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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노트...

 

 

어떤 추리기법 혹은 반전에 대한 놀라움 보다는

작가가 치밀하게 묘사한 학교 폭력 왕따의 상황. 그 속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생생한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책이다.

사실 크다란 트릭이나 마지막의 반전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절망노트의 이야기가 숀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그 창작물속에 가득한 한 아이의 분노와 절망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학교 폭력 그리고 왕따문제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학교를 벗어나서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왕따는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

대놓고 미워하고 폭력은 쓰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학교폭력이 아니다.

당사자들도 점점 진화한다.

드러나는 폭력 따돌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가해자라는 걸 드러니지도 않고 저쪽이 피해자라는 인상도 심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이고 우리는 아직 어려서 도에 지나치는 장난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하고 험한 짓도 하지만 그건 친하기때문이다. 친구끼리 못할게 뭐가 있으랴

혹은

우리는 너를 미워하지도 싫어하지 않아. 그냥 안놀 뿐이야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서로 맞는 사람끼리 더 친하게 지내는 거고 불편하면 함께 할 수 없는 일이야

다만 그래서 우린 너랑 어울리지 않아.

굳이 친하지도 않는데 미소짓고 인사하고 하는 거 좀 우습지 않니?

그렇게 지지리 궁상떨지말고 쿨하게 대할 수 없니

넌 그냥 유령이고 투명인간일 뿐이지...

 

딱 꼬집어서 뭐라고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

누가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차라리 혼자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면 편하다

사람에게 둘러싸여 하하호호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혼자라는 사실은 치떨리게 무섭고 슬프다

스스로 무기력해지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것이 슬프다.

 

"교사가 가장 맹목적이야"

언제나 개방되어있다 언제나 상담가능하다 언제나 말해라 무슨 일이든

하지만 툭까놓고 말해서 그들은 덮어버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큰 말썽은 없었으면 좋겠고 저희까리 알아서 화해하고 잘 지내면 좋겠고

겉보기에 멀쩡하고 친해보이면 보이는 걸 믿고 싶고

우리반에는 아무일이 없다 아무문제가 없다고 혼자 주문을 외우고 믿다보면

저절로 그렇다고 보인다.

혹은 정의감으로 해결하려는 일들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가 되고 더 큰 왕따나 폭력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교실밖을 걷도는 아이를 교실로..

우리에 갇힌 맹수는 그 스트레스를 우리안 누군가에게 풀어야 한다.

치기어린 정의감은 또다른 희생을 낳는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숀의 부모처럼 나설수 밖에 없을까

누구도 모르게 뒤에서 그렇게 찔러버리는 것..

사실 지금 공공연하게 여기서 도는 이야기도 그렇다.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내가 뒤집어쓸 수 있는 문제이다

미리미리 증거를 잡고 정황을 모아서 나가야한다.

그리고 강하게 나가야한다.

이것이 왕따나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들 한다.

 

어떤 전문가도 말했다.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의 피해자인경우

가해아이에게 내 아이와 잘 지내라거나 부탁하지 말라고

넌 친구도 아니야 이제 더이상 내 아이에게 접근하지마

니가 어떤 호의를 가지고 접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후 너의 모든 행동은 내 아이에데한 공격이라고 생각하겠다.

친하게도 지내지마라

니네 엄마에게 말해도 좋다. 절대 내 아이 가까이 가지마라

 

화해가 아니라 경고가 약이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무심하고 무자격의 부모가 아이에게는 가장 크고 쓴 독이 된다는 것.

아주 사소한것이 뜨끔해지고 무서운 것이 되기도 한다.

 

십자가..

 

 

 

왕따 혹은 학교폭력 이후의 이야기다.

읽는 이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왕따를 당하던 소년이 죽었다.

그 소년의 유서에 절친으로 그리고 미안했던 친구로 거명되었던 두 학생

그리고 죽은 아들을 처음 발견한 아버지

형을 잃고 거의 형의 부모로만 살아가던 부모를 둔 학생의 동생 이야기다.

왕따를 주동하는 사람은 누가 보던 나쁜 놈이다.

죽도록 죄값을 치르고  처절하게 반성해야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옆에서 아무말 없이 모른 척 했던 사람들은?

