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마음이란...

글을 읽고 쓴느 사람들 마음속에 한 조각씩은 품고 있는 한때는 꿈꾸었고 이제는 꿈이 아니어서 업으로 쓰거나 업으로 읽거나 그냥 읽고 끄적이는 사람들의 마음

그런거 아닐까

책에는 그림책 작가 ,동화 작가 소설가 시인 희곡작가 편집자 기자 평론가 에세이스트 등등이 등장한다.문학을하는 사람들

작가이거나 작가가 아니더라고 작가를 꿈구었거나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그래서 문학이 취미 이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문학을 한다는게 돈이 될까? 그까짓 돈이 되지 않은 문학을 왜 그렇게 애타게 담고 있고 놓질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고 있을까

그럼에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 돈이 되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는 걸 뻔히 알아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절절한 마음들을  듣는다

단도직입으로 들어가 왜 문학을 하나요? 왜 그만두지 못하나요 그 마음은 무엇인가요?를 묻는 무례한 질문이 아니라 주변을 빙빙 돌아가며 길게 길게 돌아서 그 중심으로 들어간다

제각각 생각하는 문학이 다르고 느낌의 결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 주변에서 아직도 두근두근거리며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글은 좋은 정보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글을 그 마음 결이 너무 잘 이해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글은 죽비처럼 사무치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누군가의 글은 그냥 좋은 글이네 하고 말기도 했다.

 

그리고 문학하는 마음에서 비록 ~하는 은 아니지만 늘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독자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새로운 저자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마음도 겪으면서도 돈이 되지도 않고 취미 이상 될 수도 없으면서  기다리고 읽고 또 여기저기 리뷰를 남기며 흔적을 쌓아가는 독자가 있다.

아래 인용한 김민정 시인의 글이 그래서 편집자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독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기다리고 들어주고 또 들어주고 글쓴이의 마음까지 헤아려보려는 그 마음이 독자의 마음이다.

 

사족처럼 붙이자면  글 내용과 관계없이 이 서문의 문장들에 마음이 간 것은

이말은 독자의 마음이고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 상담자의 마음이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이지 싶어서.. 내용과 별개를 이 문장이 확 박힌다.

끝없이 들어주고  행여 잘못 들을까 쉬쉬하며 헤아리며 듣는 마음

그래서 이파리같은 귀만 가져서 내 말은 어디 로뱉아야 하나 지칠 때도 있는 마음

 

이런 느닷없는 위로를 받기 위해

독자들은 문학을 읽고 기다리지 싶다

"너는 귀를 온몸에 달고 있는 사람. 네게는 이파리같은 수밚은 귀가 달려있어. 들어주는 사람. 감춰주는 사람. 안아주는 사람. 끝끝내 후회를 지워주는 사람.너는 그들을 그들 자체로 가장 그들 답게있게 있게 해주는 사람. 그들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듣고 혹시나 티가 섞일까 싶어 조바심내며 불안해하며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뱉어주는 사람.그래서 너는 가장 가난한사람. 이름을 지우는 존재라는 거 . 네 몸에여름 나무 이파리같은 귀들이 쫑긋 제 몸을 세우고 잘못듣고 잘 못 들을까봐 서로 쉬쉬하며 들어주는사람. 그래 그거.들어주는 사람... 들어서 주는 사람.

 

                             서문  저자에게 김민정 시인이 해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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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해서 누군가의 경험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래서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비교한 적이 없었다.

죽음이후의 과정에 대한 무지가 죽음에 대해 허무맹랑하게 마주할 수 있었는지도...

죽음은 죽은 당사자보다 남은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죽음 이후를 알지 못했고  내가 늘  보았던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었고 내가 경험한 것도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가끔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지만 노인들은 여름이면 기력이 떨어지는 거고 늘 걱정이 많은 엄마의 노파심이라고만 생각했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엄마의 말도 전문가의 평가도 아닌데 하면서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무심했던 어느 여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부고를 들은 건 한 여름 물놀이를 끝내고 사물함에서 꺼낸 핸드폰 문자를 통해서였다.

