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말하는 돌봄노동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사이 느끼는 것 중 하나

개개인의 선한 의도 혹은 선한 행위에 기대는 것은 참 위험하다.

단순하게 작은 원안에서의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선한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부과하고 있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한 행위따위는 없다.

나는 좀 비관적이긴 하다.

사회에서 터지는 여러가지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혹은 복지정책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은 다양한 사각지대를 알게 되면서

선한 의지따위보다는 강한 정책과  처벌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선한 의지들이 있다면....

사회구성원이 의식을 바꾸는 교육을 통해서...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선함을 기대하기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어가는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애가 타고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고 있다.

인권이 좀  눌리더라도,  비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더라도 강한 정책으로 일단 누르고 강제시키는 일들이 필요할 때가 많다.

돌봄경제가 담당하고 돌봄 노동으로 치부되는 곳에서는 일단 모든 정책이 그리고 모든 대처가 일이 터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폭력이 일어나 누군가 다치거나 해를 입기전에 미리 대처할 수 없고

누군가 나를 지독하게 따라다녀도 그가 칼을 들고 내 목을 긋지 않은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경찰이 해줄 것도 없다.

구속된 남편이 돌아오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또 한번 폭력의 바람이 불게 뻔하지만 일단 그 남편이 돌아와 피바람을 일으키기전에 미리 준비할 대책이 없다.

일단 터져야 도움을 줄 수 있고 피해가정으로 폭력가정으로 인식이 되고 시스템이 돌아간다.

물론 아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햇병아리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돌봄이라는 건 참 하찮게 여겨진다는 거다.

그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뼈를 갈아서 삶을 갈아넣어서 그 자리를 채우고 지켜나가고 있지만

그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또다른 그가 다시 그 자리를 채워도 아무렇지 않다.

미묘한 돌봄의 섬세한 감각따위는 돌봄을 받는 대상이 느낄 뿐이지만 그는 아무런 힘이 없다.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취약층도 어떤 힘이 없다.

그걸 지시하고 감독하고 통제하는 기관이나 상부는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일을 하거나 그냥 관행대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하찮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순간

모성이 없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욕을 듣기는 참 쉽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누군가도 다른 일자리를 얻는다면 당연히 그만두고 싶어하는 일이지만 누구도 하지않으면 안되는 일

그것이 돌봄노동이고 그것의 가치다.

 

이러면 안되지만 가끔 강력한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법령이나 제도가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인식의 전환은 그 다음으로...  강제하다보면 인식도 바뀌는 거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쉽게 들어오진 않는다.

많은 예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게 미국 제도여서 그랬던거 같다.

뭐 우리라고 많이 다르진 않지만 보편적인 듯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미국적이어서....

그래도 읽을만하다. 경제문제에서 돌봄노동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건 당연하지만 획기적인 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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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4-25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제제에 대해 저 역시도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느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하는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고요.
복지 정책 역시 좀 더 강제적인 시행이 필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또 너무나 먼 일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푸른희망님^^
 

한결같다는 것이 그래서 좋았다라고 할 때도 있고 그래서 힘들다라고 할 때가 있다.

한결같은 그 사람 그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그대로 한결같이 그 사람일 뿐인데 그 존재일 뿐인데 내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한결같아서 좋았던 그가 아직도 여전하다는 게 갸우뚱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고 싫어질 수도 있게 한다.

결국 내 마음이다.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읽은 정희진의 책의 첫인상은 쨍하다였다

한겨울 깊이 묻어놓은 김장독에서 꺼내어 처음 들이킨 동치미의 국물과 처음 베어물은 동치미 무의 맛같은 거였다. 알싸하고 차갑게 목을 넘어가는 그 맛. 매운데 달콤한 복잡한 그 맛이 어딘가 슴슴하면서도 자꾸 먹고 싶고 기억나는 그 맛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정폭력이라는 현실을 알게 했고 여성폭력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했다.

물론 이전에 교육을 받으며 알고 있었지만 복잡한 그것들을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사실적으로 직면하게 했던 저자였다. 계속 찾아 읽으면서 젠더폭력과 여성문제등을 알게 되고 정리하게 된 나름 선생익도 했다. 그 이외에 다른 저자들의 글로 읽기가 확장되었고 교육이나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저자들은 직접 강의를 듣는 기회를 가졌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많다는 정희진의 강의는 한 번도 인연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글들이 아직도 읽을게 남아서 아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찾아다닌 교육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지금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두권으로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말에 당장 구입했다. 읽었다.

