멈추어서는 안되지만 진행되는 내 일상안에 그 기억을 지울 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된다고 한다.내가 가해자였음을 기억하는 것 거기서 조심하고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생긴다.피해자도 피해자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일상이 어려울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거기서 조금씩 회복되면서 전과 다르지만 안전하고 무심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nbsp;  회복적 사법에 기초를 둔 프로그램답게 사과와 용서가 이야기 된다.사과는 당연하다.그 사과의 대상이 누구인가사법질서에 대한 사과는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판사를 향해 검사를 향해 경찰을 향해 심지어 보이지 않은 대중을 향한 사과는 수없이 많지만 피해자를 향한 사과를 찾기 어려웠다.사과가 내가 어떤 잘못을 누구에게 했는지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지금 이순간의 모면이나 그저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사과는 그 방향을 잃는다.진짜 사과는 내가 어떤 잘못을 했고 상대가 어떤 상처를 입었고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다. 그래서 상대가 보내는 분노나 원망을 고스란히 받겠다는 마음이다.이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나 약속도 포함되어야 한다.물론 보상이나 죄값도 당연하다.그러나 사과가 용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사과를 했는데 용서도 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원망할 일도 아니다.용서는 용서를 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원망하거나 상대를 오히려 나쁜 사람으로 몰아서는 안될 일이다.  &nbsp;  죄는 평생을 달고 가야 하는 것이다.그 죄와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삶은 되돌아갈 수 없다. 그저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다.내가 이전에 한 행동들과 말들이 주렁주럭 꼬리처럼 나에게 붙어 있을 것이다.그걸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한다.  &nbsp;  피해자  나노미야씨는 가해자도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그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 실수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타인을 해하고 타인을 희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내가 노력하고  감내하고 조금 참아내면서 만들어 지는 진짜 행복을 안다면 행복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nbsp;  결국 우리는 피해자도 행위자도 함께 살아간다.함께 사는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해야 나도 그럴 수 있다.죄책감에 떨며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원망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힘들다.서로가 행복하기를 원하면서그 행복이 어떤 희생이나 차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회복적 대화의 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nbsp;  가해자와 대화를 해보겠다는 나노미야씨의 용기도 대단했고그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여러 행위자도 대단하다.대화를 통해 타인을 알아가는 것 타인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는 것 어쩌면 서로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에 대해 상상하고 생각하고 듣는 과정이 필요했다.<br>그리고 건강한 사회란&nbsp;내가 힘들다. 도움이 필요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라는 것&nbsp;폭력예방의 가장 앞자리는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의 회복임을 다시 알게 된다.&nbsp;  &nbsp;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잘 진행될지...모르겠다. 일본에 행위자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꽤 인상적이었다.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1/29/cover150/k6421353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61295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