참 웃기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문자로 들었고 더구나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는 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신 거였다.

그 몇주전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늘 엄마를 통해서 건네받은 수화기를 통해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어쩔 수 없이 오가는 정중하지만 영혼없는 문답과 의례적인 걱정이 오가던 통화와 달리 그날은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딱히 대단한 내용이 있거나 죽음을 예감한 어른의  충고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라고 전화를 기다린다고 얘기했을 뿐이었고

여느때랑 다르지 않게 나도 얼른 끊기만을 바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나이를 먹고 나도 한 가정을 이루었고 돌봐야할 아이가 있어 부모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시하고 냉정한 성격탓에 장례식장에서 무덤덤해보일까 그걸 더 걱정했다

그러나 부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다.

우리나라 아버지들 누구나 그렇듯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일터에서의 시간이 더 길고

가부장적인 경상도 가난한 집 장남으로 관심과 애정을 나누고 금전적 물질적으로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던 아버지라 늘 가족은 뒷전이라는기억이 컸고 그래서 미웠고 그다지 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많이 작아진 모습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누구나 겪는 노화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예감했을까

아니면 내가 느꼈듯이 어느 순간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당해버렸을까

장례 과정은 애도의 과정이 아니었고 형식적인 관례였다

그리고 슬픔은 나중에 뒤늦게 몰아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지고 그와 내가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것도 그래서 너무 뻔하게 속이 보여서 그렇게 미웠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한다.

나이 먹어 마주한 죽음도 쉽지않았다.

 

그래서 가끔 생각했다.

차라리 어린 시절 부모가 돌아가신다면 그게 덜 슬프지 않을까

그런 분들이 들으신다면 어이없고 화가 날만한 언급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색하지않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너무너무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은 딸이 갑자기 180도 바뀌는 드라마틱한 이변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내 과거를 돌이켜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받았던 상처들 은연중 알게 모르게 일어났던 학대들이 기억나며 분노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지금 와서 따져들기엔 이후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일이며 엄마는 이미 늙었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버렸고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이해하게 되는게 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차라리 아직 좋거나 싫거나 어떤 추억이 많이 쌓인 시간이 없는 상태가 누군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에 더 쉽다고 생각했다

이미 누군가의 부재가 익숙해진다면 그리고 그렇게 성장했다면 어딘가 모르게 결핍을 느낄때도있지만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누적되어 꾸덕꾸덕해진 기억들보다 낫지 않을까 이기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점점 나이들고 성장하면서 내가 더 건강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난 이미 죽어도 괜찮은 순간은 지난게 아닐까 하는 철없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철없던 십대에 엄마랑 갈등할 때 미워하고 나만 생각할 때 그땐 엄마가 중요하진 않았다.

더 중요한 친구가 있고 장럐고민이 있고 연애가 있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먹고 엄마가 점점 자리를 크게 잡고 있었다

이젠 내 아이에게도 내자리가 좋든 나쁘든 클텐데 이제 내가 내 엄마에게 느끼듯 내 아이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자리를 잡아버렸겠구나 . 아 때를 놓쳤구나 하는 이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암소식을 들었다.

건강해고 단단하고 우리 친구모임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헌신적이고 명확하던 친구였다.

나이가 들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다들 자궁에 물혹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어깨가 아프고 그랬다.

그냥 그런 건 줄만 알았다.

연말에 허리가 아프다고 하며 만났을 때 생각보다 많이 수척해서 놀랐지만 얼마나 허리가 아프면 저렇게 걷는게 힘들까 걱정했지만 여전히 힘있고 자기 생각이 확실한 말투랑 누구든 신경쓰고 안부를 전하는 담담한 애정에 무심하게 느꼈다

그런데 그 증상들이 모두 암을 향하고있었다.

급하게 수술을 받고 이제 항암을 남겨두고 병문안을 아직 원치 않은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책속에 뇌수술과정들 그리고  부작용들 그리고 허무한 결말들

모든 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두려웠다.