아이를 잃은 부모는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 한가지 더 우리 교실에는 폭력도 왕따도 없다고 굳게 믿었던 교사의 입장도 궁금하다.

 

말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가르쳐 준 사람은 혼다씨였다.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뿐 마음석으로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나이프의 말은 가슴에 박히지

당연히 굉장히 아파.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대로 치명상이 되는 일도 있어 하지만...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때는 찔린 순간이야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드에 진 채 계속 ㅓㄹ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ㅗㄱ 그 말ㅇ르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75p

 

아무짓도 하지 않았던 아이와 어른은 등에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이 책의 미덕은 거기에 있다.

사실 왕따가 생기고 누군가 죽어버린 후

우리는 쉽게 그 일을 주동했던 누군가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나쁜 놈이라는 이름을 씌우고 그에게 모든 것을 다 걸어버린다.

우리는 그저 몰랐다고 마음아프다고 미안하다고.. 혹은 그 누군가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돌아왔을지 모를 죽음이나 죄값은 누군가가 대신 해주어서 다행이라는 은밀함을 숨긴채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가지지 않게 혹은 누군가 또 다른 희생자가 가해자가 생기지 않을 방법들을 연구한다.

그리고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는 쉽게 잊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게 쉽게 잊혀질 일일까

어떤 잘못이 생기면 잘잘못을 가려야 하고 철저하게 사과를 하고 부담을 안아야 한다.

아이의 앞날을 위해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누군가를 그릇되게 보호하고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 책은 어쩌면 일본이라는 사회가 이미 왕따나 폭력에 익숙해져서 나온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 아이들이 모두 강제적으로 죽은 아이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도록 하고

그 곳에서 피해 아버지가 원하는 (혹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벌한다.

가해자는 영정앞에 오지도 못하게 내쫒아버리고 모른 척 한 댓가로 살아남은 아이의 멱살을 잡고

가해자의 이름이 언론에 그대로 드러나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해자의 인권을 빙자해서 이름을 지우거나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뼈저리게 반성하지도 않고 모른 척 얼굴을 돌린 모든 이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아니니 다행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그것뿐이다.

 

누군가 그렇게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처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어가진 않는다.

왜 하필 나일까

우리가 죽은 슌스케를 제물로 바친것처럼 나 역시 그 녀석때문에 살아남은 제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걸 등에서 내려놓지는 않는다.

 

왕따는 어린아이같은 짓이 아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문제를 어린아이의 유치한 잘못으로 끝내버리면 안된다.

왕따 문제를 무 겁게 말하는 평론가나 앵커가 있으면 "왕따는 교육의 황폐화나 마음속의 어둠처럼 그렇게 거창한게 아니야"라고 반박하고 싶었는데 반대로 가볍게 다루어도 화가 치밀었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 내린 결론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그로인한 생채기를 한참을 들여다 봐야한다.

쉽게 사회문제로 치부하거나 어린아이들 이야기로 넘기기전에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상처받은 사람. 두려운 사람.. 죄의식을 지니면서 안도하는 사람. 만만한 누군가를 건드리면서 화를 터뜨리는 사람. 소외받은 사람

누구든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문제다.

나만 아니면 괜찮은게 아니라

누구라도 아니어야 할 문제다.

왕따는..

 

 

앞의 이야기는 피해받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이야기라면

두번째 이야기는 불의앞에서 눈을 감았던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의 소설은 흥미있게 문제를 파고 나갔고

다음 이야기는 담담한 후일담을 적고 있다.

 

개인적으로 십자가가 더 와닫는 이유는

왕따문제에서 간과하기 쉬운 주변인의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점이었고

어떤 감동도 극적인 상황도 없이 책을 계속 잃게 한 힘에 있었다.

더 이상 이야기속의  혹은 뉴스 속의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얼마전 큰아이 반모임에서 누군가 이야기했다.

아이들끼리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선생님이 일을 너무 크게 보시는 거 같아

아이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얼키다가 그렇게 풀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야.

 

그런데 아이들 끼리의 문제야.

장난이야. 그냥 커가는 과정이지.

이런 사소한 무심함속에서 오늘도 누군가가 만신창이가 되고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할 거라는 거다.

