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중략) 신고 전화가 걸려 온곳은 트레몬트가의 어느 2층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계단에 들어서자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자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작은 욕설과 협박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대는 그의 아내였죠 곧 사람인지 물체인징 ㅏㄹ 수 없는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끔찍했죠. 경찰관이 문을 드드리며 "경찰입니다. 문을 여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집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어찌나 조용했던지 숨 쉬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이윽고 남성이 문을 열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경관님 어쩐 일이신지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던 남성은 경찰관을 맞이한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데 문제가 없어보였습니다. 그의 문제는 감정 기복이나 통제력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의 독재자로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주도권이 중요했던 것이죠. 자신의 행위에 대가가 따를 때 만큼은 남성들도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취한 와중에 아내를 때리다가도 경찰관이 출동하면 때리는 행동을 멈춥니다 누구는 때려도 괜찮고 누구는 때리면 안되는지 취한 와중에도 구분하는 거죠. 이런 상황 판단 능력은 술의 영향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아니  이런 판단 능력은 사실 태어날 때부터 갖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남녀를 구분해서 화를 표출해야한다는 판단 기준을 배우며 자라나는 남자아이들은 자연스레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p188

 

 

모든 폭력의 원인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건 "해도 괜찮다"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친구를 때려도 괜찮아. 뭐 장난인데 누구나 하는 짓이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잖아."

"여자를 때리는게 어때서? 여자는 사흘에 한번씩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왜 있겠어"

"내 마누라 내가 교육시키겠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몇번을 얘기해도 듣질 안으니 매가 답이지"

"내가 지 남자친군데 내 말을 안들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지"

"내가 사랑하니까  나가서 욕 듣지 말라고 하는 거라고  사랑이 없으면 이러지도 않아요"

"여자들이 설쳐대기 시작하니까 문제지  뭔지도 모르고 지껄이고 설치고 까분다니까"

".그런 여자들 몇몇 어찌 된다고 뭐가 문제겠어? 저러고 다니니 당해도 싸지"

 

자기 아내를 때려서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 없고

심지어 때려 죽여도 제발 사형시켜달라는 탄원은 있어도 막상 사형이 구형되지도 않는다.

애인을 때려도 그저 사랑싸움이겠거니 하고 말고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덤터기를 쓰거나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다.

동료를 성추행 해도 그저 집행유예가 전부이거나 학교에서 퇴교 조치를 당해도 다른 학교에서 다시 삶을 시작 할 수 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도 결국은 불륜의 문제가 되고 꼬리치고 나선 여자가 돌을 맞을 뿐이다

그러니 세상에 만연하게 펴진 생각은 그러하다.

해도 괜찮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결국 술도 아니고 정신병도 아니고 순간의 욱을 참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도 아니다.

술을 개처럶 마셔도 정신이 혼미해도 욱이 머리끝까지 치밀어도 그들은 자기가 터뜨려야 할 순간과 하지 말아야 할 순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가도 그 순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있으면 괜찮다는 것도 알고

티나지 않게 구타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심지어 먼저 자기가 피해자라고 신고하는 치밀함까지 가지고 있다.

 

남자에들은 그렇게 크는거지

다 싸우면서 의리도 생기는 거고

그 나이엔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 무리에서 빠지는 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야

여자애들이 자꾸 약올리고 꼭지 돌게 만들잖아

영악한 여자애들이 문제라니까 애를 아주 미치게 만들어 버리니 어리숙한 사내애들이 결국 욱해서 손이 올라가는 거구 결국은 봐봐  폭력을 썼다고 뒤집어 쓰는 건 다 남자애들이라니까

요샌 남자애들 교육 잘 시켜야해 여자 조심해야 한다고...

 

가부장제가 말하는 타고난 남녀의 차이

본능을 참을 수 없는  그리고 수컷들 사이의 위계가 중요한 집단 특성으로 결국 남자란 그럴 수 밖에 없고 그런 남자가 남자다운 남자다. 라고 정의된다.