내 친구도 이제 인생에 힘든 일이 한모퉁이를 돌아서 당분간은 한숨을 돌릴 시기였다.

우리는 그 연말에 모여 도데체 모인 회비로 어디를 여행을 가야햐나 침을 튀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삶은 모퉁이를 돌 때 마다 예측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매일이 그날이그날인 것이 가장 저주스러웠던 젊은 날이 지나고  지금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이 가장 축복받은 것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작가의 투병생활과 삶을 마무리하는 2부보다 그가 의사로서 살아오며 경험한 환자들이나 질병 수술등을 묘사한 1부가 더 실감이 났다.

병에 걸리고 아프고 투병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건 우리에게 현실이었다.

죽음을 직면하고 그 이후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하는 문제는 아직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친구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읽었던 책이 하필이면 이 책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주인공(저자)가 죽어버렸다는 것

무언가 자꾸 찜찜해졌다.

 

나는 철저히 타인이므로

저자는 30대에 일찍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행운의 사나이라는 생각을 했다.우리와 다른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런 저런 공부와 고민 끝에 의학을 선택했고 그 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의사로서 능력도 인정받아서 현재 힘든 레지던트시기가 끝나면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앞날까지 보장을 받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들 한때 위기를 겪었지만 끈끈한 애정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배우자

죽음을 앞두고 태어난 딸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과 마지막 시간은 함께 보내는 것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시간이 무척이나 충만했다는 생각을 해서 부러웠다.(난 속물이라..)

이렇게 자기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게 고통일 수도 있지만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좋았다.

우리는 누군가 아파서 입원을 하고 죽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어쩌면 환자 본인은 철저히배제되기도 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어려서 내 삶을 연명할지 깔끔하게 정리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기도 하고 주위사람의 정과 노력을 어쩌지 못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이끌려 갈 수도 있다. 내가 내 삶을 정하겠다는 결정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는 못 보낸다.. 라는 말은 애정이고 사랑이지만 이기적인 내 만족일 수도 있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사실 딴 곳에 가있어 집중을 하기 쉽지는 않았다

참 운이 좋구나

마지막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하고 저리가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다는 게 때로 감동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책을 얼른 반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꾸자꾸 생각이 났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고 삶을 정리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가 하는 것

의사로서 내 삶을 정리하는 것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마음

책 제목대로 숨결이 바람으로 날리는 그날까지.. 그 숨결은 따뜻했다

에필로그에서 그의 아내가 말했듯이 그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그는 비극이 아니었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죽더라도.. 이 죽음이 비극이구나 허무하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달렸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결국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지금 내 삶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주도록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언젠가 아침에 등교하던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고 좋은 표정을 보이지 않았던 그날

아이가 무심하게말했다.

이렇게 내가 등교하고 그 사이에 일이 생겨 엄마나 나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지금 이렇게 싸우고 찌뿌린 얼굴이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 될거야....

적어도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이 되더라도 후회가 되지 않은 삶...

작가도 그걸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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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1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내 존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질문

내가 처한 상항이나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가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질문

내가 내 마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을 하고 들여다 봤을까

앞뒤 전후 상황 말고 그 때 그 상황에 부딪쳤을 때 혹은 그런 말을 하거나  들었을때 내 마음이 어떠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질문

 

어떤 사건이 생기고 나면 원인을 먼저 생각한다.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 사람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원인을 알아야 나중에 예방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그러나 원인을 알고 나면 모든 상황은 원인에 맞춰진다.

우울증이었대

아하. 우울증이었구나 역시

우울증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판단도 사람에게 붙는 것이라면 우울증이 모두 하나의 우울증이 아니다.

이 사람의 우울증 저 사람의 우울증 저기 멀리 있는 사람의 우울증이 다 같지 않다.

그냥 그렇게 진단이 되고나면 처방은 한결같지만 누군가는 약이 기가막히게 잘듣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슬프고 아프고 일상이 힘들다. 누군가는 아닌 척 더 밝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땅을 파고 들어가도 자꾸더 파야 할거같아진다.