누군가는 천지처럼  슈스케처럼 혼자 죽음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유군이나 사유처럼 혹은 만지처럼 상처만 짊어질 수도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왕따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게 계속되는 모양이다.

친한 친구의 끈질긴 장난질이나 어느날 갑자기 무시는 소녀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인듯..

사실 그건 나이먹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건 정말 섬뜩했다.

사건이 섬뜩한게 아니라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사고는 일어났고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한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치욕스럽고  추잡한 연속앞에서 누구나 이렇게 되지 않을까

살아남은 내 아이를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변명을 안할 수 없다.

결국 이런 괴물같은 부모아래 괴물같은 아이가 나온다고하면 너무 지나칠까

읽는 내내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내 아이가 왕따 피해자라면 이런 짐승만도 못한 부목 어디있겠냐 싶고

내 아이가 주동자거나 가해자라면 나라고 이렇게 후안무치하지 않을 자신이 없ㄷ.

그리고 이건 더 이상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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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하철 묻지마 살인이라는게 있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무심히 차를 기다리는 순간 누군가... 내 뒤로 말없이 다가와 나를 밀어버린다.

철로위로... 그리고 죽는다.

거리를 걷다가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정말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분노와 불안으로 죽음을 맞는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분노가 불길이 되고 죽음이 다가온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특히 고전류에서  셜록이나 미스마플 혹은 포와로에서는) 죽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무언가 잘못된 일들.. 내가 마음깊은 곳에 숨겨두고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린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결국 뭔가 원인이 있었다.

비록 죽은 자는 알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건을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이유가 있었다.

나를 모욕했다. 우리 집안을 풍지박산나게 했다. 예전 누군가를 상처줬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로간에 사람을 죽이는 건 옳은 행위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 이유가 있었다.

모든게 들통나고 후회하고 괴로워할지언정 혹은 홀가분하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더라도

그 순간의 이유는 절박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유가 없다.

내가 길을 가다가 죽는 이유, 사고를 당하는게 이유가 없다.

누군가의 분노앞에 그저 내가 그 시간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이유가 될 뿐이다.

 

요즘 아이들 사이의 왕따가 그렇다고 한다.

너무 잘난척을 해서 혹은 너무 찐따라서  누군가를 왕따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냥 ' 나만 아니면 되...."

그것 뿐이라고 한다.

물론 깊이 파고 들면 뭔가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이미 저질러진 사건 사고위에 이유를 만들어 입힐 수도 있고 그것이 이유라고 믿어버리면 그렇게 되어버리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워서도 아니고 나만 아니면 상관없는 이유로 왕따는 너무 무서운 일이다.

아니다.

이유가 없지는 않겠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내 아이가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귔다, 아이에게 단짝이 생겨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전에 전교적인 왕따였다고 한다.

내 아이만 전학을 와서 혹은 다른 학교에서 와서 그 이유를 몰랐다.

첨 단짝을 가진 그 아이는 내 아이에게 유달리 잘해주고 집착한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의 왕따놀이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왕따를 사귀다가는 내 아이도 왕따가 되는게 아닐까

이게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그런 아이와 친구를 한다는게 두렵다.

내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렵다.

 

사람들은 말한다. 왕따라는 건 아무도 친구가 없고 투명인간상태의 외로움인데 그냥 그렇게 둘이서 사이좋게 잘 지내면 왕따는 없지 않은거 아니냐고..

학교2013에서도 그랬다. 친구의 스마트폰을 훔친 나리가  나 이제 왕따당할거야라고 했을때 그 친구가 그랬다, 내가 있잖아. 내가 너랑 친하게 지낼건데 무슨 왕따야..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훈훈하게 끝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란다.

왕따가 새로운 표적이 생기면 그 전 왕따는 자연스럽게 왕따에서 풀려난다.

이제 니가 아니라 저 아이가 왕따라고 정해지면  그순간 왕따였던 아이는 살기위해서  다시는 그런 치욕스러운 경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집단으로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에게 받는 배신감이 더해져 그 다음 왕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내가 경험했으니 하지 말아야지.. 다른 이에게도 고통을 주지 말아야지 하는 공감보다도

이제 더이상 그걸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 커서일까

그게 나쁘다는 걸 알지만 나쁜거보다 더 힘든건 내가 고통받는 것

차라리 고통보다 나쁜 걸 택하려는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할까

 

아이에게 그렇게 말 한적이 있다. 왕따 시키는 아이보다 더 나쁜 건 옆에서 말없이 동조하는 아이들이라고.. 그 아이들은 말한다.