나는 독서는 저자에서 시작되지만 독자에서 마무리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 전해야 한다고 믿는 말들을 글로 ㅆ고 출판하지만 결국 독자에게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 말과 글들이 독자에게 전해지고 독자가 그것을 흡수하고 소화하고 제 것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독서는 완성된다고 믿는다.

저자의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든 각각의 독자는 자기의 위치와 입장 그리고 그 순간 책을 선택할 때의 마음과 목적이 독서를 완성한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목적이 완벽하게 합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미묘하게 어긋나지만 그래도 의미는 전달되는 경우가 많을것이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곳이 꽂혀서 닿을 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아 야를 전하고 싶었지만 독자는 책에서 오요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저자는 이부분을 정말 핵심이라 생각해서 오랫동안 공들여 생각하고 연구해서 기록했지만 독자는 저자가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저부분 저문장에 꽂혀 인생의 책으로 올려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독자의 오독이라 잘못된 걸ᄁᆞ? 그건 아니다. 그냥 독서는 그렇다. 저자의 마음이 독자에게 닿지만 떠날 때의 그 마음과 의도가 고스란히 제대로 닿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입장이 있고 위치가 있고 마음이 있으므로

수능이나 시험을 위한 독서나 문해라면 저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알아차리고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요한 건 독자의 마음이고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었을 때( 이번 도서와 비슷한 독서에 관한 기록들이라)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다가 이내 포기했다. 일단 내가 찾아 읽기엔 너무 묵직하고 깊은 책들이었고 대부분 절판되기도 했고 그리고 밑줄을 모든 페이지에 다 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았다고 썼을 것이다. 어디가 왜 좋았는지도 썼겠지만 결국은 좋았다고

그리고 이번 독서에서 나는 조금 갸우뚱했다. 한결같아서 ...

여전히 깊고 어려워 내가 접하기 힘든 책이고 절판된 책들이었지만 그것때문은 아니다.

왜 이렇게 읽었을까? 왜 이렇게 생각이 튀어버릴ᄁᆞ? 하는 부분들에 갸우뚱하면서 여전하 공부하고 생각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저자의 모습에 한결같아서 좋다가 한결같아서 괜히 뚱하다가 그랬다. 그도 어쩌면 원 책의 저자의 생각에 자기 생각과 입장을 얹은 독서를 해가고 있었고 나 역시 그의 책을 읽으며 내 입장과 생각을 얹을 뿐이다. 어쩌면 그도 한결같고 나도 한결같이 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독서를 했구나

좋다 별로다... 라는 판단보다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건 나랑 다르구나. 이런 문장은 내가 생각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거였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읽었다

저자가 변하거나 한결같거나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것처럼 부지불식간에 내가 변하고 있고 조금씩 꼰대는 아니더라도 곤대가 되고 있어서일지도 .. 모를 일이다.

이 시리즈가 5권이 나온다고 하는데... 앞으로 더 사볼지는 조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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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상처는 남의 상처일 뿐이다.

타인의 아픔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지만 그냥 비슷한 모양새일뿐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 비슷하고 같아서 그게 그거 같아보일 수도 있지만 자기에겐 자기의 아픔이 유일하고 강하고 독해서 다른 것은 비교할 수 없다. 상처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우열을 따질 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의 상처에서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냥 타인의 아픔에 대해 내가 알아갈 뿐이다.

힘들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도무지 상상할 수 없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어쩌면 공감을 훈련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을 간접 경험하기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모르고 넘어가는 것보다 낫지 않는 위안한다.

내가 몰라서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서 이해할 수 없어 무시하거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일은 없도록 ... 가능한한 요만큼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다.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손타지 않은 아이.. 라는 말이었다.