학교 가면 사람 될까 군대가면 사람될까?

아니 사회화를 통해서 그 남성다움은 더욱 공고화되고 그 무리의 특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약자가 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그 피해자가 권력을 갖는 순간 그는 또다른 가해자가 된다. 여성적이라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모욕적인 언어이다.

니가 여자냐? 여자같이 생겨가지고...

그건 수치이고 모욕이라는 것인데 그 의미는 결국 여자란 수치흐럽고 하등하다는 의미의 다른 뜻이다.

남자다움을 규정하는 맨박스는 그 틀이 공고할 수록 남자들은 세상살이는 편하다.

그 규정에 벗어나는 남성들 그래서 자기 욕망과 타고난 성정을 눌러야 하는 남성들을  불편하고 심지어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선한 남성들은 그게 당연한 사회적 가치이며 질서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고 죽이지 않은 자신들은 선량하고 착한 남성일 뿐이다

해도 괜찮은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이런 접근 방식은 여성들이 공격당할 확률을 낮추고 그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도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 이 방법은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처할 책임을 여성들이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을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대응책이다. 남성들의 삶에는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폭력 문제의 대처 패턴이다. 우리는 해결 방법을 고민했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성폭행 가해자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정답은 당연히 남성이었다. "만약 여학생들을 구내식당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실어나르는 대신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봐야 하죠?"  (중략)

우리의 의도는 이번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교내 성폭력 문제를 남성들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초점은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맞춰졌다. 셔틀 차량으로 이동하게 된 남성들은 더는 피해여성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왜 그녀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는지 그녀가 강간당했응ㄹ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대신 남학생들은 물었다. "어떤 놈이 저지른 짓이야?" 그리고 말했다. "나머지 학기 내내 셔틀에 실려 다니기 싫으니 얼른 뭔가 대책을 세워야 겠어"

가정 폭력 혹은 성범죄를 접할 때 우리는 남성에게 유리한 해석응ㄹ 내리곤 한다 기본적으로 남성의 편에 서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솔직해지자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행위에 대해서 되려 여성에게 책임을 묻거나 불편함을 감수하도록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p135~137

 

 

<playing the game>영상에서  한 여학생이 오랫 동안 짝사랑하던 남학생과 가까워졌다.

또래 파티에서 그 남학생을 만났고 그 남학생도 자기에게 호감을 보이며 이른바 썸을 타기 시작했다 파티에 당연히 술이 있고 음악이 있고 떠뜰썩한 웃음이 있다.

술이 들어가고 여학생은 대범하게 남자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웃고 몸을 터치하고 춤을 추고 키스를 한다. 그 사이사이 계속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남학생을 조용히 속삭인다. "우리 이층으로 올라가자"

여학생은 거부하지 않고 따라가고 빈방에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키스를 하고 서로 애무가 짙어지면서 남학생을 섹스를 요구한다.

너도 원하면서 왜그래? 재미없게 굴지마

여학생은 이건 아니다. 아직 섹스까지 원한건 아니다.

함꼐 있고 싶고 둘만 있고 싶지만 그리고 만지고 키스하고 싶지만 섹스는 아직 내키지 않는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보지만 남자는 그 몸짓을 no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여학생은 그 방을 뛰처나온다.

이건 명백한 강간이고 폭력이다.

교육욕 영상답게 주인공 여학생의 친구둘이 등장하고 한 명이 어건 명백한 폭력이며 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위호한다. 다른 한 명은 내가 파티에서 너희들을 봤는데 둘이 너무 찐하게 붙어있더라 그랬다면 너도 원한게 아니었니? 라며 내가 그 남학생을 잘 아는데 그렇게 폭력적으로 할 애가 아니다 좋은 애라고 한다.