난 아무것도 한 거 없어. 내가 주동한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가만있었다고

그런데 어쩌면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의 돌아선 등이 더 무서운게 아닐까..

나를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드는 미치광이보다 커튼 뒤에 숨어서 나의 그 고통의 과정으 낱낱이 관찰하는  알 수 없는 다수가 더 두렵고 밉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에게 적어도 이게 잘못이라고 나서는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침묵으로 동조하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동조하지 않고 나서지도 않으면 대체 무얼하라는 말인지 나도 참 알 수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으면 나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잘게 부서지고 해부되어 하나하나 죄의식이 심어진다. 혹시 나의 외모가 나의 몸짓이? 혹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던가? 잘못해서 저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게 있었나? 그때 내가 무심코 웃은 것때문에? 그게 비웃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든 시선이 검열관이 되고 나의 모든 사고와 말 행동은 하나하나 검열에 걸려든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

상대의 사소한 반응이 하나하나 다 신경이 쓰이고 무심한 웃음에 마음이 놓이다가도 한순간 냉담에 하늘이 무너질 것이다.

 

사실 어른도 힘든일인데 아이들이 아직 13-4년밖에 살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그걸 견딜까

해 줄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흔히 하는 말로 요즘 아이들이 누구말을 들을까

스스로 아니라고 깨닫기 전에 어떤 말이 귓등을 통과해서 마음에 닿기나 할지

 

사실 소설속에서 왕따를 당한 소녀는 꿋꿋하게 이겨내거나 혹은 시간이 해결해주거나 한다.

 

 

혹은 정신승리법으로 내가 모두를 따 시키겠다고 거꾸로 맘을 먹기도 한다.

 

 

아니면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리거나

 

 

 

 

 

사실 책을 열심히 읽어도 해결책이 없다.

그저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으로 계속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세상은 모두가 함꼐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밖에는...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고 지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믿게 만들어야 하는것 그런것뿐인지 모르겠다.

책에서 길을 찾는다는데 어떤 책에도 맘에 드는 해답은 없다.

그저 견디거나 함께 위악을 떨거나 주저앉는것...

그렇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을 수밖에?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인 문제들이라 누구도 이렇다할 해결을 못내고 있는 건지도모른다.

해결책이 나올만하면 아이들의 사고도 함께 진화하면서 보다 더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하게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방법들이 진화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늘 이게 나쁘다는 것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모두가 하는 일이니까 나만  올곧으면 바보같고 고지식해 보이니까.. 떄로는 옳지 않은 일이 매력적이고 나를 더 근사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는 마음에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하는 사고와  행동이 결국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파 되고 있는 건지도

아니야.. 그러면 왕따 당해 ... 틀린건 아니지만 그러면 애들이 싫어하지

이말이 이제 더 이상 은밀하게 통하는 비법이 아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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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분명 입춘이었는데도 눈이 내린 날

도서관 봉사날이기도 했다.

방학마치고 간 도서관은 어수선하다.

학년별 윤독도서가 다 돌아와서  선반마다 쌓여있고 이제 정리해야할 책들도 모아서 쌓여있고

그리고 새로 들어온 아직 비닐 커버도  입지 못한 새책들도 줄지어 있다.

책정리를 하는 틈틈히 성인용신간을 둘러본다.

오라...

내가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들이 보인다.

치솟는 물가에 졸라매야할 가게부에.. 알라딘 장바구니 담긴 책들이 결제를 봇받은지도 어언 한달이 넘었는데... 길이 없진 않구나

 

냉큼 다석권을 빌린다.

 

 

 

누가 빌려가지 않아 접힌 부분하나없이 빳빳하고 빈틈없어보이는 책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여기 뭘 묻혀도 조금이라도 구겨도  안될거 같은 예감들

무심코 읽어내려가다가 결국 하루에 다 읽었다.