능력이 뛰어나서 도드라져서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스타일도 아니고 말썽을 부리거나 너무 손이 많이가는 처리곤한한 문제아도 아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묻혀가는 아이

조금 무심해도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하고 도드라지지 않고 조금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그런 아이 나는 그런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지만  못하지도 않았고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간 아~ 할만큼 못나지도 않았고 예민하게 신경써야할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둔하지도 않은 그런 아이. 그냥 중간은 하는 그래서 좀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칭찬하고 잘 해주면 순종적인 채로 나이 드는 아이 뭐 그런 아이

사실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샘도 많았고 내가 가진 것과 타인이 가진 걸 비교하느라 혼자 속을 복달거렸고 실망하고 세상 막막하게 우울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나지 않았다. 내향적이라 말이 없고 뚱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서 고집있어 보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똥고집을 부리고 몽니를 부리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형제중에서도 중간에 위치해서   언니 챙겨야 하니까 잠깐 저 집에 동생이 아직 어려서 잠깐 이쪽으로 여기저기 옮겨 놓아도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혼자 잘 놀고 말도 잘 듣고 밥도 찬투정 없이 잘 먹고 잘 자서 맡아주는 사람도 점차 무심해지는 그런 아이였다.

혼자 오래 외가집에 맡겨진 기억도 있고 명절에 이동할때 한차에 타기에 넘쳐서 혼자 다른 가족과 타고 간 기억도 있다. (언니는 커서 안되고 동생은 어려서 안된다는 적확한 이유가 있었고 나는 나이는 어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성숙하지도 않아서 적당해야했다.)

그렇게 손이 가지 않은 아이는 그렇게 컸다.

물론 매년 매 순간 온순한 아이이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냥  내가 하고 말거나 참고 말거나 하는게 편했다.

힘들어 보이는 엄마에게 나까지 무게를 얹고 싶지 않았고 언니나 동생에게 샘내는 걸 들키는 일이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고 대낮 빈집에서 혼자 낮잠에서 깼을 때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마루에 앉아서 혼자 쓸쓸했었지만 누구에게도 그 감정을 말한 적이 없었다.

책가방도 내가 싸고 내 옷도 내 물건도 내가 챙겼고 누군가가 주는 내 몫에 대해서 주저하지도 않았다. 챙길건 챙기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니까 손이 안가는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정도 가지 않은 아이였을 수도 있다. 대단히 잘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페끼치는 것도 싫고 뭔가 나누기보다 그냥 다 주고 마는게 더 편하다보니 깍쟁이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아이일지라도 누군가 관심을 주면 참 좋았던 거같다.

다만 좋은 티를 이상하게 냈다는게 문제지만 틱틱거리는 거.. 뭐 그런걸로

 

부모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상식적이었고 책임은 강했다.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던 거 같다. 상대가 원하는 걸 주기보다 내가 줘야 한다고 믿었던 것을 주었다. 그들이 주었다는 걸 잘 알았기에 원망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이를 먹어 보니 누군가를 공감하는 게 많이 서툴고 타인의 아픔에 마음이 저릴 만큼 이해가 가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곁에 있어줘야할지는 너무 어렵고 서툴렀다.

원만하게 잘 자랐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고 어떤 부분은 넘치게 가졌으나 어떤 부분은 지독하게 매말라서 언제든 바싹 바스라져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모르고 나이를 먹었다.

사랑과 공감을 글로 배워서 머리로 익혔다.

감정이나 정서라는게 타고난 것보다 배우고  흉내내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고 연습해서 익히는 거란걸 몰랐다.

나는 내가 사람들을 열외시켰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냉정하게 그냥 내가 원하지 않아서 상대를 누락시켰다고 믿었다.

그냥 티나지 않게 조용히 예의있게

그런데 사실 나는 나를 누락시켰다.

나를 제외함으로서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상처받을까봐 미움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조용히 티안나게 한 구석에 자리 잡아서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이건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믿었고 그래도 힘든 관계에서는 내가 조용히 정리하고 제외시켰다 믿으면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투명해져갔다.

 

사실 나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고 싶었다.

저 녀석때문에 내가 못살아 하면서 엉덩이를 맞아가면서도 뭔가 관심을 받고 토닥임을 받고 싶었던 거다.

뛰어나서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건 너무 먼 길이라 그냥 손이 많이 가고 조금 어딘가 어설프고 어리석어서  자꾸 지켜봐야하고 걱정해야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같다.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 같다.

