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팟케스트를 알고 낄낄대며 들었다,

결정장애를 가진 현대인들의 결정을 도와준다는 컨셉도 참신했고 두 사람의 케미도 유쾌하고 좋았다, 누군가를 깍아내리거나 면박주지 않고 스스로 망가지면서도 청취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대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태도도 좋았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상담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껀한껀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다,

한명은 먼저 지르면서 나서면 다른 한명은 조곤조곤 정리하고 마무리하거나  보기보다 허당인 면을 드러내는 한명에게 면박을 주면서 함께 깔깔대는 모양새가 오래 알고 이해하지 않으며 나오지 못할 조화였다,

사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해결책은 늘 알고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만 그 선택이 옳다고 지지받고 싶고 때로는 해야하지만 한번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가 다잡아주길 바라는 것

그런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설령 도무지 해결책을 알지 못하는 문제이더라도 알지못하므로 무엇이든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어~ 하고 내가 몰랐던 부분을 들을 때가 있고 아리송한 걸 명쾌하게 납득시키기도 하고 이건 너무 엉뚱하잖아하고 무시하다가도 언젠가 불쑥 다른 곳에 써먹을 수도 있다,

나는 두 사람이 벌써 데뷔한지 20년이나 지난지 몰랐다,

하긴 김숙이 난다김을 하면서 삼천만 땡겨달라고 했을 때는 나도  젊었을때고 한창 송은이가 만원의 행복을 할때는 첫아이 이유식을 먹이면서 본 거 같기도 하다,

한번도 대단한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분야에서 20년을 지내왔다는게 세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꾸준하고 진득한 사람 그래서 오래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난 한번도 진득하게 뭘 해본 적이 없다,

졸업무렵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덜컥 취직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채 몇년 되지 않아 이게 적성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사표를 내버렷고 글을 쓰겠다고 맘 먹고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시작했지만 그것도 내 재능에 대한 고민고민만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공부하는 상담도 늘 회의적이고 어떤 유용한 가치를 가지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커다란 대가리만 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오래 진득하게  버티는 카테고리는 사람. 여자 이것밖에 없는 거 같다 ㅜㅜ

각설하고....

 

팟방을 많이 듣진 않았지만 두가지 사연이 기억에 남았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할까요 라는 사연에 홍석천과 연결했던  사연

그때 홍석천이 그랬다 가능한한 오래오래 하지 말라고...

어떤 조언보다 진정성 있게 들렸던건 그의 경험이 상처가 녹아 있었던 것은 말 할것도 없고

무엇보다 상담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알기때문에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면 상처받고 안하면 죄책감이 든다면 차라리 죄책감이 낫다는 것

속이는게 아니라 내가 좀 더 튼튼해지고 막말로 혼자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때 까지는 버티고 버텨야 한다는 조언이 울컥하면서 와 닿았다,

뭐 부모니까 이해할거라든가 부모를 속이지 말자든가 하는 도덕적인 판단이 아니라

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니가 우선이라고 너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내게도 푹 꽂혔다,

 

그리고 김생민이 조언한 돈을 쓸까요 모을까요?

그 답게 돈은 모으라고 있는거지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는 말을 키득거리면서 들었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내 방식을 고수하는 뚝심이 은근히 부러웠다,

계속 이어지는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들으면서 짠돌이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나름 철학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외국여행을 가라 어쩌라는 말을 다 자르고 딱 10만원으로 통영을 다녀오라는 고의 결론이 그래서 더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공감해야한다는 건 알지만 막상 그 '공감'이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알아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공감이다,

'앵무새 죽이기'에도 나왔듯이 남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한다는 말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타인을 본다, 그래서 어설프게 충고를 하고 연민만 해버린다,

공감은 어떤 결론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아니다,

어떤말로도 위로가 될 수없다고 외면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직면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마음

각자 각자의 입장에서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음을 알고 만져주는 것이 공감이다,

 

 

" 난 잘하는게 없어,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힘들고 남자애들이든 여자애들이건 먼저 말거는 것도 어려워 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겠어 자존감이 너무 낮은거 같아 ......그래 맞아 어쩌면 너무 나자신한테 엄격한걸지도 몰라 너무 나에 대해 기대가 커서 왠만하면 잘하는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어 자꾸 자신이 없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건 정말 많은데 좋아하는 건 모르겟어..."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듣게 되는 딸아이의 하소연이다,