어떤 상황의 원인 분석뒤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분석이 끝나면 우울증으로 카테고리가 엮이면 제각가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김모모 박땡땡 한 공공 주아무개 등등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우울증 환자 보통명사가 된다.

그리고 그냥 잊힌다. 우울증이래...

사람이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내려가는 순간 더이상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살아가려고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쓰는 수단이 폭력일 수 있다. 불꽃같은 폭발일 수도 있다.

 

#  생각 둘

누군가의 고통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 충고나 조겅 평가나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하고 상황만 인식할대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해버리면 상황에 대한 팩트는 대부분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그 사람을 알 수도 없고 그 상황을 알지도 못하게 된다. 그 때 던지는 어떤 말도 비수가 된다.

물론 잘 되라고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 옳은 말인데 재수없는 말일 뿐이다.

 

아이가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고 힘들어할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들어주는 일이었다

들어주고 또 들어주고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은 아이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겠구나 싶을때 그런 상황이라면 이러이러한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한 번생각해보라고 내딴에는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그게 옳았다 감정적으로대응할 일도아니었고

알겠다고 방에 들어간 아이가 잠시 후 나와서 날카롭게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말은 다맞아 생각해보는 틀린 건없지 그런데 그 말이 참 재수없어"

충고조언 판단 평가가 엉뚱한 곳에서 애쓰고 있고 욕을먹는다. 

누가뭐라고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미 잘알고있을 것들인데

잘난 척 내가 다 아는 척 나섰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그런 일은 늘 되풀이 된다.

 

#생각 셋

 

어떤 감정이 드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감정은 모두가 옳고 필요하다.

긍정적인 감정은 옳고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다고할 수없다.

사람이 언제나 둥둥 떠서 살 수도 없다 가끔 땅을 파고 들어가 혼자만의어둠속에서 위로 받고 싶을 때도있다.

저 인간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심한 폭언과 함께 드는분노와 패배감은 가질 수 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절망을느낄 수도있다

사실  누구를 죽이고 나도죽는 일이쉽지 않고 옳지않은 것을 나도 알고 모두가 나를 미워하지는않을 것이다. ( 세상 인구가 얼만데 )  그러나 그만큼 감정이  격해진것 뿐이다.

세상에는 사람수만큼의 다양한 감정이 있다. 내가 아는 감정은 그저 내 감정을 기준값으로 하는 감정들일 뿐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감정의 결이 더 많이 존재한다.

모든 감정이 각각 이유가 있다. 그럴 수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정이 올라온다.

알아차리기도 하고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고 억지로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착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꿈틀 올라오는 뜨거운 감각은 당연하다.

그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옳다

그 감정만으로도 사람은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머쓱해지며 다시 힘을 얻기도한다.

그 상황에서 그감정이 틀렸다고  지적질 해서는안된다

그감정이 말이되고 행동이 된다면 그건  다른문제지만 감정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럴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알아주면 된다.

왜 그런 감정이 올라왔는지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이 들었는지

그건 이해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감정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고 한다.

감정을 눌러야 행동이 나오지 않고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고한다.

감정과 행동은 별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감정을 읽어주고 알아주면 행동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감정을 눌러서 행동이 나올 때가 더 많다.

특히 자기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늘어지지 게으르게?

누구보라고 이렇게 징징대는걸까?

내가 더 잘 했어야 하지 않을까

화를 내야 할 일은 아니었을거야. 교양도 없어 보이고 저질스러워 보였을텐데...

자꾸 자꾸 나를 점검하고 평가하고 재단한다.

내가 나에게 가장 나쁜 사람이 된다. 나는 그랬다

 

# 생각 넷

 

공감이 여기저기서 고생이다.

아이를 양육할 때 교육을 할때 인간관계에서 상담에서 모두 입을 모아 공감을 이야기 한다

공감이 뭔가 가끔 헷갈린다.