남학생도 두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어젯밤의 일을 물어보며 그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며 우와 우와 하는 친구가 있고 그 여학생이 동의했느냐고 먼저 물어보며 동의하지 않은 애위는 폭력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나온다.

두 남 녀 학생의 진술을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누가 진술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은 미묘하게 다르다. 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제대로 자기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무지하게 즐기는 얼굴이 나온다.

누구나 이건 명백한 강간이라고 생각한다  '

다만 누군가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피해자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선한 마음으로 그리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덧붙인다.

이건 명백한 성폭력사건이어서 신고를 하고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피해자도 교육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정신이 없도록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고 빈 방에 남녀가 둘만 들어가지 말아야 하고 그런 순간에 누군가 친구와 함께 해야하고  적어도 남자를 그렇게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나의 십대를 돌아봐도 그렇다.

엄마가 선생님이 여학생은 몸 조심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등등 잔소리를 겸한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미디어에서 책에서 그리고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우리는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늘 알고 있다. 술을 많이 마셔도 안되고 밤늦게 다녀도 안되고 짧은 옷을 입고 다녀도 안되고 화장실을 갈때는 꼭 친구와 함꼐 가야 하고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하고 남자들은 다 늑대니까 아빠 말고는 믿어서는 안되고.... 그걸 모르는 여성이 있을까?

그런데 일이 생기고 안그래도 이미 수없이 자책을 하고 있을 그 여학생에게 다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선한 의도로 그런 소리를 되풀이 해야할까?

그건 결국 그 모든 문제의 발단은 너! 라는 이차 가해일 뿐인데

가끔 우리는 이차 가해를 피식거리며 심문하는 경찰의 모습이나  노트북 뒤에서 댓글을 다는 일부 악플러들이나 뒤에서 노골적으로 수군거리는 알지 못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한다.

너를 너무 걱정해서 조심스러워서 선한 의도로 전하는 말들 역시 하나의 가해라는 걸 알지 못한다.

이미 그들은 알고 있다.

모든 답은 피해자에게 있고 내담자에게 있고 누구보다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배우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옳은 말을 해주고 싶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고 무언가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충고 조언 교육에 있어서는...

 

그냥 가해자에게 <동의> 동영상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동의되지 않은 관계  차마 자기 의사를 말할 수 없는 관계  중간에 바뀔 수 있는 욕망과 의사 모두가 no! 라고

 

 

남성들이 자신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선한의도를 가진 사람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여성들을 부적절하게 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고 고백하는 남성들은 찾기 힘들다 아니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나는 착한 남자고 몇몇 나쁜 남자들이 여자를 때리기도 하는데 전 그런 건 용납하지 않아요."

하지만 자신과 몇몇 나쁜 남성을 구분 지어 생각하다 보면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우리 사회 남성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속하며 알게 모르게 남성 중심적 사고와 사회적 분위기를 지속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마치 백인이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예요 다른 백인들 중에는 흑인을 차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아니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고방식에 안주하기 때문에 정작 사회 구조적 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와 자신은 별개라는 생각으로 자아 성찰을 거부할 때 주변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대하는 방식에 직접적으로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때 지배적 위치를 선점한 백인들은 사회 구조적 인조차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외면하게 된다. 어떤 기득권층이나 지배적 집단을 보아도 현실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대응을 회피하는 사고방식을 관찰할 수 있다.

 

가끔 남편도 그렇게 남자들이 말한다.

"내가 바람을 피기를 해 도박을 하기를 해 사람을 (여자를) 패기를 해 나만큼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럴 때 차마 말을 못하고 속으로 조용히 날린다.

'그런 행동들은 다 범죄거든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니잖아'

남자들은 참 쉽다 범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는 허용의 범위도 무한정 넓다.

범죄는 당연히 안되는 일이며 법의 테투리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의 예의라든가 존중의 의미에서 서로 조심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은 잊는다.