내가 너무 엄격하게 키웠나 키우면서 뭘 잘못했나 시간을 헤집어서 기억을 꺼집어 내보면 후회할 것들만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결정적인건 없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안들 수 밖에 없다지만 조금은 무모하고 자기에 대해 과대망상을 해도 괜찮은 나이에 너무 쪼그라들기만 한 아이를 보면서 나를 보기도 한다,

나도 싫은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뭘 좋아하니? 하고 물어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쪼그라들지만 그걸 누군가가 알까봐 황소개구리만큼 몸을 부풀리기도 하고 아닌척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살고 있다, 그냥 이제 나한테 익숙해져서 어쩌라구 하는 똥뱃장으로  살긴 하지만 그런 유전자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는 아직도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치는 자꾸자꾸 하늘만큼 높아지고 뭐 그런 중이다,

책은 우리의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흔히 수치심과 죄책감을 혼돈해서 쓰는데 저자는 명확하게 구분해준다,

어떤 잘못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죄책감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한 비난이고 부끄러움이고 반성이지만 수치심은 나자신에 대한 비난이고  분노가 된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건 죄책감이고

나란 놈이 그렇지 늘 이모양이꼴이야 나는 한심한 놈이야 ... 하게 되면 수치심이 된다,

죄책감은 고칠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수치감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그 수치감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속한 가족 사회 집단에서 주입하는 어떤 가치관에 의해 내가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기준이기도 하고  내 속에 자리잡은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녹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누군가의 의도적인 혹은 의도치 않은 말한마디로 건드려지고  폭발해버리거나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 수치심은 어쩌면 내 안에 자라지 않은 아직 어린 아이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같다,

나 아직 여기 있으니 좀 봐달라고... 나 좀 안아주고 위로해달라고

그 아이가 내 속에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아마 누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은 아이를 한명씩 품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아이를 알아주고 마주보고 위로해주는게 필요할 뿐이다,

그 아이는 나와 영원히 함께할 존재이니 잘 지내야 할 뿐이다,

누군가의 말한마디 행동하나에 상처받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수치감을 느끼고 그래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스스로가 가치없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느낀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갖는다,

적은 세월을 산 아이라고 아픔이 없지는 않다,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지에 따라 내게 수치감을 줄것인지 그저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일지가 결정된다,

누군가에게 수치감을 주는 언어가 아닌 공감하고 자비로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데 그건 알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고 공감하는 것

결국 수학을 풀듯이 계속된 연습문제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위로이지만 그게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내 마음에 숨은 수치심을 건드려서 마주하고 싶지 않고 그 상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단다.

먼저 나를 마주하고 나에게 관대할 때 타인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는 말이 훅 다가온다,

 

내가 눈군가를 달래주고 안아주는 일이 서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정하지만 무뚝뚝했던 부모님은 어색해서 아마 표현을 안 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해서 나는 늘 그게 어색했다,

애교도 없고 다정하지 않은 건 성격탓이 아니라 내가 경험이 없고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다정한 위로보다 툭툭 던지는 적확한 한마디의 말을 더 신뢰하고 편해하는 것

그래서 나조차 누구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기 보다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진단하는 말을 던지는게 더 편했다, 그게 상대에게 상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가식적이지 않고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갑옷이었던 거 같다,

위로로 무너지고 싶지 않고 징징짜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단단하게 나를 무장시키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어른대 어른으로서는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지만 상대가 어린 아이일때는 그것만큼 가혹한 것도 없다,

감정은 눌러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나는 늘 조언하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니다 싶어 모든 감정을 감추지 말고 말하라고 했더니

그 응대가 너무 힘들다,

배운대로 하는 건 뭔가 가식적이란 생각만 들고 그저 바라봐주고 안아주는 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라는 거냐고....

생긴대로 살자니 그게 아닌것 같은데 바꾸자니 그건 내 옷이 아니다,

수학 영어 국어 과탐 사탐만 아니라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 표현하는 것 그리고 공감하는 것 모두가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고 시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며 알게 되지만 늘 용기내어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지만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세상에 나는 또 하나가 더 없다,

단 하나인 나는 단하나여서가 아니라 그 존재로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불완전하고 누군가와 달라보이고 어딘가에 끼어들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여전히 의미있는 존재다,

누구나 아프지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 다른 누군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고 의미있다,

내가 그렇듯이...