감정적 반응 자체가 공감은 아니다. 한 존재가 또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이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정서적 호들갑과 공감은 구별되어야 한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에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조각이 자극 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사실 공감하는 과정에서도 언제나 내가 우선이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하고 먼저 튼튼해야 상대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지않고 지치지 않고 지지할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이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결합된 성숙한 공감력을 말한다.

가끔 악의는 없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있다.

나는 공감하고 또 이해해서 한 말인데 가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 잊어 이젠 충분히 시간이 되었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죽은 @@만 생각하고 있을거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니가 뭔가 잘못했으니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니 행동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봐

다들 힘들고 예민할 때야 너만 그런거 아니잖아. 왜 자꾸 힘들다고 하는거야

알았어 니 말 뭔지 다 알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알았다니까

 

판단하고 충고하지 말라.

그건 본인이 가장 아프게 알고 있는 부분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배워야 하고 자꾸자꾸 연습해아 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그래서 공감은 배워야 하고 연습해서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타고난 감수성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풍부한 감정 이입과 감수성 그건 때로는 칼과 다르지않다.

 

 

# 생각 다섯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가끔은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의 경계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가 허물없이 경계를 드나드는 것이 따뜻하고 좋은 관계는 아니다.

내 영역에 함부로 침입해서 조언하고 충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마찬가지로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된다.

이건 냉정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내 가족이어도 자식이어도  아랫사람이어도 함부로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나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를 존중하듯이 타인의 경계를 존중한다.

거기서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

이건 내가 잘 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냉정해 보일까 무심해 보일까  하는 마음

서로 허물없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관계가 불편했다.

엉큼스럽다고 내숭떤다거나 뭘 그리 감추냐고 하지만 모든게 다 양지에서 햇살을 쬐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발효되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 생각 마무리

 

상담을 공부할수록 이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것도 힘들었고 대부분은 징징대는게 아닐까 하는 판단을 끊이없이 했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사람을 만나는 일에 기가 빨리는 내향적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사람을 만난 만큼 쉬어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성정이라면 상담은 맞지 않구나

자꾸  판단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눌러야 하는 게 편했다.

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말은 반사적으로 나오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입에 붙어 있는 단어들의 조합일 뿐이었다.

타고난 성정이나 감수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력의 부족... 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노력을 덜 했던 건 맞다.

내가 바싹 다가가 맞춰보고 겹쳐보려고 하기 전에 내 자리에 딱 앉아서 일루 와바바  하고 싶은 말 있으먄 해바바  뭐 그런 태도

나름 잘 듣고 해주는 건 공감이 아니고 조언이고 판단이고 총고였다는 것

충고하고 판단하는게 편하다는 건 내가 충고하고 판단당하는데 익숙했던 게 아닐까

내가 스스로 나를 공감하지 못하고 늘 판단해왔던 것

이러이러해야하는데 어쩌지

이건 아닌데 왜 이러나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하나...

스스로 조급해서 무시했던 감정들이라 나에게 감정이란 늘 낯선 대상이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에도 무디고 불편했던게 아닐까

 

다정한 전사..

다정하기만 한 게 아니라  함께 싸워주는 것 그리고 싸울 수 있게 건드려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 사족

 

사실 내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빌린 책이라 밑줄을 그을 수 없어 답답했다.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정리하고 내가 나한테 공감하는 페이퍼를 쓰고 싶었다

성별 연령 직업 위치따위 껍데기를 빼고 오롯이 인간 푸른 희망이 어떤 사람이고 지금 어떤 기분인지 왜 그런 기분인지 생각하고기록하고 싶었는데

늘 먼저 튀어나오는 건 정리 사고 그리고 넣고 빠지기

음.. 그래도 사서 제대로 읽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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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든 공통의 생각.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진실을 알아버렸는데도,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졌으니 모른 척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의외로 사람은 독하고 동시에 무심하다.

죽을 것 같은 큰 일을 겪어도 배가 고프고 요의를 느끼고 피곤하고 졸리다.