마지막 반전이라고 하는 광고에 끌려 집어든 책이지만 사실 그 반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얼핏 영화' 올드보이'가 떠오르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무심한 내 행동의 파장... 그리고 다가오는 예감 등등의 문제보다 정확히"평균치' 삶을 살았던 주인공 토니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주는 무게감때문이었다.

잘난것도 없고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은 외모 (물론 말년에 대머리가 되기는 하지만) 지성 학력 직업 그리고 가족사들 졸업하고 방황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고 이혼하고 은퇴하고 봉사하고 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느껴지는 불안함  공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난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고 내가 순간순간 상대를 보고 느끼는 감정 판단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속에서 내기 믿는대로 축적되어버린 진실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고  상처주고 살았고 속고 살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토니가 큰 잘못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에이드리언도 이미 성인이고 사리분별력이 있고 판단력이 있는 지성인이니 그의 불행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나비이론까지 끌어다 붙이는 건 너무 거창할지 몰라도  나의 사소한 행동이 가져오는 무시무시한 파장에 대해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온전한 것인지 한번은 의심하고 돌아볼 필요도 있다는 것

우리가 진실이라서 믿는게 아니라 믿으니까 그게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도

내가 본 것 . 내가 들은 것. 내가 느낀 것. 그때의 나의 감정들 그리고 나의 판단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 어떤 사람이나 사물 말과 몸짓은 또 다른 방향에서는 다르게 읽혀질 수도  있따는 사실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첫장으로 손이게가 하는 책이었다

무탈하고 편해서 따문하기까지한 일상과 평범한 행동이 거져오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더 무섭다는 것

다시 한번 느낀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회고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신중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채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 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책 초반에 에이드리언이 인용했던 말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산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한번쯤 뒤집어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걸 알게 해준 책

그리고 내가 한때 역사를 전공했었다는 걸 기억하게 해준 책....이다...

 

 

 

아휴 도데체 이 작가는 뭐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책 날개를 보면서 작가의 나이를 계산한다.

이미 다 살아서 세상을 저기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무심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 사이에서 자꾸 눈물이 흐른다.

작가는 담담하게 서걱거리는 마음으로 건조하게 썼을지도 모를 문장들이 자꾸 내 목에 걸려서 꺽꺽대게 만든다.

하나도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앞이 깜깜한 절망이 아니라 손에 닿지도 않는 한줄기 빛이 저 멀리는 반짝이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차라리 모든 것이 막막하면 포기라도 하겠지만 미약한 희망이 보이고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닿을 듯한 용기를 가질때가 자장 무섭다,.

어두움앞에서는 목놓아 올어버리거나 욕을 하면서 누군가를 탓할 수 있지만 한줄기 빛앞에서 내가 무기력해질때는 그것은 오롯이 나만의 책임이다.

누굴탓할 수도 없고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고 그저 나 자신이 죄인일 뿐이다.

책속의 인물들 누구하나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줄기 희망을 바라보면서 그게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그 빛으로 한걸음씬 내딪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그 빛은 뒤로 물러난다. 아주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놀리듯이 장난치듯이 딱 한걸음만 뒤로 달아나는 통에 포기할 수도 없다.

미영이... 기옥씨가 용대가... 신혼의 임산부가 은지와 서윤이 잘못 살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정말 아둥바둥대며 최선을 다해 산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신이 건조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몯는다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크므 최선을 다해 그 자리에서 할 수있는 모든 걸 다 하고 있다.  그런데... 변하는 건 없다.

그게 정말 무서운 일이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피지 않은 꽃은 없다고 하지만 아프기만하고 흔들리기만 하지 꽃이 필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 덜 아파서일까 덜 흔들려서일까 그렇게 자책하고 미안해하기만  할 뿐이다.

얼마전 끝난 드라마 ' 청담동 앨리스'가 생각난다.

거기서 주인공이 그랬다. 정말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으면 그때는 세상을 향해 화를 내야하는 거라고...

정말 세상을 향해 화를 내고 소리쳐야 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 못난  주인공은 제 주변사람들을 먼저 들볶고(그것도 저보다약하거나 비슷한)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자기들 끼리 갈등을 만들 뿐이다. 은지와 서윤처럼,.

그리고 서른살의 그녀처럼 모른 척하면서 엣제자를 다시 속이고 끌어들인다.