나를 알고 조금 용기를 내서 한걸음 내딛는 일

그리고 부끄러움이 영원히 내옆에 머무는 건 아니라는 것

의외로 타인은 쉽게 잊을 테고 남의 판단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잊게 되고 그 이상으로 나를 덮치는 수치심을   없애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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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작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작품속에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발칙하게 생각했다,

통속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 통쾌했었다,

착한척하거나 의도적으로 위악을 떨지 않아도 인간이란 족속은 무른 속내와 이익앞에서 무엇보다 자기 욕심이 앞서는 존재이다, 그것으로 착하다 악하다고 판단을 할 수 없다,

인간이란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늦게 등단했다고 누구나 많은 이야기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것이고

다사다난한 역사를 관통했다고  그것이 문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산 누구나 작가가 될 것이고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털아낼 수 잇을 것이다

여러번의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을 끈 것은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면서 나중에 이걸 꼭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견뎠다는 말이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보다 살아남아서 나중에 이 이야기를 꼭 써서 복수하겠다는 결심

그건 극단으로 몰린 처절함이기도 하고 동시에 순진한 어린소녀의 결심같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늦게 시작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나보다,

닥쳐온 일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단단해진 속에 이야기가 쌓여갔다,

부러웠다,

일단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고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골방에서 머리를 싸매는 일보다 더 의미있다는 것을 작가는 들려줬다,

어떤 고귀한  선언이나 주장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내는 사람이 더 귀하고 가치있음을

그리고 그  바닥에서 알아가고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 자기자신의 오기를 가지는 것 그말도 좋았다,

부끄러움과 자긍심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인간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쉽고 잘 읽히는 소설이 좋고

누군가는 통속적이라고 폄하할지라도 살아가는 일이 통속적일 수밖에 없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현실에서 살지 이상속에서 살지 않는다,

나 자신도 짜잘한 인간이라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현실적으로 정직하고 당당하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그런 사람이 더 좋다, 어떤 이상은 없어서 비굴해보일지라도 내 주변을 챙기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더 좋다,

그래서 여러번의 인터뷰중에서도 균일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작은 것을 아끼는 마음  작은 일에 가치를 두는 마음이 좋았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예전엔 몰랐던 봄꽃이 에쁘다고 느껴지고 본홍색 노란색 그 색들이 촌스럽지 않고 정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의 아름다웠다는 정원이 궁금하다

그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작가의 책을 다시 먼지를 털어 읽어야겠다,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다

비슷한 위선에 동질감도 느끼고 소소한 복수에  차사한 후련함도 함께 공유하면서 나만 속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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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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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리뷰는 아니다.

 

책을 다 읽었다,

산 지  일년이 조금 되었을까? 책장에 꽂아놓고 계속 노려보고 부담만 느끼다가 펼쳐들었다,

아니 이전에도 읽었었다,

첫부분 수바시와 우다얀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읽다가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은 그냥 순식간에 그냥 읽어치워서는 안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휘리릭 읽어버릴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도역사를 모르고 70년대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니까 라고 핑계를 대기도 했고

첫 몇장면에서 뒤의 이야기가 충분히 유추되고 그게 마음이 짠해져서 이렇게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버려두고 계절은 바뀌었다,

그리고 어제 다 읽었다,

내 예상이 맞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문도 있었다,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다얀과 수바시의 이야기는 맞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가우리의 등장은 예상치 못했다

 

인도에 남아 혁명에 가담한  적극적이지만 서툴렀던 우다얀

현실을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내내 이방인으로 돌면서 마음 한 구석에 빚진 기분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수바시

그들 사이에서 아내로 제수로 다시 아내로 살아내다 자기 삶을 찾아 떠나버린 가우리

그리고 그들의 아이 벨라

모두가 제각각 제가 서있는 곳에서 자기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삶을 시작한다,

그 시작점은 같았을 지라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여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고 무늬가 달라졌다,

형제였어도 부부였어도 그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갔다,

이야기는 우디얀에게서  수바시에게서 가우리에서  그리고 벨라에게서 조금은 두 형제의 엄마로부터 보여지고 느껴지고 생각나는 것들을  서술한다,

각각 자기의 입장이 있다, 누구의 삶이 누구의 삶보다 못하다거나 누구에게 피해만 준다고 할 수도 없엇다,

물론 가우리는 많은 부분을 수바시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

수바시가 동생에게 느끼는 빚진 기분과는 다르게 정확하게 무게를 달수 있는 형태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를 떠나게 했고 새 삶을 살게 했고 그녀가 원하는 공부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남자를 배신하고 떠나는 그녀가 곱진 않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해도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변병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우리가 느낀 답답함 죄스러움  그리고 도무지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지 않은 삶에서의 해방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누구나 모성이 있는게 아니고 누구나 남들처럼 흉내내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선택을 적어도 나는 지지한다,   불쌍한 년보다는 차라리 나쁜 년이 낫다,