여자는 그러면 안되는 일이 손가락 발가락을 동원해도 다 셀 수 없는데 남자는 그래도 괜찮아 뭘... 하는 일이 손가락 발가락을 넘는다.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할때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꼭 말을 한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방관자들이 있고 어쩌면 그 방관자들이 그 폭력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자마. 그건 안되는 일이야

라는 말 한마디가 폭력을 줄일 수 있고 누군가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 앉힐 수도 있다.

그냥 내 일이 아니어서 침묵하고 내가 나서서 괜히 일 만들기 싫고 나까지 불똥이 튈까 싫어서 모른 척 하는 그 순간 누군가는 그 행동에 정당성을 인정받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탓을 하며 쪼그라들고 있다.

남자들도 그냥 나만 착한 남자가 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이 상식이라고 믿는 맨박스의 규칙들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고 그들에게도 폭력을 수 있다는 걸 한 번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여성폭력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만약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공격한다면 그 행위는 당연히 인권침해로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 폭력 문제에 관해서만은 남성들에게 책임을 면제해준다. 이때부터 여성폭력은 사회적 문제도 아니고 남성들의 문제도 아닌 '여성문제'가 되고 만다. 가정 폭력 성폭력 및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모든 폭력과 학대 행위가 '여성만의 문제'로 치부되는 순간 문제의 심각성이 훼손된다. 평범하고 선한 남성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에게 특권 단체라든가 소수 단체 , 페미니스트 조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체들은 과소평가 되기 일쑤다. 사회적 위상이나 영향력 동원 가능한 자원이 한정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성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테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 같은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대로 정확히 명칭을 정하자면 행위의 가해자인 남성을 지목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처럼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성과 그들의 희생이 아니라 남성과 그들의 범죄 행위여야 한다. 여성이 학대 당할 때 남성이 침묵하는 것은 폭력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평범한 남성의 침묵은 허락을 뜻한다. 침묵은 남성들 간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공모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의 침묵은 여성을 해치는 폭력적인 행동이  마치 정상적으로 용납되는 행위처럼 비춰지게 만든다.

대다수 남성들의 본심은 폭력적인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함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우리의 침묵이 결과적으로는 동의의 표현이나 마찬가지임을 깨달아야 한다. 폭력적인 남성들은 착한 남성들이 침묵을 지킬 거라 믿고 있으며 우리가 구시대적인 남성상에 충실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행동한다. 폭력적인 남성들은 선한 남성들이 계속해서 여서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믿음을 공유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여성에게 무슨 짓을 하든 간섭하지 않게 말이다. 폭력적인 남성들은 선한 남성들이 계속해서 성폭려게 노출된 여성 피해자들을 괴롭히길  원한다. 피해 여성이 왜 거기에 있었으며 알아서 조심하지 않고 왜 그런 치마를 입었는지 캐물으며 여성을 취조하길 원한다.

 

 

 

여성들은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성이 폭력을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남성들은해법의 일부분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 된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존중한다면 여성의 안전은 자연히 뒤따라 올 것이고 여성 폭력도 감소할 것이다. 먼 훗날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맨 박스가 언제까지 선한 남성들의 핑계가 되어 줄 수는 없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에게 생기는 일이라면... 하고 감정을 이입해보면 쉽게 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양가 감정은 내 아이만은 그렇게 되질 않았으면 하는 뻔한 속샘도 함께 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혹시 내 아이가 그럴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다가도 절대 내 아이만은 그렇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학교 폭력 가정 폭력 성 폭력을 생각하며 내 아이가 당했다면 이렇게 법이 허술하고 사회제도가 부실한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울분을 터뜨리라다고 그런 험한 꼴을 내 아이만은 당하지 말았으면 하는 비겁한 마음도 함께 든다.