큰 욕심 낸적없고 조금만 지금보다 조금 큰 창을 조금 다 따뜻한 볕을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은 모두 그자리에서 맴돌거나 더 아래로 추락할 뿐이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저주의 주문처럼 무서운 구절이다.

겨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둥바둥 이더냐..너의 빛나는 절음도 시들면 결국 내가 되는 것뿐이라는 ..너같은 새끼 낳아봐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저주...가 가슴이 박힌다.그래서 마지막 작품을 다 읽고서는 결코 수인을 나무랄수만도 없다.

 

내가 가진것을 물려주려고 혹은 나처럼 되라고  법대로 혹은 법의 이면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되지 말라고 비법하게 눈감고 수를 부려봐야 겨우 나밖에 안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그렇더라

차승조는 결국 아비가 사준 그림값으로 성공했던 거였고 한세경은 그런 행운조차 가질 수 없는 비행운의부류라는 것

드라마니까 두 개의 다른 부류가 만나는 교집합 부분이 생긴거고 소설에서는 비행운의 인간은 절대 행운의 인간을 만날 기회조차 없다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어떤 감정도 없이 담담하게 무심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하다.이 글을 꼭꼭 씹어가며 읽어서 내 속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게 아닌데 싶을때 뭔가 억울할떼 다시 꺼내봐야겠다는 생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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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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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함께 몽골여행을 한다.

단둘만의 여행은 아니고 엄마의 동창여행에 딸이 함께 따라가는 모양새다.

엄마와 딸의 최초의 세계여행. 단 둘만의 여행

낭만적이고 뭔가 은밀한 소통 즐거움이 기대되지만 천만에...

엄마와 딸은 그저 대면대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고는 정작 자기가 받은 상처만을 들여다 보느라 내가 상대에게 하는  한마디 무심한  몸짓 하나가 상처가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책을 펼치면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이먹은 아줌마들의 주책 젊고 잘생긴 가이드에게 체면도 모르고 알랑거리고 아줌마 특유의 넉살과 입담으로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놀리고 친근하게 들러붙고.. 한마디도 15살 소녀의 눈에는 그저 한심하고 속물스러운 아줌마부대였고 계속 여행을 후회한다.

볼거리가 대단한것도 아니고 음식이 입에 맞는것도 아니고 말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내가 좋아했던 그룹의 오빠를 닮은 가이드때문에 뭔가 기대를 하고 설레지만 번번히 엄마로 인해 방해받고 정작 그 왕자님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밖에서  엄마의 새로운 면을 보기도 하지만 흥... 한때 주름잡던 문학소녀였고 나같은 두근거림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고 지금은 그저 팔뚝살이 철렁거리고 젊은 가이드에게 잘보이려고 화장을 떡칠하고 번번이 내 로맨스를 방해하는 훼방꾼일뿐이다.

데려온 딸은 신경도 안쓰고 친구들과 떠들고 히히덕거리기 바쁜 엄마..

나는 여기 왜 왔을까.. 한순간 가이드와 함께 본 석양에 가슴 설레고 본격적인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런 하룻밤의 신기루였을까... 아침에 천청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1부가 끝나면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애 전환기에 선 엄마는 딸과 함께 좋은 시간을 위해서...라며 여행에 나선다.

딸을 보며 나도 한때 저랬지 하는 감성을 느끼지만 내가 한떄 그랬던것들이 나이들어 보니 별거 아니라는 걸 아는  현재라.. 사사건건 딸을 챙기기 바쁘다.

그런 허튼데 마음주고 시간 빼앗길 필요가 없다는 것 화려하고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삶을 지향해서도 안된다는 것... 이 어미가 살아온 45년의 인생이 알려준 그 정답을 딸은 어떤 시행착오없이 알기를 바란다.

거인이 펼쳐놓은 외투의 구멍사이로 보이는 쏟아질듯한 별빛들 가도가도 지평선만 보이는 막막하기만 사막 그 거대한 자연앞에 초라하고 작아지는 나를 보면서 울음도 터뜨리고  친구에게 날선 질투도 느끼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자유롭게 뭔가 굉장한 터닝포인트를 기대하며 온 여행이지만 정작 내 속에 꽁꽁 숨겨둔 무언가를 꺼내 보기는 두렵다.