깔끔하게 정리되고 매사에 주고받는 게 딱 떨어지는 그런 거 말고

그래서 돌아서면 잊히는 거 말고

 

이제 나를 사랑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기로 괜찮다고 등을 쓰다듬어주기로 하고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갈증나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책이란 어쩌면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 모양이다.

심리치유서를 참 많이 읽으면서도 늘 머리로 받아들였다.

이런 케이스 저런 케이스를 정리하면서 딱딱 맞게 서랍을 정해 넣어두었는데

지금 이순간 어쩌면 이렇게 무언가를 흔드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금 이순간 내가 조금 말랑말랑해져서 어떤 위로를 원하는 딱 그런 순간이었고

그 때 이 책이 내게 온 모양이다.

때로는 이렇게 기막힌 핀트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사는 일이 꽤 따뜻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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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지금은 없어진 시네마 선재에서 본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였다.

자식을 다 키운 나이 든 어머니 역할이었는데 참 이질감이 드는 엄마였다.

아니 이질감만 드는 건 아니었고 뭐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그려지는 엄마는 아니었다

흔히 동양적인 혹은 한국적인 사회에서 그려지는 희생하고 배려하는 나이든 엄마는 아니어서 그래도 명색이 가족영화인데 엄마가 너무 속물스럽고 튄다는 느낌이 참 낯설었다.

그런데 사실 현실에선 그런 엄마가 참 많다.

내 엄마도 그런 면이 있고 주변 누군가의 엄마를 떠올려도 그렇고 이제 엄마가 된 내 모습도 마냥 푸근하고 따뜻한 존재만은 아니다.

자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모성은 다르게 보면 내 자식만 위하는  이기심과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일부러 힘들게 하기도 하는 악감정을 품기도 한다. 기억은 적당히 내가 편리하게 왜곡해서 자식들에게 심어주기도 하고 내가 보기 불편한 것들은 보이지 않은 척하고 좋은 것만 취하고 싶은 속물적인 마음도 없지 않다.

엄마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엄마 아닌 다른 모두에게 완벽한 엄마가 편리할 뿐이다.

키키 키린이 연기하는 엄마는 그랬다.

완벽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고 오히려 가족을 옥좨기도 하고 마듬대로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뭉스럽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쩔줄을 몰라하면서 돌아서면 픽 하고 냉소를 품어내기도 한다.

꽤 낯설지만 매력있고 닮고 싶기도 한 엄마였다.

 

그 이후 여러 영화에서 그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기면>  <앙> <도쿄 타워>에서 그녀는 늘 엄마였고 소수자였고 억척스러웠고 떄로는 속물스러웠고 한없이 동동거리면서도  무심하게 태연했다.

마지막 작품이었던 < 어떤 가족>에서는 모든 면을 품어내며 무심하게 그려냈다.

꽤 익숙한 크리세같으면서도 그녀가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글을 읽는다.

아니 구체적으로 읽었다기보다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책의 구성은 조금은 쉽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을, 여기저기 그녀의 인터뷰를 모아서 전체 맥락이 아닌  그 중 하나의 질문에 대한 키키 키린의 대답을 모았다.

하실 그  말도 그 질문에 대한 전체 맥락인지 아니면  괜찮아보이는 몇몇 구절만을 뽑아온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단편적인 말 몇마디라면 그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를 더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얻고 싶은 건 내가 몰랐던 키키 키린을 더 잘 이해하고 알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느꼈던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고 어쩌면 오해일 수 있지만 내가 가진 그녀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것일테니 책의 편집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짧은 인터뷰의  대답에서 그녀의 성격이 잘 보인다. 아니 내가 다시 확인한다.

그녀는 쉬운 삶을 살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 삶에 무릎꿇지는 않았다.

하나의 포커페이스일 수도 있고 진실을 감추기위한 방편일 수 있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가 있다. 매사가 심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았다.

심각해서 될 일이라면 충분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지만 그렇게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냥 재미나게 받아들여야하지 않겠어요? 라는 무심하고  시크한 답변들을 듣는다.

그럼에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가 보인다.