 

수바시의 삶은 어딘가 스토너를 연상시킨다,

미국으로 떠나와 자리 잡은 그곳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고 삶을 이어온 그의 모습이 미주리 대학을 떠나지 않고 견뎌온 스토너와 겹쳐진다,

자기만의 시간속에서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저항해온 두 남자는  답답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도 수바시가 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적어도 앨리스보다 벨라는 행복할 것같다)

 

신념과 투쟁으로 짧은 삶을 마감한 우디얀

그는 순수하지만 서툴렀고 다정하지만 이기적이었다,

누군가를 해방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집에서는 대접받기만을 원했던 모순적인 그의 모습은 낯선 타인이 아니다,  그런 그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우리를 끌어들인 행동의 결과가 평생 가우리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죄책감을 남겼다

뭘 그런 걸로... 라고 하기엔 가우리에게 남은 무늬는 너무나 선명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휘청거리게 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무늬를 그리면서도 사람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낸다,

뭐라고 하든 그것은 나의 삶이고 나의 문제였다,

제각각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무심함이 되더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이 슬프지만 단단하다

자기만의 공간..

책에서는 가우리만이 자기만의 공간을 원한다고 표현되어있지만

결국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그 속에 웅크린다,

벨라의 옷장속도 그런 공간이고  평생 한 연구소를 떠날 수 없는 수바시의 그 대학도 그의 공간이다, 인도 켈거리가 우디얀의 공간이듯이

그들의 어머니는 이층 테라스가 그녀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희망도 보았지만 결국 가장 잔인하게 아들의 죽음도 목격하는 그녀만의 공간이다,

 

책은 세 사람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지만

공간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이야기하며

사람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고 서로의 무늬에 침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지대에 고여서 흐르지 않은 물처럼 때로는 서로 멈춰서 엉기기도 하지만

끝내 말라버린 저지대의 물기처럼 그렇게 제각각의 삶으로 돌아간다,

 

두께에 비해 쉽게 읽혔고

쉽게 읽힌데 비해 오래오래 생각하게 한다,

단편보다 별로야 별로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마지막장을 덮었고 그리고 그 말은 이제 안하기로 한다 더 낫다 아니다 라는 평가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좋겠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다음 책은 어쩌면 조금 오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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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없이 아이와 이름이 같은 작가라 읽게 된 책이다,

표지 그림이나 속의 삽화도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슥슥 그린 것같으면서도 꽤나 세밀하게 잘 그린  친근한 그림체가 내용과도 잘 어울렸다,

엄마의 미국연수때문에 6개월간 외가에 지내게 된 린아는 변화된 모든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낯선 사투리도 그렇고 꽤재재하고  억세보이는 아이들 낯선 풍경 모든 것에서 린아는 이방인이었고 어짜피 정해진 기간동안의 생활이라 굳이 이 속에 스며들 의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전학 온 첫날  자기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사월이도 싫고 다정하게 대해주면서 자꾸 자기 바운더리를 넘어오는 유하도 싫었다,

서울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린아에게 어느날 밤에 유하가 줄게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사고로 유하가 죽어버렸다,

미처 친해지지도 못한 친구의 죽음앞에 린아는 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발견한 유하의 비눗방울을 불면서 다시 유하를 만난 린아

그리고 그 비밀을 나누게 된 사월이와 지호와 함께 유하의 목걸이를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낯선 성황당앞, 돼지 우리 , 학교 운동장 숲길까지 내켜하지 않으면서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함께 다니는 세 아이는 어느 새 친구가 되었고 함께 땀흘리고 의지 하면서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갔다,

서울에서 온 린아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낯선 환경에 던져진 아이의 자기 방어라고 생각했었는데  린아에게도 아직 풀어내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아빠가 죽었고 그걸 미처 애도하지 못한 채 속에 보따리로 묶어서 치워버렸다,