어쪄면 그걸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45년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까봐 그게 두렵다.

 

엄마와 딸의 여행 , 이국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보는 딸과 엄마의 성장이라는 건  상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 속의  엄마의 나이에 다인과 같은 딸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 엄마가 느끼는 현실을 마주 하기 두려움같은것이 내 속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아둥바둥 잡고 힘들게 끌고 가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한순간의 착각 신기루일거라는 것

계속 쿵쾅거리는 가슴은 마지막 부분 다인의 말에서 왈칵 감정이 쏠렸다.

신기루가 마냥 신기하고 이상하고 허무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여행중에 그 신기루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것

살아가는 세상에 아무 의미없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이 나중에 뼈아픈 후회가 될지라도 혹은 나중에 기억도나지 않는 허무한 시간일지라도 그게 의미없는 건 아닐껏이다. 그 순간순간은 뭔가 절실하고 몰두했던 것들이 있었으므로...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해서 빌렸다가 시험기간이라 내가 먼저 읽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먼저 읽기를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도 이 책을 읽고 제 엄마를 이해하려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쩌면 그나이에 그저 내 성적에 안달하고 엄친딸과 비교나 하고 투덜거리기나 하고 돈돈거리는 엄마를 보며 한심하다고 내아이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마냥 팔자가 좋아서 시험도 안보고 단어를 외울필요도 수학을 풀 필요도 없고 친구들 사이의 고민도 없어보이고 빈 집에서 하루종일 (적어도 반나절은) 원하는 걸 하고 지내는 구나.. 하는 그런 부러움반 한심함 반 생각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딸에게 나도 책속의 엄마 이상의 무언가를 줄 수는 없을 거같다. 무언가 멋진 말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누군가에게 가로채이거나 기회를 잃을것이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싶은 멋진 엄마이고 싶은 동시에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당겨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할것이다.

 

전혀 비슷하지는 않지만 라이팅 클럽이 생각났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고  딸이 엄마를 한심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 둘사이의 한없이 깊은 애증이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상처주고 상처입는 다는 것 아닐까

 

엄마는 딸들에게 꼭 너같은 딸낳아서 키워봐라 하고

딸은 절대로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절대 닮고 싶지도 않고 닮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내게 가장 무서운 비판자이고 내게 가장 쓰라린 상처와 위안을 동시에 주는 존재들이다. 엄마에게 딸은 딸에게 엄마는...

나도 한때 내 엄마가 좀더 멋지길 바랬고 너무나 통속적이고 집요하게 걱정하는 걸 간섭이라고만 생각했고 절대 내 마음을 이해못한다고 나랑 수준이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렇게 오만했던 나이때의 나를 지켜보았을 엄마 나이가 되면서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때의 엄마는 나보다 많이 젊었고 그래서 피가 더 뜨거웠을 것이고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이 늦은 그래서 속물이 되어 결혼한 나랑 달란 보송보송한 20대 초반에 결혼한 엄마에게 시집이며 남편이며 딸이며 하나같이 버겁고 혼자 수습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도 엄마랑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엄마랑 다르지 않는 모습을 내딸에게 보여준다.

나는 다를 거라고 적어도 아이와 친구가 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될거라고 큰소리 쳤지만

그리고 지금 그러하다고 믿고 있지만.. 아마  내 아이는 속으로 엄마랑 말이 안통해! 할지도 ..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이 겹쳐진다고 그게 반복된다고 책은 조용히 이야기해준다.

라이팅 클럽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때 뭐라고할 수 없던 먹먹함이 지금도 느껴진다.

계속 나는 달리고 있는데.. 이 울타이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자동차처럼 나도 그렇게 열심히 도망치고 달렸었는데 어느새 내가 정말정말  달아나고 싶었던 바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을때 느끼는 망연함...

그리고 그 달리는 과정에 내가 봤던 아름다움, 이상, 꿈이 어쩌면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부터 내 아이도 그렇게 지독한 달리기를 하겠지만 어쩌면 계속 맴돌기만하는 걸 시작할것이다

멀리 멀리 엄마로부터 떨어져보라고.. 나랑 다른 길을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지만 한편 그 손을 차마 놓지도 못하는 이야기..

그리고 항상 깨달음은 나중에 온다는 것..