누군가의 말한마디나 글 한 줄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나는 글이나 말을 통해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내가 몰랐던 다른 면을 알게 되어 더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행여 내가 기대했던 그 사람이 아니어서 실망하게 되는 게 두려워서 그냥 내가 아는 모습이 전부일 거라고 믿고 싶어서 말이나 글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찾고 내가 판단한 대로 받아들이며 읽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키키 키린은 여전히 유쾌하고 유머있고 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그 이면에 따뜻함도 가지고 있었다. 살아보니 별거 아니더라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라고 말한다.

결혼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그 후회조차 내 선택이었고 뭔가 내게 좋았다고 말하고 배우 생활에서 뭔가 최정점을 찍겠다는 각오는 없지만 이렇게 길게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있다.

어려 작품에서 보여주는 한없이 가볍고 속물스럽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수 없는 깊이마저 느껴지는 그 감각을 여기서도 발견한다.

 

약간 사시가 있고 나중에 들으니 한 쪽 눈이 실명되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이 약간 코믹하고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서늘한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 처럼

그녀가 연기하는 어머니 할머니 어떤 소수자는  쉽게 주변에서 본듯한 인물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독특한 인물이다. 그건 무거운 건 가볍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연기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이제 더 이상 작품에서 그녀를 만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필름작품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화면에서 말하고 움직이고 표정짓던 그가 글로 보인다.

그를 모른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그가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한 번 읽어볼만하다.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려 들지도 말고.

 

 

그렇게 나도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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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40대처럼  보인다

혼자 살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 이곳이 익숙한 곳인 동시에 몹시 어색하고 불안한 곳이다. 이웃을 잘 알고 있고 동시에 낯설다.

관계가 서툴고 요즘말로 인싸는 아니다.늘 경계에서 머물면서 주위를 관찰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곳에 있는 스스로를 관찰하고 탐색한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자꾸 읽다보면 에세이같다

이야기가 없고 그저 그 주인공이 관찰하고 느끼는 것들만 묘사되어 그런 모양이다

다만 늘 불안하고 낯설어 하는 모습

오래 살았던 장소이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자꾸 흔들리고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 남같지 않다

그녀는 왜 삶에 이리도 불안할까

친구도 있고 다정한 이웃도 있다. 안정된 일도 있고 어쩌면 그 일에서 성공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몇번의 뜨거운 연애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인데

그녀는 뿌리가 뽑혀 낯선 곳에 심겨진 식물처럼 불안하고 적응하기 힘들어하는것 같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 보여지는 풍경들을  그녀의 눈을 통해 느낀다

어떤 근사한  드라마틱한 일들이 벌어지진 않지만 소제목들의 짧은 이야기는 늘 휘몰아치는것같다묘사되지는 않지만 유년시절의 불안과 외로움이 있고 결혼하지 않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지만그 선택에 대해 늘 흔들리고 있으며 현재 만족하면서동시에 불안정하다

 

나는  어느 순간 삶을 계획하는 것과 되돌아보는 것의 비중이 비슷해진 나이가 되었다

되돌아 보며  추억만을 하기엔 현재 인간 생명이너무 많이 연장되어버렸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하기엔 세상에 나를 받아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행동에  대해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모르겠다.

아직도 연애를 할 수 있고 무언가 근사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동시에 무탈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밤에 눈을 감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일상들

그리고 평화롭고 동시에 불안하다.

줌파 라히리의 글들이 그냥 밋밋하면서 동시에 자꾸 어딘가를 쿡쿡 찔러대는게

지금 내가 느끼는 걸 고스란히 글로 옮겨놓았기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과 꼼짝않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싶은 마음

새롭게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이번 생엔 다 틀렸어 하는'마음

지금 이순간해야 할일에서 도망치고싶은마음과 동시에꾸역꾸역하고있는 내몸

그리고 오래 살아 익숙한 이 곳이 순간 낯설고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나를알지 못할거라는 두려움들이 순간순간 찾아온다

쉽게 뿌리를 옮겨 심고 싶다가도 어딘가 낯선 곳에 다시 옮겨가야 할지모른다는 엉뚱한 두려움을 느끼는 일 그래서 익숙한 것들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해서 도데체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지금 이 지상에 있긴 한지 하는 생각들

그런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 작은책에 씌여 있다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자꾸 에세이로 느끼는 건

이 책에서 주인공을 자꾸 저자에 포개서 바라보게되고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작가와 비슷한 연배의 독자를 자꾸 또 덧쒸워서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내 직관대로 판단하면서

그녀도 외롭구나. 불안하구나 하고 혼자 위안하고

때때로 이렇게 읽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화도 냈다가 이건 그냥독서일뿐이라고 변명도 하며 한권을 읽는다.