부모가 되고 보니 세상에 두려울게 없으면서 동시에 세상 모두가 두려워진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을 위해 일회용품도 쓰지 말아야 하고 폭력이 근절되어야 하고 밤길이 안전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행동해야 하지만

내 아이가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일이 없기를 그냥 눈을 감고 넘어가는 일도 괜찮다고 바주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세상을 알 수록 내 속의 모순도 자꾸 더 확장되는 기분이다.

 

성폭력 에방교육을 하시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가장 강의가 겉돈다고 느끼는 대상이 40대 이상의 남성  공무원이라고 했다.

뭘 그럴 수도 있지. 여자가 조심해야지  세상이 말세야 라는 곳에서 딸같으니까 그랬지 하는 말을 뒤집어 그 행동을 당신 딸에게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금방 침묵한다고 했다.

차마 내 딸에게는 할 수 없는 짓. 내 딸이 당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치욕스러운 일을

타인에게는 딸같아서 딸처럼 예뻐서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그러나  몇몇의 반응은 불쾌감으로 드러난다. 왜 그런 같잖은 짓에 우리 가족까지 끌어들이느냐고... 결국 그들은 가족과 타인이 구분된다. 해도 되는 대상이 있고 안되는 대상을 자기가 결정하며 불쾌감을 드러낸단다.

그럼에도 그렇게 강의 서두를 시작하면 대부분은 알아듣는다고 하는 말이 생각이 났다.

책의 저자도 남성들에게 그렇게 접근한다.

당신 딸이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역지사지의 경우이기도 하지만 한편 꼭 그렇게 생각해야 알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그렇다면 결국 내 가족을 위해서 라는 이기적인 마음에서밖에 시작할 수 없을까 싶기도 하고

남자란 내 가족을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퍽이나 헷갈리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남자가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 폭력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고 권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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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김영미 지음 / 양철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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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책이었다가 이제는 내가 위로받는 책이되었다. 큰 아이는 자기가 사랑하는 그림책 목록을 가졌고 작은 아이는 우연히 뽑아든 그림책에 뭉클해지더라고 얘기해줬다.
그러면 되었다.
이야기는 내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작은 비밀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걸 몸으로 배운다.
꼭 책이 아니어도 세상 모든 것들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낭창낭창 말 안듣는 딸 아이도
도무지 다른 세상 사람처럼 말잊안통하는 배우자도
염치없음에 질려버린 어떤 이웃이나
연락이 끊어져 그립다가 잊히다가또 그리운 친구도
잔소리처럼 법규를 읊어대던 그 직원도
저마다 하나씩 이야기가 있을테고 그 이야기는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을진데...자꾸 까먹는다.

세상엔 그림책이면 충분할 수 있고 그림책이 아니어도 충분 할 태도 있다.
예전에 읽고 잊은 책들도 기억이 새롭고
제목만 알던 책들도 다시 궁금하고
지금보다 조금 유순했을때 아이와 같이 읽었던 책들도 그립고
새롭게 메모한 책도 생겼다.

한 번쯤 추억하며 읽기엔 좋은 책
지금 열심히 세상에 귀 기울이며 살고 있다면 굳이 읽지않아도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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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고 싶은 독서치유의 모든 것
윤선희 지음 / 소울메이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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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펼쳐지고 여기저기 흩어진 이론과 생각을 정리하기 좋음
쉽게 읽히징산 조금은 주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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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 -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고병권 지음 / 돌베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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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조근조근 떨리지 않고 뒤집히지도 않은 낮은 소리로 들려주는 우리 세상이야기.내가 아는것. 알아야하는것과 내가 사는것 살아가야하는 모습에 대해 아프게 생각한다. 세상은 여전히 모두가 같이 살고있다. 다만 내가 무지하거나 모른 척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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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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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공감할 수 있어야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내가 만들고 구속한 나일수도 있다. 울퉁불퉁하고 느리게 가는 길. 당신의 감정은 언제나 옳다는 그 말은 스스로 단단해진 내 안에서 나온다.
공감은 익히고 훈련되어야 하는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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