그때도 흘리지 못한 눈물을 미처 알지 못한 유하가 죽었다고 흘러내리지 못한 건 당연했다,

슬픔이라는 것이 린아에게는 봉인된 감정이었다,

그저 그 감정을 모른 채 그저 화를 내고 늘 불만이었다,

그리고 그 불만이 주위 환경탓으로 친구들 탓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목걸이를 찾는다는 이유로 함께 다니지만 사월이와 린아는 서로 다르다는 것만 절실하게 느낀다,

키가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가족상황이나 형제 관계도 다르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아이는 산속에서 구덩이에 빠지면서 체온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 나눈다,

별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속내를 보인것도 아니지만 함께 끌어안고 오돌오돌 떨면서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었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목걸이를 찾는 방학동안 그들은 친구가 생겼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서로에게 여린 힘을 보태줄 수 있었다,

작가는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여리고 보잘것 없는 힘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구원해준다,

유하는 소에게 쫓기는 린아를 구하고 사월이는 철봉에서 떨어지는 린아를 구하고 린아는 떨고 있는 사월이를 안아주고 이 뒤에는 배경처럼 든든하게 지호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헤어지는 날 비로소 린아는 눈물을 흘린다,

슬퍼서가 아니라 부쩍 커버린 자신에 대한 대견함의 눈물이 아닐까

이별이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사이의 정을 나눈다는 것 마음껏 슬퍼하는 감정을 알았다는 것이 눈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들이 아이다워서 좋았다,

영악하지 않고 순수했다,

위악을 떨고 미워하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오히려 아이다웠다,

마음껏 감정을 드러내고 어른 흉내를 내지 않고 미워하는 상대를 극렬히 미워하고 좋아지면 그대로 표현해버리는 아이들이 너무 이뻤다,

린아도 사월이도 지호도 그리고 짧게 왔다 가버린 유하도

 

 

 

 

이 만화에서는 너무 눈물울 많이 흘리는 소녀가 등장한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소녀

그는 아무 부러울것없는 부모와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단 하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든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그건 그저 눈에서 흐르는 물이다,

눈물때문에 감정이 풍부하고 정서적인 아이라고 사람들은 믿지만 정작 아이사와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리고 그 아이사와 뒤에는 따뜻하지만 불안한 아빠와 다정하지만 매마르고 소통을 두려워하는 엄마가 있다,

아빠의 바람이 엄마를 불행하게 한다고 믿는 아이사와는 새를 죽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시골로 보내진다,

린아처럼 아이사와도 낯선 환경에 떨어졌고 절대 그곳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동화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낯선 사투리와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지 않은 경계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주변 할머니와 친척들 그리고 어린 꼬마 학교에서 그녀를 싫어하던 친구까지 아무런 경계없이 그녀의 공간으로 불쑥불쑥 들어온다,

어처구니 없이 소문난 교복을 바꾸지 않은 이유로 불쌍하고 보호해야할 소녀가 되고 말없고 도도한 표정이 어떤 꼬마에게는 매혹적이고 좋아하는 누나의 모습으로 비친다,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무심함도 있다,

어떨 때는 터무니 없이 무심하고 어떨 때는 터무니없이 훅 들어오는 사람들때문에 아이사와는 너무 힘들지만 절대 엄마에게 먼저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으니 교복조차 바꾸지 않는다, 그 교복은 아이사와 자신이고  여기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고집이다,

그러나 아이사와 역시 린아처럼 스르르 무장해제된다,

아픈 꼬마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누나를 따르고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을 오해한채로 잘 챙겨준다,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이 그녀의 마음을 무심한 따뜻함이 채워준다,

이제 아이사와는 마움대로 눈물을 흘리는 능력을 잃었다,

그런데 대신 마음속에 갖가지 감정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낯설고 두려운 것들이 훅훅 들어왔지만 아이사와는 가만히 그것들을 지켜보리로 한다,

아직은 쿨하고 시니컬한 태도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작은 변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린아는 변하고 아이사와도 변할 것이다,

그것을 성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지는 모르겠다,

또 언젠가 넘어지고 다치고 마음을 닫을 일이 생길것이고 그리고 또다시 열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될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훅 하고 바뀌거나 좋아지지는 않는다,

지루한 일상에서 반복되고 계속되어지면서 어느날 돌아보면 한뺨 커져있고 깊어질 것이다,

아이들은 자란다고 믿는다, 믿는 만큼 자란다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린아 엄마도 잘 해쳐나갈 것이다,

그런데 아이사와의 엄마는 불안하다,

자기를 꽁꽁 싸매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도 받지도 않겟다는 그 철벽같은 마음이 자꾸 걸린다