 

지금 마흔의 중반에 서서 문득 삐뚤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한없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봐도... 나쁘진 않을거같다는 건..

어쩌면 숙희로 살다가 이제 춘희로 살고 싶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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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방주로 오세요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그리고

고의는 아니지만

 

이 작가는 누구지?

아 물론 그가 구병모라는 미모를 가진 여자라는 건 안다.

그리고 개인적인 정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위의 책들을 덮으면서 늘 떠오르는 것

 

도데체 누구냐 넌?

 

넌 도데체 왜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이런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런 찝찝하고  뒤 안닦은 느낌을 주는 결말을 내는 거냐

그리고 그 기기묘묘한 뒷감정을 이렇게 오래오래 끌게 하는거냐?

 

 

 

그의 첫 책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을 때 참 신선했다

뭔가 스릴있고 가슴을 죄어오면서도 생각할 꺼리가 많았고 그 신비로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뭔가 하나를 얻으려면 댓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

내가 다시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동화처럼 낭만적이고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로 되돌아간다는 단순한 사실 그래서 설령 또다시 지금처럼 모든 것이 반복이 되더라도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 아. 뭏. 튼...

 

신기하면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 이야기를 읽고나서 한참 후에 아이도 함께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겨우 초등학생이 무엇에 끌렸는지 몰라도 아이가 먼저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았고 먼저 읽었다.

집에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방주로 오세요" 가 있어도 위저드에서 느낀 피로감이 쉽게 잊혀지질 않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단편인 "고의는 아니지만"은 그냥  몇장읽고 닫았다.

쉽지 않아...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문제인건지...아니면 우리 합이 안맞는건지도..

 

                             

 

그리고 아이를 따라 방주~ 와 피그말리온을 읽었다.

여전하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결말 자꾸 뒤통수를 당기는 기분은 여전하다.

피그말리온의 아이들을 읽으며 과연 기성세대중 누가 로젠타 스쿨의 교장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권력자가 통치하기 편하도록 사람을 길들이는 과정일 뿐이라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뿐이다. 보다 손쉽게 보다 우리에게 유용하게... 그러나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무기력해보이는 아이들이 외부인을 돕고 체제에 저항을 하지만 결국은 더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그곳을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고 한들 세상에 알린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들에게 따듯한 집이 있는가 환영해주는 가족이 있는가 결국 세상은 바뀌는 것이 없다.

그래서 결론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내가 그렇게 한것도 안이지만 내가 그렇게 극악스럽게 아이를 몰아간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른 척 눈감고 좋은게 좋은거야... 하고 등을 돌리는 행동

이런 단순하고 무심한 행동이 용서되지 않는다.

그런들... 그래서 어쩌라구

 

방주시는 작가 후기에서 볼때 아마 그의 초기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출간은 늦었지만 예전 미리 써놓은 습작같은 걸 고치고 고쳐서 내놓은게 아닐까

조금 서툴고 단순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강하다.

투박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꾸미지 않고 내뱉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현실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방주시 그리고 그곳의 선택된 사람들 그리고 반쯤 선택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격차를 폭파해버리고 싶은 ㄴ사람들

결국 이 이야기도 끝은 그렇게 끝났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작가의 백미는 "아가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도  기묘하지만 아름답다,

반은 물고기인 주인공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때문인지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이전 리뷰에서도 썼지만 이건"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끝없는 학대와 미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소년이 누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미워하고 구타하고 이용하는 것 그러면서도 "살아있는게 좋아서"그렇게 데리고 있는 것

이 유치찬란하고 어이없는 행동이 결국은 사랑이었다.

결국 학대도 사고이후의 전혀 연락하지 않는 고집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졌다.

혹 그때 내 마음이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한권 "고의는 아니지만"

이건 단편집이다.

이걸 읽으면 내가 작가를 조금 더 알 수 있을까

 

한권한권 읽으면서 내 편견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작가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뭔가 공감이 가는데

이번은 읽을 수록 오리무중이고  더욱 알 수 없다.

도데체 이 작가 다음엔 무얼 쓸것인가

내가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세상의 기대가 무서워서 이제 숨어버리진 않을까

그건 그렇고 도데체 누구냐 넌

몇권을 더 읽으면 알 수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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