 

 

 

아빠, 아빠를 만나러 왔어요.꽃다발을 드릴게요. 아빠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이런 게 무슨 쓸모가 있니?

망자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아빠를 만나요. 치장을 하고 우편함처럼 줄지어 땅에 묻힌 영혼들 하지만 아빠는 늘 아빠의 벽감 안에 있었어요. 뚝 떨어진아빠의 왕국에서 사는 걸 좋아하셨죠.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직까지 난 아빠와 엄마 사이의 거리를채우려 애쓰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겠어요? 아빠는 어쩌다가 엄마와 삶을 함꼐 나누고 아이를 만들기로 결심한 거예요?  지금까지도 아빠는 내 머릿속에서 엄마 일미터 앞에서 걸어가요. 어린 시절 나무 그루터기 사이의 줄이고 싶던,아니 지우고 싶던 그 거리는 아빠와 어마 사이의 거리와 다름없었어요.

아빠는 엄마와 내가 귀찮게 굴면 벗어나기만을 바라면서 문제를 더 어렵게 했어요. 나와 엄마가 싸우는 동안 아빠는 암묵적으로 분명히 말했어요. 뭘 원해. 나는 상관않겠어 아빠는 잔인하고 비겁한 그 두문장만을 되풀이했어ㅛ.그래서 난 아빠를 위험한 상황에 끌어들이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아빤 상관있었어요 나와 상관있었어요. 아빠는 아빠의 그 작은 묘소에 들어가 있는데도 여전히 지금도 나와 상관있어요. 그래서 난 아빠의 차가운 묘소 앞에서 지금까지도 아빠를 용서 못해요. 아빠가 끼어들지 않았던 것 날 보호해주지 못했던 것. 보호자의역할을 거부하고 아빠 자신을 폭풍우 치는 집안 환경의 희새아로 생각했던 것을요. 용암은 아빠를 스치고 지나가지 못했어요. 아빠는 이미 주변에 대리석 구조물의 아주 높고두꺼운 담을 빙 둘러쳤거든요.

어떻게 늘 어둠 속에 있을 수 있어요?  아빠는 환한 불빛을 싫어해서가능한 모든 방의 물을 여기저기 끄고 다녔어요.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게 다 낭비야" 하고 투덜거리곤 했어요 일요일. 아무 일 없이,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 없이, 탈출구도 없이 우리와 온종일 있어야만 했을 때 아빠는 거실 안락의자에 몸을 푹 누이고 당신의 어둠 속에 계셨어요. "다 시간 낭비야" 하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난 뒤 말씀하셨죠

이젠 더는혼자 산택도 못해요.아빤 더는 움직이지 못해요. 아빠는 바다가 절대 흔들리지 않기를원했어요. 아빠는 모두와 다 잘 지내고 방해를 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바다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빠는 내게 그걸 요구했어요. 아빠의 절약을 받아들이고 아빠는 헌신적인 사람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집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달라고 요구했어요.

우리가 여행 가방을 싸서현관에 나란히 놓은지 몇 시간 뒤에 아빠는 갑자기 열이 났죠. 다음 날 아침 새벽에 떠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자정쯤 축 늘어졌어요. 겁에 질려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병원에서 이틀쨰 되는 날 신체 기관이 이미 기력을 다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우리는 함께 극장에가기로 했었지요. 아빠와날 이어주는 끈.아빠가 열정을 품었던 유일한 거였죠. 아빠는 다른 이들의 갈등에 몰두한 채 극장의 어둠, 아빠만의 그 자리에 있는 걸 소중히 여겼어요.한 달 동안 난 여행가방을 풀지 않았어요. 아빠 때문이 아니라 극장표, 날아간 그 모험 때문에 가슴이 아팠죠.

 

이 짧은 글은 어느 시간 내 마음과 너무 닮아서 순간 멈칫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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