잊어야 겠다. 그건 지워야 한다고 마음 먹는다면 통째로 블랙아웃시켜 저 깊은 무의식으로 밀어넣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기억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죄의식에 시달린다면  수명은 지금보다 3분의1은 더 단축되었을 것이다.

 

내 아이의 비행을 감추다고 문제가 아닌건 아니다.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그것때문에 디너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내가 원하는 해결 방향과 다른 부모가 원하는 해결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은 그에게는 정의이고 신념이겠지만 그럼 아이에게는 큰 고난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 고 화자는 생각한다.

초반 끊임 없이 독백을 들려주며  화자가 어떠한 인물인지를 어필한다

그건 자기 입장에서 하는 자기 변명이라는 건 나중에 꺠닫는다.

화자는 자기 입장밖에 말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그의 입장이다. 그가 속물이라고 권력덩어리라고 바라본 그의 형의 반전은 그래서 오히려 신선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은 나는 누구편도 들지 못하겠다

반전에 놀라고 어이없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떤 방향으로 수습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정의롭게 지은 죄에 대해서 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어디까지가 죄인가 그리고 그에 합당한 벌이란 어떤 것인가로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는 순간 몹시 헷갈린다

이미 아이는 자기 일에 죄의식을 느끼고 미안해한다면 이미 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사죄해야할 대상은 이미 없어졌고 대중의 관심이라는 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무조건 드러내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에 자꾸 마음이 간다.

가끔 덮어주는 부모의 아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흔들린다.

큰 고난이 닥쳤지만 우리는 누구하나 상처 입지 않고 잘 해결했다.

우리 가족은 괜찮을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찜찜하지만 그래서 다른 대안은 뭐지? 라고 한다면 어렵다.

 

진실을 내가 원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약하지만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피해자도 피해자이다.

남편에게 기만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한 여자와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여자

마당있는 집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런 집을 꿈꾸며 자유롭기 위해 두 여자는 결국 손을 잡았다.

내가 하는 일은 정당하다.

사실 일을 저지르는 순간은 수없이 고민하고 주저하지만 일단 저질러진 일 앞에서 누구나 정당함을 찾기 바쁘다.

그가 폭력을 했고  이미 죽은 그가 모든 것을 뒤집어 써야 해결이 원만해지는 것이고

아이보다는 남편이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것이 더마음이 편하다는 것 그게 납득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모든 사건은 뻗어가고 마무리된다.

원하는 선에서 믿고 싶은 선에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진실은 그대로 그들의 입맛대로 이루어졌다.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들이 살아온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반만큼 시간이 흐른후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

그때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을까?

그러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과 함께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반이다.

흡입력이 강한 두 소설이지만 마무리는 계속 오래오래 남는다.

씹어도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질긴 무언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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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누군가  다른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은 이해가 가능하지만

빈 공간에서 홀로 있을 자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남자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간식거리나 혹은 음식을 사간다

함께 먹으며 즐거워할 가족들을 생각하며 뿌듯해하고 식사준비를 해야하는 아내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마음에 꽤 괜찮은 남편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음식을 건네고 자리에 둘러 앉아 먹긴 하지만 상상했던 분위기가 아니다.

아내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굳이 이런걸 안사와도 되는데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재잘거리지 않는다

마저못해 먹는 듯한 태도에 팍 빈정이 상한다

내가 얼마나 저희들을 생각하며 사왔는데 이런 무례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태로라니

남자는 스스로의 존재가 부정당한 기분이고 권위가 땅에 떨어진 참담함이며 화가 난다

자신의 화가 정당하다고 스스로 믿는다.

 

시간을 내어 휴가를 간다.

남편은 가족을 데리고 먼 길을 운전하고 좋은 장소를 알아보고 멋진 곳을 미리 조사했다

여름이니 당연히 해는 뜨겁고  사람은 많다.