남편의 바람에 화를 내지도 않고 쿨하게 인정하면서  상대를 더 외롭게 만들거나

엣 남자를 이용하면서 더 쓸쓸해지는 걸 내버려두는 것

아이사와의 변화가 그녀에게도 작은 햇살이 되면 좋겠다,

 

의외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잘 모른다,

내가 화가 난 이유가 불안인지 인젇받고 싶은 욕구인지 슬픔인지를 모른다

그냥 화가 났다고만 한다,

화를 낸다고만 한다,

그리고 알아주길 바란다 나 역시

내 화 뒤에 숨은것들을 나도 모르면서 타인이 알아주길 바란다,

내 눈물이 너무 두려워서 수도꼭지 잠그듯이 그렇게 꼭꼭 돌려서 한방울도 흐르지 않은 상태를 만들어 놓고 안도한다, 슬픔따위는 절대 접근 불가

그래서 마음은 자꾸 메마르고 흙바람이 분다,

내가 내 감정을 읽지 못하니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다,

그저 남의 감정은 불편하고 피하고 싶다,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된다, 아이가 징징거리는 것이 짜증나고 말잘 듣기만을 바란다

어른처럼 세련되게 감정을 숨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엔 말이 많고 자기 마음을 시끄럽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솔직함이 부러워졌다,

여전히 불편하고 정신이 멍해지는 건 있지만 그렇게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말하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사와의 엄마도 그렇게 시끄러운 사람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소리를 내고 입밖으로 뱉는 걸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통은 나를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감정을 아는 것부터 시작이다,

울지 않는 소녀. 마움대로 울 수 있는 소녀들이 내 마음에 노크한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 꽁꽁 싸매둔 감정을 잘 펴서 말려보라고

보송보송해진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고..

아이때문에 읽었다가 내가 감동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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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훔쳐보는 기분

  사실 저렇게 자기 영업의 비밀을 풀어준들.. 무지한 자들에겐 그저 쇠귀에 경 읽기 일 수도..

사실 도데체 어떻게 쓰는지 알아내고야 말겠어!! 하는   결의와 약간의 관음증이 더해져서 책을 집었는데 의외로 다른 소득이 있다,

어떻게 쓰는가? 보다 어떻게 세상을 사람을 보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더 생각하게 한다

혹 그것이 저자의 의도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또 나는 한권의 책으로 계속 헛짓을 한 셈이고

그저 내가 빠진 작은 우물 속에서  보이는 하늘만 본 것일 뿐이고.

그나저나 작가들의 뒷 이야기가 꽤 재미있고

                                       나도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중 몇 권은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알라딘에서 서재를 하면서 이 분을 모르면 간첩? 아닐까

나도 뭐하시는 분인지 모를 때 참 재미있게 쓰네 하면서 자자주 방문햇었고 티비에 나오는 걸 보고 실물을 알았고 아하,,, 하면서 꼭 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해졌다

물론 나 혼자....

작가들의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결국은 내가 펜을 들고 쓰지 않으면 그 책들이 다 소용없는 거란 걸 알면서 이제 글쓰기 책은 그만!!이라고 하는 중

이 책을 만났다.

책을 보니 이미 많은 저서를 낸 작가였지만

나의 무지로 작가가 아니니까 ,,, 블로그에서 쓴 글을 봐도 책 내용과 자신 그리고 책 내용과 이 사회에 대해 정말 절묘하게 그러면서 재미있게 술술 쓰는 그 영업비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펼쳤다,

작가가 아니니 실용적인 도움을 줄거야,, 하는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그런데 결국,,,,

이 분도 열심히 쓰는 거 말고는 길이 없단다

오래오래 읽고 써보고 싪패하고 그러면서 글이 늘었다고 하니,,

모든 노력이나 고난을 가뿐하게 넘어가게 할 비법은 정녕 없는 모양이다

쉬운 길로 가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타를 배워도 내 손가락 끝이 벗겨지고 물집이 생기는 과정이 필요하고

외국어를 배워도 나는 돌머리구나 하는 자괴감을 넘어야 하는 것이고

운동이든 뭐든 쉽게 되는 건 없다

그것이 유일하게 삶의 공평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쉽지 않게 익힌건 절대 날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책으로 건진건 저자가 블로거 이전에 이미 작가였다는 것과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책 역시 재미있다는 것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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