기껏 바다에 와서 수영하지 않겠다는 가족이 기가 막히고  나도 더운데 운전도 하고 이렇게 길도 찾아가는데  시큰둥하고 늘어진 태도에 화가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남자는 모든 기준값이 자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베풀어주는 것 내가 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그 남자가 서운할 것이다.

나만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나만 가고싶은 곳도 아니었다.

나도 해주는 밥상을 받고 싶고 그냥 널부러져 쉬고 싶지만 가족을 생각해서 여자를 생각해서 한 행동인데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지금 먹고 싶어 사간 음식이 가족들도 좋아하면 좋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음식이 보기도 싫을 수도 있고 배가 부를 수도 있고 다이어트 중일 수도 있다.

함께 간 여름 휴가가 즐거워야 마땅하지만

하필 그때가 생리중일 수도 있고 너무 더워 그냥 시원하게 쉬는게 더 좋을 수도 있고

성격이 따라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 다 다를 수도 있다.

내 기준에 따라 적확한 표현이 아니고 만족스러운 반응이 아니라고 화를 내거나  절망하는 건

결국 내 기준값으로 세상을 상대를 재단하는 일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 특히 남자들은 모두 자기기준으로 세상을  특히 여자를 바라본다

내가 유혹하면 당연히 넘어와야 하는 것이고

저렇게 대낮에 누가 보라고 벌거벗고 있는 건  함부로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저지른 외도는 이해받을 수 있지만 상대의 외도는 힘들다.

아내는 집에서 아내로 엄마로 주부로  그냥 그렇게 익숙하게 살아주는게 좋은 거지

집을 비우고 집을 불편해하며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세상의 상식이 되는 기준값이 기울어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도 쉴 곳이 없다.

모든 걸 가지고 있고 완벽한 조건에서 외롭거나 불안한다는 건 배부른 짓이다.

 

이거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우아하고 세련된 부부

중상층 이상의 수준을 가진 부부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고 감정적인 소모없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지성적으로 인내하는 부부의 이야기

사회의 가치나 기준에 대해 의심없이 받아들이며 당연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출 줄 안다.당연히 주위에서는 찬사를 보내고 부러워한다.

사실 남편 입장에서 아쉬울 것은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때문에 가족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긴 했지만 사회생활은 여전히다르지않고

가장으로서의 대우도 만족할만한다.

가정은 쉬는 곳이고 행복하고 안락한 곳이다.

 

아내도 만족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으면 염치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안다.

자신의 느끼는 불안감이 사치라고 생각하고 누른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제 아이들도 커서 홀가분하며 살림을 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안하고 불편하고 어딘가 안식처를 갖지 못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머리에 꽃을 꽂고 미친 여자처럼 되지 않은한 모든 것이 옥좨고 답답하다.

그렇지만 미친 여자가 되는 일도 쉽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혼자만의 방을갖는다

많은 방이 있는 집에서 안락하고 쾌적한 방도 안정을 주지 못하고

어느 정도 값어치를 하는 시내 호텔방도 불편하다.

결국 여자는 허름한 모텔의 19호실에서 안정을 얻는다.

주변의 착각이나 편견이 걸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든 보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남편의 은근한 폭력에 그 방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극단적인 선책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것은 그게 유일한 방법이므로

 

불륜을 저지른다는 오해가 차라리 낫다고 믿을만큼 혼자만의 방이 갈급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구마구 공감한다.

여자는 자기가 될 수 없을거라고 믿었던 미친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결국 첫문장처럼  세련되고 지성적인 성격이 극단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타인의 이해못할 선택에  지독히고 절실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단편에서 인물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미친 스토커같은 남자를 피했더라면

옥상에서 굳이 선탠을 해야했나

그렇게 실연을 하고도 사랑이 하고 싶을까

남의 부부일에는 끼지말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배부르고  윤택하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나의 기준점 역시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받아들여진 것들이다.

그게 편했으므로

 

노작가의 영국의 상황이 지금 21세기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게 슬플 뿐이다.

세상의 절반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기준점은 지금도 여전히 단단하고 유효하다.

그래서 별을 많이 주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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